'그 후'를 보고.

- 미리 말하지만, 당분간 긴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최대한 생각을 간결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즉흥적인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는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경험자의 설명은 youtube에 유준상이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홍상수와 작업했던 이야기를 이야기 한 부분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내가 이야기 하려는 건 시나리오의 '즉흥성'이니까 말이다. 시나리오가 즉흥적이라는 건, 많은 부분들이 대본으로 딱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 그때 순간에 맞춰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말한다. 그렇게 최근의 작품들을 좀 바라본다면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는 내가 보지 못했으니 언급하지 않는다. - 소재들은 분명 어떤 남자와의 '불륜'이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시점은 다 같지 않다. 어떤 영화에서는 남자였다가, 또 어떤 영화에서는 여자였다가, 즉 왔다갔다 한다. 한 쪽으로만 쏠려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희(김민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그 후'는 거의 권해효를 중심으로 앵글이 잡혀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김민희(아름)와 김새벽(창숙), 그리고 부인(조윤희)에게도 시선이 간다는 점은 이전에 봤었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처럼 한 이성을 두고 여러명의 이성이 관계를 맺는 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물 구성인걸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본질은 분명 다르다.

영화의 시작은 권해효의 아침식사이다. 다만 그 아침식사가 거의 '새벽녘'식사라는 점이 좀 볼만하다. 혼자 일어난 듯한 분위기에 간단하게 밥과 포스터에 보이는 3개의 반찬+국으로 식사를 한다. 왜이렇게 일찍 일어났냐는 아내의 질문은 곧 '여자 생겼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권해효는 아니라고 말하며 출근길을 향한다 그런 그는 자신이 사장인 출판사에서 다른 여직원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출판사에 출근하는 장면부터는 김새벽과 김민희와의 관계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홍상수 다운 영화 전개라고 볼 수 있는데, 두 개의 이야기(김민희와 만나는 이야기, 김새벽과 만나던 이야기)를 처음에는 교차하고 나중에는 김새벽이 어떤 식당 근처에서 우연히 권해효를 만나게 되면서 두 개의 병렬된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진다. 나는 이 영화의 말로 풀어내기 힘든 독특한 구성에 신선함을 느꼈다. 다만 그 부분을 관객들까지 다 수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권해효가 김민희에게 건내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라는 책이다. 책 내용을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 어찌되었든 둘다 '불륜'을 소재로 한다는 점, 그리고 두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무기력해보이는 일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하나의 힘으로 생활에서의 활력, 에너지 등을 얻어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공통점인 듯 싶다. 결국 '그 후'라는 제목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관계가 끝난 그 후이기도 하고, 김민희가 '그 후'에 다시 권해효를 찾아가서 느낀 감정들을 나타난 것이기도 하고, 권해효가 김새벽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원래의 아내와 다시 살아가고 있는 '그 후'이기도 하다. 다양한 면에서 '그 후'의 일들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그 후'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과거의 일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들을 보여준 느낌도 든다.

이 전의 영화보다 이 영화의 제목인 '그 후'라는 단어를 통해서 생각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정리를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은 여기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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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chment'를 보고

- Youtube

우연히 Youtube에서 이 영화의 내용 일부를 보게 되었다. 선생님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내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던 배우였던 'Adrein Brody'라는 배우였다. '피아니스트'라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한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었고, 영화 'The grand Budapest hotel'의 한 상속자로 나오기도 했었던 그 배우다. 배우에 대한 관심은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졌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선생님 역신 애드리언이 학생들에게 '매스미디어'에 대항할 사고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글을 읽어야 한다고'말하는 지 말이다.


- 교육 문제를 다룬 영화

교육문제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럽의 어느 국가들에서도,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영화 역시, 그렇게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현실과 고투하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그 한 사람, 헨리 바쓰(에드리언 브로디)는 기간제 교사로, 학교를 매번 옮겨다니며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는 학생들의 고충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려고 하는 선생님이다. 영화 'Detachment'의 제목을 직역하면 '분리'정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분리는 아마도 주인공인 '헨리'가 세상에 대해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여학생 '메레디트'와 '에리카'에 관한 '분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헨리는 어느 날처럼 새로운 학교에 취직한다. 그는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취직 한 학교는 시작부터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에 와서 동료 교사에게 고함을 지르며 항의를 하고 있고, 학교의 상담교사는 학생들을 매번 상담하지만 학생들이 상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탈행동을 하며 자신의 일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자괴감을 느낀다. 이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교장은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학교의 구성원들은 '가정'에서도 비슷한 불화를 겪고 있다. 한 남자 선생님은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교장 역시 남편과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헨리는 또 어떠한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요양시설에 위탁하여 가끔씩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이렇게 '선생'들의 가족이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고통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임을 보여주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단지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가정 불화'라는 문제에 원인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조금 독특하다. 내용상으로는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렸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극영화'이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중간중간 주인공인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가 그 학교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해 인터뷰 형식으로 회상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실제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담아내었다. 즉 영화는 현실과 영화를 오고가며 문제재기를 한다. 교육의 실태와, 그 담당자들은 어떠한 눈과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헨리는 보통 사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은, 가정이 엄청나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을 표현하려고 쓴 단어이다. 헨리는 요양 시설에 있는 '할아버지'를 가끔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가 요양 시설의 직원들의 말을 듣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아서 가야 할 때도 있고, 위독해서 가야하는 때도 있는 헨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자살에는 할아버지가 무언가 원인 제공을 했던 것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런 헨리가 새로 부임한 학교는 '안정된 장소'가 아닌 혼돈이 가득한 '교실붕괴'가 일어나는 학교라는 점은 영화를 더 극적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요소이다. 물론 그러한 '교실 붕괴'가 도리어 현실적인 면도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영화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헨리'의 인터뷰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답게, 교육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극영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즉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보통 사람이 영화 속에서 만나는 '학생'은 두 명이다. 반에는 여러명의 학생들이 있지만, '교감을 나누는 학생'으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학생은 두명이다. 한 명이 '메레디트'이고, 다른 한 명이 에리카이다. 에리카는 버스에서 만났던, 강간을 당했었던 10대 중후반의 여자니까 '학생'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학생으로 봐야할 것 같다. 헨리는 이 두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메레디트는 학교에서는 '왕따'인 학생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헨리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고, 에리카 역시 거리에서 떠돌던 자신을 아무런 가식 없이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헨리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루는 메레디트의 행동으로 인해, 헨리는 더 이상 에리카를 자신의 집에 둘 수 없다고 느끼고, 보호시설로 보내는 조치를 취하고 만다. 감독은 그나마 그 학교의 학생들과 대화가 통하던 '헨리' 역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으며, 10대들의 성장에는 굉장히 다양한 요인들이 미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던 주인공들은 단 한 명도 '좋은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 소위 한국 사회를 일컫는 슬픈 별명 중에 하나인 '헬조선'처럼, 이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헬조선'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 '교육'은 교육이 일어나는 교수 행위 자체에서만 원인을 찾기가 매우 힘든 부분이다. '교육'이란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교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적, 물질적 환경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 중에 하나인데, 감독은 그 환경들을 하나 같이 다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드러낸다. 감독은 '영화'이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디테일을 살려가며 영화속에서 보고 있는 문제들이 실제 사회에서와 같이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헨리는 이것에 굴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에리카를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는, 어느 정도 안정이 취해지자 같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통해 성병 검사를 하고, 나름대로 에리카에게는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메레디트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결국에는 메레디트가 자살을 택하는 장면, 그리고 이후 에리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에리카를 다시 만나러 가는 장면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전망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전망이 사라진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나는 이러한 현실적인 결말에 만족했다. 대체로 문학작품들의 '전망'을 따지기 시작하면 그 결과를 예측하는데 다소 '도식적인' 결말을 찾게 된다. 주인공이 승리하는 히어로 식의 영화구조가 대표적이랄까(영웅서사는 현재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화는 극영화임에도 다큐형식을 빌려옴으로서 그러한 비현실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잘 해결해나갔다고 본다.

 

-글을 줄이며

다소 현실적인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 하지만 미국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이 한국과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에드리언 브로디는 참 괜찮은 배우가 아닐까 싶다. 악역으로도 그렇고(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런 주인공으로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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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일까, 자기 연민일까, 아니면

가끔, 이별에 관한 글들을 읽고는 한다. 시간은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이를 아직 만나지 않은 이에게 그 이야기들은, 이제는 과거 같다고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현재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글들이 마음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 이유에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이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느낌들을 '자기 합리화'를 담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기 합리화라, 어감이 좋지는 않은데, 모든 합리적 사고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나는 사실 방어기제가 강하지 않다. 방어기제가 강하지 않아서 상대방에 대한 부정을 잘 하지 못한다. 이건 상대방이 친구든 연인이든 부모님이든 친척이든 예외없이 적용된다. 그들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비율보다 좀 더 높다. 특이하게도 어떠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때는 그렇지 않은데, 그런 '공적'인 주제가 아닌 '사적'인 주제, 특히 '나'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할 때 만큼은 상대방이 옳다의 비율이 더 높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기 합리화를 잘 못하는 편이다.

처음에 헤어지고 나서는 한참동안 자기 방어와는 거리가 먼 '자기 학대'를 했었다. 그 자기 학대에는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라는 전제가 가득했다. 나는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느끼는데, 과연 어느 누구를 두고서 '너도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타인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부족한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보통의 사람'정도가 그들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이 '보통의 사람'은 적어도 나보다는 괜찮은 사람에 속했던 것이었나보다.

헤어져서 힘들다는 글들에는 대부분 '헤어진 상대방이 인연이 아니어서 헤어진 것이다', '헤어진 상대방은 나에 대해서 간절하지 않아서 헤어진 것이다' 등의 말들이 달리고는 한다. 뭐, 대개 많은 내용들은 글쓴이의 감정을 챙겨주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댓글들은 결국 상대방에게 책임을 보내는 말들이다. 나는 그게 옳다 그르다를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해서 헤어졌다'는 말처럼, 원인 소재를 회피하려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관계파탄행위를 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관계는 항상 쌍방 과실, 쌍방 기여다. 예를 들면, 나의 취향과 상대방의 취향이 충돌하는데, 그 취향이 '공존'할 수 없을 때에는 누군가의 취향은 일단 뒤로 물러나야 한다. 관계의 초반부에는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적응을 하기에, 상대방의 양보에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의 배려에 더 민감해지는 경우 또한 생긴다.

요즘 내가 스스로를 딛고 일어서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에 있다. 부족했던 나, 생각이 많았던 나,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 지 선뜻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나,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능숙하게 해결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과거의 나를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났던 많은 갈등들에 나도 50퍼센트는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타인들이 밉지도 않고, 타인들이 내 인연이었다, 아니었다 라는 운명론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나를 사랑하고 나니까, 오히려 나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타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글을 마치려고 보니 나의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자기합리화'로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부족했다고 느꼈던 관계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나는 나의 부족함을 타인의 문제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깔끔하게, '내가 부족했었어'라고 인정하고 싶고, 인정하고 있따. 하지만 결국, 자기 합리화냐, 자기 연민이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에,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하할 것이다. 항상 모든 관계는 서로가 노력할 때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 반드시 선순환을 하리라는 법은 없다. 가능성이 좀 더 커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을 믿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 상대방도 상대방의 선택에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그 이유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샌가 해답은 내가 가지고 있던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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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를 보고.

- 스포일러가 있지만 제 생각들이 더 많습니다. -

어머니는 '노무현'에 대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얼마전에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노무현 정권이 끝난 후 어느덧 10년이 다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8년이 지났으니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시간이 흐른 시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려서 일어난 하나의 사회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이전 정부들의 '불통'과 비교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과 소통을 하려던 모습들은 단연 '재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않고 꽉막힌 정부와는 비교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랄까. 뭐 그렇다. 


- 짧은 영화 이야기와 드는 생각들 -

사실 다큐 영화는 많이는 아니어도 몇 편 접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한 '인물'에 대한 다큐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자 대통령이고 한 때는 변호사였던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운 점들을 영화 감독은 '민주당 경선'에서의 노무현과 이전에 '동서화합 및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출마했던 노무현을 보여줌으로서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재임 기간 동안 있던 일들은 싹 배제했고, 재임까지의 일들, 그리고 그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노사모'라는 자발적 공동체(팬클럽)는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큰 힘을 행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나는 이 '노사모'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노사모 회원들의 말처럼, 그 해는 생각하던 일들이 다 이루어지던 해였고, 그들이 '노무현'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서 온 지역을 돌아다니던 때였으며, 돈을 받지 않고 일하고 자발적으로 '노무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것 같다. 내가 그 당시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고, 게다가 나이도 많이 어렸었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 '국민경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또한 집안 내부적으로 민주당 당원이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에 대해서 신문을 통해 본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의 기록들을 이렇게 다시 영상으로 보니 내게는 모르던 일들을 접한 기분이었다.

사실 광주 사람으로서, 호남 사람으로서 '동서화합', '5.18', '지역 차별', '지역 감정'등에 대해서, 나는 어렴풋이 호남은 계속 소외되어 온 지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실 지역 경제 규모나 발전 상태로 보면 경상도를 제외하면, 강원도 / 충청도 / 전라도는 지속적으로 배제되어 왔다고 밖에 말을 못하니 말이다. 다만, 어째서 그것이 '동서'지역 감정으로 나타났을까 생각해보면 양김 시대의 잔재와 두 사람의 불협화음, 박정희 정권의 경부축 위주 발전 등이 이를 만들었다고 밖에 못하겠다. 또한 많은 시민들의 우매함이 노태우를 뽑았던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산업화'는 생각했지만 '민주화'는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던 과거 군사 정권 시절의 흔적들이라고 밖에 이야기를 못하겠다. 다만 지금은 그런 일들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늘었고, 지금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시대사적 의미가 재조명되어 온 일들을 통해 그의 가치가 되새겨진다고 본다.


P.S.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인상깊었다. 음, 누군가의 글을 보고서 그 사람의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이랄까,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글을 간결하게 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수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지우가 있었다는 사실, 노 전 대통령이 '문재인이를 친구로 두었으니 대통령감은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말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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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내가 죽던 날(Before i fall)'을 보고

이번에도 짧은 리뷰. - 스포일러 있습니다. -

1. 제목에 대한 내 생각

 원제는 Before i fall, 직역하면 '죽기 전'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 번역했는 지 모르지만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참고로 7번도 더 죽어 본다. 죽어도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 타임리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스포일러이긴 하겠지만, 뭐 영화 소개에 죽어도 다시 '그 날'(토요일)로 돌아간다고 나와있으니 스포 아닌 스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죽기 전'이라고 번역하면 너무 식상해서 바꾼 것 같은데 살짝 아쉽기도 하다. 나는 그냥 7이란 숫자가 마음에 안든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숫자이기 때문에 마음에 안든다.

 

2. 소재, 이야기

타임리프라는 소재는 이제 너무 익숙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인상깊게 보았던 타임리프 영화는 역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다. 그 영화는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나름대로 '일상'과 '낭만'속에서 녹여내려고 노력한 영화였다. '사랑한다'고 말을 듣느냐 마느냐로 타임리프를 쓰는 것, 그리고 교통사고나 나느냐 마느냐로 타임리프를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물론 나름대로 '타임리프'의 의미를 찾아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이 소재가 이 영화에서는 '시시포스'라는 소재와 결합하면서 조금 독특하게 '변형'되었다고 본다. 사실 이 영화는 타임리프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영화 속에서 수업에서 다뤄지는 시시포스 자체가 영화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시시포스 이야기를 모를 수도 있으니 잠시 소개하자면, 제우스가 '시시포스'라는 사람에게 벌을 내렸는 데 그 벌이 바로 '돌을 언덕에 올리는 벌'이었다. 언덕에 돌을 올리면 그 돌은 다시 밑으로 떨어져버리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끊임없이 돌을 올려야만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영화의 내용 자체도 이 시시포스의 이야기와 같다. 주인공인 '샘'은 끊임없이 'the cupid day'/토요일 아침에 깨어난다. 끊임없이 깨어나면서 샘은 일상의 다양한 의미들을 찾는다. 일탈도 해보고, 가족들과 시간도 더 보내보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샘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선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린시절에 얻은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건 가장 일상적이면서, 영화같기도 하다. 실제로 현실세계의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소방관으로부터 구해졌기 때문에 나는 소방관처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는 생각과 비슷한 생각들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켄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울던 자신에게 '영웅'이 되었었던 '샘'에게 앞으로는 자신이 영웅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항상 네게 잘해줬다고 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소소한 것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선행이랄까.

샘의 엄마가 '어린시절에 너는 다정한 아이였단다'라고 이야기하며 한 마리의 말만 '타면', 다른 말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모든 말을 타고 나왔던 기억들 때문에 너는 '좋은 아이다'라고 말해주는 그 장면 속에서 샘은 나름대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얻는다. 영화의 마지막이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시포스의 형벌을 가장 죄를 많이 지은 것처럼 보이는 '린제이'가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샘'이 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소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말이다.

 

3. 마치며.

밥을 먹다가 친구에게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서 물어봤다. 한참 그 친구가 애인이랑 갈등을 많이 하고 있어서 물어봤다. "너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할거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왔다. 오늘의 삶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던 삶이라고 하던 어느 인터넷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어보자. 나름 추천할 만 한 영화이다. 뻔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우리는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뻔하다는 게 '일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진부한 만큼 나름대로의 '보편적인 느낌'은 가져다 준다.

P.S. 여자분들은 주위에 오랫동안 잘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왜 잘해주는 지 한 번 물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영화 속 '켄트'처럼 아주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봐도 '롭'은 답이 없는 그냥 늑대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면 '켄트'는 애기도 아니고 늑대도 아닌 올바른 청년이었다. 청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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