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와 5.18

요즘 영화 택시 운전사가 화제인 것 같다.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들 중에서, 또는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택시 운전사'를 보고 왔다고 하는 이들이 주변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던 걸 생각하면 그런 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나는 고향이 광주라도,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광주가 아니기 때문에, 타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5.18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 같은 것들을 보고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뭐 지금도 역시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여전히 5.18은 나도 그렇고 그 사람들에게 그렇고 벌써 오랜 시간 전의 과거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영화'를 통해서 해석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했었는데, 영화든 문학작품이든 일련의 '예술 작품'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 만 해도, 나는 사실 고맙기만 하다. 그게 뭔가 과거의 사건들 현실로 끌고 오는 괜찮은 방법 같아서 그렇게 느낀다.

영화 택시 운전사는 조금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5.18을 보도했던 독일 언론인을 태웠었던 한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 송강호씨가 JTBC에 나와서 홍보할 때 손석희씨가 언급했었지만, 이미 5.18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몇 차례 있었다. 화려한 휴가나, 박하사탕과 같은 영화가 바로 이에 해당했다. 화려한 휴가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그 시점에 관한 영화이고, 박하사탕은 5.18을 진압하면서 생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화려한 휴가는 시민군을 그렸고, 박하사탕은 진압군을 그렸었다. 택시 운전사는 민간인을 그린다. 그게 차이점이다. 그 민간인은 나중에 이 일이 알려지게 만들어준 기자를 태운 택시 운전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좀 더 일반 시민의 입장을 더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전면적으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시민군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전투에는 뛰어들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던 사람들을 그린 영화다.

요즘 나는 한국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는 한국 영화가 가장 잘 표현하면서 틀에박힌 것이기도 한 특유의 '신파극' 느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 뭔가 쥐어짜내는 감동을 보기에는 시시해져버렸달까, 판에 박힌 감동은 자꾸보다보면 점점 면역이 오고 어느 순간에는 그러한 플롯에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플롯이든 '실화'가 바탕이라면 그 실화를 어떻게 구성해내느냐가 더 중요해지지, 신파극이냐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택시 운전사는 '택시 운전사'의 시점을 얼마나 잘 표현해내고, 한 소시민이 어떻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눈을 뜨게 되는지 개인의 각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자체가 잘만들어졌든 못만들어졌든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 때문이라도 보라고 하고 싶다.

엇그제 성당 청년 모임 중 신부님이 5.18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그 순간에, 5.18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던 사람은 청년 10명 가까이 중에서 3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그다지 5.18에 관심이 없었다. 영화를 안봤을 수도 있고, 신부님 말처럼 애초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계속 시위가 열렸었고, 나도 거기에 한 번 다녀온 상황에서 그러한 '무관심'은 아쉽다. 사실 서울에서 시위가 일어나던 내내 나는 마음을 졸였다. 언제든 학살이 일어날 수 있고 언제든 과거의 일이 일어날 수 있었으니 더더욱 걱정했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알 수 없는 믿음들이 두렵지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러한 주변 사람들의, 그러니까 광주나 전라남도 출신을 제외한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태도를 볼 때마다 나는 임철우 작가의 '관광객들'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나를 포함한 많은 내 주변의 친구들 중 국어교육이나 한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면 들어봤을 법한 '임철우'라는 작가 5.18 당시 전남대에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그래서 학계에서는 그를 두고 5월 작가라고 할 만큼 그는 5.18과 관련된 문학 작품들을 써낸 굵직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관광객들'이라는 소설에 보면, 5.18 10주년에 광주로 여행을 온 4명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5.18 10주년 광주의 분위기를 경험한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며 최루탄 가스를 마시기도 하고,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기리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은 관광객일 뿐 5.18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 주인공 4명은 호텔 맨 위층 루프탑에서 들리는 시위대와 경찰간의 충돌 소리를 들으며 하루 빨리 이 도시를 떠나기를 바란다. 이런 '관광객들'이 사실, 내가 일반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5.18에 대한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바꾸는 데에 조금이나마 '택시 운전사'와 같은 영화들이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의 어떤 사람들 중에서는 5.18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경찰서를 점령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을 한 시민군들이 국가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의문인게, 국가에 대항하면 안되는 것인가하는 생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국가가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거기에 대해 맞선 사람들을 상대로 폭동이라고 부르는 건 뭔가가 잘못되었다. 방관하는 게 아니라 행동했던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세태가 아쉽다. 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 많은 개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유지되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면 올바른길로 돌아올 수 있는 에너지를 그들이 남긴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5.18 영상을 천주교 단체나 노무현과 같은 사람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비공개로 틀어주지 않았다면 타지 사람들은 그 참상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까지도 말이다.

당분간은 5.18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국립묘지 지하 전시관에 있는 참상을 찍은 사진들은 꼭 보여주고 싶다. 생각해보면 그 사진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자랐으니 좀 무뎌지긴 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 사진을 보고도 폭동이라는 말을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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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전 '균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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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전에서 추구하는 '균열' 전시회의 목적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나타났던, 나타날 균열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균열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보여주는 메시지도 다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균열의 형태가 대체로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에 많이 다르지 않다. 고독한 현대인, 반복적인 일상, 문화의 획일성, 이미지에 갇힌 현실, 국가주의, 전쟁, 언어의 문제, 위작 논란, 민주화 운동 등 막상 써놓고 보니 다양하지만,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문제가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외에는 표현의 문제가 주를 이뤘다고 파악했다. 참고로 영어 제목에는 콘크리트에서 일어나는 crack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콘크리트는 확실히 현대의 비인간성을 상징할 수 있는 회색 재료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뭐 작품은 상당히 많았지만 인상깊었던 작품들만 몇 가지 언급하고 전시회 후기를 요약하려고 한다.

1.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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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의 초상, 구본웅

내가 이번 전시회에서 보려고 했던 작품이 2작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친구의 초상'이라는 작품이다. 1930년대의 모더니즘 문학의 중심에 서있었던 이상(본명 김해경)을 모델로 그려진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특유의 붓터치와 색조합이 인상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며, 담배를 물고 있는 모던 보이를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예술계 안에서 일어났었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고, 초상의 주인공인 '이상'은 사회에서 보기 힘들었던 균열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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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인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측은 이 그림을 위한 전시 공간을 상당히 많이 투자했다. 이 그림이 있는 곳만 바닥 재질도 카페트로 바꿔놓았으니 유독 더 눈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국현은 전시회의 전시 공간 설명에 이 그림과 관련된 논란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싶었다고 서술해놓았다. 거기에 제시되어 있던 자료에는 처음 이 그림을 입수 했을 때 만들었던 각종 보관 증서들을 진열해 놓았고, 처음 위작 문제가 제기되었던 신문 기사들을 같이 스크랩해놓았다. 또한 천경자가 이 그림이 '위작'이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공증서와, 최근 검찰 수사 당시 증언을 번복한 작가의 발언도 적어놓았다. 물론 처음 이루어졌던 X-ray, 적외선 검사들도 같이 놔두었다. 최근의 기록들 중 뤼미에르 광학연구소의 자료는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뭐 어떻게 보든 이 작품을 처음에 '내가 그렸다'고 증언했던 작가의 증언이 번복되어 '아 이 그림은 진짜다'와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는 부분이 영 내키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 위작 작가는 어떠한 수치나 자료 들을 근거로 들어서 '진품'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을 가지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뢰성을 확보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뤼미에르 연구소의 경우는 자신들의 검증 결과를 학회지에 올리겠다고 계획까지 하면서 '위작'이라고 판단을 한 상황이다. 대체로 한국 기관(검찰과 안목감정단)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뤼미에르 연구소쯕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즉 이것도 하나의 균열로 볼 수 있었다.
뤼미에르 연구소가 어느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던 기사가 있어 첨부한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70223326&nidx=2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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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페토의 꿈, 노진아

피노키오, 다시 말해서 제페토를 표현한 작품인데, 작품해설에서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로봇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즉 AI시대에 대한 하나의 예언에 해당한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로봇들을 상상하는 시대이다. 예를 들면, 영화 '바이센테니얼맨'과 같은 작품들이 이를 대변한다. 다만 내 생각에 미래에는 오히려 '인간'이 로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시점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종종 사람들은 '로봇'같이 되고 싶어한다. 반복된 작업을 실 수 없이 할 수 있다거나, 아무 생각없이 일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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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 권순철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 등이라고 쓰여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균열일까, 잘 모르겠다.

 

2. 후기 정리.

오랜만에 전시회를 갔더니 천천히 걸어다니는 바람에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렸다. 뭐 그러더라도,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크게 2가지였으니, 그 두가지는 다 이룬셈이다. 그림을 보는 것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었다. 어려운 점이라면,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이 없다보니 어떤 흐름에서 이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작가론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하지만 뭐, 어떻게 지금 당장 그들의 자료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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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등'과 '제페토의 꿈'의 전시 텍스트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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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 홈커밍(Spider-Man: Homecoming)을 보고.

- 짧은 리뷰 -

나는 여전히 스파이더맨 영화를 좋아한다. 내게 있어서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최근작인 톰 홀랜드 주연이 아니라,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맡았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인데, 그 이유는 스파이더맨의 '평범한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앤드류 가필드보다는 토비 맥과이어가 더 적합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앤드류 가필드는 너무 그냥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 같았어서 아쉬웠었다. 물론 '어둡고 우울한 피터 파커'의 모습은 잘 그려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톰 홀랜드는 10대의 밝은 모습들을 좀 더 많이 보여준다는 점이 그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맨 처음, '벌쳐'가 어떻게 해서 악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벌쳐'가 시 당국의 승인을 얻어서 외계 생물을 수집하여 정리하려고 자신의 재산까지 팔아가며 트럭을 사고 인부들을 고용한 상황에서 '스타크'회사는 오늘부터 자신들이 이 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가줄 것을 선언한다. 사실 어처구니 없다고 할 만큼의 내쫓음인데, 스타크사에서 이들을 고용했으면 될 일을(고용 승계) 고용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갈등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 과연 이러한 형태의 공권력이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이게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할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리즈의 아버지가 이후에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의 갈등을 만들어낸 스타크 사와 시 당국의 행정처리에 아쉬움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이런 형태로 공권력이 운영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인종의 다양성을 내비친 영화라는 점이다. 이전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마크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는 백인들 뿐이다. 정말 백인들이 95퍼센트를 차지한다. 가끔 아시아계 사람들이 나오는데 기억나는 아시아계 사람들은 2편에서 나오는 보조 과학자와, 'spiderman, spiderman, where is the spiderman'노래를 부르는 길거리 가수 뿐이다. 흑인들은 종종 소방관으로 나오고, 히스패닉계도 레슬링 선수로나 나왔지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랬던 스파이더맨 영화가 인종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난 결과는 히스패닉의 플래쉬,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리즈, 아시아계로 보이는 스파이더맨의 단짝 친구 네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가 이렇게 현실적인 면들을 반영하고 백인들만 나오는 영화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찬사를 받아야 한다. 뭐, '스파이더맨'의 구현 방법에서 이런 부분들을 크게 주목할 사람들은 적을테지만 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피터 파커가 어째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나타난 점이 단 하나도 없다. 그냥 태생이 사람들을 돕는 '이타적 성품'의 소유자로 파악하기에는 어떤 괜찮은 이유가 있을법도 한데, 이 부분에 있어서 개연성을 좀 더 확보한다면 괜찮지 않을 까 싶다. 많은 이들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열광했던 가장 큰 이유가,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sibiltiy'라는 대사에 담겨 있는 의미와 그 의미를 찾아나서는 피커 파커의 성장 과정을 적절하게 그려냈기 때문인데, 아직 이 부분에 있어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스파이더맨은 부족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좀 더 이 부분이 해소되기를 빈다. 또한 거미줄 액션도 좀 만 더 정교해졌으면....샘 레이미가 이뤄놓은 트릴로지를 넘어서기가 참 어렵다는 걸 깨달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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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를 보고.

- 미리 말하지만, 당분간 긴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최대한 생각을 간결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즉흥적인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는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경험자의 설명은 youtube에 유준상이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홍상수와 작업했던 이야기를 이야기 한 부분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내가 이야기 하려는 건 시나리오의 '즉흥성'이니까 말이다. 시나리오가 즉흥적이라는 건, 많은 부분들이 대본으로 딱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 그때 순간에 맞춰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말한다. 그렇게 최근의 작품들을 좀 바라본다면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는 내가 보지 못했으니 언급하지 않는다. - 소재들은 분명 어떤 남자와의 '불륜'이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시점은 다 같지 않다. 어떤 영화에서는 남자였다가, 또 어떤 영화에서는 여자였다가, 즉 왔다갔다 한다. 한 쪽으로만 쏠려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희(김민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그 후'는 거의 권해효를 중심으로 앵글이 잡혀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김민희(아름)와 김새벽(창숙), 그리고 부인(조윤희)에게도 시선이 간다는 점은 이전에 봤었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처럼 한 이성을 두고 여러명의 이성이 관계를 맺는 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물 구성인걸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본질은 분명 다르다.

영화의 시작은 권해효의 아침식사이다. 다만 그 아침식사가 거의 '새벽녘'식사라는 점이 좀 볼만하다. 혼자 일어난 듯한 분위기에 간단하게 밥과 포스터에 보이는 3개의 반찬+국으로 식사를 한다. 왜이렇게 일찍 일어났냐는 아내의 질문은 곧 '여자 생겼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권해효는 아니라고 말하며 출근길을 향한다 그런 그는 자신이 사장인 출판사에서 다른 여직원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출판사에 출근하는 장면부터는 김새벽과 김민희와의 관계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홍상수 다운 영화 전개라고 볼 수 있는데, 두 개의 이야기(김민희와 만나는 이야기, 김새벽과 만나던 이야기)를 처음에는 교차하고 나중에는 김새벽이 어떤 식당 근처에서 우연히 권해효를 만나게 되면서 두 개의 병렬된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진다. 나는 이 영화의 말로 풀어내기 힘든 독특한 구성에 신선함을 느꼈다. 다만 그 부분을 관객들까지 다 수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권해효가 김민희에게 건내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라는 책이다. 책 내용을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 어찌되었든 둘다 '불륜'을 소재로 한다는 점, 그리고 두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무기력해보이는 일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하나의 힘으로 생활에서의 활력, 에너지 등을 얻어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공통점인 듯 싶다. 결국 '그 후'라는 제목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관계가 끝난 그 후이기도 하고, 김민희가 '그 후'에 다시 권해효를 찾아가서 느낀 감정들을 나타난 것이기도 하고, 권해효가 김새벽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원래의 아내와 다시 살아가고 있는 '그 후'이기도 하다. 다양한 면에서 '그 후'의 일들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그 후'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과거의 일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들을 보여준 느낌도 든다.

이 전의 영화보다 이 영화의 제목인 '그 후'라는 단어를 통해서 생각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정리를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은 여기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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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chment'를 보고

- Youtube

우연히 Youtube에서 이 영화의 내용 일부를 보게 되었다. 선생님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내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던 배우였던 'Adrein Brody'라는 배우였다. '피아니스트'라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한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었고, 영화 'The grand Budapest hotel'의 한 상속자로 나오기도 했었던 그 배우다. 배우에 대한 관심은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졌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선생님 역신 애드리언이 학생들에게 '매스미디어'에 대항할 사고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글을 읽어야 한다고'말하는 지 말이다.


- 교육 문제를 다룬 영화

교육문제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럽의 어느 국가들에서도,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영화 역시, 그렇게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현실과 고투하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그 한 사람, 헨리 바쓰(에드리언 브로디)는 기간제 교사로, 학교를 매번 옮겨다니며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는 학생들의 고충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려고 하는 선생님이다. 영화 'Detachment'의 제목을 직역하면 '분리'정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분리는 아마도 주인공인 '헨리'가 세상에 대해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여학생 '메레디트'와 '에리카'에 관한 '분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헨리는 어느 날처럼 새로운 학교에 취직한다. 그는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취직 한 학교는 시작부터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에 와서 동료 교사에게 고함을 지르며 항의를 하고 있고, 학교의 상담교사는 학생들을 매번 상담하지만 학생들이 상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탈행동을 하며 자신의 일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자괴감을 느낀다. 이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교장은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학교의 구성원들은 '가정'에서도 비슷한 불화를 겪고 있다. 한 남자 선생님은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교장 역시 남편과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헨리는 또 어떠한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요양시설에 위탁하여 가끔씩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이렇게 '선생'들의 가족이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고통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임을 보여주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단지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가정 불화'라는 문제에 원인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조금 독특하다. 내용상으로는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렸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극영화'이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중간중간 주인공인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가 그 학교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해 인터뷰 형식으로 회상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실제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담아내었다. 즉 영화는 현실과 영화를 오고가며 문제재기를 한다. 교육의 실태와, 그 담당자들은 어떠한 눈과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헨리는 보통 사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은, 가정이 엄청나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을 표현하려고 쓴 단어이다. 헨리는 요양 시설에 있는 '할아버지'를 가끔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가 요양 시설의 직원들의 말을 듣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아서 가야 할 때도 있고, 위독해서 가야하는 때도 있는 헨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자살에는 할아버지가 무언가 원인 제공을 했던 것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런 헨리가 새로 부임한 학교는 '안정된 장소'가 아닌 혼돈이 가득한 '교실붕괴'가 일어나는 학교라는 점은 영화를 더 극적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요소이다. 물론 그러한 '교실 붕괴'가 도리어 현실적인 면도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영화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헨리'의 인터뷰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답게, 교육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극영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즉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보통 사람이 영화 속에서 만나는 '학생'은 두 명이다. 반에는 여러명의 학생들이 있지만, '교감을 나누는 학생'으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학생은 두명이다. 한 명이 '메레디트'이고, 다른 한 명이 에리카이다. 에리카는 버스에서 만났던, 강간을 당했었던 10대 중후반의 여자니까 '학생'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학생으로 봐야할 것 같다. 헨리는 이 두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메레디트는 학교에서는 '왕따'인 학생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헨리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고, 에리카 역시 거리에서 떠돌던 자신을 아무런 가식 없이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헨리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루는 메레디트의 행동으로 인해, 헨리는 더 이상 에리카를 자신의 집에 둘 수 없다고 느끼고, 보호시설로 보내는 조치를 취하고 만다. 감독은 그나마 그 학교의 학생들과 대화가 통하던 '헨리' 역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으며, 10대들의 성장에는 굉장히 다양한 요인들이 미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던 주인공들은 단 한 명도 '좋은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 소위 한국 사회를 일컫는 슬픈 별명 중에 하나인 '헬조선'처럼, 이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헬조선'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 '교육'은 교육이 일어나는 교수 행위 자체에서만 원인을 찾기가 매우 힘든 부분이다. '교육'이란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교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적, 물질적 환경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 중에 하나인데, 감독은 그 환경들을 하나 같이 다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드러낸다. 감독은 '영화'이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디테일을 살려가며 영화속에서 보고 있는 문제들이 실제 사회에서와 같이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헨리는 이것에 굴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에리카를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는, 어느 정도 안정이 취해지자 같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통해 성병 검사를 하고, 나름대로 에리카에게는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메레디트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결국에는 메레디트가 자살을 택하는 장면, 그리고 이후 에리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에리카를 다시 만나러 가는 장면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전망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전망이 사라진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나는 이러한 현실적인 결말에 만족했다. 대체로 문학작품들의 '전망'을 따지기 시작하면 그 결과를 예측하는데 다소 '도식적인' 결말을 찾게 된다. 주인공이 승리하는 히어로 식의 영화구조가 대표적이랄까(영웅서사는 현재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화는 극영화임에도 다큐형식을 빌려옴으로서 그러한 비현실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잘 해결해나갔다고 본다.

 

-글을 줄이며

다소 현실적인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 하지만 미국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이 한국과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에드리언 브로디는 참 괜찮은 배우가 아닐까 싶다. 악역으로도 그렇고(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런 주인공으로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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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tachment 2017.08.02 15:11 신고

    Detachment 하면 저는 무관심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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