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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part.1
    책/ETC 2013. 4. 4. 20:57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저자
    페르디난트 자입트 지음
    출판사
    현실문화 | 2013-03-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왕의 역사에서 떠돌이 곡예사의 삶까지, 중세 천년 역사의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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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중세를 시작하는 시기로 보통 8세기를 이야기했다. 나에게 있어서 '중세'라는 개념은 암흑기에 가까웠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게임을 하다보니까, 확장팩에 '암흑시대'라는 탭으로 지을 수 있는 건축물들이 있었는데, 대개 이 건축물들은 매우 획일적이고 정교하지만 단순한 건축들이었다. '중세'를 이야기 하기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것이 바로 종교였고, 이 종교로 인해서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가지 방향'과 '한가지 생각'만을 추구하게 되었었다. 마녀사냥도 이 중세시대에 가장 많이 일어났고, 예술의 획일화도 이 중세시대에 일어났다. '르네상스(Renaissance)'가 일어나면서, 고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증가하면서, 인문주의가 대두되면서, '인간자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에서는 인간의 속죄를 근간으로 하는 삶이 가장 기본이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은 허용될 수 없었고 그로인해 '암흑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물론 종교예술은 굉장히 많이 발전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이나, 피에타의 모습이나 여러가지 형태로 종교예술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지만, 정작 '사람'자체만을 가지고 논의한건 아니라는 뜻이다.


       중세의 문을 연것은 '카를 대제'였다. 프랑크와 랑고바르드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대제(740? ~ 814)는 전무후무했던 왕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는 갈리아지방을 규합하고, 인근 지역으로 하여금 '종교'를 받아들이게 했다. 동시에 로마의 이상적인 대안으로서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고, 그후 교황으로부터 '관'을 받으면서 진정한 황제가 된다. 하지만 그가 관을 '교황'에게 받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이후 유럽은 '교황'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로부터 관을 받지 않으면 '황제'가 될 수 없는 매우 불우하면서 동시에 나름대로 괜찮은 조건을 얻게 된다. 바로 권위와 힘인것이다. 교황에게서는 권위를 얻을 수 있었다. 왕은 스스로 권력을 만들었다.


       '왕'이 되었을때,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하는건 보통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카를은 질서를 만들었다. 화폐개혁을 통해서 주화를 통일하고 세금을 걷기 쉽게 하여 국고를 확보하고 왕권을 강하게 했고, 수도원마다 다른 필체들을 통일하는 문자개혁을 통해서 '지식인'들에게 한번에 알릴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카를대제에의 이름인 '카를'때문에 황제의 명칭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karol, krol, kral, kyralj 등 여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대개 로만계 민족은 '임페라토르'라는 명칭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존엄한 자이고, 임페라토르(Imperator)는 황제라는 뜻인데, 후자를 더 선호했다는 말이다.



       흥미로웠던것 중에서, 나라의 이름의 어원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기억난다. 프랑크(Franke)라는 이름은 '자유인(Freie)'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왔고, 러시아는 10세기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한 키예프왕국의 창설자 '류리크인'에게서 비롯되었으며, '헝가리(Ungarn)은 종족의 통합과정을 민족명으로 선택했다. '온-우구르(On-Ugur)는 '열개의 부분'을 뜻한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젊은 황소를 지칭하는 고대 라틴어 '타리'에서 유래했고, 스페인은 고대에 스페인을 지칭하던 라틴어 '히스파니아'에서 유래했다. 

       독일을 지칭하는건 두가지가 있는데, 'deutsch'와 'germany'가 있다. 전자는 카를이 게르만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중에서 라틴어계통에 속하지 않는 '민중어(Theodisc)'를 가리키는 단어와 발음의 원형이고, 후자는 '게르마니아'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카를의 집권 당시 프랑크인에게는 민중어와 라틴어가 혼재했는데, 여기에서 '독일어(도이치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잠시 '도이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독일어는 '민중어'를 뜻하고, 특정 지역, 지방의 언어가 아니다. '독일'은 단순히 842년에 서프랑크 왕국과 분리된 동프랑크 왕국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은 남부와 서부 라틴계와의 합병, 10세기 이후의 슬라브인과 결합을 통해서 이뤄낸 '연합 공동체'를 말한다. 후일, 인문주의자들이 고대를 회상하며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근대적인 이름을 부여했던 것처럼, 1500년경, 도이치에 '게르마니아(게르만)'이라는 고대 로마시대의 명칭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서, 'deutsch'와 'germany' 둘다 사용된 것이다.


       독일은 굉장히 대단한 국가이다. 11세기 정도부터 이미 독일은 '연방국가'의 개념아래에 움직이는 국가였다. 정말 주변국가와는 다른수준으로 다른문화관의 융합과 연합을 이뤄냈고, 한 공국에서만 왕을 하는게 아니라, 여러공국이 돌아가며 '황제'를 하고 이로인해서 굉장한 통합력과 힘을 자랑할만 했었다. 산업혁명 이후에나 보일만한 '국가구조'를 중세에 미리 이뤄냈다는건 어떻게 보면 독일인들이 현대에 와서도 저력이 있다는걸 증명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유럽의 중세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게 나에게 상당한 흥미를 준다. 이건 내가 러시아 문화사 강의를 읽었을때 만큼의 '감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까, 물론 아쉬운건 내가 러시아 문화사 강의를 읽고 나서, 러시아 예술을 접했을때의 그 느낌을 맛보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그걸 떠나서 재미있는건 재미있는거다. 어떤걸 알아가는 즐거움은 그것을 기록하고 다시 볼때 배가 되는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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