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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책/외국소설 2013. 4. 20. 11: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 최고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을 만나다!민음사 세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책은 다시 읽어야만 한다. 한번 읽어서는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공감을 하지 못한다. 첫번째 읽을때는 '서사'중심으로 읽고 두번째 읽을때는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며 읽는다. 전에는 테레자와 토마시, 사비나와 프란츠 위주의 '사랑'이야기로 읽었었다. 물론 소설 초반부의 '니체의 회귀'는 생각해오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던 것처럼 이렇게 심하게 내 머릿속에 '쿵'하고 울린건 아니다. 두번은 읽어야 한다는게 몸소 공감되던 시점이었다.

       안나 카레리나와 페르디두르케가 머릿속에서 울리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게 이런의미임을 몸소 체험했다. '안나 카레리나'가 브론스키를 만났던 그 기차역 플랫폼에서 안나는 '죽음'으로 삶을 끚맺음한다. 혹자는 이게 '소설'에나 쓰일 수 있는 '대칭구조'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우연'속에 삶을 맡기고 내던지기도 한다. 이것을 두고서 '우연'이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사람의 삶은 온통 '우연'뿐이다. 다 필연을 가장한 우연인 것이다. 왜냐하면, 왜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냐하면, 예를 들어,  결국 내가 가방사는걸 제일 좋아하더라도 100만원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가방을 살지 안살지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가방'을 사야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내 행동을 '필연'처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절대 필연적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하나하나의 사실들에 의해서 내 생각이 흔들리는것 또한 모두 '우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우연은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준다.


       니체가 언급한 '영원한 회귀'를 통해서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인생이란 결국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일방통행'이고 그로인해서 미리체험하는건 있을 수 없으며 그로인해서 '필연'이 아닌 모든 '우연'에 의해 생성되어진다는것. 역사에 가정이 없듯이, 인생 역시 가정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오직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감정에 따르는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일인지 알길이 없다. 매 순간순간마다 변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한번뿐이다. 매순간 선택을 하는것일뿐,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예상과 실제는 다르지 않은가.



    잠든 테레자 곁에서 뒤척이다가 몇년전 그녀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친구 Z에 대해 이야기하던중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했을 거야."


    당시에도 그 말을 듣고 토마시는 야릇한 우울함에 빠졌더랬다. 테레자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가능성의 왕국에는 토마시와 이루어진 사랑 외에도 실현되지 않은 다른 남자와의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이상 삶이 아닐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그런 '우연'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언급한 'Es muss sein'이 아니라, 'Es konnte auch anders sein'이 맞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가 아니라 말이다. 분명 이전에는 내 가치관에서 항상 '그래야만 한다'고 외쳐왔었다. 무엇이든지 내 가치관대로 '그래야만 한다'고 외친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다'라고 외치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고 싶다. 파르미네데스가 말하는 부정적인것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싶다.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의 변화 말이다. 다만, 토마시의 가벼움은 테레자가 원하는 무거움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구속된채로 끝까지 살아간다. 나는 토마시의 가벼움중에서, '바람둥이'와 같은 기질과, 모든 여자를 정복하겠다는 그런 류의 '가벼움'은 가치관과 다르기에 '그럴 수도'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고 배우고 싶은 토마시의 가벼움은 다른데 있다. 토마시는 마지막에 테레자에게 말한다. 당신때문에 내 삶이 파괴된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단지 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인생을 산것일 뿐이다. 그 누가 뭐라고 햇던간에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 그리고 난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수많은 타인들과 환경이 나에게 영향을 준건 맞다. 그건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 모두 '우연'에 불과하다. 그런 요인들은 다 '필연'이 아니다. 우연히 내게 다가왔을 뿐이다. 내 삶은 내가 필연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런 우연들이 모여서 나는 '가벼움'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건 없다. 아무리 'Es muss sein'이라고 외쳐도 현실은 'Es konnte auch anders sein'이 되는경우가 다반사이다. 내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라고 말했던 사실이 정말 그렇게 된것은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파르미네데스의 긍정을, 가벼움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기로 했다.



       사람은 결국 한번의 삶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삶과의 비교는 매우 무의미하다. 한번뿐인 삶은 그 삶이 어떻게 되었든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가볍다. 무거움을 내재한 가벼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우리 감정, 우리 사랑이나 비-사랑, 우리 호의 혹은 증오의 결과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개인 간 역학관계에 의해 사전에 규정되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을것이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 가장 근본적 실험, 그것은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바로 동물들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 실패가 발생하며, 이 실패는 너무도 근본적이라 다른 모든 실패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사랑의 아이러니함은, 행복감을 가져다주면서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양성적인 에너지와 음성적인 에너지의 합일이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좋아하고 행복해지는데 없어서 '가슴아프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이 아이러니는 애매하게도 '사랑'에서 일어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정성스레 담은 수공예 작품을 선물하기도 하고, 직접 만든 케익이나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한다. 가방이나 목걸이 등을 사주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에 가서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들은 상대에게 어떻게 적용될지 알 수 없다. '비교'란 있을 수 없다. 두번째, 세번째 경우가 아니라 다 각각 '첫번째'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기쁠거라고 생각하고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상대방을 판단하지, 상대방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니,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어느정도 '예상'하는것일 뿐이다.


       토마시와 테레자와의 관계도 그랬다. 테레자는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대우'를 원했다. 하지만 토마시는 자신이 특별하게 테레자를 대했지만, 결국은 다른 느낌이지만 '같은 방식'으로 키스하고 같은식으로 애무했으며 테레자의 육체와 다른 여자의 육체를 구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인해서 테레자는 자신이 추구했던 '모계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실패하게 되고 점점 토마시를 옥죄게 되는것이다.



       나는 사비나가 맞서왔던 '키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키치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간단히 하나만 말하면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전체주의의 거부에 대한 폭력, 그것을 키치라고 말하고 싶다. 키치는 전체주의적이다. 자신의 이외의 다른 모든가치가 올라가는걸 부정하고 파괴하려 한다. 마치 전체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 전체주의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러니함을 지닌것과 같다. 그녀에게 이 '전체주의'는 사비나 스스로 하여금 '파괴'와 '배신'을 주도하게 만든 그 원인이지만 그 결과이기도 하다. '배신'의 끝에서 허무함을 맛보게 되는 사비나는 너무나도 불행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그녀가 원했던 결과속에서 그녀는 '허무함'을 느낀다. 동유럽의 사람으로서, 체코인을 숨겨야 했던 여자로서 그녀의 삶은 공산주의라는 키치로 인해서 파괴되었다.



    개는 결코 낙원에서 추방된적이 없다. 카레닌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테레자는 그의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고 편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생각중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생각이 테레자의 영혼속에서 싹텄다. 카레닌과 자신을 잇는 사랑은 자기와 토마시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보다 낫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남편이 부인을,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바꾸고 싶어하는게 아닌.)



       내가 최근에 가장 고민했던건 내 연애였다. 내 관계는 왜이리도 힘든가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다. 단지 예전보다 지금이 매우 불공평하게 힘들다는건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반복을 싫어한다. 매일같이 같은걸 해주면 결국 질려서 다른걸 원하게 된다. '반복'으로 행복을 얻는 존재가 아니라서 나에게는 매우 힘들다. 오히려 '반복'은 행복이 사라지는 주요 원인일때가 많다. 매일같은 연락보다는 간헐적인 연락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보여질때가 많다. 편지가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건 어느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연락을 하는 사람도 변해가는 상대방을 보면서 점점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왜 이렇게 되는지 하면서 말이다.


       변화시키는게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은 정말 '꿈'인 것일까. 나는 지금 그게 의문이다. 내 연애관계든 다른 사람의 연애관계든 내가 이정도 변하면 너도 이정도 변해야되 라고 말하는게 정말 정답일까. 나는 부분부분에 따라서는 매우 헌신적인 양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부분이 '쌍방향'적 배려가 될 수는 없는데, 이 쌍방향적 배려를 자꾸 언급하는 상대방으로부터 나는 불편함을 가지게 된다. 한때 내가 취했던 헌신적인 배려들은 모두 사라져버린채 말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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