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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야와 벨라스케즈 동상에서 국가의 품격을 보다. / 유럽여행 정리 3 / 15년 12.26~1.1 / 마드리드 여행기 #1
    여행/15년 12월 유럽여행 2015. 12. 30. 05:57

      몸도 고달프고 마음도 고달픈 여행기간이다. 하 그럼에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가, 오늘은 느끼는 바가 상당히 많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사실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 글로 직행하는 것인데, 오랜만의 글이라 잘 써질지는 모르겠다.


      사실 마드리드는 옛날 도시가 아니다. 수도가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도시다. 어찌보면 마드리드처럼 빈공간에 떡하니 생긴 도시가 있을까 싶다. 예를 들면 파리는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중심이었고, 독일은 워낙 분단이 심했으며 이탈리아의 경우 피렌체 공국, 베네치아 공국 등 쪼개져 있던 시기가 많아서 각각의 도시들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서울도 삼국 시대 부터 경합을 다툴 정도로 도시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마드리드는 도시 역사가 천 년이 되지 못한다. 사실 천 년이 되지 못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철도'가 놓이는 시기부터 마드리드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물론 마드리드는 톨레도와 같은 귀족들이 정착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된 도시이다. 그후 철도가 이 도시를 급격한 발전으로 일궈놓는다.) 이 도시는 전형적인 근대 도시에 가깝다.


      런던에 가면 런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건물들이 낮고 꼬불꼬불 길이 이어져 있으며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수 많은 길들과 돌로 되어 있는 보도 블럭 등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런던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파리는 도시의 건물들이 대체로 비슷한 디자인과 색감을 지녔다. 엄청날 정도의 통일성, 길이 퍼지는 모양도 비슷하다. 게다가 이놈의 파리는 지금까지도 도시 정책으로 건물을 지을 때 주변 건물과 조화가 안되면 건물을 못짓게 한다고 하니 할 말을 다 했다. 마드리드는 그딴 거 없다. 그러니 도시가 삭막하고 재미가 없지, 마드리드는 서울 같은 도시다.


      그런 마드리드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바로 고야와 벨라스케즈의 동상이다. 프란시스코 고야와 디에고 벨라스케즈는 스페인의 '국민 화가'다. 그러니까 왠만한 스페인 사람들은 이 두 명의 화가를 알고 있다. 하기야, 나도 이 두 사람은 알고 있는데 오죽하면 이 사람들이 모를까, 예를 들면 한국의 김홍도, 신윤복 정도 되는 인지도를 지닌 화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들의 대표적인 그림은 아래에서 살펴볼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야와 벨라스케즈의 동상이 고고학 박물관과 프라도 미술관의 중요 위치에 떡하니 서있더란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선도 없고 신윤복도 없고 김홍도도 없는 동상이 이 국가에서는 이렇게나 세워져 있다.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게 말이다.




    1. 고야



      나는 어린 시절 이 그림을 처음 봤었다.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그림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는 책을 몇 권 사다주셨는데, 내가 본 그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그림에 속했다. 물론 이 그림은 '옷벗은 마야'로도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옷을 입고 있는 마야든 옷 벗은 마야든 고야의 작품이다. 고야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도 이 그림은 알고 있더라. 



      고야는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는데,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혁명으로 스페인이 전복되기 전의 왕인 카를로스 3세와 그의 가족들을 그린 그림이다. 고야는 인물을 그림에 있어서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얼굴에 그 사람의 성격을 담는다고 했던가, 고야는 그런 화가였다. 그의 그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상당 수 있었다고 한다. 왕이 위엄보다는 약간은 해학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고 나조차도 느꼈으니까.



      이 그림은 1808년 5월 3일이라는 제목을 지닌 그림이다. 고야가 그린 '프랑스 혁명' 관련 그림은 이 그림 말고도 한 점이 더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그림과 카를로스 3세 그림, 그리고 마야 그림이 함께 전시 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고야의 이 그림은 프랑스 혁명이 단순히 '혁명'이 아니었음을 암시하는 역사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다. 누구에게는 혁명이었지만, 누구에게는 폭력이었던 것이다.


      고야의 이 3개의 그림은 고야를 국민화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가장 핵심적인 그림들이다. 다음은 벨라스케즈의 그림을 두 편 정도만 보자.

     

     

     

    2. 벨라스케즈


      벨라스케즈 동상은 참으로 멋있다. 고야의 동상이 위엄있고 권위있는 궁정 화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벨라스케즈의 동상은 뭐랄까, 내가 최고라고 하는 듯한 자세가 마음에 든다. 보통 동상을 보면 무기를 들고 있거나 그냥 서있거나 말을 타고 있는 정도가 많은 데 이 동상은 '벨라스케즈'의 핵심인 '그림'에 대해서 동상으로 표현하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동상에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 동상이 멋진 이유다.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있는 이 그림은 수 많은 그의 그림들 중 가장 역작에 해당할 것이다. 이 그림에 숱한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통상 궁궐의 '시녀'들은 그림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디에고는 이러한 이들을 그림에 편입시키고 있으며, 여기에는 못생긴 시녀가 무척이나 돋보인다. (옷을 보면 누가 공주고 누가 시녀인지 각이 나온다.) 즉,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던 이들을 그림화 시켰다는 데 가장 큰의의가 나타나며 당시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존재였던 '왕'은 저 뒷편에 조그마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는 설명을 하곤 한다. 이 설명은 가장 정확한 설명이다.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던 자신, '벨라스케즈'를 그림속에다가 집어넣는 과감함과 왕을 축소 시키고 궁정의 뒷편을 그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사실주의적인 기법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참고가 되는 중요한 자료로도 쓰인다.

     


      이 그림은 거울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작품, 왼편에는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자리하고 있으며 큐피드가 거울을 통해서 비너스를 비춰주고 있다.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이던 시절에 보기 힘든 '알몸'그림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고를 수 있다. 이는 고야의 '옷 벗은 마야'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이 그림은 프라도에 없고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크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안이 조용하지 못하다. 그래도 가면 무료로 볼 수 있으니 한 번 보는 것도 좋다.


      왜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했냐 하면, 이들은 스페인의 국민화가라고 칭송받으며 마드리드의 가장 큰 두개의 미술관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데, 과연 대한민국에서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동상이 세워질 가능성이 있는 걸까. 그 정도가 되려면 아직 대한민국은 멀지 않았나 싶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는 알지 몰라도 겸재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모를 것 같다. 이런 점이 스페인을 '후진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다.


      한국의 민속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한국의 내로라 하던 예술가들의 동상이 세워지기를 희망한다. 그 때 즘이면 자국 문화의 자부심도 한층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마드리드 사람들은 그랬었다. 고야와 벨라스케즈의 동상을 보면서 자신들의 국가가 한 때 찬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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