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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생활 정리 2 /160225 / 일, 수업
    여행/봉사활동 하면서 2016. 2. 25. 22:43

    일을 많이 했다. 일을 많이 했다고 하는 건, 시간으로 상당한 시간을 일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56시간을 일했으니까 법에 적혀 있는 시간 보다 일을 더한 셈이다. 왜 더했냐고 물으면 나는 그럴 줄 모르고 갔기 때문에 그냥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영국에는 도착했었고 바로 돌아가기에는 돈이 많이 드는 데다가 그냥 해보자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니까.

     

    1. 일 (시간)

     

    일주일에 최대 45시간이라는데, 56시간을 일했으니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8시간을 일한 셈이다. 생각한 것 보다 빡센 시간표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2일 쉬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5일 56시간이니 하루 11시간 정도 일을 했다. 물론 실제 시간표는 다음과 같았다.

     

    일요일, 월요일 휴무

    화요일 아침 7시 ~ 오후 5시

    수요일 오후 4시 ~ 오후 10시

    목요일 아침 7시 ~ 오후 10시

    금요일 아침 7시 ~ 오후 10시

    토요일 아침 9시 ~ 오후 10시

     

    이런 스케줄로 일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 까 싶다만, 아침에 7시에 출근하기 위해서 6시 반에는 일어났고, 오후 10시에 퇴근하면 10시 반 부터는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10시 반에 자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니 보통 빨라야 11시에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늦어지면 12시에도 자고 그랬다. 그런데 이 시간표가 생각한 것 보다 많이 힘들었다. 아주 처음에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느 순간에는 너무 힘들었었고 이 시간표에 적응을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이 시간표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게 5개월 차에 적응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음....쉬웠다고 말을 못하겠다. 안타깝게도. 너무 힘들었다. 사실....어떤게 힘들었냐고 한다면 내 몸을 가누는 게 힘들었다. 다른 생각 하나도 안나고 그냥 단지 스케줄에 일단 적응하는 데만 해도...누구에게도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흐, 이 살인적인 스케줄은 기억하기에 좋지 않은 스케줄이다..

     

     

    2. 일 (하는 일)

     

    내가 있던 기관은 나이는 어른이 넘었지만 장애가 있던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학교이긴 하지만 영어로는 institution에 가까우며, 그곳의 명칭은 college였다. 그러니까 학교는 학교인 셈이다. 여기에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되었다. 하나는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업이다. 생활에서 하는 일은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풀씨'활동을 6개월 동안 했다고 하면 가장 빠른 설명이 될 것 같다. 학생들을 깨우고, 학생들을 씻길 때도 있고 그냥 응시만 할 때도 있고, 밥 같이 먹고 같이 청소하고 같이 수업 갈 준비해서 각자 스케줄에 따라서 오전/오후 수업/일을 하고 점심 같이 먹고, 저녁 먹고 난 뒤에는 일주일 일과에 따라서 정해진 일정을 소화한다. 저녁 일정은 춤 / 수다 / 수영 / 펍 / 클럽 (월~금)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주말은 하우스 재량이었다(이 재량마저도 학생들과 논의 후 결정한다.)

    이와 같은 일정을 아침 7시~오후 10시의 스케줄로 바꿔보면 다음과 같다.

     

    최소 오전 6시 반 기상 후 7시까지 출근.

    오전 7시~9시 15분 : 깨우기 / 씻기기, 응시 / 약 / 아침밥 / 청소 / 수업 준비

    9시 15분~오후 12시 : 오전 수업 / 티타임

    12시~1시 30분 : 점심, 주방 청소 및 오후 수업 준비

    1시 30분~4시 : 오후 수업 / 티타입

    4시~6시 : 저녁전 티타임, 수다, 휴식(Chilled out), DVD - 보통 학생에 따라 다름

    6시~7시 : 저녁 식사 및 주방 청소

    7시~10시 : 월~금 저녁 일정 / 하우스 청소 / 약 / 재우기 / 퇴근

    오후 10시 이후 각자 생활 후 다음날 준비.

     

    이러니까 6시 반 기상 11시 취침정도가 가장 평균적인 하루 일상이었다. 사실 이런 날이 일주일에 하루만 있으면 버틸만 한데 문제는 이런 날이 2일 있다는 점이다. 이게 13시간 짜리 스케줄이니까 2일이 있어도 여전히 30시간을 3일에 해내야 한다.

     

    수업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나는 Cooking과 Printing을 갔었다. 요리는 학생들과 같이 하는 요리가 있고 스태프들끼리만 하는 요리가 있는데 내 경우 둘 다 있었다. 학생들과 같이 하는 요리는 학생들도 일을 주어주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메뉴는 하우스에서 정해진 것을 따르는 편이었다. 자율성은 거의 없고 조금은 틀에 박힌 음식 메뉴 Routine을 따라가는 편. 스태프들끼리 하는 요리는 하우스마다 자율성 부여가 제각각이어서 판단하기가 힘들지만, 내가 일했던 곳은 첫 번째 주를 빼면 자율성을 상당히 준 편이다. 아마도 내가 맛있고 색다른 요리를 퍼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쪽에서도 신뢰를 했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도 기존 메뉴를 벗어나서 새로운 음식들을 대접하기에 편했다. 게다가 재료도 비교적 많았던 편.

     

     

     

    Printing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이었다. 아쉽게도 내 최고의 Tutor라고 말할 수 있었던 Wendy 할머니의 사진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부탁이라도 해야겠다. 어쨌거나 Printing 수업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 실크스크린 프린팅, 포장지 프린팅이 있었는데, 여전히 생각해봐도 그라데이션을 도입한 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있던 학생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큰 공통점은 우리들 만큼 창의적일 수 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물감을 그냥 뿌리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처음 쓴 것도 아니고, 마크 로스코처럼 중세의 기법을 가져와 현대에서 재 탄생 시킨것도 아니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해부학에 익숙해 완벽한 대칭의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따라해볼 수 있는 수준의 색다른 방법은 있었나 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걸 하나 만들 때 보드 / 롤러 / 물감 / lino cut / 누르는 것 등이 필요했는데 사실 여기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건 제작하는 lino cut이랑 색 밖에 없다. 나는 이 중에서 색을 선택했고 조금이나마 가기 전에 다양한 것을 시도했었다. 무지개 부터 시작해서 프랑스 국기도 한 번 만들어보고 콜롬비아 국기도 한 번 만들어보고 말이다. 최대한 여러가지를 해보려 했지만 한국에 오는 바람에 몇 개 가져온 게 다다. 아마도 소중한 누군가에게 줄 것 같다. 아니면 미래에 Printing을 할 수 있게 집에 작은 방을 할애한다거나 말이다.

    Wendy 할머니의 말로는 자신의 경우 전문적인 미술 수업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보다는 어떻게 학생들을 잘 융화시키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자폐 학생과 지능이 조금 낮고 저효율의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카드들을 잘 만들어낸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학생들은 수업 중에 어떤 작품이 더 나은지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이들이 얼마나 이 기관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처음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서 일을 할 때는 어느 정도 돌아가던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남들을 어느 정도 배려하고, 어떤 것이 더 나은 작품인지 인지하며 자신 만의 취향대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 나는 감탄했다. 배우는 시간이 오래걸릴 뿐, 이들도 할 수 있다.

     

    Wendy 할머니와 했던 Printing은 계속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항상 미술 수업을 좋아했었는데, 게다가 이건 내 예술욕을 자극하는 수업이었다. 사실 예술욕을 분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생활 예술은 나름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Wrapping paper를 가져오고 싶었지만 너무 커서 여행 중에 가져오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 포기했었는데, 아쉽다. 누구에게 부탁이라도 해야겠다.

     

    - Work experience는 지난번에 Many tears에 쓴 게 내가 해본 직업 체험의 전부라 아쉽다. Red cross(적십자)에서 일하는 것도 있던데 가보질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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