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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room'을 보고
    영화 2016. 5. 13. 22:10

     

    어떤 것에 대한,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도 장소도 물론 남아있겠지만, 그 기억과 장소에 대해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 같다.

     

    'Bye wardrobe, bye chair no.1, bye skylight, bye room'

     

    -1. 그리고 0.

     

    많이 궁금했다. 이 영화가 궁금했었다. 영화를 보고 싶었다. 조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만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보았던 flashdance는 머릿속에 남은 영화가 되었다.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영화로 말이다. 단계가 높은 행복을 맛보고 나면 그 정도의 행복을 원하게 되어서 그런가, 시빌워를 볼까 하던 나의 고민은 자연스레 다른 영화로 옮겨졌다. 어째서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인지 그 이유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오늘의 영화는 매우 좋았다.

     

    헬싱키에서 한국으로 오던날, 전날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술이 다 깨지 않은채로 비행기에 타서 밀라노까지 간 후, 나는 밀라노 발 홍콩 도착의 거대한 비행기를 마주했었다. 그 비행기 안에 있었던 스크린에는 이 영화가 있었다. 물론 이 영화를 그 때 보았으면 이 글은 좀 더 빨리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비행기 안에서는 Spectre를 택했다. 영국에서 개봉했을 때 보지 못한 게 한이어서 보고 싶었던 마음에 3번인가 돌려봤었다. 그래서 room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게다가 3번의 비행기를 타야하는 상황에서 피곤함은 더해졌었기에 더 이상 다른 영화를 보기에는 인지적인 부담이 심했나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머릿속에 '제목'으로만 남은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호기심만 남은채로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보통 내 호기심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가진 '첫 호기심'은 항상 매우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 영화도 그랬던 것이었고 그 호기심이 오늘의 내가 영화를 보는 데 기여했다. 묘하게 여유로운 수요일 오후에 말이다.

     

     

    1.

     

    오늘 이 영화에 대해서 쓸 주제를 몇 개 생각해보았다. 먼저 공간적 배경을 둘로 나눠야 할 것 같다. 'room'과 'room 바깥', 그리고 시간적인 배경을 알려주는 방 안의 skylight(천창)에 대해서, 그리고 'real' 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이야기하고 싶고, 'to be normal'(정상적인 삶)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이 영화는 다루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아까 보고 나서 드는 생각도 상당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생각나는 게 더더욱 많아져만 간다. 그래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2. 'room'

     

    'room'은 어떤 공간일까, 이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이 물리적인 공간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거의 1/2 가까이는 이 방안에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방은 조이와 잭의 공간, 이 둘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기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old nick'이 가져다주는 음식과 비타민 등으로 삶을 연장하는 것이다. 조이가 비밀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조이는 어쩔 수 없이 닉의 말을 따르게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이와 잭은 그 작은 공간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해야만 했다. 화장실, 목욕, 음식, 잠, 놀이, 운동, 너무나도 좁은 그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조이는 어느덧 7년차인 상황에서 더 이상 나갈 생각을 멈춰버렸고, 잭은 '밖'을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난다. 최소한의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TV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이야기 책과 조이의 교육으로 들은 이야기를 '잭'은 현실로 생각하지만, 이게 깨지기 시작하는 게 영화의 시작이다. 다르게 말하면 바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곧 이 둘이 나갈 준비를 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러니 한 건 이 'room'이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상황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공간으로서 유일하지만 안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시선이 닿을 수 없고 취재진도 올 일이 없으며 다른 누군가와 'connection', 즉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조이와 잭은 둘이 잘 지내면 되었었다. 그리고 그러고 있었다. 나름대로 조이는 누군가에게서 '어머니'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지 배운적은 없었지만 그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고 잭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기면 사과를 했으며 잭의 감정을 보살펴주었다. 할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조이는 잭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그렇기에 잭의 선물도 생각하고, 잭의 생일 때는 나름대로의 케이크도 만들었을 것이다.

    또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영화 중간중간에 잭이 'room'의 사물들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들이다. 작은 바다라고 했던 좌변기의 물받기 공간이나, 아니면 환풍구나, 모든 것들이 상상으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 바로 'room'이다. 잭에게는 그 'room'이 자신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조이에게 들었던 것, TV에서 본 것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잭은 자신만의 공간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작지만 완벽한 공간,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하는 공간을 말이다.

    즉 이 'room'은 갇혀 있지만, 그들에게는 갇혀 있는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결코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지로서 남아있었기 때문에. 

     

     

    3. 'room' 바깥으로 나온 이후의 세상, 또 다른 'room'

     

    왜 또 다른 'room'이라고 생각했냐면, 탈출하고 난 뒤에도 이들은 안정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탈출과 과정도 매우 극적이었고, 모든 것에 익숙할 수가 없었다. 조이는 익숙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고, 잭은 아예 잭의 시선에서 모든 것들이 '흐리게 보이는 것'으로 처리하면서 그 느낌을 극대화 시키는걸 감독은 의도했던 것 같다. 'plastic'일 때 나왔던 그들에게 말이다. 의사가 잭을 가리켜 plastic과 같은 상태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잭은 자기가 plastic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내 관점에서는 조이와 잭 둘 다 plastic이나 다름 없었다. 나오긴 했지만 준비되지 않았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삶을, 밖에서의 삶을 말이다. 나오고 나서는 취재진에게 시달리고 이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들과 어울려 본 경험이 없는 잭을 걱정하며 다른 아이들과의 connection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이이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잭은 잘 이겨내간다. 조이의 어머니 말대로 'it's fine'이었다. 잭은 잭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조이의 어머니인 잭의 할머니는 잭과 차근차근 친해진다. 낸시의 시각은 보통 사람들로 그려지고, 레오 역시 그러한 보통사람의 한명으로 그려진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낸시와 레오의 시각에서 몰입하게 되지 않을 까 싶다. 어찌보면 조이도 잭도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이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은 낸시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면서, 조이와 잭이 겪는 갈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낸시와 조이가 말다툼을 하는 부분이었다. 조이는 자신이 필요가 없었는지 분노와 서러움이 섞인 항변을 하지만, 낸시 역시 그 상황에 대한 피해자였을 뿐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말다툼을 보는 잭은 무슨 죄일까, 단지 그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인데. 그렇지만 이를 보는 조이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조이가 자살 시도를 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잭은 조이와의 분리를 겪으며 힘들어했지만, 이를 이겨내는 건 잭이고, 머리칼을 잘라서 조이에게 보내며 조이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것도 잭이다. 그러니 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것이다. 어찌보면 어른들은 겁이 많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는 데에는 여기에서 '잭'과 '조이'의 관계만큼 쉽게 보여주는 게 없는 것 같다.

    경찰차 안에서 'Ma'라고 부르짖으며 조이와 만났을 때에도 잭이 'room'안의 침대가 그리웠던 이유는 그 장소가 바로 '조이'와 함께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잭의 모습은 세상이라는 또 다른 'room'에 적응해나가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의 눈에는 '답'이 보일 수 있음을 감독이 의도한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아마 주의깊게 보았다면, 포스터에도 '각'이 져있음을, 세상은 세상이란 이름의 또 다른 'room'이란걸, 하지만 이 'room은 어둡고 침침한 공간이 아닌 밝고 희망이 있으며 먼지도 많고 번쩍거리는 것도 많지만 좀 더 나은, 친구가 있는 괜찮은 공간이란 걸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4. skylight

     

    skylight라고 쓰긴 썼지만, 이건 단순히 skylight를 넘어선, 하나의 '창'이다. 비나 내리는 걸 알려주고, 실재하는 나뭇잎, 그것도 가을의 나뭇잎을 보여주며, 겨울을 나타내는, 시간의 흐름의 skylight가 'room'의 창이었다면, 사회에서의 skylight는 어디에서든 존재하는 수 많은 빛과 창을 통해서 보이는 세상, 그리고 새로운 집에서 잭이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다. 천창에서 들어오는 skylight는 제한적인 시야를 보여주었지만, 이후의 세계는 모든 것이 열려있는 세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병원에서부터, 병실의 거대한 창문이 보여주는 이 '상징성'은 세상의 속성을 단편적으로, 하지만 매우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항상 열려있음을, 닫혀있는 공간일지라도 열려있음을, 그리고 이를 잭과 조이는 받아들여야 함을 보여준다. 감독의 이런 장면 설정은 가히 놀라웠다. 보면서 내내 감독의 공간 구성이 대단하다고 느낀데에는 부분부분 상징적으로 그들의 상황을 '공간'만 가지고도 설명해냈기 때문이다.

     

     

    5. 'real'과 'normal life'

     

    우리는 현실 속에 산다. 하지만 이 현실은 의미부여가 다 끝난 것들이다. 물론, 내가 의미부여를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의미부여 해놓은 것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잭은 차이점을 보인다. 'room'에서는 자신이 의미부여한 세계를 지녔다. 그 세계에 대해서 인사를 하고 과거를 잊는 장면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잭'은 세상에 제대로 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자신이 가졌던 과거에 대해서, 자신이 가졌던 상상의 세계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로 하지만 그 인사 속에는 슬픔이 내재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뭔지 모를 희망을 느꼈다.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느끼던 그런 우울함이 아니라, '아이'로서 가질 수 있는 그런 희망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른인 '조이'도 잭에게서 또 한 번 배운다. 역시 어른보다 유연한 어린이가 더 강하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가장 큰 장점이겠지..

     

    인터뷰어가 조이에게 '잭'의 'normal life'에 대해서 말할 때 참 느낌이 묘했다. 과연 정상적인 삶이란 게 뭘까 싶었다. 남들과 비슷한 삶을 우리는 보통 '보편적인 삶' 또는 '정상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어가 조이에게 '잭'의 삶에 있어서 정상적인 삶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묻는 장면을 왜 보여준걸까 싶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대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지내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들이 좌절하고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걸 보여주는 것은 '잭'이다. 케이크를 낸시와 같이 만들고, 레오가 데려온 개와 산책도 해보고, 친구와 공차기를 하고. 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적응도 빠르고 강한 아이로 자라난다. 마치 루소가 주창한 교육관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데 우리는 그것을 망각하고 보채고 걱정하고 교육하려 드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 루소의 교육관이 '잭'과 같은 아이에게서 그 근거를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밖으로 잭을 보냈으면 과연 잭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음...나는 'room'안에서의 삶도 나름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room'안에서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삶이란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가 의미부여를 한 상황에서 이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잭의 모습이 내 눈에 불행하게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행했던 것은 나가기 위해 조이가 잭에게 'real'에 대한 교육을 할 때 불행해 보였다. 그게 필요불가결한 행동임에도, 상상력이 깨져야 나갔을 때 적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이의 믿음을 느낌에도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조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그걸 실제로 믿고 받아들이는 데 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실제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조이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5. 마치며.

     

    인상 깊었던 장면 몇 개를 언급하고 마치려고 한다.

    1) 잭이 낸시에게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낸시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서 강해질 수 없으며 우리는 항상 서로를 도와야 한다.'

    2) 조이가 잭에게 자신이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못했다고 말하며 약해지는 상황에서 잭은 조이에게 여전히 당신은 내 '엄마'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부분.

    3) 잭이 'room'의 물건들에 인사를 하면서 'room'은 닫혀있어야 'room'이라는 말을 하며 더 이상 'room'은 존재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조이에게 이야기하고, 이를 보는 조이 역시 'room'에 인사를 하는 마지막 장면.

     

    결국 잭은 어른들보다 더 강했다.

    잭의 순수함은 결코 때묻은 어른들에 비해서 약하지 않았다. 잭을 보면서 나도 내 과거의 기억들과 장소, 사물들에 대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당분간은 이 영화가 머릿속에 자리할 것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영화였다.

     

    정리하고 싶은, 작별 인사를 하고 마음에 잘 담아두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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