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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희경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그녀의 세번째 남자'외 8편
    책/한국문학 2016. 6. 8. 16:49

    1.

     은희경씨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분 작품이 14학년도 임용고시에 출제되었었기에 나는 그냥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중이었고, 그래서 김소진 작가 다음으로 이 작가를 선택했다. 물론 임용고시에 나왔던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은 당연히 읽어보고 싶었고 그 작품을 포함한 다른 단편들도 궁금했다. 뭐, 요즘처럼 내가 단편을 쓱쓱쓱 읽어버리는 상황에서 장편도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장편은 시험에 출제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시험에 출제하는 부분은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일텐데 장편 소설 중에서 고르려면 '장편 소설'내내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을 찾으려 들 것이다. 안그러면 '장편'이라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의 개연성을 그리기에는 내용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삼대'처럼 한 결 같은 갈등을 이야기하거나 '천변풍경'처럼 세태 소설이 아니라면 장편 소설의 주제 의식은 퍼져있으니 찾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단편을 읽는 게 훨씬 낫겠다 싶다. 그 이유로 이런저런 단편을 읽고 있고 이번에도 역시 단편이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은 2014학년도 임고에 출제되었던 작품이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몇 번 들어보기만 했었지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내가 찾아 해매던 작품이라던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찾아다니던 작품'인 이유는 이렇다. 최근에 연이어 읽은 책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 문학들은 '남성의 심리'가 주가 되는 소설들이 많다. 작가들도 남자 작가들이 훨씬 많아서 그런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일제시대때 활동한 여자 작가가 없다는 건 아니다. 그 때도 여자 작가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심리 묘사'는 그 때의 역사적 상황과 더 맞는 심리묘사가 더 많아서 지금 내가 공감하고 필요로 하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현대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는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그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2.  

     작품은 총해서 9편이었다. 책은 약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정도였고 책을 인쇄한지 오래되어서(1999년 인쇄판) 종이가 막 약간 '붉은' 책이었다. 그 산성지?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내 광주 고향집에 가면 있는 그 '붉은 종이'의 책들과 비슷한 느낌이 이 책에서 묻어났다. 길가면서 읽으면 '햇빛'이 종이에 비치게 되는 데 햇빛이 사라지고 나면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종이를 쳐다볼 수 없는 책이었다. 길가면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에 빠져들었다. 여담은 여기까지 줄이고 작품 소개를 해야겠다.

    1) 그녀의 세번째 남자 : '안개'라는 이미지는 늘 '환상'을 실고 온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안개'는 단순히 환상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았나 싶다. '안개'를 넘어서 보이는 '절'의 공간에서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는 것으로 보인다. '발견'이라고만 하면 너무 '탐구적'인가? 음..그러니까 자신의 과거를 통찰하면서 절에 있는 동안의 사람들을 보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을 '안개'를 넘어간 공간에서 하고 난 뒤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다. 무진기행에서도 '안개'라는 장치는 이런식으로 사용되었다. 참 매력적인 '장치'인 '안개'가 아닐 수 없다.

    2)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 최근 임용고시에 나왔던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빌린 것이다. 30쪽 가량이지만 이 작품 읽을 때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들었다. '헤어지기 직전~헤어짐'까지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한 작품을 내가 본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라, 누구에게나 '자신의 연인'은 특별하고도 위대하다. 처음 연애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연애를 하고 난 뒤에는 '특별하고 위대한 연인'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공통점이 보이고,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다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갖게 될 수록 더더욱 '특별하고 위대한'사람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보다 더 궁금한 건 어떻게 이렇게 '심리묘사'를 치밀하게 해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심리묘사가 너무 경이로워서 사실 읽으면서 신기할 뿐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어서 옮긴다.

    여자의 분석과 남자의 감상. 누구 쪽이 더 운이 좋으며 또 누구쪽의 생각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그것은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알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것을 안다고 해서 자기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건 판단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일들을 옳고 그르고, 진실에 가깝고 멀고, 운이 좋고 안좋고로 바라보는 것 만큼 피곤하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 둘 다 가치가 있고 둘 다 의미가 있는 것일 뿐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감상'이든 '분석'이든 뭐 어떤가, 그걸로 기억이 하나 생겼다고 긍정할 수 있으면 된거지.(물론 쉽지는 않다. 말이 쉽지)

    3) 연미와 유미 : '뉴카슬'을 보고서 '뉴캐슬'인가 했는데 정말 '뉴캐슬'이었다. 영국이 나와서 기뻤다.(봉사활동 때 생각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게 아닌데, 음 이 작품에서 '언니'의 이야기는 참 음 뭐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게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며 그들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들을 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싶었다. 아닌가, 가능한 일일 수도 있는데 일찍 포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과거도 떠올랐다.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그랬었던 상황에 상대도 그랬었는데 이게 참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기억은 기억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4) 짐작과는 다른 일들 : 순간 읽고나서, 한국으로 오다가 죽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전처럼 이 생각이 며칠동안 머릿속에 짓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5분이면 사라진다. 내용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용은 우울한 데 분위기는 우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지 모르겠다.

    5) 빈처 : 결혼 후의 생활, 참 어려워보였다. 혹시나 이렇게 되면 안되겠지 하고 또 다른 '결혼생활의 안좋은 예'라는 캐비넷에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일기 형식의 글을 남편이 들쳐본다는 방법은 음, '병신과 머저리'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6) 열쇠 : 음,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인데, 주인공의 유년시절 기억이 주인공의 '어른시절'의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의미있는 사람인가,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내게 의미있는 사람인가.

    7) 타인에게 말걸기 : '타인', 현대사회만큼 '타인'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가 복잡하면서 간단한 시대가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공동체 속에 살지 않는다. 전에는 그래도 아직도 가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는 인사도 하고 그러는데 자취방만 와도 그런게 없다. 아쉽다. '이웃', '공동체'이런 것들이 사라진 시대에서 '타인'은 일상이자 일상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타인이지만 알더라도 타인인 시대가 지금의 시대, '나'는 끝없이 '타인'이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타인이 아닌 '의미있는 사람'을 찾아 해매는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은 타인일 뿐.

    8) 먼지 속의 나비 : 이미지가 잘맞지 않은 '제목'이다.('나비'라는 이미지와 '먼지'라는 이미지가 말이다.) 작품을 다 읽고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까 '나비'가 먼지 속에 있다는 말 자체에서 사실 작가는 내용을 암시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다. 잘 안보이던(이 책에서) 작가의 1인칭 서술자 소설이다. 그런데 사실 나타나는 이미지는 '나'보다는 다른이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음, 남자는 남자인건가, 모르겠다. 집착한다와 집착하지 않음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면 사실은 '여성해방'에 관한 이야기인가, 도통 이해가 잘 안되는 소설이다.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9) 이중주 : '정순'과 '인혜'의 이중주다. 정확히는 '모녀 관계'. 이 작품 읽고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도덕적으로 자란 것'에 대해서 가르침을 후회하셨었는지 말이다.

     

    3.

     은희경 소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려면 '치밀한 심리묘사'에 있을 듯 싶다. 이만큼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는 '현대적인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김승옥 선생님의 소설보다 좀 더 나의 시대와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것들도 많지 않았을까.. 정말 읽을만한 소설이었다. 다음은 오상원의 '유예'가 실린 작품집이다.

     

    P.S. 음, 정확히는 50분 남짓 걸리니까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정말 글을 가볍고 빠르게 쓰는 데에 재주가 늘긴 늘었다. 어제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던 '언어 기능'은 수 많은 수행으로서 숙달될 수 있다고 했던게 떠오른다. 글은 써야지 늘고, 읽기는 자꾸 읽어야지 는다. 확실히 읽으면 읽을 수록 '단편'이 왜 시험에 나올만한 지 이해가 되면서 '장편'중에서는 나올만한 것들이 정해져있다는 생각도 든다. 단편에서의 긴장감을 '장편'에서는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장편이 나온다면 그 장편은 정말 '확실한 장편'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단편은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을 치밀하게 구성해야하기 때문에 훨씬 시험에 내기도 쉽다. 그리고 그만큼 읽기에도 금방금방 읽혀지기 때문에 더 쉬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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