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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파시 살베르그, 푸른숲 - (What can the world learn from educational change in Finland?)
    책/교육 2016. 8. 2. 13:25

     

    0. 핀란드의 교육 제도에 대해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작년에, 그리고 시절에 잠시 조금이마나 접했었던 핀란드 교육혁명이라는 책은 아직도 머릿속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남아있으니까요. 당시 책을 읽게 경위는 군대 동기였던 형의 도움으로 접했던 것이었고, 이번에는 그냥 팍팍한 삶을 벗어나보기 위해서 이렇게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시험 공부만 하는 삶은 정말 팍팍하기 그지 없어서 뭔가 다른 삶의 활력소가 종종 필요한 편인데 요즘은 독서 아주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독서가 방법이 되었던 것이죠, 책을 고르고 싶어서 고르긴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서점에 잠시 들려서 발겼 했던 책이었으니까요. 그걸 사서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읽었습니다.

    최근에 시험공부를 하면서 교육학의 여러 이론들을 접해보고 있는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은 교수-학습 이론이나 교육과정 이론들입니다. 이게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변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친척동생들을 상대로 어떤 방식의 이야기를 했을 가장 괜찮은 효과를 생각해 있는지 고민하다 보니 이런 결과들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교육과정은 생각이 났냐고 하면, 현재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들을 키우고, 기존 교육과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있었는지 기억해보는 방법이 시험 공부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목표 중심 교육과정이나, 경험 중심 교육과정, 그리고 자기 결정성 이론, 성취목표 이론, 사회학습이론, 기대 가치 이론 등 다양한 이론들을 적용해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심도있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표준화 시험, PISA, 교육개혁

    무엇보다도 '핀란드 교육'을 제가 처음 대단하다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PISA 결과에 있었던 같습니다. 북유럽의 조그마한 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PISA라는 국제 비교 평가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따게 되었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수준에 올랐지만, 그보다도 제가 주목했던 것은 평균 학업 성취도 있었는데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했음에도 매우 값어치 있는 자료였죠. 소득 불평등도 낮은 편이고, 학생들간의 학업성취도의 불평등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나라가 바로 핀란드였던 겁니다. 저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엘리트 교육보다는 보통 사람을 위한 교육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입장인데 그런 결과를 가져온 핀란드 보니 눈이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조금씩 조금씩 한국 이외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교육 제도’,어떤 교육 정책 제가 생각하는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는 가장 도움이 말입니다. 보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엘리트 교육만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여지는 성적인 점수 최대한 희석화시키자는 이야기도 있고 정말 말은 많은 도대체 뭐가 옳은 것인지, 괜찮은 것인지 수가 있어야지 말이죠,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에서 느낀 것을 종합하면, 그러한 비교 하게 만드는 표준화 시험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표준화 시험’, 다시 말해서 학업 성취도 평가, 수능 소위 일제고사라고 부르는 것들을 포함한 다양한 표준화 외부 논리 개입된 교육정책이 가져오는 결과를 말이죠.

    책에 쓰여져 있는데로 영국의 1990 즈음부터 시작했던 교육 개혁이후에 많은 국가들은 시장논리 경쟁 교육에 대입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시행한 이유는 교사들이 종신고용제도 믿고 일을 안한다고 생각하는 있었죠.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아래에 교육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려했던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는 그러한 '외부 논리'를 교육에 대입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철학을 밀고나갑니다. 그 예가 바로 학교를 다니는 첫 6년 동안의 '양적 평가' 금지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학생들의 발달을 '질적 평가'로 6년동안 수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경이로울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배웠었던 '평가 중심 교육과정'을 통한 교사의 책무성 강화, 그리고 책무성 강화를 통해서 교사들을 경쟁에 붙이고 이를 통해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실천하자는 '교육 개혁'은 실제로는 발전된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없다는 '허위'에 직면하게 되었고 핀란드는 도리어 '학업 성취도'의 향상을 보이며 책무성 강화는 책무성 강화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표준화 시험'을 통한, 비교를 통한 학생들의 학업 성적 향상은 잘못된 사실이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기존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의식'은 있었을지라도 그걸 바탕으로 어떤 제도가 더 나은 것인가, 다시 말해서 '대안'에 대해서는 무지했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해소되는 기분입니다. 핀란드 교육에서는 표준화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른 시점(초등학교 6학년 전)에 표준화 시험을 시행하지 않음으로서 학습자들은 학습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표준화 시험을 치르면서 점수의 압박에 시달린 학생들은 '학습'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누구나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학생들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할텐데 '점수'하나 때문에 자신의 가치가 뭔가 떨어진다고 느끼면 당연히 시험이 싫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당장 어른들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실적평가만해도 그러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를 수 없는 것이죠.


    2. 보상교육

    인상깊었던 것들중에서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보상교육'의 시기입니다. 통상 한국에서 지낼 때 보상교육 - 학습부진을 겪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보충 교육 - 의 시기는 주로 '고등학생'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이나 중학생 시절에 보상교육을 엄청나게 실시하는 경우를 거의 보기가 힘들죠. 특히나도 초등학생 시절에 만약 그렇게 하면 아마 학부모님들은 내 아이에게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으려고 하는거냐고 들고 일어서실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오히려 어린시절에 보상교육을 훨씬 더 많이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책에서 제시했던 자료는 이 그래프입니다.

    Figure 1. Number of Finnish students with disabilities receiving part-time special education interventions, by age group. Itkonen & Jahnukainen(2007), An Analysis of Accountability Policies in Finland and th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bility, Development & Education; March 2007, Vol. 54 Issue 1, p5-23

    이 자료를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학습에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이른 시점 - Classes 1 to 6은 핀란드의 교육제도의 종합학교 1학년~6학년, 그러니까 한국 교육제도로 바꾼다면 초등학교 기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에 보상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인데, 이는 상당히 제게 신기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다소 고민을 여러차례 했었으니 어느 정도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긴 했는데 핀란드처럼 'Head start'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나라가 있다는 점에서 신기했고, 이런 조기 보상교육이 나중에 가져오는 학업 성취도의 평균적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이론이 이론이 아니라는점, 이론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핀란드의 교육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지금의 대부분의 한국 교육은 사실 '외적 보상'체계와 '표준화 점수'에 매달리는 교육 체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나도 시험의 점수에 목매달고 있고, 사실 학생들의 개인적인, 내적인 목표보다는 외적인 점수에 매달리는 학부모님들이 더 많은 시대인데, 이들은 적어도 표준화 점수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일찍부터 '낙인'으로서의 보상교육이 아닌, 누구나도 부족하면 일찍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교육학자들이 '책무성 강화'를 필두로 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비판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효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3. 학교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은 현대 교육철학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근대를 지나면서 겪은 '인간'의 가장 큰 개혁이라고 한다면 신분제의 철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모든이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 민주주의는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뺄 수 없는 가치가 되어 있었고, 듀이는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인생의 첫 공간으로 '학교'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핀란드를 방문한 한 연구자가 보고서는, 여기에는 존 듀이가 말한 민주주의가 바탕이 된 학교가 실현되어 있다고 이야기 한 것이죠. 비록 그 연구자의 언급이긴 하지만 이는 상당히 큰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에서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들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1) 학습자

    학습자를 빼놓고는 핀란드의 학교 민주주의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수업 커리큘럼은 한국처럼 2학기에 일제형 수업이 아니라, 1년을 5~6개의 분기로 나누어서 분기별로 학생 개인의 수준별 커리큘럼을 짜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학습자 간의 개인차는 핀란드도 존재합니다. 그러한 개인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핀란드 교육의 목표라서 그런지, 학습자별로 개별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는 것은 상당히 '발전된 교육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수준별 수업'을 시행하긴 하지만, 이건 많아야 3분반 - 상, 중, 하 - 정도 입니다. 그리고 1년을 2학기로 나누어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개별적인 변화에는 초점이 잘 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개인별 커리큘럼도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도 5~6분기에 걸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학습자의 의견을 반영한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소한의 의무 교육 기간을 마치고 난 뒤에 더 배울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학습자'의 몫입니다. 사회의 분위기가 이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죠.

    2) 선생님들간의 문화

    핀란드의 선생님들 중 대부분은 하루에 4시간이 최대 수업시간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교수-학습 연구, 교수자간 협의와 같은 시간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저는 협의 및 교재 개발 시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선생님의 직업문화도 상당히 민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교장선생님 또한 수업에 예외는 아닙니다. 다른 교사들처럼 동등하게 '수업'에도 시간을 할애해야합니다. 한국의 교육제도처럼 '관리'만 하느라 현장의 실태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선생님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교장선생님의 역할을 볼 수가 있죠. 수업도 하고, 학교 경영도 하면서 지역사회와 소통을 하고, 교육의 흐름도 파악해야 하는 것이 핀란드의 수 많은 학교에 있는 교장 선생님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생님들간의 협의는 자연스레 합리적인 협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사회 전반의 문화가 다른 건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정상회담에서 나온 '타일러'가 말하듯이 '장유유서'는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비 합리적인 문화가 한 몫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합리적인 토론 문화를 부러워 하는 건 바로 민주주의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니까요. 그걸 핀란드는 실현하고 있는 것이고.


    4. 교육은 단순히 '교육제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 중 하나에 속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회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교육제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사회 제도'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입니다.

    1) 무상급식

    적어도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데 돈을 내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빈부의 격차'에 따른 차별적 복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이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로서의 개념이 우선시됩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교육'이라는 가치를 바라볼 때 '경쟁'보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동반 성장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는 어디에든 경제 효율 논리가 개입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교육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있어서 저는 '핀란드'의 보편적 교육을 좀 더 지지합니다. 교육은 소득 격차에 따라서 더 받고 더 못받고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교육은 사회 구조 개선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최대한 모든이를 배려할 수 있는 교육제도를 시행해야겠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이가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겁니다. 어떠한 사회든 5퍼센트의 인간들이 이끌어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5퍼센트의 사람이 사회 전체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못된 일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그 사람들의 것만이 아니고, 다른 이들도 기여함으로써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설령 5퍼센트의 사람들이 계획을 하더라도 그 계획속에서 계획을 실제로 시행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없어서는 그 사람들도 5퍼센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엘리트 교육은 똑똑한 이들이 '더 배우고 싶을 때'를 위한 추가 교육으로서의 개념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기본은 모든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외적인 환경들이 갖추어져야 할텐데 그 하나가 바로 '무상 급식'인겁니다.

    2) 사람간의 유대감

    헬조선은 사실 '신뢰가 깨진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후반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었던 많은 나라들이 부정부패에 여전히 씨름하는 상황에서 상호간의 유대감, 신뢰감은 바닥을 치고 있죠, 그렇지만 핀란드는 특별히 나라가 잘 사는 것은 아니었어도 사회 집단간의 신뢰는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특출난 산업은 없었지만, 교육을 통해서 경쟁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는 모두가 합의했습니다. 여기에서 이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단순히 몇 년에 걸쳐서 짧게 이뤄낸 것이 아닙니다. 짧게는 1970년대부터 종합학교가 설립되면서, 다양한 학교의 선생님들이 한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합의했던 것이죠. 집과 가장 가까운 학교가 최고의 학교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만큼 학교의 구성원들은 노력해야하며, 그렇게 노력하는 구성원에 대해서 사회는 지원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사회는 그걸 해내고 있는겁니다.

    3) 기업문화

    책에서 읽었던 구절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노키아의 최고간부로 재직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인터뷰였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수학이나 물리학을 모르는 젊은이를 채용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을 쉽게 가르쳐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실수하는 게 무서워 다르게 생각하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줄 모르는 사람을 채용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육제도를 최신식으로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대신 지금 핀란드 학교에 있는 창의력과 열린 마음을 없애서는 안 됩니다.

    필자인 파시 살베르그가 92~94년에 핀란드 교육과정 과학교육 대책위원회를 이끌던 시절에 작성한 메모에 있던 내용이라고 기록해놓았는데 상당히 인상 깊은 내용이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가끔 선생님을 뽑는 '임용고시'에 관한 시험 이야기와 그 맥이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임용고시에서 사람들의 인성과 주위 사람들과의 협동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기업에서도 학교 교육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었던 것이고, 이는 곧 핀란드 교육에서 얻어낸 결과물로서 하나의 기업문화가 된 것입니다.


    5. 도대체 한국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OECD(2016), Trends shaping education.(Paris: Author)에서는 세계화에 따라오는 가치를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그중 인상 깊은 몇 가지를 고른다면 다양성, 이민, 기후 변화, 21세기 기술, 사회 협동, 국가적 가치, 직업 불평등, 급격한 변화, 그리고 '교육예산의 감소'등이 있었습니다.(그 외에도 키워드는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걸 다 넣기에는 너무 많아서 생략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키워드들이 교육현장에 적용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이게 다 일상과 관련 있는 이야기들이니까요.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에 맞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사회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기조가 교육에도 적용되며 최소 비용 최대 효율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등 다양한 문제들이 학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저는 고민이 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임할지 말입니다.

    제게는 가까운 동생들이 많습니다. 이 동생들중 현재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거의 99퍼센트에 이르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그 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동생들의 내적 동기를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는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최근에 제 전공 교과인 '국어교과'에 대한 가장 단순한 결론인, '능동적인 독자, 능숙한 필자가 되는 것'의 연장선이기도 하죠. 그러한 상황에서 제가 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동생들이 가져온 학교 시험 점수, 학원의 시험 결과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네가 노력했으면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보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네가 즐겼는지, 네가 하고 싶어서 했는지, 네가 노력을 해보았는지, 공부했던 내용이 있다면 그 내용이 괜찮다고 느끼는지, 혹시 실생활과 연결되는 것들은 없는지 말입니다. '점수'로 평가받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입니다. 절대적으로 수치가 높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상황에서 한국 교육에서의 '평가'는 대부분 '서열'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인데 그러다 보면 잃어버리는 것은 학습에 대한 흥미이고 늘어나는 것은 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뿐일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겁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긍정적인 태도는 '점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 긍정적인 태도를 가장 자주 쓸 수 있는 분야를 '교육'에 놓는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고, 자신이 긍정적인 가치로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힘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좀 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으로써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하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때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도 이루어지고, 한국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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