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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옥 대표중단편선, 생명연습 외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책/한국문학 2016. 8. 27. 13:45



    1. 김승옥은 아주 젊은 시절에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였던 작가입니다. 소위 '한글'로만 배우고 자라난 첫 세대로서 1960년대 작가들은 전후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가진 소설들을 내보이게 됩니다. 그 선두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최인훈', '김승옥', '이청준'이 있습니다. 이 3분 중에서도 저는 '김승옥'을 가장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이야기가 희미해지고, 더 이상 '거시적 관점에서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 다시 읽어도 50년이 지났지만 정말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아마도 김승옥의 문체에서 드러나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승옥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자기 세계'입니다. 데뷔작인 '생명연습'을 읽다보면 '자기 세계'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데, 데뷔작에서는 이 '자기 세계'를 주인공은 '지하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이야기하는 교수의 자기 세계는 '옥스퍼드제 성'으로 표현하며, 이러한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 사는 방법으로 '극기'를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자기 세계'에 금이 가는 이야기가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과 같은 작품들이고 '생명연습'이나 '환상수첩'은 그러한 자기 세계가 어떻게 해서 형성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담겨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기 세계'가 무너져 가는 모습도 조금씩은 볼 수 있습니다. '환상수첩'에서는 대개는 무너지거나, 확실한 자기 세계 확립 후 죽는 주인공의 친구가 있겠군요.


    2. 작품을 다 이야기해보고도 싶지만 '다산성', '건',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 대해서는 조금 어렵다고 판단해서 제외했습니다. 게다가 머릿속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고 자주 생각나는 작품인 '생명연습', '환상수첩' 등을 뺴놓고는 싶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 기억나는 작품으로는 '서울의 달빛 0장', '차나 한잔'정도가 있긴 한데, 여기에 실려있지 않아서 제외했습니다. 이전에 읽어본 작품들이긴 합니다만, 김승옥의 초기작품들이 더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제외합니다.

    1)생명연습 : 데뷔작입니다. '자기 세계'라는 단어가 나오던 소설, 누구에게나 자기 세계는 있습니다. 그 자기 세계는 소설에 나와있는 것처럼 '지하실'(주인공 서술자)일 수도 있고, '옥스퍼드제'(교수)라서 아주 견고한 성벽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서술자) 어머니의 자기 세계는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견고하고 강인한 '유리 성'에 가까운 것 같거든요, 형의 자기세계는 '다락방'에 있었고, 누나의 자기세계는 '그림'과 '소설'같은 글을 통해서 우리는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세계'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서술자는 '극기'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눈썹을 밀어버린 친구의 이야기, 작품을 떠나서, 저만의 자기 세계는 글쌔요, 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자기 세계는 모든 종류의 성을 아주 조금씩은 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 다양한 각도에서 각기 성이 다르게 보이는, 그런 성을 구축하는 게 꿈입니다. 저도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자기세계는 하나의 '이상'을 구현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기 세계입니다.


    2) 환상수첩 : 저는, 이 소설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죽음'으로 소설이 끝마쳐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서구권의 다양한 소설들과 맥을 같이합니다. 주인공이 직접 서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액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누군가의 수기'라고 이야기하며 소설을 진행하는 방식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얽혀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이자 개인적 문제들은 이 시대에 살고 있던 수 많은 이들의 고뇌를 아주 효과적으로 상징하고 있는데, 신기한 점은 이 이야기가 '지금'에도 매우 비슷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집에 잠시 들리고 싶었을 때 받은 감정은, 낙향하는 액자 속 주인공의 모습과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문체도 현대적이고 내용도, 지금 다시 봐도 현대적입니다. 당장 어제 나왔다고 해도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소설입니다. '환상 수첩'속에 나와있는 '낙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의 수 많은 젊은 이들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대학 생활 도중'에 낙향해서 결국 자살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대학 졸업 이후에 '취직'을 준비하다가 자살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상황이니 시기가 약간 달라졌을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이죠. '환상'같은 이야기를 적어놓은 수첩은, 지금까지도 공감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3) 역사 : 이 소설을 기억하기로는 '힘을 간직하여 온 사내'에 관한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읽으면서 사실 그 이야기를 벗어나서도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힘'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삶이 좀 더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삶'인지 이야기해보려는 소설이었습니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책 내용 전체를 나열해야 할 것 같아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과연 규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하루 하루를 조금 더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인지로 말입니다. 저는 아직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 의미있는 삶이 하루하루 10시가 되면 방 안에 들어가고, 6시면 아침에 일어나며 정해진 시간에 모두가 나와서 아침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음악을 듣는, 나쁘게 말하면 '쳇바퀴 속 다람쥐'와 같은 삶이 의미가 있는 삶인지, 아니면 조금 힘들지만 자꾸 좀 더 나은 삶을 향해서 생각하고 몸부림치는 삶이 괜찮은 삶인지를 말이죠. '괜찮은 삶의 방식'을 본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4) 무진기행 : 무진기행은 안타까움과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만큼은 하와 조, 그리고 박처럼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나의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수첩에서 액자 속 주인공과 다르게 주인공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며 쓴 편지도 찢어버리고 올라가니까 말입니다. 결국 '과거의 나'를 발견한 '나'는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음에도 이 소설은 매우 감각적이었습니다. '안개'가 무진의 특산물이라는 '나', '서울'에 가고 싶다는 '하', 어째서 저런 노래를 꼭 불러야만 하느냐고 불평하는 '박', 가련하게 바쁘게 보이는 친구 '조'까지, 이 소설은 '나'의 다양할 수 있는 모습을 각각의 인물로 만들어내서 대화를 하며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냈습니다. 간사인 '나'의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며 읽게 된 이 소설은 다시 읽으면 읽을 수록 새로 보이는 문장과 단어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 같아서 참 신기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윤희중'의 고민하는 모습은 '윤희중'의 모습이지만 사실 이 작품을 읽는 많은 사람들의 '대리인'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꿈꾸던 과거는 있었으며 그 꿈꾸던 과거 이후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은 과거의 '이상'과는 멀어져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윤희중'이 무진으로 와서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방황했던 과거를, 또는 방황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이 여전히 기억에 남고 자주 생각납니다. 단 한 번만 무책임을 긍정하겠다는 그의 태도가 자주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게 '무책임'을 긍정하고 싶어하면서 자기 세계를 잠시 동안 나와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점 또한 이 소설의 특징입니다. '윤희중'이 자기 세계를 깨버렸다면 아마 그건 비 현실적인 소설이 되어버렸을겁니다.


    5) 서울 1964년 겨울 : 소설 초반부에 '서울 1964년 겨울'의 분위기를 단 몇 문장으로 정리하는 부분은 참 압권입니다. 마치 김동인이 소설 '감자'의 마무리에서 복녀의 상황을 요약하던 것처럼 김승옥은 소설의 분위기를 몇 문장으로 미리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나갔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어떠한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른 어딘가로 찾아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두려움을 볼 수 있으며, 안과 '나'가 '사내'의 죽음을 알게 된 후 어서 그 자리르 피하려는 장면에서 '개인주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목이 제시하듯이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의 환경을 섬세하지만 간결한 묘사력으로 드러내는데 이는 작가 '김승옥'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안'과 '나'가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의 '자기 세계'가 사내의 죽음으로 인해서 금이 갔기 때문입니다.


    3. 결국 김승옥은 '자기 세계'를 이야기하고, 이러한 '자기 세계'에 대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논한 뒤, 그러한 세계가 금이가고 아주 조금씩은 흔들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논했습니다. 아이러니 한 점은 이후 그가 영적 체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전집을 펼쳐낼 때에도 자신의 작품이 어째서 1960년대 문학으로 해석되는지에 대해서 직접 답하는 부분에서도, '청년 김승옥'으로서 썼던 작품들에서 자신의 작품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세계'의 균열이 세계의 발전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아쉬워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론가들에 따라서는 김승옥이 '무진기행'과 같은 작품을 몇 편만 더 써냈더라면 더 대단한 작가가 되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이며, 그의 작품성은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바라볼 때 가장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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