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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읽기 1.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한 그림
    예술 읽기/그림 읽기 2016. 12. 30. 11:00

    Paul Gauguin,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Oil on canvas, 139 cm × 375 cm (55 in × 148 in), Museum of Fine Arts, Boston

    0. 들어가기에 앞서.

    미술사를 통틀어서 정리하는 것도 매력있다고 생각했지만, 당분간 그냥 제가 가지고 있던 엽서나, 제가 보았던 그림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을 위주로 그냥 하나하나 정리해보고 싶어 이렇게 단편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글은 한 편 한 편 들이 굉장히 짧을 예정입니다. 대개 작가별로 돌 가능성이 크니까 작가 별 첫 편은 조금 더 길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설명만 덧붙이려고 합니다. 게다가 이 블로그에 고정 독자층은 거의 없으니 좀 운영의 자유도 있긴 합니다. 거의 99퍼센트에 가까운 '저의 기록 정리'와 1퍼센트의 독자 요구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1월 3일 발표가 어찌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당분간은 이런 식의 그림 이해를 돕는 글을 읽으면 전에 말했던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1. 그림 소개

    이번 그림은 폴 고갱의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입니다. 제목을 번역해보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 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 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가'정도로 번역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았었던 미술 제목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철학적인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그림을 본 지도 어연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그리움이 상당합니다. 저는 이 그림을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갱 전'을 해주던 차에 보러 갔었습니다. 좌우 길이가 3.7M이기 때문에 전시장 한 벽면을 이 그림만 걸어놓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 사람도 적었어서 편하게 보았었던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갱의 직업은 처음부터 '전업화가'가 아니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원래는 주식 관련 업종에 근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보수적인 시선에서 보기에 '경제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다소 의아함이 많이 드는데, 고갱은 사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개의치 않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화풍을 알아봐주는 화가들에 대해 호감을 가졌었죠. 뭐 한 때 고갱이 고흐와 같이 살았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고요.(같이 산 것과 별개로 두 사람이 잘 지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갱과 고흐의 성향이 워낙에 달랐었기 때문이죠.)

    고갱은 자신이 살 던 곳과는 다른 파라다이스를 찾아 다니던 화가였습니다. 문명의 손길이 덜 닿은 곳을 찾아다닌 것이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고갱이 생각하기에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면들을 찾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그가 그린 그림들 중 프랑스 바깥에서 그린 그림들은 인간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일상'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 위에 그림은 제목부터 고갱이 추구하던 것을 집약해주는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건 크게 '삶'과 '삶 그 너머'입니다. 오른쪽 하단의 '아이'에서 부터 왼쪽 하단의 '노인'까지 인간의 삶을 집약적으로 제시했고, 동시에 중간에서 좌측 상단부에는 종교적 상징을 나타내는 우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삶의 너머에 관한 상징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사과를 따고 있는 가운데의 사람은 생략하도록 하죠. 왜냐하면 너무 많은 가이드는 개인의 해석을 해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그림에는 해석의 자유가 필요하죠. 독자분 각자가 제목을 보고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드는 생각들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리가 지금 있는 '여기'에 있는 건 우리의 의지와는 사실 관련 없는 사건이었지만, 그건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의문점을 지닌 채로 말이죠.

    고갱은 타히티의 섬에서 원시적 자연과 원초적인 삶을 보며 이게 바로 '내가 추구하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삶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던 흔적들이 남은 제목이 바로 이 그림의 제목입니다. 그가 여러 섬을 거쳐서 태평양의 군도 중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가 생각했던 자연의 삶을 일부 발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 끝에 저는 이런 고민을 하고는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어디에 있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말이죠. 사실 우리의 삶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의 삶은 가벼움과 무거움 그 어느 하나의 가치관에 기대어 산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가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삶 속에서 조차도 인간이란 존재는 어디로 가야할 지 호기심을 갖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글이 잘 안써지는군요. 한 해가 끝나가는 2016년 12월 말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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