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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13>
    책/한국문학 2017. 5. 16. 09:41

    - 소설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

     

    0. 화제작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라는 문장이 책 뒤편에 쓰여있는 소설책이다. 맘충? 맘충 그렇다. 보통 '충'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하필 왜 '벌레'냐고 묻는다면, 사회 통념이 '벌레 같은 놈'이라는 비하적 의미로 쓰이는 일종의 접미사로 한자어 '충'을 선택했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이전에도 '충'이라는 접미사는 자주 쓰였다. 특히 학교에서 말이다. 잠충이(잠만 자는 애들을 놀리는 말), 식충이(먹는 것만 밝히는 애들을 놀리는 말)와 같은 단어들이 그 예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맘충'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이건 '엄마'를 비하하는 단어이다. 소설 속의 맥락에서는, '남자들의 돈이나 타다가 커피나 마시는 여자'의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그 '커피'값은 별다방이나 콩다방의 3천원 이상의 커피가 아닌, 1500원 짜리 커피였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인터넷에서 떠돌던 한 '카드 뉴스'였는데, 그 이후에 서점 갈 일이 없어서 책을 볼 일이 없다가 이렇게 읽으니 화제작이라고 할 만 하다고 느꼈다. '문제작'은 아니라고 본다. 이 소설에 대해서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작품은 화제작이다.

     

    1. 3인칭 서술 방식의 또 다른 실험

    또 다른 실험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봤는데, 이게 정말 또 다른 실험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주관적인 느낌에서는 이 소설의 형식이 나름대로의 실험이긴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르포 같은 소설이랄까. 어떠한 이야기를 3인칭의 시점으로 서술하며, 이야기가 '3인칭'과 관련된 누군가의 이야기였다는 점을 소설 마지막에서 제시하는 방식은 전에 내가 읽었던 소설 중 이청준의 '매잡이'와, 김승옥의 '환상수첩'이라는 단편에서 접했던 적이 있다. 물론 '매잡이'는 액자가 2단이 아니라 3단이라서 더 머리가 복잡하고, 김승옥의 '환상수첩'은 액자는 2단인데 '액자 안 이야기'가 1인칭의 시점에서 서술되어서 액자 안 이야기의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3인칭의 서술자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리두기를 유지한다. '김지영 씨'라고 김지영을 지칭함으로서 얻게 되는 거리감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무슨 관찰일지는 보는 느낌이랄까. 아마 '장편소설'이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일종의 일화기록으로 봤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김지영'씨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허구'라는 점 덕에 이 작품이 이전의 소설 같지 않은 '소설'로서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소설의 내용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사회 통계 자료들의 수치들은 이게 정말 소설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면서, 동시에 이 소설의 주인공 '김지영'씨가 겪는 어려움, 고통, 불쾌함 등이 소설 속 현실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수시로 알려주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소설 방식은 내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소설의 구조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있는 '전망 없는 결말'은 더더욱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하필 이러한 내용을 관찰한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니,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정말 판에 박힌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이러한 내용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구술사'와 같은 새로운 직업군이었다면 나는 정말 신선하다고 느꼈을텐데, 의사라는 평범함과, 그 의사 역시 '미혼인 사람'을 뽑겠다고 하는 점은, 작가가 의도했기 때문에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작가의 생각조차 너무 도식적이지 않았는지 하는 아쉬움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다.

     

    2. 성차별이라는 내용의 큰 틀

    소설의 내용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예로는, 김지영씨가 어린 시절에 '아들'이 아니라 '딸'이어서 겪은 할머니에게서 받은 차별, 그리고 학교에서 겪은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으로서의 차별, 회사에서 겪은 '남자 직원'이 아닌 '여자 직원'으로서의 차별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이 소설의 내용을 이루는 많은 부분들이고, 그 전체이기도 하다.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소설의 많은 내용들을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용에 관한 요약은 생략한다. 뭐 분명한 건, 생략하든 안하든, 대부분의 틀은 '여자는 ~~~야 한다'는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 인상 깊은 내용을 몇 개 고르라면, 여학생은 구두에 '검정 스타킹'또는 '투명 스타킹'과 블라우스 안에 입는 옷이 제한된다는 선생님의 발언, 지하철에 앉아 있는 데 옆에 있는 여자가 어깨를 치며 하고 가던 말을 고르고 싶다. 뭐, 할머니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성차별이 '여성'에게만 있다고 느끼는 것은 조금 오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성차별은 남자와 여자 둘 다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자에게 일어나는 성차별이 좀 더 직관적이고, 뭔가 제약이 더 많아서 그렇지, 소설 속 남성에게도 성차별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집안일을 막내가 하는 건 안된다는 것이 그 예이다.

     

    3. 현실과의 갈등

    얼마전에, 이 책을 다 읽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우연히 친구 A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내가 전에 친구에게 상담했던 일에 대한 해결책을 알려주기 위해서 전화를 준 것이었는데, 뭐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나는 '소설책'을 읽었다고 답했고, 그 친구가 무슨 소설책이냐고 되물어서 '페미니즘'에 관한 소설책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또'라는 물음이 되돌아왔고, 나는 '응, 요즘 이 소설 유명하더라고.'라는 답을 했다. 이 소설이 유명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소설의 공감대'가 다른 소설보다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그 전에 먼저 '친구가 한 말'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의 친구 A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권리는 얻으려고 하면서 의무나 그에 맞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이러한 발언은 내게 있어서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친구 A의 의견에 대해서 반박을 시작으로 메시지를 구성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의 의견이 맞다고 느끼는 부분과 한 편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언급하면 이렇다. 참고로 내가 믿을 만한 이들로부터 전해 듣거나 직접 본 이야기들이다.

    사례 1. 일찍 퇴근을 하고 싶다면서 임금은 남자들과 동일하게 받겠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례 2. 학교 운동회 날, 행사 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여자 선생님들은 다 들어가버리고 남자 선생님들만 남아 급하게 비에 맞으면 안되는 기기들을 그늘로 옮겼다는 일화

    사례 3.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옮겨야 하는데 담당자가 남자에게만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을 시키려고 하자 '여자는 왜 못들어요? 여자도 힘 있는데'라고 되물었던 한 여자 관리자.

    사례 4. 남자는 터프해야 하고 과감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이들

    사례 5. 육아 휴직을 신청한 후 집에서 양육을 담당하게 된 가까운 형

    사례 6. 남자는 살면서 울면 안된다고 하는 어른들

    뭐 어느 주장이 더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자에 대한 성차별이 더 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삶이 실제로 그러했거나, 아니면 자신이 인식할 수 있었던 성차별이 대개는 '여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더 많이 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 후에 겪는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아무도 잘 알려주지 않는 것은, 이전에 출산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 역시 아이를 낳은 이후에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누구에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나 할아버지 분들께서 '집안은 아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두고서, 무조건 잘못되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그분들께서 한참 가치관을 형성하실 때에는 그러한 사고 방식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소위 한국 사회가, 유럽이 200년 가까이 걸린 일들을 60년 만에 겪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라는 지적은 타당한 지점들이 많다. 세대간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게 바로 그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4.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개인적으로 주변의 성장 배경과 나의 성장 배경을 비교해보면, 나는 '좋은 경험'을 형성해 온 남자에 속한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의 가치관을 무작정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분들께는 그게 당연하기 때문에, 그걸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가치관을 타인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택시에 탔는데 '내가 왠만하면 첫손님은 여자를 안태운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특별한 반감을 안느낄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데, 안느끼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가 단지 그러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방조한다고도 지적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은데, 개인의 성장과정을 다 존중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만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하면 갈등이 커진다. 다만 사회는 한순간에 확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면 할 수록 지치는 나를 발견하고 있어서 요즘은 자제하는 중이다. 과거에도, '여자는 ~~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가진 어른분들은, 똑같이 공부시키고 똑같이 대학에 보내셨다. 그 수가 적었을 뿐이다. 사회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성평등'을 주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성평등'을 주장하지 않는 남녀와 갈등을 겪는 다는 점이 좀 특이할 것이다. 이제는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좀 다르다. 그 부분은 '성평등'을 주장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그 갈등은 남자와 여자가 거의 동등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남자'들과, 남자와 여자가 아직도 많이 차별속에 있어서 여자들이 더 불리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인식과 감정으로 인해 일어난다.

     

    5. 글을 마치며.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은 한 남자 정신과 의사의 기록으로 끝난다. 여자의 일생을 관찰한 3인칭 서술자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서술자는 자신의 직원 중 한 명이 임신으로 인한 출산휴가 때문에 계약직 직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 부터는 남직원을 뽑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소설을 마친다. 나는 이러한 구성이 다분히 의도적인 마무리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현실의 힘듬을 '부각'시키는 구성, 한 편으로는 너무 지나칠 정도의 남자의 여자 차별이랄까. 지나치면 아쉽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부분은 아쉽다. 너무 전망이 어두운 결말이다. 차라리 남직원이 여직원의 출산 휴가에 공감하는 거라면 좀 더 덜 비관적인 소설이 되었을텐데.

    나는 'Man box'의 해방과 여성들의 해방이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특정한 성의 차별이 더 심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들의 '민감함'은 공감할 수 없고 수치화 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여자들이 겪는 차별의 고통을 남자들이 겪지 않는 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여자는 ~~해야 해'라는 말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는 것이 '남자는 ~~해야 해'라는 말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것과 분명 다르겠지만, 그건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이지, 남성과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내에서도, 남성 내에서도 그 차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인지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싶다.

    글이 길어졌는데, 얼마전 기억에 남는 일화를 끝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학교 내 체육교육과 발표회 때문에 '소리통'을 한다고 학교 기숙사 식당에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이 하나도 없네? 그래서 나는 정말 여학생이 없어서 여학생들은 소리통에 안나온건가보다 했는데, 왠걸 오늘 아침에 1학년인 17학번이 적혀있는 체육교육과 여학생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소리통 안해도 된다고 누가 언질을 주었을까, 여자도 해야한다. 여자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빠졌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뭐 개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없었다면, 나는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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