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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의 '목마른 계절'을 읽고.
    책/한국문학 2018. 2. 3. 09:11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6.25는 박완서의 오랜 주제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에 아예 직접적으로 빨갱이와 흰둥이를 언급하며 하진의 방황과 불안을 드러내었으니까 그걸 파악하는 건 쉬웠다. 논문들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글들이 이미 써 놓았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이 작품에 대한 논문은 다해서 10편 남짓이었다. 학위논문에서는 그냥 계별적인 작품으로 다루는 게 아닌 '박완서'라는 작가 안에서 다루는 하나의 작품일 뿐이었고, 일반 연구 논문들도 몇 편 안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논문들을 보고 글을 쓰지는 않았다.

    소설을 읽고 나니 제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목마른 계절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건 어떤 게 있을지 생각해보는 일이 나의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꼈던, 이 소설에서의 목마른 계절이라는 건 무엇이었을까.

    소설에서의 목마름이란, 평화, 자유, 인간애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하진과 하열,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전쟁 당사자들인 군인과 군인이 아닌 피난민 모두다 이러한 목마름을 갖고 있었다. 북한의 체제는 평등한 줄 알았던 하진은 활동을 그만둔 오빠를 경멸하는 눈빛과 조소를 섞어 비난했지만 적치가 시작되고 난 이후에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아가며 이러한 목마름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평등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하열은 과거 활동했었던 이야기를 할까도 했지만 하진의 눈초리를 받아가며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 그걸 하진이 직접 깨달을 때 까지 기다렸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직접 깨달은 하진은 오빠인 하열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 하지만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방황을 오빠를 통해서 어느정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평화, 자유를 목말라 했다. 그들의 바람은 죽지 않는 것, 강제되지 않는 일상들이었다.

    또다른 목마름에는 사랑이 있었다. 하진은 사랑에 목말라있었다. 처음부터 목마른 건 아니었지만, '민준식'이라는 인물이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던져준 것 같았다. 왜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 번 알게 되면 그 목마름에 허덕이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민준식과의 첫만남을 묘사할 때부터 뭔가 모를 느낌 같은 게 있었는데, 정말로 그러했다. 여기에서 민준식은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드러났다. 제일 이질적인 존재인 민준식, 그가 부자로 태어나 부르주아임에도 빨갱이가 되려는 것에 대해서 하진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내비쳤다.

    소설을 다 읽다보니, 소설이 보여주는 목마름은 전에 읽었던 시의 구절과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언제나 가뭄이었다.’고 했던 진은영의 청춘 1의 시구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목마른 계절의 끝을 자의에 의한 종식이 아닌 타의에 의해서 종식을 맞는 것은 그 시대가 휘두르던 폭력이었던 것 같다. 박완서 소설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혹함은 그 지점에 있었다. 엄마의 말뚝도 그랬고, 나목도 그랬다. 어쩔 수 없는, 힘이 없는 역사 속 '개인'은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상깊었던 부분인, 하진과 하열간의 다툼의 부분을 실으며 짧은 소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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