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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투 운동과 불신시대
    개인적 기록/일기 2018. 3. 1. 12:44

    어제 가족 중 한 명이 이런 발언을 했다. "미투 운동을 하는 데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 두고 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성폭행/성추행에 대한 거짓/허위 고소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서 노출되면서 드러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아버지의 발언을 듣고 좀 짜증이 났다. 내 주변으로 밖에 한정하는 것이 다라는 점이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성추행/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있었다. 나도 한 때 군 시절 주무관들이 나의 엉덩이를 톡톡 치고 가면 성적으로 불쾌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분들은 네가 그렇게 느낀지 몰랐다고 웃으시면서 미안하다고 그러셨다. "다음에는 안 그럴게~~"라고. 그러니까 이건 어른들의 애에 대한 관심, 사랑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난 이 부분에서도 아쉬웠던 것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개인이 느낀 감정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미투 운동으로 돌아가자면,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미투 운동이 위축될 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투 선언자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며 더 이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서 미투 선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년, 수십년이 더된 사건들을 말이다. 사건이 아니라 정확히는 '피해'이지만. 그런 피해를 그 당시에 왜 말하지 못했냐 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고, 꽃뱀이라는 말을 서슴치않게 하던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라도 되는 지 나는 되묻고 싶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그런 단어를 쓴다. 물론 악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허위 신고를 통해서, 합의금을 받아내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여기에서 생기는 '불신'이 사회를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미투 선언이 마치 '택시 승차 거부 운전사'를 잡아내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준비해놓지 않는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녹음기나, 카메라를 상시 켜놓고 다니지 않는다. 그냥 있고, 그냥 돌아다니고, 그냥 생활하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공격받는다. 택시로 치자면, 전혀 생각 안했는데 "안가요"하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자면, 나의 어린 시절에 길거리에서 삥뜯긴 일화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도, 가해자들에게도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돈을 뜯겼었다. 내가 입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돈을 나보다 키가 큰 여러명의 형들이 주머니에서 빼가며 위협했었다고 말했지만, 나의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네가 처신을 잘못했겠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주변 어른들도, 친구들도 이야기했었다. '나'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해버리는 사회는 사실 초등학생때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과 같이 피해자들이 넘침에도, '내가 말을 해도 과연 공감받고 보호받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불신 시대에,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에 이걸 당장 회복할 방법은 없다. 다만 그냥, 내 주변에서 미투 선언을 하게 된다면 도와주고 싶을 뿐, 나는 그 사람에게 당신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고, 같이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네가 어디에선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랬겠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뺨을 쳐버리고 싶다. 문제는 피해자들에게 있는게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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