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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르디두르케(ferdydurke) - 비톨트 곰브로비치
    책/외국소설 2013. 1. 27. 11:33



    페르디두르케

    저자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4-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다양한 서사 방식을 통해 성숙한 세계, 질서 잡힌 체계의 허구성...
    가격비교


      아아! 난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나는 결코 그녀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보아도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실컷 그녀를 조롱해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을 조롱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경의를 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식의 조롱안에는 상대의 환심을 얻고 싶은 극적인 욕구가 감추어져 있기 떄문이다. 내가 그녀를 조롱한다면 그것은 바로 조롱의 깃털로 나를 장식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나를 거부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공격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러는 동안 내 낯짝은 더욱 추해지고 혐오스러워졌다...

       사실 시폰과 미엔투스의 '대결'을 볼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이 책이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나에게 공감을 느끼게 만들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점점 나는 이 책에 몰입해가며 결국 끝을보고야 말았다. '대조'라는 단어가 이 책을 위해 존재할정도로 '소재'간의 대립성을 이용해서 글을 썼다. 나에게는 여러 시사점을 주었는데 가장큰건, '도입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이고, 두번째는 '사랑이란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였고, 세번째는 작가의 의견을 넣기위해서 별다른 작업을 하지않고 직접적으로 의견을 넣는 책도 더러 있더란 것이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페르디두르케'는 내가 전에 읽은 '포르노그라피아' 보다 더 화끈한 책이며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할 수 있던 책이었다. 전체적인 짜임새와 이야기의 전개에서 두책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게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페르디두르케'도 더 먼저 출간되었음에도 '수작'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생각한다.


       먼저 특유의 내용전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솔직하게 처음에는 날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나도 적응을 해서 인지, 분명 '도움'이 되었다. '주인공'인 자신이 잠에서 꺠어보니 30살이 아닌 18살이라는 설정이 어디에서 쉽게 접해볼만한 구도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되게 당황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설정'에 해당했다. 18살이 되어서 바라보게 되는 세상은 이 아이가 '애늙은이'에 불과하며 그렇기때문에 순수해져야 하는 '대상'으로서 교육되고 가르쳐져야되는 '현실'이 된다. 이러던중에 만나는 '핌코'선생은 '순수함'을 요구하고 주입하려는 대상인데(한편 이상하게도 그와 반대되는 주트카를 연모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인 '유죠'는 핌코선생의 소개로 므워드지아코프 부인집에서 머물게 된다.(부인집이라는게 부인이 소유하고있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부인이 운영하는 교육원인데 이 교육원에 속해서 현대적 여고생, '주트카'에 빠지는 곳이 된다. 순수해져가야만 하는 곳이다.)


       시폰과 미엔투스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순진함'과 '타락'을 논할 수 있을것이다. 순진함이 naive같은 의미는 아니고 음....어떻게 보면 virgin일수도 있겠고 pure일수도 있겠다.(virgin과 pure이 동시에 필요하다.)이 두 소재와 '시폰' 그리고 '미엔투스'는 밀접하게 결합되어있다. 시폰 그 자체가 '순수함'이며 미엔투스 그 자체가 '타락'이다. 미엔투스가 시폰을 타락시키려고 하거나,(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면서)시폰이 스스로 희생을 함으로서 미엔투스로부터 완벽한 해방과 동시에 '순수함'을 얻으려 하는 행위는 일종의 '영역다툼'과도 비슷하고 동시에 두 사상의 대립과 충돌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에는 시폰이 이기게 된다. 순수함이 이긴다. '이 순수함이 반드시 옳은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미엔투스같은 성향이 더 높다는 이야기이지만, 확실히 숭고한 희생을 치뤘다고 하면 '시폰'이 이긴게 된다.(사실 누가 이기든 중요하지 않은데...)이 구도를 그려내면서 작가는 최대한 18살의 분위기가 나게 하려고 노력했다. 30살인 유죠가 정말로 18살인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그게 사실인듯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로 소설속에서는 사실이고..)학생들끼리 편가르기를 하고 서로 대결을 하겠다는 부분으로 현실화를 시켰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애늙은이 '유죠'가 갑자기 18살이 되어서 일어나는 말도안되는 상황이다보니 결국은 '미성숙'속에서 지은이가 추구했던 두 가치간의 충돌이라고 보는게 더 현명해보인다.


       필리도르와 안티필리도르의 이야기는 나도 정확히 어떤이야기를 하고자 작가가 쓴건지 이해가 안된다. '분석VS종합'인건 이해가 되는데 굳이 이야기를 하면 숲이냐 나무냐의 논쟁과 비슷할 것 같다.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을 전달하려 했던것일까, 필리도르와 안티필리도르간의 대결에서는 결국 필리도르가 이기긴 하는데, 누가 이겼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현대적 여고생 '주트카'는 유죠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다. 아름답고 깔끔하고 자유로우며 차분하고 냉정한 그녀가 하는 행동들은 '현대적'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현대적인것과 옛날중에서 요즘사람들은 현대를 많이 선택하지만 과연 이전의 것이 지금것보다 그렇게 안좋은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라날때 자꾸 '구닥다리'와 같은 단어로만 연결해서 그런게 더욱더 심하다.) 이 현대적임을 사랑하게 되지만 유죠를 바라봐주지 않는 주트카를 결국 무너뜨리기로 결심한다. 견고한 철벽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연히도 '타락의 아이콘' 미엔투스를 만나서 이야기를 몇차례한후, 핌코와 코피드라를 동시등장 시킴으로서, 그리고 그 상황을 므워드지아코프와 부인에게 보여줌으로서 완벽한 '붕괴'를 보여준다.


       여기에서의 붕괴는 단순히 '주트카'개인만의 붕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성'에 대한 총체적인 붕괴를 대신에서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현대적'이라는 단어자체부터가 결국 타인에의해서 결정된것임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을것같다.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 가치관이라는것 조차도 스스로가 만들 수 있던게 아니라 타인의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한후 그걸 통해서 '종합선물세트'를 만드는것들을 비판한다. 내가 진정 느끼는게 나 스스로의 기분에 따라서 좌우되는지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서 기분이 좌우되는지 작가는 한번쯤 사고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때 여고생이 내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깜짝놀랐다. 그녀는 아주 활달하게 몸을 움직여 손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받치면서,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석양의 희미한 빛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불안하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놀려고 준비하고 앉은 자세 같았다. 미국여자들은 이런 모습으로 배 가장자리에 걸터 앉는다. 그녀가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열에 들뜬듯이 흥분했다. 적어도 이 상황을 연장하겠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아닌가...... 금방 일어설것 같지는 않았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으니......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고생이 지금 자기가 가진 매력들중 몇가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초조한 듯이 발을 움직이면서 입으로는 뿌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큰 눈은 조심스레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녀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이렇게 이상한 자세로 있는것을 본다면 하녀는 뭐라고 말하겠는가? 우리가 잘난체 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지나치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할까? 

    여자애들은 이런 위험을 즐긴다. 어두침침한 여자애들, 자기들이 무얼 할 줄 아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어둠이 필요한 여자애들, 나는 내가 만들어낸 꾸밈이 갖는 난폭한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그녀를 정복했다고 느꼈다. 양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온 신경이 여고생쪽으로 쏠린채, 그녀의 자그마한 숨결까지도 살피면서, 침묵속에서, 하지만 열정적으로, 온힘을 다해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

       내 여자친구에게도 뭔가 어두움은 그녀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는것 같다.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고나서도 내내 여자친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참 좋으면서도 슬프지만 좋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읽는 모든책들이 결국은 내 감정을 재확인할 수 있는 도구이며 어떤식으로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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