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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part.1 - 빅토르 위고
    책/외국소설 2013. 2. 20. 22:57


    레 미제라블. 1

    저자
    빅토르 위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1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난한 전과자 장 발장, 성인으로 거듭나다!19세기 프랑스 대문...
    가격비교


       최근 책을 읽으면서 생긴 화두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죽음',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첫번째, 죽음을 먼저 이야기 한 이유는 상당히 유명하거나 꽤 인기가 있는 문학작품의 경우 '죽음'이라는 소재를 항상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걸 화두로 고르고 싶었고, '종교'를 선택한 데에는 대개 유교/불교 문화권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보기 쉬운 '종교적 사랑'이 상당히 중요한 주제라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났던 책들은 '이름 없는 주드'(토마스 하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안나 카레리나'(레프 톨스토이), '소피의 선택'(윌리엄 스타이런) 정도가 있었는데, 음....동반자살부터 혼자 추위에 떨어 죽은것까지, 다양한 죽음으로 소설의 마지막을 끝맺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우면서 비극적임을 느꼈다. 도대체 왜 소설의 마지막에서 '죽음'이란 소재를 차용하는걸까. 허무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유야 있겠지만 죽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언제까지나 이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죽어야만 끝이 맺어지는게 아니니까. 죽지 않고도 다양한 길이 있는데 자꾸 죽고 죽고 죽으니까 좀 그렇다. 팡틴도 결국 1권에서 죽고 말지 않는가!

       '종교'에 대해서는 음...가톨릭 특유의 '아가페'를 이야기 하고 싶다. 유교는 '인본주의'가 기본이고 불교는 '윤회'와 '무소유'가 기본이지만, 가톨릭은 회개와 사랑이 기본인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쪽뺨을 맞았으면 다른쪽 뺨을 내어주라는 글귀나 항상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글들을 보면 가톨릭에서는 항상 '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현재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그 죄값을 치루고 나서 '천국'으로 갈 수도 있는 '판단'을 받게 된다고 할까. 안나의 남편 알렉산드로비치도 종교의 힘으로 안나를 용서하고, 이성과 감성에서 나오는 엘리너도 종교의 힘으로 에드워드와 가까워지며 여기에서 이야기할 '장 발장'또한 종교의 힘을 받아서 회개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쉽게 볼 주제는 아닌듯 싶다.


       난 어렸을때 장 발장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다. 아예 백지 상태로 레 미제라블을 읽은것임을 일단 말하고 싶다. 내가 영화를 본것도 아니고, 뮤지컬을 본것도 아니고 오페라를 본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을 했고, 여자친구는 영화를 보면서 나름 생각이 많아졌다고 하고, 뮤지컬 영화를 패러디한 동영상도 누군가 만들어서 배포가 됬고 이게 유명세를 탔으며 나는 어느정도 최근에 계속 책이 읽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이 책도 1권 마지막에서 '죽음'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장발장은 종교의 힘을 받아서 샹마티외의 누명을 벗겨주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 하기 위해 '마들렌'의 이름을 버리고 뛰어들었다. 사람들에게 장발장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빵훔쳐서 감옥들어갔다는 이야기밖에 안해줘서 답답하긴 한데, 이 부분은 글의 맨처음 극히 일부분에만 해당한다는걸 알았고, 레 미제라블은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장발장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사람의 이야기이다. 그 속에서 종교도 나오고 워털루 전투도 나오며 프랑스 혁명도 나온다.(이건 빅토르 위고가 쓴 글의 전형적인 내용구성방법이다.) 문화와 사람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된다는걸 언급하고 싶다.


       비앵브뉘 미리엘은 디뉴의 주교다. 처음에 이 사람을 언급하면서 서술자는 언급해야 편할것 같다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책의 맨 처음이다.) 비앵브뉘 미리엘이 디뉴의 주교가 된 이후 디뉴가 매우 종교적으로 '성지'가 되는데 이때 장발장이 19년의 형기를 마치고나서 디뉴를 들리게 된다. 당시 '장발장'을 모르는 마을 사람은 없어서 그의 노란 통행증을 보고서는 아무도 집에서 재우려고 하지 않지만 비앵브뉘 주교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재운다. 그리고서 다음날 새벽, 장발장은 그의 은촛대와 은식기를 훔치고, 프티제르베의 나폴레옹 은닢 두개를 훔치고서 디뉴를 떠나게 된다. 비앵브뉘 주교는 장발장에게 회개의 힘을 불어넣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항상 종교적인 인물은 대개 매우 '성스럽다'는 느낌을 풍기는데 비앵브뉘 미리엘은 자신의 월 수입중 2천프랑만 남기고 나머지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의무이자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 쓴다. 그런 주교를 보고서, 19년동안 수감생활을 한 장발장이 수많은 생각을 한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나온다. 지금 읽고 있는 2권에서 나올 '워털루 전쟁'은 이 프랑스 혁명이 만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1권에서 가장 진지하게 한 G, G가 비앵브뉘 예하에게 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오스트리아 황녀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엾게 여기지만, 나는 또한 루이 대왕 치하였던 1685년 아기에게 젖을 주다가 잡혀 허리까지 발가벗겨 진 채 아기와 떨어져 말뚝에 결박되었던 저 가련한 신교도 부인도 가엾게 생각하오. 그녀의 젖가슴은 젖으로 부풀었고 가슴은 고통으로 부풀었소. 배가 고파 파리해진 아기는 그녀의 젖가슴을 보면서 괴로워하며 울부짖는데, 사형집행인은 어머니요 유모인 그 부인에게 '개종하라!'라고 말하면서 아기의 죽음과 양심의 죽음 중 양자 택일을 하게 하였소. 한 어머니에게 적용된 이 탄탈로스의 처형을 당신은 어떻게 보시오? 이 점을 잘 기억해 두시오. 프랑스 혁명은 이유가 있었소. 그 분노는 미래에 용서를 받을 것이오. 그 결과는 더 나은 세계요. 그 가장 무시무시한 타격으로부터 인류에 대한 애무가 나오는 거요. 이만 줄이겠소. 이만 그치겠소. 내가 너무나도 유리하니까. 더구나 나는 이제 곧 죽을 것이오."

       그리고 그는 주교를 바라보기를 멈추고 다음과 같은 몇 마디로 조용히 그의 사상을 마무리했다.

       "그렇소,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욕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

       국민의회 의원은 자기가 주교의 마음속 보루를 연달아 하나씩 하나씩 죄 깨뜨려 버렸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가 남아있었고, 비앵브뉘 예하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그 보루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처음의 딱딱함이 거의 그대로 다시 나타났다.

       "진보는 하느님을 믿어야 가능하오. 선(善)은 믿음 없는 하인을 가질 수 없소. 무신론자는 인류의 나쁜 지도자요."


       프랑스 혁명이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캐릭터 G는 비앵브뉘 예하에게 프랑스 혁명은 '진보'라고 말한다. 비록 폭력성이 결부되었고 그 과정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가치있다고 말한다. 한걸음 나아간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이 프랑스 혁명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왕정복고를 통해서 루이 18세가 다시 즉위하고 영국의 승리로 돌아가긴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끝났어도 전 유럽에 퍼진 혁명사상은 사그라들줄 모르고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레 미제라블'이 단순히 장발장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책을 읽다보면 캐릭터의 이야기도 존재하지만 배경을 서술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배경을 읽다보면 이게 배경인지, 그냥 개별적인 이야기인지 헷갈리는 느낌도 들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이건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잡는다.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서술방식이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지식적인 측면도 알려주는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다. 다만 전개하는걸 따라가기 힘들 뿐이다. 여자친구가 '취향에 갈린다'고 말한건 바로 이런부분 때문이리라.


       마들렌이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장발장이 19년의 출감 기간 이후 출소해서 돌아다니다가 비앵브뉘 예하 아래에서 은촛대와 은식기를 훔치고, 프티제르베의 동전 2개를 훔친건 맞다. 그 부분에서 과연 작가는 '장발장'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고뇌를 이렇게 까지 강조하면서 '비극'으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그냥 내 취향이지만, 비극은 항상 불편한게 많다. 물론 극적인 성격을 더 키울 수 있고 사람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건 맞지만 장발장이 회개를 하고 새 사람이 되서 살아가는데 이렇게 다시 한번더 지옥으로 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고용한 사람에 의해 팡틴이 힘들게 살게 된것을 보면서 그 사람을 돕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몽트뢰유시르메르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이 사람이 과연 지옥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내용중에서 그가 꾼 꿈 이야기를 읽을때 그에게는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한명인 장발장이 두사람이 되어(형과 동생) '당신은 어딜가오? 당신은 오래전부터 죽어 있다는 것을 모르오?'라고 하는 부분에서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자세가 보이는데, 그런 장발장을 또 한번더 지옥으로 넣는다는건 '자베르'의 논리대로 당연한 것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매우 슬프고 안타까웠다.


       자베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정리가 안되다 보니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게 답답하다. 그래도 다음 글에서는 아마 할거라고 스스로를 믿고있다. 뭐,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읽어볼만한 책인건 맞다. 매우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풀어내서 결국에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건 이런 책을 두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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