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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part.2 - 빅토르 위고
    책/외국소설 2013. 2. 23. 17:00


    레 미제라블. 2

    저자
    빅토르 위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1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난한 전과자 장 발장, 성인으로 거듭나다!19세기 프랑스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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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째, 자베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못하고 1부를 마쳐서 아쉬운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일단 책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 초반에 나타난 워털루 전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싶었고, 덧붙여 나폴레옹과 워털루 전쟁에 대해서 궁금해진건 바로 도입부때문이었는데, 논문도 출력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글을 쓰려고 하니 답답하다. 난 워털루 전쟁을, 나폴레옹과 웰링턴간의 관계를 장발장과 자베르의 관계라고 생각하게 됬다. 워털루 전쟁만큼 나폴레옹에게 천운이 안따라준 전쟁을 그전에 나폴레옹이 겪었을까. 그는 전쟁에 있어서 천재였고 특히, 당시 18~19세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포병'을 다루는 장교였다. 최연소 사관학교 졸업에 우등생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천재가 계산을 한 웰링턴에게 패배한것은 그날 날씨도 한몫하고 오앵의 음푹 팬 길도 한몫했다. 게다가 그의 직감은 웰링턴의 계산에 무너졌다. 그에게는 더이상 '황제'로서 있는 하루가 아니라, 그도 이제 그만 하차할때가 된것일지도. 하늘의 뜻은 무심하게도 웰링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전쟁 초반에는 그가 우세였다. 물론 날씨가 계속 비가 와버려서 포병을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고, 수적인 우세를 이용해 압도적인 전쟁을 벌이지 못할지라도, 천재는 천재였다. 하지만 그의 흉갑기병대가 무참히 부서지고, 블뤼허가 나타나 웰링턴을 도우며,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 프로이센이 끼어들며, 전혀 안보이던 마흔개 가까이의 포문이 보이며 나폴레옹은 패배했다. 마치 장발장이 결국 자베르에게 드러나는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1권부터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이 워털루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으로 일궈낸 자유는 '왕정복고'로 되돌아가버렸지만 위고는 알고 있었다. 이 프랑스 혁명이 전 유럽에 '자유'를 싹틔우고 왕정을 타도할 것이라고 말이다. 1789년 삼부회를 열고 앙시앙 레짐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시민 사회'의 힘을 빅토르 위고는 '종교적 시각'으로 봤을때는 약간 불편해도 그게 필요하다는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시민사회가 시작되고 나서, 국민의회가 시작되고 나서 불과 100년도 안되서 루이 18세의 집권이 시작되고(동시에 나폴레옹은 실각하고) 소위 '왕정 복고'가 돌아오지만 혁명은 그 자체로도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루이 18세의 집권은 '부르주아'의 등장을 알렸는데 프랑스 혁명이 여기에서 의미하는건 일만 시민과 귀족간의 경계를 허물려다가 오히려 '귀족', '부르주아', 일개 시민'으로 나누


       자베르는 '마들렌 영감'을 감옥속에 쳐 넣었다. 죄수번호도 5자리에서 4자리로 바뀌었다. 마들렌씨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샹마티외가 죄인이 아니라는걸 밝히고 나서, 그가 하려던 '코제트'를 살리는 일도 못한채 자베르는 그를 끌고 툴룽 교도소 속에 다시 쳐 넣는데 성공한다. 특유의 집요함과 끈질김으로 끝까지 장발장을 찾아내고야 마는 자베르의 모습은 장발장과 코제트의 인생이 걸렸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잔혹한 존재로 다가왔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죄를 지은건 장발장이고 그것에 대해서 속죄를 해야하는건 맞다는 점이다. 속죄는 속죄다. 다만 그 속죄를 언제까지 얼마나 해야하는가가 애매한 부분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것 같다. 왜냐하면 매우매우 합리적인 법치주의 사람들은 대개 자베르가 좀 잔인할지라도 장발장이 벌을 받아야 하는건 '당연하다'라고 말할 것이지만, 종교적 관용을 좀더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용서'해야 한다고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어느입장도 취하기가 애매하다. 최근에 안나 카레리나를 읽기 전까지는 이 '용서'라는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요즘은 용서를 하는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차가운 이성에 약간 따뜻한 감성의 물이 부어져서 지금은 미지근해진 상태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까지 한 행동으로 봐서 분명 장발장은 '용서'의 대상이 되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자베르가 용서할 사람이 아니지. 자베르는 용서하는 캐릭터로 나와버리면 이 소설의 극적인 느낌과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가 없게 된다. 자베르 같은 사람덕에 장발장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코제트를 연민어린 생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샐뻔했지만, 하여튼 자베르는 그 자체가 '하데스'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생각하는 그런 '지옥의 신'으로 말이다.



       몽트뢰유쉬르메르의 번영은 마들렌씨와 함께 소멸했고, 고뇌와 주저의 그날 밤에 그가 예견 했던 것은 모두 실현되었다. 그가 없어지자 사실 '넋이 없어진' 거나 진배었었다. 그가 추락한 후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는 위대한 인물들이 몰락한 후에 일어나는 저 이기적인 분열이, 인간의 공동체에서 날마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저 번창한 것들의 숙명적인 해체가 발생했는데 이런 일은 역사상 단 한번 밖에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 일어났으니까. 대장들이 스스로 왕관을 쓴다. 직공장들이 하루아침에 제조업자가 되었다. 시기심 많은 경쟁이 나타났다. 마들렌 씨의 널따란 공장들은 닫혔고, 건물들은 폐허가 되었고, 직공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고장을 떠낫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직업을 떠났다. 이후 모든 것은 커지는 대신 쪼그라졌고, 선을 일삼는 대신 이득을 일삼게 되었다. 더 이상 중심이 없었고, 도처에서 경쟁이, 그리고 악착같은 증오심이 기승을 부렸다. 마들렌 씨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끌었다. 그가 쓰러지자, 저마다 제 잇속만 챙겼다. 단체정신은 투쟁정신으로 변했고, 친화는 냉혹으로 변했고, 만인을 위한 창설자의 호의는 상호간의 증오심으로 변했다. 마들렌씨가 맺어 놓은 유대는 헝클어지고 끊어졌다. 사람들은 제조법을 속이고, 제품의 질을 저하시키고, 신뢰를 무너뜨렸다. 판로는 좁아지고, 주문은 줄어들었다. 임금은 떨어지고, 공장은 파업하고 파산이 도래했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국가마저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죄 재판소가 마들렌 씨와 장 발장이 동일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여 형무소를 살찌우고 나서 채 사 년도 되기 전에 몽트뢰유쉬르메르 군에서는 징세 비용이 배가했고, 빌렐씨는 1827년 2월 의회에서 그 점을 지적했다.


       장 발장, 마들렌의 존재는 '몽트뢰유쉬르메르'라는 도시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소도시의 개인이란 존재가 얼마나 간사한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도시를 통해서 많은걸 느꼈다. 빅토르 위고가 21세기의 '개인주의와 붕괴'를 예견하고 이런 모습을 그린건 아니지만 이건 현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중 하나이다. 다만 대상이 다를 뿐이지. 가장 속물적인 상태의 인간을 그려내는데 이 몽트뢰유쉬르메르는 매우 적합한 도시로 설계됬을지도 모른다. 소도시에서 마들렌씨 덕에 성공했다가 마들렌씨가 툴룽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이런일이 벌어지니,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하지만 동시에 이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작가의 경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자베르의 잔혹함과 비교해서, 프티픽퓌스 수녀원의 수녀들은 매우 대조적이다. 물론 그녀들도 수도원 안으로 들어간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면 매우 잔혹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장발장을 쫒아내 툴룽교도소로 보냈을것이지만, 그들은 어쨋든 장발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마들렌'시절 도와주었던 영감덕에 그 영감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마들렌씨를 보고서, 매우 비참하고 가난해보이고 힘들어보이는 마들렌씨를 보고서 도우려고 한다. '수녀원장'에게 마침 죽은 '수녀'를 묻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게 기회다 싶어서, 동생으로서 마들렌 영감을 수녀원에 데려오게 되고, '코제트'는 이 수녀원의 기숙생으로서 키우게 된다.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식구에게서 구할때 난 인간의 추악함과 저질스러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느꼈는데 테나르디에 식구는 그야말로 더러운 사람들에 불과했다. 그런 가족들에게서 코제트가 나오며 자신이 원하던 인형과 뭔지모를 '구세주'와 함께 느꼈던 감정은 매우 행복하고 안정적인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코제트가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은 '장발장'에게 또다른 회개의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장발장이 수녀원을 보면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은 코제트가 커가면서, 그 모습을 장발장이 보면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을듯 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코제트가 숙녀로 자랄것이라는 이야기가 2권 마지막에 등장하는걸 예견을 해놨으니 추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먹이를 쫒는 늑대 '자베르'와 자식과 같은 이를 품은(코제트를 품은) 장 발장은 아직 서로 대결중이다. 마들렌씨가 자베르에게 '팡틴'을 놓아주라고 했던 그 순간부터 이 둘은 계속해서 엮이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일단 장발장은 수녀원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자신보다 더 소중한 '코제트'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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