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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책/외국소설 2013. 10. 18. 22:15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1989-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에서 6백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운 빅 베스트셀러오늘을 사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잡다한 800번대의 묶음에 넣긴 했지만 난 이 책을 이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세계문학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잡다한 800번대라는 약간 '변두리적'인 책으로 말하기도 싫다. 이 책은 내게 사상이나 생활적인 측면,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나에게 시사점을 주고 감동과 고민을 가져다 준 책이기 때문이다.죽음과 섹스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 원래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데, 어째서 노르웨이의 숲인지는 이 노래의 가사를 알아야 조금 이해가 될것이다. 하지만 난 '비틀즈'를 선망하던 세대가 아니고, 비틀즈를 단순히 '들어보기만'했던 세대여서 그런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내게 어떠한 감흥도 줄 수가 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라는 단어는 '상실감'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아도 와닿기 때문에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적어도 제목에서 내게 뭘 유추하게 만드는데는 성공했다. 정말 하루키는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성공하기까지 된 부분에서 가장 보답을 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붙인 사람에게 주어야할 정도이다.



       이 책의 소재인 '상실'은 바로 인간관계에서의 상실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스스로의 목표에 대한 상실이기도 하며, 주인공인 와타나베 스스로가 겪는 과거에 대한 상실이기도 하다. 그중 먼저 '인간관계에서의 상실', 와타나베의 첫 상실은 바로 기즈키에 대한 상실이었고, 두번째는 '나오코'라는 친구이자 애인이자 말하기 애매한 사이의 사람에 대한 상실이었다. 첫번째가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에,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생각하는 그 시점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둘이 만나서 둘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어느순간 둘이 호텔방에 들어가고, (이제것 한번도 젖지 않았던 나오코가)그녀 스스로 예상치 못한 흥분으로 서로 섹스를 하고난, 그 다음날 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 나오코를 향해서 와타나베는 알 수 없는 사랑의 감정과 동시에 말하기 애매한 감정들이 겹쳐서 나타난다. 다만, 그가 행동을 취하는 방식에서 보여지듯이, 지나치게 그녀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의 예의이상으로 나오코를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데에서, 와타나베의 나오코를 향한 일관성이 참 돋보였던것 같다. 게다가 뭔지 모를 희망으로(외관상으로는 회복되는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회복되서 자신과 같이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는것도 결국은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어느정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런 나오코가 결국 자살을 해버리니, 이건 결국 '상실'이 되어버린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넓지 않은 인간관계를 가졌지만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과는 상당히 깊은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소수지만 깊은 관계의 사람들, 기즈키도 그렇고, 나오코도 그렇고, 나가사와도 그랬다. 또한 레이코나 미도리와도 알게된지는 얼마 안되지만 자신이 전에 알던 사람들과 거의 비슷하게 대한다. 난 와타나베라는 주인공의 이런점이 정말 마음에 확 와닿았었다. 그다지 넓은 사람들과 교제를 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  그의 한결같은 태도는 내가 사람들을 대할때와 너무나도 흡사해 보여서였는지, 내가 평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마음가짐들을 이 책에서는 적절한 언어로 바꿔준것 같아서 참 고마웠다. 내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된 듯한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내 인간관계는 과연 어땟을까. 나는 지극히 '사무적인 인간관계'와 '생활'로 나뉜다. 사무적인 인간관계는 정말 최소한의 교류만 있다고 할까. 필요한 만큼의 맞장구와 업무 협의를 위한 '협조'정도, 하지만 그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도 잘 나누지 않고 그저 최소한의 이야기만 주고받고 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는 사람들과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계속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무너져버릴것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인것이다.



       두번째 상실인 '목표'에 대한 상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어떤 목표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기숙사에 같이 사는 나가사와는 자신을 시험하겠다는 '목표'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목표도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표일뿐, 자아 발전이나 사회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런걸 가지고 '목표'라고 말하긴 정말 힘들다. 스스로를 위한 목표라고 딱 말하기가 애매한 모두들, 나오코 역시 자신이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한것도 아니었다. 레이코는 사회에 반드시 돌아가려고 한게 아니라, 안에서 해매고 있다가 친구의 연락이 오자 나가는듯한 분위기이기도 했었다. 이런 목표에 대한 상실감이 책 전반에 깔려있다 보니까, 어떠한 사람도 엄청나게 의욕적으로 뭘하는건 없고, '물흐르듯이'서사가 전개된다 서술자인 '나'는 천천히 전개하면서 중간중간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동시에 느리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다고 해서 어떤이야기를 막하려는것도 아닌것 같다. '목적성'이 없는 전개이다. 그덕에 난 편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기도 했고, 뒤 이야기를 예측하기 힘들기도 했다.


       아마도 당시 사회의 20~30대들을 그리는데 있어서 이런 '방황'과 '무방향성'이 한몫한건, 그 시대상과 가장 맞물려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공투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는 당시 그런 열정적인 학생들과 대비되는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또한 지금 확실한 목표가 정해진것이 아니라 그런지 와타나베의 이런행동들이 이해가 된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과거에 대한 상실'은 비교적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딛고 스스로가 어딘지 다시금 돌아본다는 점에서 나는 다른 상실보단 이 상실을 가장 값어치있다고 말하고 싶다. 와타나베가 결국은 '나오코'라는 과거를 잃었지만, '미도리'라는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도리와 나오코사이에서 갈등하는 와타나베를 두고서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달에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한다는건 현실적으로 쉬운일이 아니다. 연락을 자주 하는 시대배경도 아니고, 기껏해야 편지나 전화인 상황에서 매주 답장이 오지 않는 환경이니 말이다.

       비록 나오코는 죽어버리지만, 레이코가 나와 와타나베와 섹스를 하는 그 과정을 통해 와타나베는 나오코에 대한 스스로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다면(다른말로 과거를 상실한다면) 레이코는 '현실세계'로 나아갈 통로로서 와타나베를 접한다고 해야할까, 어쨋든간에 그녀가 사회와의 관계를 끊고 '아미료'에 왔을때부터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니까.



       '나오코 - 기즈키 - 와타나베', '하쓰미 - 나가사와 - 와타나베', '와타나베 - 미도리 - 미도리남자친구', '레이코 - 나오코 - 와타나베'와 같이 이 책에서는 유독 세사람의 관계가 자주 나온다. 이건 두사람만의 관계에서는 대부분 '불완전'하다는걸 내포하듯이, 미도리는 자신의 애인과 헤어지고, 기즈키는 죽어버리며, 하쓰미 또한 나중에 결국 자살을 감행하고, 나오코 역시 단단히 마음먹고 목숨을 끊는다. 난 이게 작가가 추구하는 이 책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두사람의 인간관계는 불완전하지만 세사람이 모였을때는 유지가 되고 화합이 되었다는걸 강조하는듯 했다. 불완전한 사람, 다른말로는 '결락'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두사람으로는 유지되기 힘든 그 '인간관계'가 세사람으로 유지되는걸 계속 보여주는건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나오코와 레이코와 와타나베가 같은 장소에 있을때도 그렇고, 기즈키와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같이 있을때도 그렇고 그 순간에 유지되는 'peace'(단순히 '평화'라는 말로 대신하긴 힘든 것 같다..)를 값어치 있게 생각해야하는건가도 싶다. 다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뭔가 다들 부족한것들이 있기 때문에 음, 비교적 부족하지 않은 나와는 다른이야기라고 말하는것도 가능할 것 같다.



       매년 가을마다 이 책을 읽는건 유독 가을하늘만 보면 뻥뚫리는 그 기분이 신기하지만 좋으면서 씁쓸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이 책의 제목만큼 딱 와닿는 책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 관한 여행기를 같이 읽는것이다. 봄에는 싱그러운 햇살을 맞다보니까, 여름에는 더위먹고 겨울에는 추위에 질려 생각하지 않는 삶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이 책을 읽으며 매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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