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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Moonlight'를 보고
    영화 2017. 2. 28. 00:40

    -1.

    영화 보는 것을 미루고 미루던 차에, 갑자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하필이면 영화 시간대는 저녁과 심야....뿐이었다. 그런데 왠걸 하늘이 날 도왔는지 스터디가 파토나서 영화를 보고 올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 안에 있던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작품상 받았다고?" 하며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으나, 나는 라라랜드 보다야 더 낫다고 생각했다. 라라랜드는 다소 환상으로 구성된 영화다. 현실 같지만, 사실 영화 같은 장면들이 많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란, 우연성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장면들을 일컫는다. 사실 두 남녀 주인공이 연달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영화 같은 설정이었으니까 말이다. 라라랜드의 유일한 현실적 설정은 자신의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영화 후반부에 아주 잘 조합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엇나갔는데, 다시 이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의 우연적 요소를 좀 언급하고 싶었다. 하나는 '후안'이라는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후안'이 주인공인 '샤이론'의 엄마가 약하는 걸 보는 장면이다. 첫 번째 우연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선할 수 있다는 나의 성선설의 믿음에 근거한 우연이기 때문이고, 두번째 우연인 '후안이 '샤이론의 엄마가 약하는 걸 목격하는 장면'은 '하필이면 그 여자가 샤이론의 엄마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여자가 샤이론의 엄마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샤이론이 들어오자 엄마가 황급하게 숨기는 물건들을 보면 가능하다고도 생각했고, 사실 '마약'이란 것이 구하기 쉬운 처지에 놓인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도 있었다.

    이번 영화에 대한 글은, 몇 개의 소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내려가려고 한다. 사실 글감이 떠오른 즉시 그 글감을 다 털어내면 좋겠지만, 며칠을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몇 번의 퇴고 과정은 거칠 것이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원래의 생각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소주제의 순서에 대한 별다른 이유가 없다. 떠오르는 대로 일단 썼고, 그걸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위치 이동만 있었다.

    음,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또래들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미리 언급을 하고 싶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가 쓴 '자유론'에서 자유에 대해 논하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자유가 침해되었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 그 말을 여기에 적용하면, 그 또래들은 '샤이론'에게 성적 취향을 불합리하게 강요한 경우이다. 나는 내 성적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이 동성을 좋아하든, 이성을 좋아하든, 둘 다 좋아하든 상관없다. 그건 그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0. 포스터에 나와있는 3개의 색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포스터에 나타나 있는 3개의 이미지는 영화의 주인공 '사이론'의 3시점을 담아냈다. 맨 왼쪽은 1. little, 가운데는 2. Chiron, 오른쪽은 3. Black 이렇게 3 시점이다. 포스터의 이런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본 이후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런 느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냥 넘어갔었다. 좀 특이하다? 이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냥 색과 얼굴이 좀 다르네 싶었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포스터를 통해 무언가를 담아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눈매를 잘 맞춰놓았더니 한 명의 사람인줄..

    <1. little> 의 시점은 가장 파란색이다. 이 파란색은 영화의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후안이 쿠바에 있던 시절 어떤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며 칭했던 그 'Blue'와 같은 시점이다. 이는 그에게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시절', 그러니까 후안과 같이 지내며 행복함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이다. 또한 'little'은 별명, 그러니까 샤이론이 덩치가 작으면서, 사회적인 남성성을 보이지 않는데에 대한 주변 또래들의 놀림이 담긴 용어이다. 자신은 'little'이라는 칭호를 싫어한다고 테레사와 후안에게 말했다는 점에서, 어린 시절은 양가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후안과 테레사'를 통해 얻은 기억들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와 학교 학생들의 괴롭힘으로 생긴 기억들이다.

    <2. Chiron>은 약간 붉은 색인데, 이 붉은 색은 샤이론의 엄마인 Paula가 샤이론에게 소리치면서 꺼지라고 했던 때를 의미한다. 쳐다보지 말고 가라고 소리지르던 '그 날'은 샤이론의 엄마인 파울라가 후안을 만나 마약을 내게 팔면서 내 아이를 키울 거냐고 물었던 '그 날'이다. 왜 2편의 제목이 '샤이론'인지 생각해보면, '샤이론'이 참지 않고 자신을 내보인 장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그것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나름대로는 지지않고 자신을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 학교 선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이다.

    <3. Black>은 어두운 색, 거의 보라색에 가까운데 이 색은 샤이론에게 사실 무슨 색일까 싶었던 색이다. 나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샤이론이 저 분위기의 색에 가깝게 나오는 장면이 몇 장면 있던 것 같은데, 잠자리에 누워있던 장면과, 케빈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장면인 것 같다. 사실 Black이라는 별명은 케빈이 지어준 것이기 때문에, 서사중 3편의 구성이 이미 '케빈'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1. 성장 영화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 몸부림치던 한 남자의 이야기'. '자아 정체성'을 만약에 분류하려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정체성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뭐 혹자에 따라서는 '성 정체성'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자아 정체성'의 일부분이 성 정체성이라고 가정을 하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는 한 부분 중에 하나로 '성 정체성'에 관한 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샤이론의 자아 정체성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흔들림을 겪는다. 주변 학생들의 괴롭힘이나, 엄마인 파울라가 '샤이론'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러한 불안감이 생겨난다. 가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자라나는 아이는 '안정적인 거처'가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데, 엄마인 파울라가 약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샤이론은 이미 반은 포기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영화를, 그런 불안한 성장과정을 거친 샤이론이 나이를 먹어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 영화라고 생각한다.

    샤일론이 자라나가면서 '흔들림'을 겪는 것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수영을 배우는 장면이다. 조력자인 '후안'의 도움으로 수영을 배우는 장면은, 샤일론이 바닷물 위에서 수영을 배우기 위해 흔들리는 것을 통해 샤일론의 삶이 많은 흔들림 속에 있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영화가 다 끝나서 든 생각이 아니고, 그 순간에 들었다. 수영을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결국 흔들림 속에 해내는 것처럼, 이야기도 많은 흔들림 끝에 자신을 찾아가는 결말을 맺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 성 정체성 : '자아 정체성'중에서도 '성 정체성'에 대한 태도와 고민이 그가 어린시절 겪은 많은 흔들림의 원인의 일부이다. 유복한 가정의 또래도 아닌 샤이론은 그저 학교를 다니지만,  '호모'라고 놀림받던 아이 / 게이라는 말은 괜찮아도 호모라는 말은 참으면 안된다고 했던 그 날 이후에, 이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날은 '체어샷'을 하는 날인데, 개인적으로는 통쾌했다. 뭐, 그런걸 떠나서, 체어샷을 하는 그 첫 날이 '강해지기로 마음먹은 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강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성 정체성을 놀린다는 점에서 이 '성 정체성'이 영화의 서사구조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2) '나 다운 것'은 무엇이냐?

    이 영화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단순히 '성 정체성'만 드러내고 있는 듯 하면서도 사실 그렇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은 다른 아무도 할 수 없다는 후안의 말처럼, 결국 결정은 자신이 내리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주인인 샤이론은 약을 파는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걱정하는 삶 말이다. 한 편 케빈은, 그의 표현대로 걱정 없는 삶에 들어왔다. 물론 박봉이고, 퇴근도 매우 늦게하고, 18개월이나 보호 관찰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안정을 찾았다. 그렇기에 케빈은 샤이론에게 '샤이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다. 자신이 보았던 샤이론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케빈이 본 샤이론은 가장 깊은 내면까지 드러낸 샤이론이었기 때문에, 'I don't know you?'라고 되물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샤이론에게 있어서 '나 다운 것'의 종착점은 결국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케빈의 집 근처에 와서 바닷가를 순간 보며 비치는 눈빛이나, 자신을 만진 사람은 너(케빈)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 장면이나, 결국에는 '강해지려고' 근육도 키우고 겉으로도 화려한 모습을 키웠으나, 사실 그건 '샤이론'에게 있어서 '나 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볼 수 있다. 샤이론에게 '나 답다'는 말은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3) 강해보이는 것처럼 사는 것 속에 숨겨진 내면

    앞에서 언급한 '나다움'과 '내면'은 관련이 있다. 샤이론의 자아는 튼튼하지 않은데, 겉으로는 매우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 약도 팔고,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샤이론의 내면에는, 여전히 자신을 'touch'한 사람은 케빈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품고 있다. 이렇게 '외강내유'의 불안함을 우리는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친구들 중에서도 이렇게 외강내유인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많이 걱정하는 편이다. 외연의 '강함'이 내면의 '강함'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며 걱정하는 삶은 지속적인 행복을 얻는 것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3. Black>의 주인공의 얼굴에서도 청소년기와 어린이 시절의 샤이론이 보이던 눈빛과 표정, 행동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불안한 내면은 외연에 가려진 것이라는 걸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전처럼 한 번에 3단어 밖에 못하냐고 샤이론에게 묻는 케빈의 발언이나, 음식점 영업이 끝나고 케빈을 케빈의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차 속에서 케빈이 샤이론에게 묻는 '정말 안부만 전하러 온 것이냐'고 물을 때의 반응들에서 샤이론은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단지 묻어두고만 있었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내면, 가장 이야기하기 힘든 기억들로만 가득한 성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미루고 잊어두기 위해서 샤이론은 떡대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 한 일'을 하나 고르라면,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는 장면을 고를 수 있다. 체어샷을 날린 그 날을 아마 기억하기 위해서 얼음물에 얼굴을 담갔다가 빼는 장면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4) 영화 'Boyhood'와의 차이점

    다 보고 나서 'Boyhood'가 생각난 이유는 두 영화 모두 소년의 성장영화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다만 이 영화가 상당히 대조적이랄까? 'Boyhood'에서는 메이슨이 특별한 고민 없이, 그저 잘 자라나기만 했다. 한 번의 연애 실패마저도, 결국에는 보통이고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샤일론의 성장과정은 보통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어린 시절 주변의 괴롭힘, 마약하는 엄마로부터 생기는 트라우마와 고통들 속에서 자라난 '샤일론'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도 없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을 다 미뤄두고 그저 강해보여야만 했던 성장과정을 우리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5) 엄마(파울라)와 테레사

    어떠한 사람이든지 사실 성장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20대 초반까지의 삶은 성장 환경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에게서, 주변 환경에게서 영향을 받은 언어 습관, 성격, 태도 등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엄마인 '파울라'는 부족함이 많은 엄마였다. 자신의 아이가 도대체 왜 학교 학생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는 상태의 엄마였다. 파울라를 탓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걸 털어놓은 상대방은 후안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운 점 중 하나이다. 후안 스스로 15번가를 언급하게 되면서 파울라도 후안이 말한 사실을 믿음과 동시에 자존심이 상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 말이다. 그런 실망을 잘 이겨냈으면, 파울라가 마약 중독이 되지 않았겠지만, 그건 실패했다. 꽤 현실적이다고 느꼈다. 그만큼 환경을 이겨낸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 싶으면서도, '테레사'는 샤이론에게 사랑만 주는 존재다. 후안이 처음,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던 그 날 부터, 그녀는 샤이론에게 사랑만 주었다. 아낌없이 말이다. 이름을 짓기를 테레사라고 지은 건 테레사 수녀처럼 아가페와 같은 사랑을 베풀 것을 암시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저 수녀님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런 테레사를 '가짜 엄마'라고 하는 파울라의 발언 속에는 자신이 제대로 된 어머니 역할을 못하는 마음이 나타난다. 그녀가 나이가 들어서, 샤이론에게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직접 만나 '미안하다'고 고백하던 그 날에서야, 모자 관계는 많이 늦은 '봉합'을 할 수 있었을만큼이나,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인정하던 부족함 많은 엄마였다. 이게 순전히 그녀(파울라)가 미성숙해서 때문인건지는 알 수가 없다. 파울라의 어린 시절은 알 수가 없으니까. 다만 우리는 파울라가 좋은 엄마는 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랬던 과거에 대해서 샤일론에게 미안해한다는 점, 그리고 '파울라'의 빈 자리를 '테레사'가 조금이나마 채워줬다는 점이다.


    6) 악몽

    악몽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현실'에 있는 악몽과 '꿈'으로 나타나는 악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꿈으로 나타나는 악몽을 두 개로 나눈다면, 하나는 자신의 친구인 케빈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악몽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주인공인 샤이론에게 소리치는 장면이다. 이건 샤이론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두 가지 문제를 나타낸다. 하나는 성 정체성, 10대 시절의 샤이론은 자신이 가진 성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알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을 만진 적이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불확실함, 불안정과 같은 감정들이 이를 구성했다. 또 다른 하나는 거처의 불안정이다. 테레사의 집은 좋지만, 그 거처가 자신의 거처는 될 수 없다. 여전히 '샤이론 자신의 거처'는 아니니 말이다. 피난처가 집이 될 수는 없으니까. '파울라'가 마약을 하기 때문에 샤이론의 원래 집 또한 안정적인 공간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악몽은 반복되는 공간이다. 소년원을 나와서 애틀랜타의 한 구역에서 약을 판다고 한들 그 기억을 씻어낼 수 없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하는 일이 겹치기 때문이다. 약 때문에 망한 어머니를 보면서 약을 파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현실'에 있는 악몽이란건, 괴롭힘, 마약에 중독된 엄마를 바라보는 것, 마약을 팔며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등이 있다. 이 일들은 모두 '샤이론'의 불안감을 줄이는 것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글을 마치며

    감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영화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해변가에서 달빛에 비치는 샤이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모습은 후안이 말했던 'blue'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정말 인상깊었다. 아름답고 멋졌다.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서 영화를 봤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 자아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는 얼만큼 몸부림치고 있는가, 굳이 성 정체성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 다움'을 가꾸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게는 어떠한 흔들림이 있었는지, 지금은 무슨 흔들림이 있는지, 지금 내가 '나 다운 것'을 말해보라면 무엇을 말해볼 수 있는지 등등을 말이다. 확실한 건 난 이성애자라는 점, 주변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는 점, 부모님은 모두 마약을 하지 않는다는 점, 내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내게도 케빈과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늘 감사해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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