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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들'을 보고.
    영화 2017. 4. 15. 14:17

     

    0. 사연

    나는 이창동 감독의 팬이다. 그의 작품인 초록 물고기 / 박하사탕 / 시 / 밀양 / 오아시스와 같은 작품들을 선호한다. 뭔지 모를 그 소박함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리얼리즘으로 풀어내는 그를 좋아한다. 어느날처럼 나는 심심했고, 이창동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딸려 나왔다.

    이 영화가 나온 해에, 감독인 ‘윤가은’감독은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그럴만 하다. 이런 장편은 또 처음이다는 느낌이 든다. 중간에 쉴 곳이 없어서 오히려 힘들정도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런 느낌들을 좀 옆에다가 두고, 영화 자체에 대해서 먼저 평가를 하자면, '아이들은 어린데 내용은 어리지가 않았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영화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아쉽긴 하나, 이렇게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거의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몇 가지 키워드 중심으로 글을 썼다. 고친다고 고쳤는데 잘 고쳐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1. 성장 영화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다양할 수 있다. 나는 그 중 제일 먼저 '성장 영화'라는 단어를 고르고 싶다. 이건 다분히 문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어린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둔 영화로 파악했다. 잠시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해보면, 얼마전에 'Moonlight'를 보았을 때도 '성장 영화'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 그 이유에는, 주인공인 '샤이론'의 성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성장(나이를 먹어가는 과정)과 정신적인 성장(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바로 그 성장에 해당한다. '우리들'에서 '성장 영화'의 면모는, 정신적인 성장에 해당한다. 선이와 지아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한 성장 말이다. 영화는 그 중에서도 바로 '관계'를 다룬다. 선은 영화 내에서 친구가 없는 것으로 등장한다. 피구 시간에 팀을 정하기 위해서 '나의 이름'이 간절하게 불리길 원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불리는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은 친구들과 함께 '선'을 잡는다. 그저 보여주기만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걸 해결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같이 보여준다. 그런 선에게 생긴 친구인 '지아'는 방학이 시작한 날 남아서 청소를 하고 있는 순간에 다가온다. 둘은 금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2. 왕따

    선이 도대체 왜 왕따인지는 우리도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다루지 않는다. 선이가 도대체 왜 보라네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받는지, 도대체 왜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혼자인 장면들이 많은지,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장면들을 통해서 선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한 편, 이 '피해자'에게 다가오는 새 친구인 '지아'역시 과거에는 왕따였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둘이 친한 시절에 공유했던 수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서로가 목격했던 상대에 대한 사실들은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하면서 관계를 더 어긋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선이는 다시 친구 없는 삶을 지속한다. 문제는, 지아가 친구 없는 삶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보라(정말 나쁜*이다)는 지아가 시험에서 올백(하나도 안틀렸다는 표현)을 맞은 날 이후로 싫어하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지아를 배척하는 모습들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답답해 하면서도 보게 된다. 게다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이 하나 둘 알려지면서 더 멀어지기만 한다. 이런 왕따의 문제를 우리는 그저 볼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왕따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어른들이지만, 그게 왜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 또한 대부분의 어른들이 겪는 문제다. 지아가 계속 거짓말을 해서 싫다는 느낌 때문에 지아와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건 지아의 잘못인 걸까, 아니면 지아를 싫어하는 아이들의 잘못인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른들의 잘못인걸까. 나는 아이들에게도 일정부분 잘못이 있으면서도, 어른들에게도 역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학급'안에서의 왕따는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기가 매우 힘든 점들이 보여진다. 선이가 가난해서 '생일 선물'을 비싼 걸 줄 수 없다는 것이나,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않는다는 점, 핸드폰이 없다는 점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선이에게 호감을 덜 갖게 만드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건 선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례들이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어른들의 문제가 끼어있다.

     

    3. 어른들

    1) 선의 부모

    아버지는 술에 쩔어서 산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갈등이 깊다. 한 편 어머니는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선의 가족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긴 하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선이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가 이걸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지아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선이는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며 같이 걸어올라온다. 사는 도시에서도 상당히 높은 동네, 넉넉하지는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정이다. 여기에서는 사실 큰 변화를 누리기 힘들다. 복지의 혜택도 보이질 않고, 선이의 아버지는 육교에서 술에 취한채로 앉아있는 것을 선이가 같이 집에 가자고 말해서 겨우 집에 돌아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외로운 가족들인데, 이게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런 가족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이었을까.

    2) 지아의 부모, 할머니

    지아의 부모님은 지아를 잘 찾아오지 않는다. 지아를 키우는 건 할머니가 거의 8할으로 보인다. 지아의 부모님이 딱 한 번 영화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아 할머니의 말씀인 '애들은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말은 가슴으로 파고들어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까, 지아는 부모님의 사랑을 부족하게 받고 자란다. 할머니는 지아보고 핸드폰 좀 그만 만지라고 하지만, 지아는 그것 밖에 가지고 놀 것이 없다. 지아의 '큰 집'이 공허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전 학교에서 괴롭힘이 많았던 것처럼, 이번 학교에서도 괴롭힘이 많아서 걱정이 많아보인다는 할머니의 말은 지아의 상태를 알고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3) 담임 선생님

    선생님은 영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어른이다. 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도 이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관계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낸 것 같았다. 선생님은 사실 무능하다.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될 때 까지도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게 정말 사실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아마 이런 일들이 많았다는 걸 기억하는 내 머리 때문일까 싶다.

     

    4. 상처와 회복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마도 '선'이가 맞을 것이다. 선이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했다. 어머니께서 같이 먹으라고 싸준 김밥을 들고 혼자 있는 지아에게 갈 때도, 밤에 잠이 안와서 실을 꺼내어 실팔찌를 다시 만들어 갈 때도, 선이는 여전히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그점에서 선이는 지아와의 좋았던 기억들을 놓지 않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렇게 놓지 않고 싶어하는 친구가 관계 회복에 있어서 더 절실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끝으로 향할 수록 서로의 폭로전을 보여준다. 알콜 중독자라고 이야기한 지아와, 영국을 가지도 않고 전 학교에서도 왕따였다고 말하는 선이의 모습에서 둘을 향한 끝없는 폭로전이 막을 내린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한 번 피구 장면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학생이 둘(지아와 선)이다. 카메라는 둘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그리고, 지아가 선을 넘었다고 주장하는 아이에게 '선 안넘었어'라고 선이가 용기를 내 말하고, 지아가 아웃되자 선이와 지아는 나란히 거리를 두고 선다. 둘은 조금씩 바라본다. 카메라는 그 바라보는 장면을 보여준다.

     

    5. 글을 마치며

    글을 발행하려고 포스터 이미지를 다운로드 했다. 그리고 나서 포스터를 다시 유심히 보니까, 지아가 선이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고 있는 장면임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봉숭아 물들여주기'는 선이가 지아에게 해주던 것이다. 지아가 선이에게 해준 것이 아니다. 즉, 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 포스터를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아가 선이에게 봉숭아 물을 들여주려고 빻고 있다는 것은, 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회복 될 것을 바라는 감독 또는 연출자의 바람일 수 있겠다 싶다. 이 해석이 옳은 것인지는 확신 할 수 없지만, 분명 '봉숭아'는 둘의 관계가 가장 친밀할 때 드러난 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바람을 투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체육시간의 피구는 둘을 직접적으로 연결해주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으로만 끝을 맺는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어떠한 구체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일말의 가능성을 남긴채, 마치 관계가 다 어지러져서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순간에, 관계의 주체인 선이와 지아가 조금씩 희망을 가지고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갈등이 생기고 조금 틀어지고 어지러져도, 언젠가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앞으로도 믿고 싶다.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이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잘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이의 동생인 윤이가 자신의 친구와 놀다가 눈을 맞아 '탱탱 부은' 상태를 잡아주며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걔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걔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는 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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