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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고
    영화 2018. 5. 5. 10:53

    이번주 주말에 연휴가 끼어있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주변에서 같이 스터디하던 사람들이 여행을 간다고 했다. 여행을 간다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뭔지 모를 부러움이었다. 나는 왜 휴가 없이 주말까지 스케줄이 짜여있어서....하하 어쩌다보니 스터디가 매일 아침은 아니더라도 화수금 오전들을 차지하고, 주말 이틀은 학원에서 일을 하고. 이리저리 시간이 없는 일주일을 반복해서 보내다보니까, 요즘은 점점 나의 하루하루에 약간씩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해야 기분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영화라도 봤다.

    왜 하필 홍상수 영화인지, 홍상수 영화의 팬이냐고 물을 수 있는데, 나는 홍상수 영화의 '팬'은 아니지만 관심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영화관을 점령하고 있는 '어벤져스'와 같은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마블의 세계관에 관심이 없으며,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고민을 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과거 내가 좋아했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인데, 이 때의 영화들만 해도 영웅이란 어떻게 탄생되고 악인들이 어떻게 탄생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벤져스는 이미 영웅과 악당이 설정되어 있어 고민이 나타나지 않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고, 지금처럼 아예 '대중영화'의 위치에 자리해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없다.

    홍상수의 영화는 즉흥적인 각본 설정으로 영화를 찍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랬는지는 나도 잘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많은 부분들이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 편안함이 있었다. 적어도 홍상수 영화를 볼 때면 눈이 덜 피곤하고 귀가 덜 피곤하다. 부수지도 않고 눈이 번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안들리는 것 같은 대사들도 있으며 대체로는 편안함과 집중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영화를 보고는 한다. 약간의 호기심, 매 순간순간을 이전 장면들과 연관을 지어보거나 다음에 올 장면들에 대해서 예측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보면서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면 확실히 펜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된다. 오늘도 이전과 비슷하게 노트에 필기하면서 영화를 봤다. 수첩말고 내 갤럭시 노트 FE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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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줄거리 : 이 영화는 줄거리가 간단하다. 만희(김민희)의 회사 상사가 칸 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팔러 같이 온 소완수 영화감독(정진영)는 애인사이였는데, 만희가 소완수와 술자리 이후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만희를 짤라버린다. 그리고 만희는 싼 비행기표 때문에 남은 시간들을 칸의 해변가와 도심에서 보내며 클레어를 만나 클레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1) 홍상수 영화의 전형성 : 홍상수 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언급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많은 홍상수 영화에서 등장하는 '속내 토로'에는는 항상 술이 있다. 이 술이 도대체 왜 등장하는 건지 도통 홍상수가 말했던 이유나 서사적인 기법과 같은 내용의 인터뷰를 본적도 찾아본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제까지 내가 본 영화들(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클레어의 카메라)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려보자면, 결국 마음 속에 있던 말을 꺼내는 장치로 볼 수 있었다. 마음 속에 있던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기 전까지 인물들이 '그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동시에 인물들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것도 뭔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군가와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에서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단 하나 밖에 없었다. 회사 대표와 소감독 간의 술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소감독은 대표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소감독은 자신의 판단을 믿어달라며, 이렇게 '정리'하고 비즈니스로만 만나야 관계가 오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에서 만희와 대표간의 대화 회상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데, 회사 대표는 만희에게 자신의 판단을 믿어달라고 하며 만희의 순수함이 정직함까지 담보하지 않고 그로인해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장면을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대표와 만희와의 대화는 술자리가 아닌 커피를 통한 대화자리에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서, 나는 홍상수 영화의 술자리나 카페 혹은 음식점에서 혹은 거리에서 대화하는 모든 것들이 영화의 서사성에 많은 부분들을 차지한다는 점들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거의 전부였던 비포선라이즈나 비포선셋, 미드나잇과 다르게, 홍상수 영화에서의 '대화'는 뒤에 올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앞에서 제시된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덧붙여주는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카페에서의 대화, 중국 음식점 술자리에서의 대화, 클레어와 만희의 해변가에서의 대화, 만희가 머무는 숙소에서의 대화 등 많은 것들이 영화의 내용들을 이루는 걸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기분이 든다. 이 영화도 그렇고, 이전의 그의 영화들도 그렇고.

    2)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의 의미 : 프랑스에서 교사를 하다가 칸 영화제에 친구를 따라온 '클레어'는 사진 찍기를 통해서 대상의 변화를 관찰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찰들에 어떤 의미를 두는 지는 알 수 없다. 클레어가 언급했던 유일한 '이유'는 사진 찍기를 통해서 대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클어는 소중함을 느끼고 높은 가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클레어의 '사진 찍는 행위'가 묘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소완수나 회사 대표처럼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이해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의 변화가능성을 믿는 쪽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들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클레어는 이러한 믿음을 '오랫동안 상대방을 관찰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고, 나는 다양한 반응들(피드백)을 보이는 걸로 행하고 있을 뿐이다.

    클레어가 스스로 'sensitive'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분명 한국 같았으면 이상하다고 느낄 법한 장면이다. 사실 누가 나는 '예민하다'라고 말하는 경우, 대개는 그 사람들이 '예술가'가 아닌 이상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관습이 한국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artist'로 영화속에서 서로를 규정한다. 클레어와 만희가 해변가에서 대화를 나누며 'artist'다, 'artist'가 되고 싶다, 당신은 'artist'다 등등의 발언들을 하는 맥락은 그녀와 만희, 그리고 크게는 모든 사람들이 삶의 작은 부분들에서 'artist'임을 알려준다. 자기만의 노래, 자기만의 시, 자기만의 사진 등, 다양한 부분들을 우리는 'artist'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들을 남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인정정을 받으면 대중예술가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대중 예술이 아닌 '개인의 예술'로서 존재하는 것일 뿐.

    사람들마다 클레어가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진을 찍는다고 사람이 바뀌냐, 이상하다고 반응을 보이는 회사 대표와 소감독의 반응이 나는 지극히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반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진을 찍어서 바뀐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쪽이다. 아마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난 뒤의 '나'는 더 이상 사진을 찍던 당시의 나와는 다르다. 엄밀하게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서 본질적으로 '나'라는 물질이든, 정신이든 조금은, 아주 조금은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보편적인 생각인지는 좀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

    3) 홍상수 영화가 보여주는 실험 : 최근에 내가 보았던 일련의 홍상수 영화들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 - 중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어느정도씩 실험성이 보여지는 영화들이었다.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홍상수 영화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구성'을 전환 시키는 것인데, 늘 서사 전개를 평범하게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정도의 변형을 꼭 보여준다. 이 전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언급하기엔 너무 길어서, 이 영화만 짧게 언급해야겠다.

    이 영화에서는 처음에 회사에서 '짤려'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짤렸는 지 회상을 보여준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 회상을 하게 되는 것 보다는, 만희가 칸을 돌아다니던 중에 만난 전 회사의 직원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만희가 왜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지를 후배 직원에게 설명하게 되면서, 장면은 그 날의 '카페 담소'로 이어진다. 회사 대표는 만희에게 그만둘 것을 이야기 하고, 만희는 이제까지 같이 일한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남긴다. 이후 회상장면이 끝나고 회사 대표와 소 감독이 바다에서 이야기하는 장면, 만희가 바다를 혼자 걷다가 소감독의 제자를 만난다. 소감독의 제자 역시 '정직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솔직해야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성숙해야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러는 한 편 소감독과 클레어는 카페에서 처음 만나고 클레어가 소감독의 사진을 찍으면서 둘이 이어진다. 이후에 도서관을 들려 프랑스어로 된 시를 같이 읽고 클레어와 회사대표, 소감독이 술자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클레어가 떠난 뒤 남녀로서의 관계를 정리하자는 소감독의 발언, 그리고 혼자다니는 만희를 클레어가 사진으로 찍고 서로 가까워지는 장면, 소완수와 회사 대표간의 술자리를 통해서 둘의 연인관계가 끝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가 시작되고 나면 어느 순간 부터는 이게 '회상'인지 처음 시작했던 이야기에 연결된 시점의 계속된 부분인 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러한 판단이나 구분이 필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다보면서 느낀 건데, 특정 장면의 시점이 과거이든 현재이든 그게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어서, 판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판단하지 않아도 서사가 전개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이러한 영화적 특징은 홍상수 영화에서 보여주는 실험이면서 동시에 최근 5편에서 보이는 특징이기도 했다.

    4) 클레어 : 처음에는 클레어가 어떤 인물일 까 했는데, 내 생각에 클레어는 이 영화에서 서술자 아닌 서술자 역할을 한다. 소감독이 만희가 짧은 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예쁜 그대로 살지 않고 이렇게 노출을 하고 싶냐고 뭐라고 하는 부분들 이후에 만희는 울게 되는 데, 그 장면까지도 클레어는 찍는다. 이것 역시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물론 그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를 노출하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있다. 만희 역시 자신의 우는 모습을 찍고가는 클레어에게 'Don't take photo'라고 말한다. 내 생각이지만, 만희는 자신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짐으로 인해서 스스로를 순간 '객관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본다. 

    나의 삶은 클레어의 삶 같지는 않지만 클레어처럼 변화를 추구하고 싶다. 그리고 클레어가 입은 노란색 트렌치코트도 너무 예뻤달 까. 결코 그 트렌치코트가 부러워서가 아니다. 그냥 클레어의 패션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했던 것 같다. 만희는 수수한 아름다움이었다면.

    5) 글을 마치며 : 사랑도 영원하지 않고 사람의 '정직'한 면도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사진을 찍힌 후의 '나'는 사진을 찍기 전의 '나'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아보는 건 '나' 스스로와, 굳이 있다면 나를 sensitive하게 보아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판단을 믿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새삼 다음 영화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궁금하다. 나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도 들고 클레어처럼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겠지, 나는 세상에 그다지 관심을 많이 갖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게도 비교적 무심한 편이어서 더더욱더.

    정직하기 어려운 시대에 변화하기는 어디 쉬울까 싶긴 하지만. 변화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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