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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장 지글러
    책/ETC 2017. 2. 20. 14:17


    0.

    겨울방학 교양 쌓기 두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사회 문제 중 난민 문제와 식량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게 되었다. 다른 큰 꿈이 있어서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의 추천도서 중 하나로 책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유니세프에서 주관하는 모금 관련 켐페인 현장에 갔을 때 보았던 구호 식량들이 기억에 남아있던 것도 한 몫 했다.

    내 나이 또래와 부모님 나이 또래를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먹을 것'에 대한 차이다. 부모님 세대는 베이비 붐 세대였다. 그리고 그때 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지금처럼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덜할 수 있는 환경에 살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확실히 60/70년대 보다는 전체적으로 괜찮아졌다. 그럼에도 한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아직도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굶주림'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원인은 어떤 원인들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개선을 했었는지, 어떠한 실패 사례가 있는지, 어떤 점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인지들을 말이다. 속된 말로 얼마나 '노답'인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난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들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그 원인들이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하지만,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가지로 추렸고, 거기에 내 생각과 지식들을 조금 더해 글을 완성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조금은 난민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들을 성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1. 신자유주의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비판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대충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전에 핀란드 교육에 관한 글(링크 참고 - http://milkrevenant.tistory.com/356)을 쓰면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간단하게 다시 언급하면 이렇다. 신자유주의는 복지와 제도적 장치에 의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서 태어난 하나의 흐름이다. 또한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수 많은 부분들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손'이 바탕이 된 구조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장 자유주의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빠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과연 정말로 개혁을 성공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일단 교육에서 만큼은 실패했다. 투입해야하는 비용을 줄이고 최대의 효과를 보겠다는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학력 감소와 격차 증대로 나타났음을 많은 통계자료들이 보여주었다. 경제 부분의 측면에서도 신 자유주의의 목적이 금융 자본들의 거대화에 있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빈부 격차를 줄이거나 사회 불안정 요소들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의 예를 인용하면 이렇다. 신자유주의가 빈곤 국가들의 굶주림에 영향력을 끼치는 형태는 이상적인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자본에게서 볼 수 있는데, 한때 한 나라의 분유 산업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던 '네슬레(Nestlé)'의 예를 들었다. 분유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네슬레의 비협조로 그 공약 실현이 무산된 대통령의 이야기를 실었다. 

    또한 아프리카에 있는 수많은 국가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뼈빠지게 농사를 해서 농산물을 팔려고 해도,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잉여 생산품들을 헐값에 빈곤국가들에 팔아 넘김으로 인해서 빈곤국가들의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언급했다. 이는 안타깝게도, 그냥 생각만 하더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영농의 규모가 대규모 기업농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는데다가, 상당수의 토지들 마저도 기업에 넘어가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일정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영농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실정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는 어찌되었든 시장 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금융 자본을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원리의 최대 이상은 독과점이 일어나지 않은 무한 경쟁 시장이고, 규제 철폐를 말하는 쪽은 대부분 독과점이 일어나 있는 시장의 공급 주체들이다. 무한 경쟁 시장은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가격이 결정되는 그런 시장이지만, 독과점 시장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오늘날의 시장경제에서 이상적인 무한경쟁 시장은 없다. 특히 '식량'은 누구나 비슷한 양을 생산할 수 있지도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일정하지 않고 대량 공급을 할 수 있는 다국적기업들만 살아남는다. 게다가 수 많은 경제 대국들의 유제품 및 육류 소비를 위한 사료용 곡물도 여기에 한 몫 한다. 소가 1년 동안 먹을 곡류는 1년동안 아이 1명이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에 해당한다는 저자의 말은 가슴아픈 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서 언급한 워싱턴 합의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들었다. 이 워싱턴 합의는 크게 4가지를 지향한다고 한다. 민영화, 규제 철폐, 거시 경제 안정, 예산 감축. 이 4가지는 경쟁을 가속화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즉 그러다보면, 기존 시장에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진다. 기술 격차 / 임금 격차 / 자본 격차가 너무나 큰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금융자본들과 거대 독과점 기업들을 위한 것이지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합의가 아니다. 세계화라는 말이 워낙 '좋게 들리는 어감'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이 세계화란 빈곤 국가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경쟁 무대가 과거에는 한 부족 내, 도시 내, 국가 내로 한정되었는데 이제는 경쟁 무대가 세계로 커져버린 게 바로 세계화다. 이 세계화는 임금 격차 확대, 경쟁력 부족 기업들의 도태 확대 등을 야기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르면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은 사라지는 게 맞는데, 그게 과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인지는 의문이 든다. 나는 공존을 원하는 사람이다. 조금 다르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잘 못 살아야만 하는 사회는 같이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버린 사회다. 소수가 잘 사는 세상보다는 다수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발전하는 사회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2. 맬서스의 이론

    경제이론가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맬서스'라는 사람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쓴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식량은 부족해진다.'는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은 빗나갔다. 식량의 생산 증가량이 바닥을 밑돌지도 않았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도 않았다. 이런 이론을 책에서 언급하는 부분은 바로 '자연 도태'를 합리화하는 사람들 때문에 있었다. 저자는,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인구억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사람들 중 '빈곤국가들의 인구가 줄어들지 않으면 식량은 부족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밑바탕에 맬서스의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맬서스는 자연 도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는 단지 현상을 분석했을 뿐이다. 인구 증가에 비해서 식량 생산량 증가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한 경제학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자연 도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로는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맬서스의 이론이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이야기했던 식량 생산 증가량의 부족과 인구 증가량의 급상승은 그의 예상에 빗나갔었다. 식량은 그의 생각보다 더 증가했고, 인구는 그의 생각보다 덜 증가했다. 나는 이 근거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맬서스는 인구 감소가 필요하다고 했던 경제학자가 아니다. 맬서스의 의도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 있었다. 차라리 다윈의 진화론을 언급하면서 적자생존의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다. 하지만 결국 그 '적자생존'의 문제마저도,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날 국가, 장소, 성별 등을 선택하지 못하고 태어난다. 그냥 태어날 뿐이다. 그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바뀐다. 이것조차 적자 생존으로 부를 수 있는걸까? 경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시작점이 다르다고들 하지 않은가. 난민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다. 시작점이 다른 문제. 전혀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 태어나는 문제 말이다. 


    3. 사회 불안정

    1) 세력 다툼

    사회 불안정의 원인은 다양하다. 어느 나라든지 조금씩은 사회 불안정이 존재한다. 책에서 언급했던 가장 많은 사회 불안정은 바로 '군벌'들의 도덕적 부패로 생겨나는 불안정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국가는 소말리아였다. 나는 소말리아의 군벌들의 구체적인 성향, 움직임, 사건 사례 등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들었던 적이 있다. 예를 들면 해적에 관한 것으로 소말리아 해적이 아덴만을 지나다니는 상선들을 납치해 인질들의 국가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에서는 이 소말리아 내전의 이유 중 하나로 거대 군벌들의 세력다툼을 이야기한다. 군벌들의 세력다툼 때문에 소말리아 안에 있던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유엔에서 평화유지군을 두 차례 보냈지만 평화유지군들이 죽거나 다치면서 유엔이 평화유지군들을 더 이상 소말리아에 배치하지 않기로 한 사건, 식량을 전달하고 싶어도 식량을 전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시설이 갖추어진 항구가 없어 식량을 안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었다.

    다른 세력 다툼에는 부족간 다툼이 있다. 사실 소말리아의 경우도 군벌들의 세력다툼이 부족간의 세력 다툼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언급하려고 하는 건 소말리아에만 국한된 부족 다툼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부족 간 다툼이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지리 과목을 배우면서 보았던 숱한 아프리카 주제도 중 하나는 바로 이 아래에 있는 머독이 만든 인종 지도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부족 간 갈등이 많은 지 이해하고 싶다면 이 지도 한 장으로 충분하다.

    Africa : Its peoples and their culture history, George Murdock, 1959, https://peterslarson.com/2011/01/19/african-conflict-and-ethnic-distribution/

    이 지도에서 '검정색'으로 뒨 굵은 선은 현재 국가들의 영토 경계를 나타내고, 주황색을 바탕으로 한 음영의 차이는 부족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방금 언급한 소말리아의 경우 약 5개 부족이 영토 안에 포함 되어 있다.(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튀어나온 반도 국가) 건조 기후 대는 그나마 국가 당 부족 밀집도가 적은 편이나, 열대 우림 / 사바나 지역으로 갈 수록 그 갈등의 골이 매우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수단의 경우 '남수단'이 따로 독립을 한 상황이다. 독립 이후에 남수단 내, 수단 과의 분쟁이 끊이질 않아서 문제인 지역이다. 우간다 지역 내 내전이나, 르완다 지역 내 내전은 몇 차례 들은 적이 있고, 그외에 콩고 지역에서의 분쟁이 생각난다. 이 분쟁의 원인은 이렇듯 부족이기도 하나, 종교도 한 몫 한다. 부족이 곧 언어의 차이를 가져오므로 한 나라의 공용어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에 관한 분쟁이 연관되어 있다면, 종교는 생활 양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결혼제도의 차이,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이, 경제 활동에 대한 차이 등을 불러일으킨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한 때 식민지배를 했던 곳이기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토착 종교들이 혼재하고 있는 지역들이 매우 많다. 그래서 세력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또한 소말리아의 경우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구호 식량을 그나마 있는 과도 정부쪽으로 보내면, 그것들이 굶주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정부 관료들이 헤쳐먹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정부 기관 내 부패 세력들이 만연한 경우이다. 정부 조직이 비대하게 커지면서 이를 더 통제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 경우도 있는 사례를 보면, 이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 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4. 원조 기구들의 기금 부족

    빈곤 국가들의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구들은 여러 기구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기구들은 기금이 부족하다. 그 기금이 부족하면, 지원 지역을 축소하는 형태로 결과가 나타난다. 지원 지역을 축소하면 결국에는 난민들이 줄지 않는다. 또한 기구들이 돈이 있더라도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곡물을 살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WEP(World Food Programme)는 유엔에서 운영하는 기구인데 이 기구가 자금이 부족해서 식량 지원을 줄이고 있다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하다. 전세계에서 하루에 1$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자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활동 형태

    '난민 원조'를 생각할 때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식량을 공중에서 그냥 낙하라도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기아들은 식량을 받아도 그 식량을 섭취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으며, 특히 분쟁지역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이유로 식량을 낙하하는 것은 거의 최후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실제로는 일단 소화기관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주사를 활용해서 영양분을 공급 한 뒤, 장기들을 다시 활동상태로 만드는 게 첫 번째다. 이후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팩에 담겨 있는 음식들을 섭취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량원조는 가장 우리가 잘 아는 경우이고, 다른 원조의 형태는 학교 시설 건립, 질병 퇴치,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를 위한 시민 교육 및 마을 자치 기구 설립을 위한 도움도 있다. 난민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 마다 보았던 것들이라서 그런지 새롭지만은 않았지만, 자금이 부족하고 여전히 위험을 안고 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소말리아의 경우도 두 차례나 유엔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었다가 실패한 지역이니 말이다. 식량 원조 기구들은 여러 지역에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부족한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금이 줄어들면서 두 국가에 대한 지원사업이 끊길 정도면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지원 없이는 어떠한 회생책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인데, 그들은 단지 그 국가에 태어난 이유만으로 그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5. 끝을 맺으며

    이 책은 난민 문제에 대한 실태를 서술한 책이다. 어떠한 원인들이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성공 사례와 어떠한 실패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한 글이다. 나라에서 쿠데타를 했던 군인들 중에서도 부류가 갈린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개선될 수 있는지 고민했던 군인들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만 하던 군인들이 있다. 한 편 어떠한 방식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횡포를 부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어떠한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난민문제에서도 드러나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신자유주의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신자유주의가 '공존'의 방식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타인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내게 '공존'이 '경쟁'보다 더 나은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 결론을 답하기 힘들다. 나는 단지 공존이 좀 더 나은 방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니까. 사람의 선한 마음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게 가장 클 것이다. 누군가는 돈에 대한 걱정이 없이 사는데, 누군가는 돈 걱정만 하고 산다면, 이건 불공평한 사회다. 그리고 돈걱정을 하는 이에게는 불행한 사회다. 사람이 일반적인 동물과 다른 건 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나는 그 이성을 환경이 열약한 사람들을 돕는데에 쓰고 싶다.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 말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당장 최근에 나온 난민 예측 지표는 예측 년도가 되었을 때 아마 달성 실패를 할 확률이 높다. 30년까지 난민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다고 한들, 그건 쉽게 줄지 않을 것이다. 생각지 못한 분쟁이 늘어나기도 하고, 하루 아침에 평화적이고 세력을 통합할 만한 인물들이 나타나 분쟁국가들을 안정화 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찾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작이 후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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