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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을 읽고.책/교육 2016. 3. 3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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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인강을 듣다가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책을 좀 읽었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열풍은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얼마간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었던가..찾아보니 이 책이 맞네, 이 책이 한 때 순위권에 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미움'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은 단어가 아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뜻했다. 어찌되었든, 잠시 이 책에서 나왔던 문구를 바탕으로 생각을 좀 정리해볼까 한다.
1. 정상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건강이란 무엇인가.
'정상'은 무엇인지 한참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정상적인 삶'이란 무엇인건지 말이다. 물론 '내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를 고민할 때도 이 '정상'이라는 단어는 참 어려운 단어로 다가왔다. 남들과 비슷해야 정상인건지,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인 것인지, 지금 내가 얻어낸 결론은 '내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정상'인 것 같다. 물론 사회는 점점 그것을 어렵게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행복',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은 최소한 이기주의적 행복은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얻어내는 '내 행복'은 의미가 없다. 그건 행복도 아니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얻어낸 좋지 않은 무엇인가일 뿐이다.
'건강'은, 괜히 '몸의 건강', '마음의 건강'하는 게 아니다. 둘 다 건강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둘 다 건강해야 한다. 이건 마치 '학습의 과정'과도 같은데 동기가 높아서 흥미를 가지게 되고 성공을 하고 나면 다시 그 성공 경험으로 인해서 동기가 올라가는 '선순환'처럼, 마음이 건강하면 다시 그것으로 인해 긍정적인 행동을 통해서 '몸'도 건강해진다. '몸'이 건강하니 마음이 아프더라도 금방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둘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2. 삶의 의미는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참으로 와닿는 말이다. 누군가가 부여해주는 '삶의 의미'는 금방 사라지기 마련이다. 마치 갓 만들어낸 거품처럼 말이다. 비누방울을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만들어낸 것들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모래성을 '모래성'으로 두지 않고 굳혀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이다. 그것도 '내 의지'로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타인의 도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아닌,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내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준다고 해서 그게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3. 인생의 과제에서는 도망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같이 가야 한다.
누군가가 써놓은 글을 보니까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고 정의해놓았던데, 그 말이 이 말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란 무엇인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 인생 과제는 당장 '시험'일 것이다. 시험 때문에 일찍 돌아왔고, 시험을 위해서 요즘 살아간다. 기타 시간을 조금 더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점심시간 이후에는 가지 않지만, 저녁에 끝나고서는 잠시만이라도 들리고 싶어서 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과연 내가 '시험'에 대해서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약간 의문이 든다. 불확실함이 솔직히 더 많다. 그렇지만 이 문장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가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니까 내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랬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4. 타인은 내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분명 나도 이 생각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었다. 타인은 내 기대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모든 인간 관계에서 적용된다. 자식 간의 관계, 연인 간의 관계, 친구 간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 모두 말이다. 이전에 썼었던 '첫 인상'에 관한 내용과 상통한다. 누군가를 바라봄에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첫 인상'을 만든 순간부터 그 사람을 자신의 시각에서만 보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타인은 '타인의 목표'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내 바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아님을 명심하자.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자신의 기대를 채우는 대상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이건 자각하기 전까지는 알기가 쉽지가 않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만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25년 동안 나는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급격히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5. 원래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 책에서도 화성과 금성의 이야기를 들어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상대'를 분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바라보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여기에서 말하는 '이해', 그러니까 완벽한 이해는 힘들다. 하지만 완벽한 이해 말고, 상대방을 바라봐줄줄 알고 받아들이는 방법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긍정적인가, 뭐 어때,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단지 시간을 두고 상대방을 천천히 살펴보다 보면 어느샌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방들이 과연 이것을 용납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들도 나처럼 참을성과 인내를 가지고 있으면 좋을텐데, 내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으면 한다.
6. '내가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내 자신이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건 책에 나온 어떤 음악가가 한 말이다. 요즘 사실 좀 애매했다. 4학년이고, 마지막 학기이고, 뭔가 '잘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고 싶었는데, 그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기분이라서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이 말은 내게 필요한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내 스스로 보기 위해서 하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다.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도.
7. 자신에 대한 시점을 바꾸자.
나에 대한 시점..그렇지, 그 동안의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시점이 좀 잘못되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의 문제다. 남들의 시선만 생각하는 '나'로 바라볼 것인지, 스스로가 하고 싶어하고,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서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가꿀 것인지.
8. '내가 정한다'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인 '결정론'에 반대하는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들러가 프로이트와 같은 길을 걷다가, 나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의식'에서 찾았다. 이렇게 결정된 것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들도 결국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은 프로이트의 심리성적결정이론과는 다른 이론이다. 마치 에릭슨처럼, 인간에게는, 내게는 변화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9. 어떤 행위를 선택하는 시점에서 그 선택의 책임은 선택한 그 사람에게 있다.
이 문장 읽고 소름돋았다. 하하, 내가 선택한 일들이 참 많아서, 이 말은 풀어쓰고 싶지 않다. 그냥 머릿속에 흐르는 것들 만이어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10.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자기 수용 : 나를 받아들일 것
타자 신뢰 : 다른 사람을 믿을 것
타자 공헌 : 다른 사람에게 공헌 할 것
자기 수용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고, 타자 공헌도 요즘 들어서 최대한 노력중인데, 이 '타자 신뢰'는 아직 개념이 잘 안잡힌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고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이 안잡힌다. 다른 사람을 믿는다라, 예를 들면 이런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우혁이나 나영이, 준혁이를 보면서 얘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을 두고서 '타자 신뢰'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해볼 수 있을 듯 싶다. 다른 사람들 믿어주는 건 전문이다. 약간 걱정이 많아서 그렇지만, 점차 그 걱정도 없어지는 것 같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능력'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잘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내가 더 주어야 할 듯 싶다. 타자 신뢰는 내가 생각하는 이게 맞으면 좋겠다.
11.
칭찬믿음'칭찬'은 위에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아 뭔가 요즘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답을 주고 있다. '칭찬'을 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당신들도 참 괜찮은, 좋은 사람이라는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주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건 믿음,
내가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