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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진 대표중단편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외 12편,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책/한국문학 2016. 6. 5. 14:43

    1.

     김소진의 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자전거 도둑'이다. 자전거 도둑, 어째 이 소설도 읽었던 기억은 중학교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이 때 자전거 도둑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중학교 때 읽었던 청소년 소설 정도로 밖에는 기억이 안난다. 소설 내용이 실제로 '자전거 도둑'이 있었다는 것과 다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가 않으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게다가 이 책을 살 당시에는 이 작가가 '자전거 도둑'의 김소진 작가와 동일한 사람인지 조차 검색해보고 "아 맞구나"하면서 샀으니까 내 부끄러움에 대한 기록은 여기에서 마치고, 간단하게 김소진의 작품을 정의내리자고 한다면 음울한 색채 속에 담겨있는 사회 현실과 아버지, 그리고 뭔지 모르는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독 김소진의 작품에는 '아버지'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아버지를 자주 등장시키는 작가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어떤 갈등이 있었거나, 상처가 있었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등의 '사연'이 있는데 김소진 작가 역시 그런 사연이 있었고 그게 작품으로 표면화되어 나타난 경우였다. 두 번째인 '음울한 색채'는 김승옥의 음울한 색채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음울함이다. 김승옥 작가의 음울함은 묘하게 '환상성'과 같이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음울함의 종류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작가도 이 작가만의 색채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단편 소개를 간단히 하려고 한다.

     

    2.

     작품 수가 조금 많은 편이긴 한데 그 중에서 특별하게 긴 작품은 없었다. 다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래에서 이야기 할 '경복여관에서 꿈꾸기'와 '신풍근배커리 略史(약사')가 가장 좋았다. 물론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랑 '원색생물학습도감'이랑 '자전거 도둑'도 그렇고, 사실 어찌보면 하나하나 김소진 작가의 색채는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몰입해서 보았다. 물론 하루에 다 내리 읽은 건 아니고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한 4일 정도 걸린 것 같다.

     

    1) 쥐잡기 : 데뷔작, '쥐잡기'는 행위이지만 쥐잡기를 하는 상황에 얽힌 이야기들이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 까 싶다. 여기에도 역시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사회 현실과 가난함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게다가 이 '쥐'는 아버지의 한국 전쟁 당시의 과거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쥐잡기'라는 행위 하나로 상당히 굵직한 주제들이 튀어나온다.

    2)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이 책의 대표 작품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인데 이 작품이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상징이 정말 많이 들어있다. '열린 사회'는 단순히 열린 사회가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사회'로서 그려지고 있고, 밥풀떄기로 대표되는 최하층과 당시 사회에서의 지식인에 속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병원이라는 시위 공간과 경찰이라는 대립 세력은 시대의 갈등, 추구해야 하는 해결 방식,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상 등을 묘하게 그려낸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밥풀때기'라는 표현이다. 정말 '밥풀'이라는 단어는 정말 소박한 단어인데, 이 단어를 최하층노동자들을 비유하는 말로 가져왔다는 게 대단하다고밖에 말 못하겠다. 이런게 문학적 표현이 아닐 까 싶다.

    3) 춘하 돌아오다 : 약간 엉뚱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미 여기에 나온 나이가 든 신혼부부의 결혼식을 두고서 '작은 결혼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탄과, '춘하'와 '상호', '병문'이 사는 동네를 그려냈다. 이 동네를 그려내는 필력(묘사력)이 대단할 뿐이다. 돌아온 것의 의미에 대해서 쓰기 시작하면 소설 전체에 대한 서술이 될 것 같아서 그냥 엉뚱한 이야기만 적어놓는다.

    4) 그리운 동방 : 간단하게 '동방'에서 생각하던 사회에 대한 변혁을 생각하는 작품, 이미 사회의 일원이 되어버려서 '동방'에서 생각했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의 모습을 그려낸다.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인상깊다.

    5) 용두각을 찾아서 : 이 역시 '용두각'과 서술자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회상 내용'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생각해보면 '회상'이라는 방법을 정말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마치 하나의 습관처럼 말이다.

    6) 처용단장 : 처용가의 현대적인 변용, 향가도 직접 창작해서 나오는, 물론 서술자인 '나'와 '블렌딩'을 하러가는 '아내'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처용가'는 불륜이지만 불륜이 아니다. 결국 서술자는 '자신이 처용'임을 고뇌하며 집에 들어가면서 소설은 마쳐진다. 이 소설에는 아내와의 성관계에 대한 고민, 한 때 학생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를 살기 바쁜 '희조'라는 친구의 모습으로 사회가 나타난다. 여전히 '열린 사회'는 열린 사회가 아닌 모습 뿐이다.

    7) 게흘레꾼 : 이 역시 회상이 있다. 대학서클 동기로 부터 연락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자취방이 떠오르고 아버지에 대한 꿈이 떠오르면서 게흘레꾼을 자원봉사로 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회상의 대상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안티 태제'가 아니라 개흘레꾼에 불과함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서술자의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는 데 아버지가 매우 '큰 존재'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안타깝지만 작은 존재이셨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8) 늪이 있는 마을 : '늪'은 음울함의 이미지 그 자체다. 처음에는 단순한 죽음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행위 예술'의 대상까지 되는 늪. '늪'을 통해서 정말정말 다양한 사회의 단면이 나타난다.

    9) 자전거 도둑 : 우연하게 자전거 도둑을 발견하고 그 '자전거 도둑'과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현재 행동이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해서 털어놓는 작품, 사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방식은 다 다르다. 여기에는 정답도 없고 공통점도 찾기가 힘들다. 아버지와 혹부리영감에 대한 일들이 역시 회상의 대상이고, '자전거 도둑'인 '서미혜'의 오빠 이야기가 또 다른 회상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서로가 서로의 사연을 털어놓았지만 서로가 치유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털어놓는 것에서 끝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나타내는 듯 싶다. 현대인의 인간관계가 이런 것인가..

    10) 원색생물학습도감 : 아버지와 연관되어 있는 원색생물학습도감, 자신의 어머니가 과거에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곯아버려서 병원에 왔는 데 이를 통해서 과거 '아버지'의 곤충 식사에 대한 회상과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나', 그리고 아버지의 불륜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 처럼 느껴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가 곤충식사를 하게 된 원인에는 형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

    11) 경복여관에서 꿈꾸기 : '경복여관'은 결국 서술자가 울음으로서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키고 털어놓는 공간이다. 내게는 마치 이 공간이 '여관'이 아닌 '성당'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누구나도 생각할 만한 '경복여관'을 나이가 더 들어버린 서술자가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그려낸다.

    12) 신풍근배커리 略史 : 신풍근빵집의 간략한 역사라는 뜻의 제목, 현경은 그냥 나오는 취재 기자 역할을 하는 조금 더 멍청한 여자 대학생 친구일 뿐이고 사실 주 내용은 재덕과 신풍근 할아머지에 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작은 아버지와 이어지는 '데모'의 이야기, 아주 오랜 과거로 올라가서 동학 농민운동 시절 증조부의 봉기 이야기 등, 여전히 사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일어서는'시대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정말 '따뜻한 마음'이 마음 속에 가득참을 느꼈었다. 이 작품의 결말은 다른 작품들의 결말과 조금은 달랐다. 마지막에 할아버지의 빵집을 좀 더 봐두기 위해서 고개를 좀 더 내미는 장면은 정말 인상깊다.

    13)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 서술자인 '나'가 재개발 되려고 하는 지역, 그러니까 자신이 어렸을 때 살 던 지역에 다시 오게 되면서 이야기하는 서술자의 과거 이야기가 나타난다. 마을이 재개발되어버리면 자신의 과거 '기억'또한 사라져가버릴 것임을 안타까워하는 서술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3.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경복여관과 신풍근배커리 였고, 마지막 작품인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도 나름 괜찮았다. 뭐 이런 개인적 감상을 떠나서 작가의 주된 기법이 '회상'이라는 점이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는 점은 이 '회상'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회상의 대상은 늘 '과거'가 아닌가, 그렇다면 과거를 통해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거'에 나타나있는 주제들은 다 작지만 큰 주제들이다. 어떤 작품이던지 그렇겠지만 '개인의 서사'가 좀 더 초점이 되어있는 김승옥의 소설과는 다르게 김소진의 소설에서는 학생 운동, 한국 전쟁과 같은 '거시적 주제'와 함께 '아버지와의 관계'라는 미시적 주제가 드러난다는 점을 특징으로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사회학 책도 있는 데 이 책 예전에 읽고 싶었던 책 중 하나인데 결국 미완의 책으로 남아있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찌되었든 김소진이라는 작가는 서술자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술자와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문제점,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등을 나타내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대부분은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건 이 작가가 지닌 특유의 음울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11, 12는 전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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