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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인간 관계/보통사람 이야기 2018. 4. 29. 11:56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신피질이 있는 사람들은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끊어서 살아가며, 오늘과 같이 일요일에는 '한 주가 끝났다'는 생각을 종종하고는 한다. 하지만 난 최근에 주말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말'이라는 감각이 특별히 살아있지는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주말에 쉬기 때문에 주말이라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내 경우 주말에 쉬지 않고 일을 하다보니 '주말'이라는 휴식의 시간은 더 이상 휴식의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수업 준비를 조금 할 겸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걸어왔다. 이런 평범하고 사람 적고 한적한 동네의 도보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일이 생길 일도 없고,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 일도 없다. 도로에 있는 승용차가 갑자기 인도로 뛰어들 지 않는 이상은 난 이 길에서 매우 안전한 삶을 산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위험한 일'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국을 다녀온 뒤로 특별하게 보이는 어떤 일이 있었다.
두 분의 여성이 걷고 있었다. 한 분은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옆을 지나칠 때 보니까, 선글라스를 낀 그 분은 바로 앞에 걸어가시는 분의 옷을 잡고 걸어가고 계셨다. 아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시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까지만 들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꼭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도대체 왜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어디를 걸어가야 하는 데 앞에 걸어가는 그 분이 필요했던 걸까. 시각 장애인 안내견 이런 건 없었나. 아니면 국가의 복지서비스의 일부로는 이러한 사람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일까. 제도적인 미비가 있나. 나는 안타까웠다. 현실이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볻보던 '시각 장애인 안내견'은 영화뿐이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이 동네의 길에는 시각 장애인 안내 표시가 되어 있는 도로가 없다. 그 '노란색 전용 특수 타일' 도보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안내를 할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저렇게 다른 사람이 늘 붙어다닐 수 없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 안내견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도
잠시 나는 가정을 했다. 만약 시각 장애인을 전담으로 같이 붙어다니는 직업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물론 복지 정책이니까 국가가 주도하고, 민간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하루 종일이나 매일매일 한 사람만이 일할 수는 없기에 운영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 명을 맡게 되는 일종의 '서비스'라도 있으면 어떨까 싶은 그런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복지의 사각지대 수준이 아닌 '빈틈'이 대부분인 나라다. 쓸데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실현현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해보니,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수화 배우기도 있었다. 장애인 안내 서비스에 대해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장애인 복지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부분에서 정책 입안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