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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리나 part.3책/외국소설 2013. 3. 6. 20:04
3권의 큰 이야기는 안나와 브론스키 관계의 악화와, 키티와 레빈의 도시생활/시골생활의 차이, 돌리와 스티바의 대단할정도의 연결고리 능력정도 이고, 결말은 안나의 죽음과, 레빈의 깨달음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의 구성상, 키티와 레빈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레빈의 고뇌를 느끼는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레빈이 바센카를 통해서 느끼는 불쾌감, 예를 들면 바센카가 응당 '사교계'의 남자로서 여부인에게 좋은 관게를 만들기 위한 매력을 뽐내는 장면에서, 레빈은 모종의 불쾌감을 느낀다. 레빈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질투심과, 레빈의 가치관에서는 바센카의 행동이 매우 무례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화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바센카를 집에서 내쫒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소심한 행동인지를 깨닫고, 그로인해 키티에게도 자신에게도 정신적인 피해가 갔다는걸 느끼면서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레빈의 행동에서, 그는 이성적인 가치관으로 행동하고 싶지만 순간순간의 생각들이 그를 툭하고 건드려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로 가지 않고 '감정'에 의한 행동을 하는걸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가 그러는건 아니지만(마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행동처럼 모두가 그러는게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결과를 두고서, 약간의 감정으로 인해 '감정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는 결코 좋은거라고 할 수도 없고, 나쁜거라고 할 수도 없다. 둘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90%의 사람들은 후회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말이다. 레빈과 다르게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매우 '이성'에 의한 판단을 해낸다. 키티가 해외에 있을때 자신을 보살펴주었던 매우 매력적이고 아름담고 마음씨좋은 '바렌카'가 마침 키티의 집에서 머물고 있어서,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와 여러번 같이 다니며 그 둘이 호감이 생기고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이제것 결혼을 안했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며 끝내, 청혼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에게 있어서 죽은 부인의 추억을 순수하게 간직한다는건 매우 소중한 일임에 틀림없고(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그는 그 의무를 지키는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않고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이 어느정도 확인이 되서 서로가 결혼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남자가 청혼을 해야 했기에 바렌카가 선뜻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레빈은 이성보단 순간의 감정을 좀 더 따르는 사람이라면 세르게이는 좀더 이성에 의한 판단을 잘하고 신성한 의무를 지키는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레빈은 그의 형이 자신과 좀 다른의견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이어도 존경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안나 카레리나' 이야기를 처음 전화로 나눌때, 어머니께서는 안나 카레리나가 불쌍한 존재라고 하셨다. 결혼을 했으나, 다른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에 대해서 불쌍하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2권까지 읽은 상황으로 놓고 나를 판단하자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분명 이성적으로 판단했을때, 사회적인 '의무'를 저버린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안쓰러움'과 '연민'을 보내기에는 내 이성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그녀를 처음 만나는 남자들의 태도변화를 보면서 나는 약간의 무력감을 느꼈고, 그녀가 점점 스스로 불안해 하는 심정이 심각해지면서, 그리고 안나의 심리를 세세하게 느끼게 되면서, 어째서 어머니가 안나를 보고 불쌍하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됬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악화는 쌍방의 잘못이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 시발점은 항상 안나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2권을 읽은지 좀 오래되서, 1,2권에서 어떤식으로 안나가 반응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정확한건 안나는 항상 죄책감이 있었고, 동시에 이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항상 그녀를 맴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6부 초반의 그녀의 모습은 열정을 쏟을 무언가가 있고, 이제는 조금 안정이 되었다라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에 얶메인 그녀에게 어떤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건 그녀 스스로인데, 이건 불가능했었나보다. 내내 고통받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안쓰럽다. 물론 이기적이다. 매번 브론스키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 하고 이 심정을 호소하는게 그녀로서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차갑고 냉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어. 물론 그건 막연하고 감지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잖아. 그러니 그 시선은 많은 걸 의미해.' 그녀는 생각했다. '그 시선은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줘.'
그렇게 안나는 사랑이 식기 시작했다고 확신하면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조금도 바꿀 수 없었다. 예전과 똑같이 그녀는 오직 사랑과 매력만으로 그를 붙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이, 그녀는 그의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낮에는 일로, 밤에는 모르핀으로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가지 방법이 더 있기는 했다. 그를 붙잡는 것 - 그럴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의 사랑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 이 아니라 그와 가까이 지내며 그가 버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이란 바로 이혼과 결혼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그것을 원하게 되었고 그나 스티바가 그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면 곧바로 동의하리라 결심했다.
그런 생각 속에서 그녀는 그가 집을 비워야 했던 그 닷새를 그 없이 홀로 보냈던 것이다.
불쌍하다. 그녀가 이런 생각속에서 혼자서 닷새를 보낸다는건 매우 끔찍하다. 불륜을 저지른건 맞는데, 그녀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있다. 그녀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세료자를 포기하고, 브론스키를 택했다고 해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까지 사라진건 아니다. 러시아 사교계에서도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녀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도 정확히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브론스키를 택하고, 그의 딸인 아니를 가지고 키울때도, 그녀가 행복을 누리고 최대한 안정을 추구하기위해 꾀를 부릴때도, 스스로 항상 짐작하던 그 모종의 생각(브론스키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과, 가치관에 의한 붕괴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레빈과 안나의 만남은 이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난 사실 끝내 이 두 사람이 만나지 않을것 같았다. 왜냐하면, 키티와 레빈이 브론스키를 싫어하는 데다가, 안나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바라는 연결고리가 끝내 연결시켜서 생긴 두사람의 만남에서, 레빈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가 가졌던 가치관과는 별개로 그녀가 뛰어나고 아름답다는건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무서움이고, 이 느낌이 브론스키에게는 더욱 크게, 특별하게 느껴져서(안나가 브론스키를 보며 느꼈던것도 비슷하게) 그 둘은 부부로까지 살게 되지만, 분명 위험하고 무서운 감정임에는 틀림없을것이다. 그런 안나가 나는 굉장히 딱했다.
생명과 죽음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다. 레빈이 자신의 아기를 처음보고서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생명이 태어났음을 단순히 보는것만으로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는데에서 나온듯 싶다. 나같아도, 어떤 아이가 막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걸 보았을때 그걸 보고서 단순히 기쁘다라는 감정을 느끼는건 힘들것 같다. 하지만 키티와 아가피야가 비를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나무 밑에서 아이를 끌어앉고 있는 모습을 레빈이 보면서, 레빈도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복잡했다. 이성으로 똘똘뭉친 레빈에게 그의 아이는 분명 굉장히 복잡한 의미였을것이다. 아이가 레빈을 보고 알아본다는것, 그 말은 즉 레빈과 역사를 같이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안나의 자살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녀가 자살하려는 그 순간, 그녀가 십자가를 그으며 성호를 긋고, 기차 사이에 뛰어드려는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일순간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행복과 기쁨이 그녀를 감싸고 간다. 그녀가 죽으려던건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결코 톨스토이가 추구한 방법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죽음이 굉장히 비극적인 선택이면서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것이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사랑한건 죄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그러나, 종교가 그녀를 옥죄고, 그녀의 가치관이 그녀를 숨죽이게 하면서, 스스로 슬퍼했다.
어째서 그렇게 됬을까, 어째서 그녀는 알렉산드로비치를 버리고, 브론스키에게 갔을까. 그녀는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고 난 뒤 집에와서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녀는 분명 느꼈다. 이 감정을 멈출 수 없음을.....그녀가 원한게 아니며, 옳은게 아니라고 느꼈다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일을 진행하고 이로 인해 괴로워했다. 세로쟈와 브론스키를 놓고 갈등했고, 자신이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 구축한 것들이 파괴되는것을 보면서 불행해하고 속상해했다.
마지막으로 part.4에서는 레빈의 이성과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돌리와 스티바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한 후, 안나 카레리나 편을 마칠까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년간 읽은 책 중에서 '안나 카레리나'는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