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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틸만 람슈테트, '베이징 레터'
    책/외국소설 2011. 5. 29. 13:59
       난 고3이 되기 전까지 국어/언어영역 시험에서 90점을 넘겨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고3 10월에 처음으로 90을 넘겼던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글을 이해한다는게 어떤건지 나름대로 확신을 가졌던것 같다. 단순히 '내 사고의 틀'에 맞추는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의 틀도 받아들여야만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부터는 나 자신도 좀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소설 '베이징 레터'는 좀 달랐다. 이건 새로운 '지식의 틀'을 더 벗어나 버려서 소위 말하는 'OMG'(oh my god)이라고 해야할듯 싶다. 먼저 이 소설은 '허구'로 가득차 있다. 물론 어떤 소설이든지 현실을 바탕으로하는 허구가 주된 내용이겠지만, 여기에서는 아예 '허구'의 주인공이 허구의 이야기를 편지로 써낸다. 그것도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이야기를 말이다. 나도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여러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돈도 별로 없었고, 애초에 이렇게 여러곳을 돌아다니기 보다는 한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보려고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여행스타일을 떠나서 작가 틸만 람슈테트의 표현은 정말 섬세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보고 겪었던 것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는 매우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읽을때 작가가 굉장히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했고, 중국에 여행을 가본적이 있는 사람인줄로 생각을 했으나, 그냥 책하나 읽으면서 썼다고 하니까 더 대단할 수 밖에. 물론 '편지'라는 매체의 특성상 길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표현역시 최대한 간결하되 깔끔한것 위주로 쓰니까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표현능력은 대단했다.

       인물간의 관계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주인공 키스와 할아버지는 서로 친한사이가 아닌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키스가 어린시절에는 할아바지의 존재를 싫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존재로 생각한듯 싶다. 하지만 어느 순간 키스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만의 사고구조가 확립되어 가는 때 부터는 할아버지에게 부담감과 반감이 생기는 듯 싶다. 아마 이게 키스가 어른이 되어서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중 하나일 것 같다. 다른말로 '독립심'인데, 나도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려고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이런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리. 할아버지가 키스에게 말하는것을 보면 분명 애정을 가진건 사실인데, 이게 강요가 되고, 명령이 되다보니까 아무래도 부담을 가지고 피하고 싶었겠지.

       좀 비극적인건, 할아버지의 여자친구/애인으로 나왔던 프란치스카와 키스가 나중에는 서로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난 이 설정에 대해서 매우 세속적이고 통속적이며 흔히 볼 수 있던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관계가 '할아버지의 애인'과 손자라는 설정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여자 입장에서도 할아버지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피인 '키스'가 더 좋았을법 하다.

       또 다른 '비극'은 키스가 할아버지의 시체를 보고서도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음....이건 어떻게 보면 사회의 '인간소외'문제를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유럽은 철저히 개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일단 '성인'만 되면 자신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 그랬던것 같다. 성인이 되면 '피'로는 엮여있지만 철저히 남이라는걸. 이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깔려있으니, 키스를 비롯한 자식들이 할아버지를 그리 달갑게 보지 않는것 같다. (오래산것도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이 상을 받았다는게 난 솔직히 믿기지 않지만, 뭐 어쩌겠나, 그게 심사위원들의 의견이었고, 나는 그 사람들과 의견이 조금 다른것이었으니. 분명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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