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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중단편선, ‘운수 좋은 날’외 20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책/한국문학 2016. 7. 25. 16:27
1. 1920년대 초기의 한국문학을 정리하라면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을 언급해야 합니다. 이미 이광수의 '무정'은 언급한 적이 있고, 염상섭도 언급했으며 김동인도 언급한 상황에서 현진건을 빼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20년대 문학이 이번 2017학년도 중등 임용고시에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현진건은 한국 문학에서 '단편 소설'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룩한 작가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단편 '운수 좋은 날'은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알 수 있는 작품일 만큼 유명한 작품에 해당합니다. 하기야 한국문학에 별 관심없는 친구도 '운수 좋은 날'은 알았으니까요. 김첨지가 돈을 많이 벌지만 한 편 아내는 이미 죽어있었음을 짐작하는 내용에서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가진, 그리고 상황에서 비롯되는 '아이러니'는 간단하지만 정말 중요한 '아이러니'를 충실하게 보여주기 떄문입니다.
이번에는 현진건에 관한 연구 서적도 같이 포함해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따로 쓰기에는 작품 내용이 흩어지고 괜히 글만 두 편 쓰게 될 것 같아서, 그럴 바에는 한 편의 양질의 글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현진건 집안은 '역관 집안'이었는데, 이 '역관 집안의 특성이 구한말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러한 이유에는 당시 '역관 집안'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매우 민감했으며, 그러한 흐름을 잘 타고난 '아버지 세대'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진건의 오촌 당숙들을 포함한 '아버지 세대'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대의 흐름을 탑니다. 극일을 하며 저항하기도 하고, 친일을 하기도 하며, 외국 공사에서 일을 하기도 하는 등 '일으켜져 가는 가문'에서 현진건은 태어났습니다.
현진건의 삶에서 알아두어야 할 점은 신여성이 아닌 여자와의 '조혼', 다소 빨리 끝나버린 일본 유학, 그리고 신문사 생활로 압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에서 나타납니다. 일본 유학의 문제는 '타락자'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신문사 생활'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바로 '관찰자적 시선'이 나타나는 데 기자 생활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해서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냥 읽기만 해도 확인할 수 있는 게 '빈처'와 '운수 좋은 날'은 너무 다르다는 점, 그리고 '고향'으로 그 시선이 이어진다는 점 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양진오 연구자는 형인 '현정건'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죽은 것이 상당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서술 했는데 정말 그런지는 쉽게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2. 다 정말정말 짧은 단편 위주의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작품이 좀 많습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난이도가 올라간 느낌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시험에 나왔던 작품은 '할머니의 죽음'이 바로 기억나는군요, 그렇지만 그 외에도 우리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 '타락자', '고향'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머지 작품도 정말 중요하긴 하지만, 앞에 언급한 이 작품들은 현진건을 이해하는 좋은 틀이 되어주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 몇 문장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남기지만, 한국문학전집 관련 포스팅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 글들은 작품을 먼저 읽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1) 희생화 : 대뷔작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미숙합니다. 이렇게 '미숙한 작품'이 나온 이유는, 당시 현진건의 오촌 당숙이 동인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기록으로는 현진건이 이 작품을 실어줄 것을 부탁하여 실어졌던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미숙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습니다. '누나'와 누나를 둔 '동생'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 저도 이걸 보고서 뭘 표현하려고 했던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굳이 연결 지으라면 김동인이 말한 '사랑'을 하는 근대적 주인공을 표현해보려고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빈처 : 희생화 이후 1년 동안 갈고 닦아서 낸 작품입니다. 희생화보다는 상당히 다듬어진 작품이며, 이 작품의 발표시기를 고려했을 때 이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초반은 제대로 된 '한국현대소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슬슬 나타나는 시기라고 보았을 때 이 '빈처'가 중요한 작품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역시 아내는 조금 '무지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3) 술 권하는 사회 : 연구자는 이 작품을 '자전적인 소설'로 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을 자전적인 소설로 해석한 이유는 '지식인'인 남편과 '지식인'인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는데 이게 현진건의 결혼 생활과 다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현진건의 결혼 생활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작가들의 삶에서 그 작가들의 결혼 생활과 비슷한 내용의 소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에게, 다시 말해서 '인텔리'에게 술을 권하는 상황은 작가에게 술을 권하는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4) 유린 : K가 정숙을 유린한 내용이라고 보아야 할 듯 싶은데 '미완'이라고 남겨져 있는 것을 보아 작품이 제대로 완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진건이 '사랑'을 그려낸 소설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5) 피아노 : 책 페이지로는 2장 반 길이의 소설인데 풍자가 나타났다. 2장 반 만으로도 풍자를 나타날 수 있음에 감탄한 단편입니다. '피아노'는 결국 당시 시대의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사치 행위'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6) 할머니의 죽음 : 현진건이 쓴 '풍자소설'입니다. 정말 짧지만 인물들의 행동을 정확히 집어내는 작가의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시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행위를 집어내면서 서술자의 행위 또한 풍자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치숙'과는 약간 다른 구성을 보입니다. '조모의 위독'으로 시작하여 '조모'가 다시 괜찮아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돌아가자마자 '조모'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잘짜여진 작품입니다.
7) 우편국에서 : '원고료'를 받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인데 이건 마치 작가가 원고료를 받는 상황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본인'이 맞는지 물어보는 장면에서 가슴이 꿈틀대는 당면은 식민지 치하에서 살아사는 사람의 심리적인 고통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 부분에 해당합니다.
8) 까막잡기 : 상춘과 학수가 음악회에 다녀오는 내용인데 이 역시 단편입니다. 자유 연애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사회 분위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며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한 학수와 그렇지 않은 상춘을 대비시켜 서로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서사 설정을 보여줍니다.
9) 그리운 흘긴 눈 : 여성 주인공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내재된 작품으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여성 주인공은 '기생'으로서 '그 이'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갖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10) 운수 좋은 날 : 우리가 '아이러니'하면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이 '운수 좋은 날'입니다. 제목을 통해서 '언어를 통한 아이러니'를 실현하고 있고, 작품의 내적 상황을 통해서 '상황적 아이러니'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김첨지가 돈을 잘 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실은 좋은 일이 아님을, 아주 기막히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식인'의 눈에서 바라보는 소시민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현진건의 대작인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현진건이 실제 '가난했던 사람'으로서 이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닌 '관찰자'의 눈으로 이 작품을 창작해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대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작품의 대표작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11) 발 : '발 장수'와 경관의 횡포를 알 수 있는 장면이 주된 내용인 작품입니다. 여기에는 서민으로 나타나는 '발 장수'에 대해서 경관이 발의 가격을 터무니 없이 깎으려고 하면서 일어나는 일이 소재입니다. 이 역시 리얼리즘 소설의 한 작품입니다.
12) 불 : '순이'가 집안에서 받은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남편으로 인한 고통과 시부모로 인한 고통이 드러납니다. 비슷한 소설 '벙어리 삼룡이'가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13) B사감과 러브레터 : B사감, 그러니까 여학교의 'B사감'의 이중적인 행동 - 학생들의 러브레터는 단속하고, 자신은 그 러브레터를 가지고 자위하는 행위 - 을 보여줌으로서 B사감을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14) 사립정신병원장 : 사립정신병원장이 된 W군이 도리어 미쳐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미쳐가는 내용'이 아니라 경제적인 빈곤이 정신적인 빈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시대상의 '궁핍함'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에 해당합니다. 이 작품 역시 독자가 주인공 W군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15) 고향 : 이 작품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서술자는 '관찰자'에 해당하기에 서술의 대상인 '상경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데 '상경하는 사람'의 기구한 이야기는 곧 당시 식민지 현실의 서민들의 삶을 대표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난한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고향이 거의 다 파괴되어 버린 상태였고, 전에는 혼담까지 오고갔던 여자를 만났지만 그 여자 역시 파괴되어 버린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 통해 비참한 식민지 현실을 그려냅니다. 서술자는 여전히 그러한 사람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약간은 '지식인'적인 측면이 남아있습니다만, 이 작품이 일제 강점기의 현실을 매우 잘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16) 동정 : 인력거를 통해서 먹고사는 서민의 모습과, 원치 않게 사고가 난 '지식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있습니다. 불운하게도 사고가 나면서 인력거가 부서졌지만 이에 대해 '나'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한데 묻어나며 인력거꾼으로 나타나는 하층민의 삶이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17) 정조와 약가 : 남편의 병을 낫게하기 위해서 정조 따위는 버리는 '그 여자'의 모습을 비꼬는 의사를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의사'의 행동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작품입니다. 약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그 여자의 동침은 그다지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만들며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과 '의원'으로 나타나는 조금은 있는 집 사람들의 가치관을 비교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18) 신문지와 철창 : '신문지'를 훔쳐서 유치장에 왔다는 '노인'에 대한 '나'의 시각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나' 역시 유치장에 들어와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인데 처음에는 노인에 대한 집단의 동정심이 증가하다가, 노인의 언행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노인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일시에 거두며 도리어 노인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나타나 있지만 자꾸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노인'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노인'은 역시 당시 일제강점기 하의 서민층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19) 서투른 도적 : 서민들의 경제적인 곤궁함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까지만 보더라도 현진건은 매우 일관되게 '서민들의 가난함'에 대해서 그렸습니다. 가난함을 해결하는 방식이 사회적으로 용인 받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20) 연애의 청산 : '감옥'에 있는 김형식의 애인이 면회를 와서 다른 애인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양진오는 이 작품이 현진건의 형인 '현정건'의 감옥생활이 소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이건 지나치게 작가의 삶과 연관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여자가 '연애'를 청산함으로서 김형식은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만, 여기에서 나타나는 '자유 연애 사상'이 제게는 다소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과연 '자유 연애 사상'이 떠받들어야 할 사상이었던 것인지 저는 이 작품에서 약간 의문이 듭니다.
21) 타락자 : '춘심이'를 보러가는 주인공 '나'를 타락자로 볼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확실히 이 작품에서 '나'는 아내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춘심이에게만 관심을 갖으며 '타락한 면모'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당숙의 별세'로 인해서 공부를 포기하는 '나'의 모습은 현진건의 삶과 다소 일치한다는 측면에서 자전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소설이며, 개인의 도덕적인 타락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사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이전 작품인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관계과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남편이 이렇게까지 붕괴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작품에서는 붕괴합니다.
3. 현진건을 단편의 귀재라고 하는 데에는 정말 '단편'위주의 작품들이 많고 단편이 갖추어야 하는 구성적인 요소를 갖춘 작품들을 잘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고 딱 한 두 가지를 담아내어 그걸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데 '고향'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오는 이의 슬픔을 통해서 식민지에 사는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남편의 대사를 통해서 지식인 계층의 고뇌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실주의', 또는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현진건이라는 작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소설은 그 소설이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매우 쉬우며 제목에서 드러나는 언어적 아이러니와 김첨지가 처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상황적 아이러니를 단편 속에 매우 잘 구현했습니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에 이은 1920년대 초중반 단편 문학의 귀재로서 '현진건'에 대한 평가는 희생화 이후 대개 다 긍정적인 평가들입니다. 거기에는 현진건이 이뤄놓은 문학적 성과가 매우 뛰어났음을 볼 수 있는 반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양진오(2008),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 역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