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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till Alice'를 보고(2014년 개봉작)영화 2016. 10. 2. 14:56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엘리스'일 수 있는 것은 가족들 덕분이다.
글이 좀 늦어졌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평소에 정리하지 않은 주제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보통은 빠르면 2, 3일 정도면 한 편의 글이 끝난다고 가정했을 때 이 글은 1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야하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이 글의 탓은 아닙니다.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낀점이 많은 글일 수록 생각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제가 인지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어찌되었든 영화 자체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 'Still Alice'를 알게 된 건, 작년 1학기 교생 실습 때, 한 국어 선생님의 수업에서였습니다. 그 학교 국어 선생님 중에서는 상당히 나이가 있으신 분이셨지만, 그 분의 수업은 뭔지 모를 친화력을 느낄 수 있었죠. 그 분의 수업을 참관하던 날, 선생님께서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언급한 이야기가 바로 이 'Still Alice' 였습니다. 아직도 그 날이 선한데, 아마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을 아주 오랜만에 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도 아주 가끔이지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수업을 시작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인상 깊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번 글의 키워드는 '소재', '이야기 구조', '인상적인 장면들' 그리고 '가족' 입니다.
1. 소재
'Still Alice'는 주인공인 'Alice'가 어느날 기억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간 후 알츠하이머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사실 엄청나게 색다른 소재는 아닙니다. 매우 다양한 영화에서 '기억을 잃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우성과 손예진이 연기를 했던 '내 머리속의 지우개'나, 아담 샌들러와 드류 베리모어가 함께했던 '첫 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도 있죠. 이 두 영화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속에서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었습니다. 한 편 이렇게 '주인공'이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그려지는 관계에 대해서 그린 영화는 가장 가까이로는 에디 레드메인과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했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재'에서 알츠 하이머라는 병을 제외하면 이 영화만의 어떤 '특별한 점'은 찾기가 힘듭니다. 주인공에 대해서 시련이 닥치고 이를 가족들 또는 연인과 어려움에 대해서 나누고 이를 가족들과 함께 극복해가는 내용 전개 역시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데, 저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영화를 봤다고 할까요. 생각해보니 'Amour'라는 영화도 생각나는군요, 그 영화는 노(老)부부의 마지막을 그렸는데 역시 '할머니'가 어느날 병에 걸린 증세를 보이고, 이를 할아버지가 보살피는 영화였는데, 그만큼 이 '소재'가 대중적인 소재이긴 합니다.
'특별한 점'이라면 '가족'이라는 것이겠군요, 병이 있는 한 쪽과의 연인 관계를 그리던 영화가 아니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주인공인 'Alice'의 변화를 그리는 게 목적이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찌보면 감동 유도라고 할 수 있는, 동생이 말하는 소위 '신파극'으로 빠질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는 않았어요. 적절히 강약 조절을 했다고 느꼈습니다. 이 점이 바로 할리우드 영화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2. 이야기 구조
영화의 이야기는 엘리스가 강연을 하던 도중 해야 할 말을 머릿속에서 기억해내지 못하고, 이 후 바깥에서 조깅을 하다가 자신의 일정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병원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기억을 잃기 전의 'Alice'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강의 중인 '교수'로 그려지는데, 자신의 기억들이 무차별하게 사라지는 것에 관한 진단을 받기 위해서 의사에게서 간단한 테스트를 받으며 자신이 희귀성(rare case) 알츠하이머 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증세가 알츠하이머임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가족들은 걱정 어린 시선과 자신의 증세가 유전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Alice'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울음을 터트리죠.(이 와중에 딸 한 명은 '엄마'가 아픈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선보이죠, 남자 자식들은 파악하질 못해요.) 여기에서 나오는 울음은 'Alice'가 그동안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기에 나오는 울음이고, 자신의 증세를 타인들에게 말하면서 본인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있는 울음입니다. 남편에게 한밤중에 이야기를 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죠.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남편'의 설명대로 'Alice'는 가장 똑똑하고 그 부분에서 전문가인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만해도 그럴 것 같아요. 당장 갑자기 기억이 안나기 시작하더니 어느날 내가 '알츠하이머'라고 느낀다면, 저라도 며칠동안 좌절할 것 같은걸요, 잠도 자기 힘들테고.. 어느날 기억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엘리스의 모습과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 구조에서도 소재와 같은 경우로, 어떤 '특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확 다가오는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상당히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감정묘사에 있을 것 같습니다. 딸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엘리스에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느낌이냐'고 물어보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깊습니다. 떄로는 일반인처럼 행동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한없이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엘리스에 대한 반응 방법은 남녀로 극명히 갈리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가족 중의 남자인 톰과 존은 자신들의 감정 표현에 그다지 많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톰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지만 리디아와 애나는 좀 더 많은 감정표현을 보여주죠. 'Alice'의 남편과 아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특히 남편인 '존'은 더더욱 그렇죠. 본인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엘리스 앞에서 심각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더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자신이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도 좋은 자리를 제안받으면서 존은 갈등에 빠집니다. 리디아도 '배우'라는 꿈 앞에서 갈등을 합니다. 결국에는 둘 다 어느정도 타협을 하면서, 리디아가 집에 내려오고 엘리스와 같이 살아가는 내용이 후반부입니다.
3. 인상적인 장면들
1)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발표자로 나온 엘리스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쨰는 역시 '연설'장면이네요.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알츠하이머'를 겪고있는 사람으로서 앞에 나와 발언을 하는 장면은 '알츠하이머'를 겪는 사람들을 대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던 장면이기 때문이죠. 전에는 어디까지 말했는 지 형광펜으로 긋지 않아도 괜찮았고, 자신이 말해야 할 말들을 다 출력해가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으면 긴 발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엘리스가 느끼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연설문이었습니다. 인상깊었던 것은 자신이 'I'm struggling'이라고 표현한 스스로의 상태가 있겠군요. 물론 힘들지만 이런 고통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엘리스'였고 그러한 엘리스를 가족들은 다들 잘 대해주려고 노력합니다.
2) 주치의 벤자민이 기억 회상 검사 도중 자꾸 기억을 못하는 엘리스에게 하는 이야기
두 번째는 자꾸 기억회상 검사에서 좌절에 좌절을 겪는 상황에서 남편과 같이 있는 때에, 주치의인 벤자민이 'Alice'에게 말을 해주는 장면입니다. 'Don't lose your hope'가 인상깊어요. 그렇죠, 힘들지만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죠. 사실 주치의가 'Alice'의 기분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칭찬을 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진실의 여부를 떠나서 힘들다고 해서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은 것 같거든요. 주치의 말대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살아가는 데 더 좋지 않냐고 저도 생각하곤 합니다.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리는 순간 세상에 가질 수 있는 '바람' 같은 건 없어지고, 세상에 대한 기대 또한 바라지 않게 되더라고요.
3) 노인 보호/요양 기관에 들어가 둘러보던 장면.
자신이 멀쩡할 때 노인들이 살고 있는 요양/보호 기관을 둘러보는 장면은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엘리스는 이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고 가거든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했던 엘리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만 엘리스는 이곳에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는 어떨 것인지 그리는 그녀의 눈빛은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로 기억을 다 잃어버려가면서 단어 조차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굉장히 슬픈 감정 조차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 병원에서도 엘리스는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일어서기만 해도 벨이 울리는 의자를 보면서 '갇힌 삶'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은 엘리스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존(남편)과의 저녁 약속을 잊고 집에 늦게 돌아오는 장면
과연 'normal', 그러니까 정상적인 삶이란 무엇일까요? 남편인 존은 엘리스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고, 이 때문에 집에서 엘리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엘리스는 늦게 돌아왔습니다. 아예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엘리스에게 있어서 이제는 '정상적인 삶'이 기억을 잃어버리는 삶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기억을 잃는 것 때문에 존은 엄청나게 걱정을 했지만, 정작 엘리스는 자신은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존에게 '정상적인 삶'은 엘리스에게 '정상적인 삶'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장면입니다. 즉 이 사건 이후로는 '정상적인 삶'에 대해서 엘리스에게 맞춰져가는 가족의 반응들을 볼 수 있습니다.
5)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 - 리디아의 공연 이후 리디아를 못 알아보는 것과, 가족간의 식사에서 아들의 여자친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
'가족'을 못알아보거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에 해당합니다. 엘리스는 자신의 딸인 리디아가 공연하는 것을 봤지만, 리디아 인 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말 그럴려나, 하기야 실제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도 잘 못알아본다고 하니까 이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6) 과거를 회상하는 것
엘리스가 알츠하이머를 진단 받고 나서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그녀의 '과거 회상'장면은 정말 묘합니다. 이건 보통 다른 문학작품들에서 나오는 부분입니다.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 2'에서 '엄마'는 쓰러지고 나신 뒤에 오빠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 날'을 회상하고, 떄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한편 영화 '아무르'의 여자 주인공 할머니 역시 뇌졸증으로 한 번 쓰러지고 난 뒤에 '어린아이'처럼 기억하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면, 그러니까 나이든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행동을 하며 회귀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의사가 아닐 뿐더러 어떤 이유로 그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 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본인이 어리다고 느낄 수도 있고, 한 편 말하고 싶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엘리스에게 있어서 '과거'는 행복했던 기억들의 집합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짧지만 중간 중간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회상 장면은 지금과는 또 다른 그 시절 만의 행복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함이란 가장 오랫동안 기억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7) 1달 만에 전화기를 찾고 반가워하던 장면.
전화기를 찾을 수 없어 밤에 집을 뒤지지만 나오지 않아서 좌절했던 날, 존은 내일 아침에 같이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같이 찾아주지 못했습니다. 전화기는 결국 한 달 뒤에 주방에서 찾고 이걸 엘리스에게 건내지만, 엘리스는 이를 '어제' 잃어버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기억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죠. 엘리스는 그 전화기에 자신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전화기를 찾았던 것에 대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겠지만, 그만큼이나 이 전화기가 없이 살았을 그녀의 고통과 힘듬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던 장면이었습니다.
8) 자신이 쓴 영상편지를 발견하는 순간
자신이 쓴 영상편지 - butterfly 폴더 - 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엘리스'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하며 영상에 나온대로 자살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영상편지를 찍을 때 이런 내용을 찍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었습니다. 단지 자주 '기억 회상을 목적으로 하는 영상'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신에게 자살할 것을 요청하는 영상이었거든요. 엘리스가 더 이상 자신이 그 동영상을 찍었던 것 조차 기억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영상을 본 엘리스는 영상에 나온 것대로 약을 먹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 자살시도는 집에 돌아온 아주머니 덕에 실패하게 되었지만, 스스로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4. 가족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의 반응은 변화를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엘리스가 기억을 수시로 잃는다는 것에 익숙해지고,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 것도 그냥 평범하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억을 잃는 상대방에 대해서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거든요. 같은 질문을 짧게 여러번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그게 그들이 했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왜냐면 겉으로는 너무 멀쩡해보이고, 엘리스의 표현대로 실제로 이야기가 잘 되어가는 날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엘리스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날에는 평범한 엘리스가 아니라 엉켜버리게 되어버리니까요.
리디아는 자신의 꿈을 잠시 접고 자신의 엄마인 '엘리스'를 돌보기 위해서 결국 집으로 내려왔고, 그런 리디아를 본 '존'은 리디아를 안으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처음으로 존이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은 장면이죠. 사실 엘리스는 자신이 병에 걸린 이후 남편에게 잠시 휴식기를 가질 수 없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안타깝게도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감정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드러낼 상황이 못되었던 '존'의 압박감이 드러나는 장면이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자신이 흔들리면 엘리스도 흔들린다는 생각밖에 없었을텐데 말이죠.
5. 감독의 의도.
제목에서, 그리고 영화의 내용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엘리스'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있더라도 엘리스는 여전히 '엘리스'입니다. 그걸 누가 지켜주냐구요? 바로 가족이고, 주위 사람들이겠죠. 전에 '자아개념'에 관한 글을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자아개념은 자신이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메세지'로부터 형성된다는 점이 바로 기억나는데, 엘리스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가족들은 이전의 엘리스처럼 대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 위험을 줄이려고 하고, 어려움은 최대한 나누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감독이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기억을 잃더라도 여전히 엘리스는 가족들에게 '엘리스'임을 말입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슬픔을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잔잔함과 일상 속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가족을 둔 사람들을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슬픔에만 몰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 사람과 그 사람 주변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제 가족 중의 누군가가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할 까,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이게 아마도 한국 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겠죠. 한국 영화라면 감동의 코드를 집어넣었다면 그걸 끝까지 몰고 가서 사람들을 눈물 흘리는 데 집중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고 적절히 강약 조절을 해준 느낌을 받아서 잔잔함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간만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