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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리를 떠나 보내며
    개인적 기록/맥락수필 2017. 12. 12. 19:29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널 옆에 이렇게 올려두고 글을 쓰기로 했다. 널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그래 네가 사람도 아니고 동물인데,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건 조금 웃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찌되었든 네가 나와 같이 지내기 시작한지 한 달이 넘어서 어느덧 한 달 반을 가리키고 있으니 뭐라도 남겨놓아야 내 마음이 조금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겨서 지금의 이 감정과 느낌을 머리로만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글로 조금 남겨두면 머리로만 남지 않고 마음으로도 남고 몸으로도 느낄 수 있을테니까.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데에는 머리만 쓰는 게 아니라 가슴을 통해서도라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편지같기도 하다.

    기억하니, 처음 여기 왔던 날. 내 방에 네가 처음 왔었던 날을 기억하니. 낯선 공간을 넘고넘고 넘어서 너는 간신히 내 집까지 왔지. 진성이가 고생 많았었는데 정말. 딱봐도 진성이의 피곤함이 느껴진 날이었지. 기차 안에서 너를 어르고 달래고 오느라 조금은 기진맥진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지. 그랬었어. 진성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는 진성이의 모습이 그랬었다는 거지. 지금은 걱정하는 단계는 지났고, 이렇게 하루중 3시간 정도 가끔 오는 정도지. 시간이 무작정 남는 주인도 아니라서, 남는 시간에 잠깐잠깐씩 와서 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정도니까. 하루에 3시간 남짓 너와 같이 있으면 안양에서의 생활처럼 많은 시간을 보낸 셈이 되니까. 다만 나는 잠시 거처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애완동물이 하루의 20시간 이상을 자기 때문에 그렇게 3시간 정도만 왔다가 돌아가도 괜찮은 건지 하는 의문 같은 게 들었다. 보통 애완동물이 있는 집의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애완동물과 같이 보내곤 했으니까. 물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사에 가깝고(양육공간), 진성이는 아빠이자 아이를 맡기러 온 부모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기억한다. 첫날밤 네가 울었던 그 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날은 춥지 않았었다. 지금처럼 눈이 오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고, 발코니의 날씨는 정말 좋았었지. 적당히 시원한 그런 공간으로 말이다. 그 첫날에 너는 우렁차게 울었다. 진성이가 가고난 뒤 밤중에 들어온 내 모습을 반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공간에 어서 적응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달라고 해서인지 계속 울었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매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결국 다 실패했었다. 진성이는 내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걸 어겼었다. 내 불찰이기도 하겠지. 행동주의 사고 원리만 지배하는 첼리 너에게 나 같은 불규칙적인 인간은 애초부터 부적절한 집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겪었을 네 삶의 막막함보다는 여기가 더 나았을수도 있겠다는 2퍼센트의 바람 같은 건 지금까지도 늘 갖고 있다.

    지금은 더 커버렸지만, 여기에 처음 왔던 그 날, 네가 좀 더 작았을 때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그 때는, 내 허벅지가 네게 작지 않았었다. 적당했었다. 자리를 잡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순간에 너는 더 자라버렸지. 정말 자라버렸었다. 그 자란 모습으로는 더 이상 내 허벅지에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었다. 너는 마치 힘을 주고 받는 진자들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허벅지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했다. 친구들은 내 허벅지가 얇아서라고 그랬었는데, 너 때문에 허벅지를 키우는 운동을 단기간에 더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물론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럴 생각은 잊어 버린지 오래고, 다시 전신 운동을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게 벌써 얼마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네가 테라코트를 많이 먹던 시절도 기억한다. 처음 왔던 1주일동안, 네가 나에게 주던 털들은 참으로 인상깊은 양이었다. 이렇게 털이 많았나 싶었다. 나는 네 주인보단 마음 약한 사람인지라, 내가 가면 늘 너를 방안에다가 두는 방법으로 너의 울음소리를 조금 잠재우고 싶었다. 유리창이라는 존재를 겪은 적이 없을 너에게, 유리창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너에게 발코니와 내 방이라는 공간의 결계는 너무나도 두껍고 넘을 수 없으며 좌절을 안겨주는 것이었을테니까. 다만 네가 많이 울면 나는 문을 열어주는 그런 집사였으니까 말이다. 테라코트를 많이 먹고 난 뒤에 털이 급속도로 조금씩만 빠지는 걸 보고 신기해하던 날들을 기억한다. 비록 요즘은 테라코트를 거의 먹지 않지만, 나는 그날의 네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  보았었다. 마치 성장하는 생물이란 이런 것이었나 하는 호기심과 함께 말이다.

    너에게는 내가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너에게 아마 한 10순위나 되면 다행일 것 같다. 그리고 그 10순위 마저도 대용품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너에게 의미  있는 거처 제공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이상한 거처 제공자는 싫었다. 가끔은 네 인생샷도 남겨주고 진성이는 보지 못했던 면들이나 기록하지 못했던 면들을 기록하는 일도 했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나름대로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내줄 수 있다는 것, 가끔씩 네 이름을 빌려 다른 사람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는 것 등등을 말이다.

    나는 네가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던 하루하루도 기억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잠자리 장난감이 좀 더 정상적인 모형이었는데, 지금은 결국 날개도 떨어지고 더 이상 흥미도 보이지 않는 장난감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실가지고 놀고 있지만, 네가 잘 놀던 장난감들에 대해서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그 허탈감은, 부모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줬는데 더 이상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지 않을 때와 같았다. 그래 그렇지 사람처럼, 동물도 비슷한데 왜 나는 그걸 몰랐을 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 비슷한 것들이 들었다. 벌써 지나간 감정이 되어버렸지만서도 난 이 감정들이 종종 가슴속에 피어오르곤 한다.

    나는 네가 소독할 때 벗어나고 싶어하던 모습도 기억한다. 턱을 많이 긁어서 발코니에도 내 방에도 네 딱지들이 흩뿌려져 있었지. 그 딱지는 사실 네가 내 방에 오기 전에 생긴 피부병의 흔적이었는데, 그걸 낫게 하기 위해서 진성이가 소독을 했던 날들, 그리고 진성이가 오지 않을 때 내가 소독을 하던 날들을 기억하곤 한다. 아마 사람의 상처에 사람이 소독하는 것처럼 약간 시리고 쓰린 느낌을 받았겠지. 늘 너는 소독후에 인간으로부터 떨어져서 몸을 털었던게 생각난다. 어쩔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방에 햇빛이 잘 드는 덕에 피부가 좋아지던 네 모습들을 기억한다. 조금씩 사라지던 그 상처를 보며 나는 네가 여기에 와서 괜찮은 기억을 얻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창틀에서 햇빛을 쬐며 엎드려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네게는 모피코트가 있으니 인간보다는 훨씬 따뜻하다고 말했던 진성이의 말처럼, 햇빛을 쬐며 엎드려 있는 네 몸은 정말 따뜻한 걸 넘어서서 뜨거운 정도였지. 햇빛을 쬐며 나른함과 노곤함을 보여주는 네 눈빛과 자세들을 나는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보였던 모습 중 하나였었다. 부러웠지. 부러웠었어. 햇빛을 쬐면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네 표정은 항상 무언가를 바라던 나와는 참 달라서 부러웠다. 그러게, 정말 그랬었네. 네 편안함을 보면 세상에 달리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침대 밑에 들어가버린 날도 기억한다. 그 날은 내가 바닥에서 잠이 든 날이었지. 바닥에서 잠들고 난 뒤에 깨어보니 네가 보이질 않아서 어디에 있나 뒤지며 너를 찾았던 곳이 침대 밑이었따. 처음에는 침대 밑을 봐도 보이지가 않아서 어디로 사라졌나 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침대 밑 안쪽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오라고 말을 해도 네가 알아듣지도 못하고 나올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침대를
    들어올려서 너를 꺼냈었지. 귀찮고 힘들었지만 너는 잠시나마 침대 밑이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안정을 취했겠지 싶었다. 두 번째로 들어갔을 때는 간신히 잡히는 꼬리로 너를 끌고 나왔던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또 침대를 분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바닥에 누워있을 때 네가 옆에 와서 자던 것도 생각난다. 사실 너는 진성이가 해주던것처럼 배위에서 엎드려 자는 걸 원했겠지만 나는 내 배 위에 널 올려놓는 걸 시도해보았음에도 네가 푹 엎드리지 않아서 무거운 느낌만 있었다. 그래서 과감히 옆으로 누웠고 너는 좁은 공간으로 올라올 수 없었기에 내 팔과 다리 사이에 몸을 웅크려 같이 눕는 방법을 택했지. 너는 네 피부와 내 옷을 맞대는 걸 좋아했었으니까. 그래서 난 생각했었다. 아마도 너는, 담요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보다는 사람의 옷을 통해 건네지는 온기가 더 그리웠던 너라고 생각했었다. 가장 따뜻한 온도라는 게 어떤 다른 게 아니라, 서로 좋아한다는 느낌으로 지내는 것이라는 걸 너는 마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네가 밤중에 울던 날도 기억한다. 보일러를 끄기 위해서 내가 자다가 깬 상태로 보일러를 끄러 갔는데, 너는 그 어둠 속에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방에 들여보내달라고 울었던 것 같다. 시험을 치르기 전이었으니까, 나는 다음날에도 도서관에 가야하기에 네 울음소리를 못 들은척 하며 다시 잠을 들기를 청했지만, 한동안 네 울음 소리를 들으며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었지. 미안함과, 한 편으로는 왜 이 시간에 나처럼 자지를 못하고 있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었다. 나와 다른 삶을 보낸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내가 잘 때 너도 자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많은 생각들은 내가 시험이 다가오면서 너와 최소한의 시간들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목이 아프고 나서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었기 때문에 네게 더 소흘할 수 밖에 없었지.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들어가면 또 쉬어야 하고. 너랑 같이 쉬는 건 힘들고 그러다보니 너를 발코니에 방치할 수 밖에 없었지. 그때는 정말 미안했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다른 존재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존재인가 하는 고민을 안겨주던 때였다. 그런 점에서 넌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존재였었다.

    그런 네가, 네 존재감을 뽐내던 날을 기억한다. 하지만 너는 기억할 까, 우리집에 손님들이 왔던 날들을. 진주와 수민이가 와서 너를 보고 예쁘다고 하며 안아주던 날들을, 혜윤이와 스민이가 와서 귀엽다고 했었던 날들을 기억할 까. 나는 그 사람들이 왔을 때 너를 보고는 귀여워하고 예뻐하던 모습들을 기억한다. 그 날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너'였다는 걸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네가 가만히 안겨 있는 모습들을 참 좋아했다. 사랑스럽다고 느꼈었다. 실상 너는 움직이는 것도 많이 좋아하는 데, 낯선 이의 품에 안겨 있으며 아무말 하지 않고 있던 모습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뭐, 그런 생각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떤 것 같다. 어쨌거나 넌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참 괜찮은 고양이었으니까.

    나는 네가
    초코를 만나던 날을 떠올릴 때도 있었다. 다른 고양이의 영역에 그렇게 들어간 건 바우 이후로 두 번째인데, 그 날은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사실 너는 초코 입장에서는 영역 침범자니까 어쩔 수 없음에도, 나와 진성이와 스민이는 초코와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같이 갔었다. 실제로는 으르렁거리고 에에엥 거리고 싸울 테세였지만 말이다. 그날은 츄르도 좀 먹은 괜찮은 날이었으면 하는 데, 네가 어떻게 기억할 지 모르겠다. 그때 그 초코는 최근들어 '손'을 할 줄 안다고 하던데, 네 주인이 네게 '손'을 연습시킬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무리 봐도 내 생각에는 쓸데 없는 경쟁 같은데 말이다. 손을 하든 안하든 네가 첼리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데 말이다.

    나는 네가 발수건에 머리를 문대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 때의 그 장면 덕에 지금까지도 발수건은 네가 방에 들어오면 앉아있거나 엎드려 있을 수 있는 비공식적인 '러그' 역할을 하게 되었지. 왜 하필이면 발수건일까 했었지만, 사실 그러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네가 호감을 보일만한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했을 뿐이었지. 그래서 네가 발수건에 얼굴을 문대던 그 모습을 나는 기뻐했었다. 안도감과 함께 네가 그래도 지낼 수 있는 공간이구나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옷을 정리하는 동안 네가 발수건에서 벗어나면 난 너를 다시 그곳으로 돌려 보냈던 걸 생각하면 좋은 기억만 안고 가기에는 어렵겠지 싶다.

    게다가 난 네가 나를 보며 창문으로 발을 올리던 날들도 기억한다. 문좀 열어달라고 하는 그 몸짓의 의미를 나는 기억한다. 유리에 붙어 있는 네 털들을 보며 난 네가 늘 같이 있고 싶은 것인지, 따뜻한 곳에 있고 싶어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일 때도 있고 하나만 일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창틀에 올려주었을 때, 햇빛이 너를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을 때 너는 울지 않았었으니까, 결국 따뜻한 공간을 원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느정도 따뜻해지고 나면 다시금 돌아와 나를 찾고는 했으니, 그건 결국 같은 공간에 있게 해달라는 의미이기도 했었다. 그런 네가 지금은 내 뒤에서 발수건에 얼굴을 올리고 잠에 들어있구나. 이럴 때가 되면 나는 다른 물건을 건들어서 소리를 안내려고 노력하고는 했었다는 걸 되새기고는 했다.

    가끔은 진성이가 못온다고 네게 말하던 날들도 기억한다. 나는 네게 '오늘 아빠 못온대 어떡하니'라고 했었다. '괜찮아'라는 말도 가끔 덧붙였던 것 같다. 진성이가 못오는 날이 나에게는 참 걱정스러운 날이었다. 나는 집사고 진성이는 '부모'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오지 않으면 부모를 그리워 하는 게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울고는 한다고 느꼈으니까 말이다. 나랑 아무리 애착관계가 형성되더라도 그건 진성이와의 애착관계보다는 약할 것이기에 진성이의 애정이 늘 조금씩은 있기를 바라곤 했었으니까. 그런 애정을 나는 여러번 느꼈었다. 특히 진성이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던 때, 너는 멀리서 진성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눈을 깜빡거리며 말이다. 그 날의 네 모습은 정말 진성이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던 널 알게 된 날이었었다. 그런 네가 진성이와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성이를 그렇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발코니를 보면, 블라인드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날들도 기억한다. 네가 블라인드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나는 늘 불안해서 걱정도 되었었다. 저기에서 떨어지면 블라인드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한 번은 떨어질 뻔 했었지. 너를 보고 있던 순간이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넌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면 진성이 지갑이 거덜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뭐 블라인드 사이가 네게는 재미있는 공간이었을테니 이해는 한다. 같이 놀 고양이가 없으니까 심심했을텐데 말이다.

    설거지 할 때 옆에 있던 날도 기억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설거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엌에 같이 두었는데, 물소리에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던 네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었다. 그냥 널 어디 다른 곳에 두기에는 울거나 방황하거나 침대 밑에 들어갈까봐 그랬었는데, 너무 시끄러웠을까 부엌은. 아마도 다시는 부엌에서 널 안고 있을 날은 없을테니까 기억을 한다면, 잊어주길 바란다.

    방에 똥을 들고 온 날도 기억한다. 그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그 날은 네가 내 등에 올라와있던 날이었다. 아침이었었다. 내가 일어나야 해서 일어났더니 내 몸 왼쪽 바닥에는 똥이 바닥에 붙어있었다. 모양새가 네가 털에 묻혀서 온 뒤에 밟은 듯한 흔적이 남아있더라. 기분이 참 묘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똥투척'인가 싶었다. 하하하하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네가 뒷다리 털에 똥을 달 다니기도 했었지. 이게 바로 똥고양이인가 싶었는데, 그런 똥고양이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구나.

    한 때 회색털이었던 네가 이 공간에 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머릿속에 없었는데, 이렇게 왔다 가는 걸 보면 알 수 없는 일이 더 많구나 싶다. 회색털이었던, 네가 진성이네 음식점에 있었던 그 때만 하더라도, 네가 여기에 올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었는데 결국 왔었으니까. 왔다가 이렇게 갔으니까 말이다. 온 것도, 가는 것도 참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구나 싶다.
     
    아마 며칠 동안 이 글을 네게 쓰며 나는 너에 대한 생각을 고이 접어 마음 속 한 켠에 두려고 한다. 이 글은 몇 번이고 더 고쳐지고 내용이 덧붙여질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이 고쳐지지 않는 다면, 그건 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어느 순간에, 이 생각이 정리되고 잘 매듭지어져서 글로만 남게 되었을 때에는 너는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난 뒤일 것이다. 나는 그저 가끔씩 내 옷들에 붙어서 남아있는 네 털의 흔적들을 보며 '한 때 네가 여기에 살았었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그리워 하겠지. 그럴 것 같다. 다음 생애에는 좀 더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기를 바란다. 좀 더 넉넉한 공간과 캣타워도 있는 집, 같이 놀 친구들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기를 기도한다. 또한 나와의 이 짧은 기간이 괜찮은 기간으로 기억에 남아서, 다음에 나를 보았을 때도 잘 안기기를 바란다. 

    왠지 마지막 날 유독 다른 울음 소리를 내던 너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작별의 꾹꾹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날의 네 발짓을 기억하려고 한다. 다른 날보다 유독 더 손에 네 냄세를 뭍히려고 하던 모습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사람들도 떠날 때에는 포옹을 했었는데, 너라도 다르지는 않은가보다.
    고마웠다. 네 덕에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었다는 걸,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하면서 느끼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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