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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 세포 기증기 #3카테고리 없음 2022. 11. 17. 00:07
조혈모 세포 촉진제를 맞은지 3일째가 되는 날이었고 여전히 골반과 등에 일부 무거운 느낌을 가진채로 수업에 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내가 다인실에 들어가야 된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 다인실인 것 까지는 어떻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하필이면 또 여자 환자들이 있는 곳의 다인실이라 했다. 나는 그 분들이 동의를 하셨는지가 좀처럼 궁금했고, 세포 체취 이후에 내 컨디션만 괜찮다면 바로 수능 문제를 풀고 녹화를 할 심산이었던 만큼 그럴 수 있는 장소일지가 도통 감이 안왔다. 물론 나에게는 선택권 같은 건 없을테니까 담당 코디님의 전화번호를 넘기고서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다가오는데 나의 마음은 상당히 바쁘게 움직였다. 그 가끔씩 나는 시간 준수에 대한 높은 정도의 스트레스 비슷한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이게 바로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어딘가에 약속에 맞춰서 가야할 때 느끼는 일종의 긴장감? 새로운 곳에 가게 될 때 나는 늦는 것이 싫어서 마냥 왔다. 바쁜 걸음과 함께
예전 생각이 자꾸 난다.
나는 나의 조혈모세포 기증의 계기가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성당을 다니면서도 신앙의 신비를 제대로 믿고 있지 않았던 나 조차도 그 날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사실 하느님이기도 하면서, 동양 철학에서 보면 '하늘'의 뜻'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조혈모 세포 기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은, 해외에서 돌아와 힘든 마음 중에 명동 성당에 갔던 날이었다. 3월 초였고, 그 때 명동 성당에 갔던 것은 학교에서의 생활이 너무나도 괴로웠었기 때문이다. 딱 그 때가 영국에서의 헤어짐 이후에 매일매일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괴로움이 끊이지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학교에는 혼자 남겨졌고 더 이상 어떤 마음의 안식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의 나였었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게 쉽사리..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미사였으니 나는 그날 눈물을 흘리면서 미사를 마쳤고 감정이 조금 정리된 내가 간 곳은 명동 성당의 지하였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2016년이었는데, 아무리 자료 사진을 첨부하고 싶어서 사진을 찾아도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어찌되었든 그 지하 광장에서 나는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기증 신청을 하고 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피를 뽑고 반창고를 붙였다. 그때 그렇게 뽑은 반창고가 오늘의 반창고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질 못했다.
사실 나의 이 조혈모 세포 기증에 대한 마음은 후회나 두려움 이런것보다도, 당시 기억에 대한 회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내 자신이 살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꼈었던 그 순간에 했던 선택이 지금에 와서야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는 나의 힘듦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때 분명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믿고, 나 역시 무언가를 해서 갚으면서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세상은 내가 도울 수 있거나 내가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꿔 나가는 걸 해야한다고 믿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게 좀 꺾여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