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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때(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책/외국소설 2013. 11. 27. 22:37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저자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 출판사
- 민음사 | 2010-04-3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반전 소설의 대가 레마르크가 그려 낸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
영화 '결혼전야'를 보고나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엄청 오랫동안 들었다.뭐, 일요일에 영화를 봤었으니까, 일, 월, 화, 수까지 하면 4일밖에 안되긴 하지만. 어쨋거나 결혼전야는 이야기를 쓰기에는 매우 많은 생각정리가 필요한 영화여서 당장 이야기를 쓰기는 너무 힘들었고, 토요일에 제목에 이끌려 빌렸었던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몇일만에 다 읽어냈다. 음...일요일에는 읽지 않았었고, 월, 화, 수에만 읽어서 끝낸거니까 내 스스로도 내 속도가 참 신기할 정도다. 이제는 어느정도의 책을 집으면 금방 읽어낼 수 있을만한 정도가 된건가 싶기도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 책은 2차세게대전 당시 독일군의 한명인 '그래버'를 주인공으로 2차세계대전 막바지의 러시아 전선과 독일 내부를 그렸다. 2차세계대전의 독일 / 러시아 전선의 경우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레닌그라드 전투를 통해 전세가 결정되며 결국은 러시아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당시 스탈린그라드를 총 공격할 기회가 전쟁 초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이상하게도 그 전진 속도를 늦추고 만다. 이는 결국 러시아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기회가 되며 결국 독일은 점령할 수 있을것처럼 보이는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에 의해 쓴맛을 보게되고 점차 후퇴를 하기 시작한다. 레마르크는 이렇게 '후퇴하는 독일'전선을 배경으로 소설을 그려냈다.
레마르크는 1차세게대전도 경험했었고, 2차세계대전도 어느정도(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람이다. 비록 그가 2차세계대전이 되었을때는 끝내 미국으로 망명을 갔었다. 신변의 안전때문에 말이다. 전쟁소설을 쓰는 그가 나치스정권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나치스정권의 실세여도(이런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레마르크는 매우 가시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일약 유명해진 작가의 소설이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것이라는건 누구나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이 책은 그래버가 만나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의 시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처음에는 그의 휴가동안 만나게 되는 '엘리자베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자신이 마을에 살고있을때 같은 학교를 다녔었던 '엘리자베스'를 만나게 된 그래버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집을 자주 찾아가게 된다. 모든것이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에서 그래버는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팠다. 자신의 집을 찾아가보려 해도 다 부서지고 망가져서 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된 마을속에서, 그는 엄청난 공허함과 허망함,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집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속에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몇 안되는 집이자, '아는 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버는 엘리자베스를 통해서 자신이 잃었던 '과거'를 조금씩 조금씩 되찾는 느낌을 받으면서 절망감을 매꾸는 것이다. 이는 엘리자베스도 어느정도 비슷하다. 남들과는 다른, 경계심을 가지고 만나도 되지 않는 몇 안되는 한명으로 '그래버'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둘이 처음만났을때는 엘리자베스가 엄청나게 경계를 하면서 만났지만, 점점 서로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이윽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호텔 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전선에 나가있었던 군인이었던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결혼을 하자고 하고 결혼후 몇일이 지나 휴가가 끝나고, 그래버는 전쟁터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그래버는 자신을 지탱해줄 무언가로 엘리자베스를 선택했지만 오히려 그게 나를 두곱이나 고통스럽게 한다는걸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헤어지기전에 그래버에게 그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만스러운 인간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되겠어요?"
굉장히 희망가득한 말이다. 어둠속의 불빛처럼 다가오는 엘리자베스의 한마디는 그래버의 마음을 크게 울렸다고 생각한다. 한마디한마디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그래버에게 있어서 전쟁폐허속에서 '불꽃'같은 존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폴만 선생님이나, 부상병들을 통해서 그래버의 지인이 엘리자베스 뿐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버는 휴가기간동안 엘리자베스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폐허속에서 첫날 잠에 드는것도 집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는 그래버에게 '엘리자베스'는 안정된 휴식처이자 믿을만한 사람으로서 다가왔던것 같다. 그녀를 통해서 그래버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는건 엘리자베스가 여자이면서 그래버에게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것 같다. 또한 '과거는 어쩔수 없다'고 외치는 그녀는 그래버와는 다른 성향을 띄기도 한다. 그래버는 과거를 되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했다. 워낙에 전선에 오래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온전한 과거'에 대한 기억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자신의 마을이 무너지는것을 보면서 느낀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였다.
두번째 인물은 폴만이다. 폴만 선생님, 그는 그래버의 전쟁 동료의 선생님이었고, 그래버의 선생님이기도 했다. 전쟁중에 같은 고향 사람인 동료가 그래버에게 휴가를 가게 되거든 폴만선생님께 꼭 인사를 드려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래버는 이에 폴만 선생님을 찾아간다. 그래버와 폴만의 대화를 통해서 작가는 당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며, 이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잘못된 전쟁인지 말한다.
"이것들이 어떻게 하나로 일치될 수 있을까요? 이 책들, 이 시집들, 이 철학척과 친위대의 잔인함, 집단수용소 그리고 무고한 인간들의 대량학살 말입니다."
"그건 일치하는게 아니야. 그저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을뿐이야. 이 책들을 쓴 사람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대부분은 집단수용소에 끌려갔을거야."
""그렇겠지요."
......
"난 자네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 그래버. 그리고 자네가 최근에 한 말도 곰곰이 생각해봤어. 하지만 해답은 없네."폴만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직 하나, 믿음은 있어야 하네. 믿음.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무엇에 대한 믿음 말입니가?"
"하느님이야.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선이지."
선생님은 그것을 의심하신 적이 없나요?" 그래버가 물었다.
"물론 있지. 종종. 안그러면 어떻게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겠나?"노인이 대답했다.
이 대화를 통해서 작가는 그래버라는 인물은 곧 동시대의 여러가지 신념속에서 흔들리는 인물로 표현한다. 가장 '보통사람'같은 고민을 그래버는 하고 있는 것이다. 나치스 독일이 합법적으로 탄생된 정권인만큼 그 정권에 대한 믿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지만 그건 곧 광기로 이어지고 국민들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버는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이전까지 있었던 일들과 지금과 같은 '전쟁'은 공존할만한 것들인지 말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이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이 현시대에서 믿을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답으로 '종교'를 내놓은다. 안나 카레리나를 읽었을때와 비슷하게 '종교'는 매우 괜찮은 해답인 것 같다. 어떤 '대책'의 개념이 아니라 항상 가지고 있어야할 신념같은것이 바로 유럽에서의 '가톨릭'인것 같다.
세번째 인물은 요제프. 폴만은 요제프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데, 이로 인해서 폴만선생님의 집에 자주 가게되는 그래버는 요제프와 몇번 마주친다. 요제프는 그래버가 '친위대'나, '게슈타포'같이 그를 잡아 넣으려는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고 나름대로 친밀하게 대화를 나눈다. 쫒겨다니는 몸으로서, 언제든지 잡혀들어갈 수 있었던 당시 배경을 보면, 요제프는 그래버를 통해서도 수용소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래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아마도 폴만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는 깨달았던것 같다. 그래버는 이런 요제프를 상대로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습니다. 당신을 쫒는 범죄자들이 권력을 더 연장 할 수 있도록 싸우려고 돌아갑니다. 당신을 체포해서 교수형에 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말입니다."
요제프는 가볍게 동의를 표하면서 침묵을 지켯다.
"돌아가지 않으면 총살될까봐 가는겁니다."그래버가 말했다.
요제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탈주하면 놈들이 부모님과 아내를 집단 수용소로 보내거나 죽일 것이기 때문에 돌아가는 겁니다."
요제프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저는 갑니다. 제 이유가 이유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몇백만이 내세우는 이유라는 것을 압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당신의 경멸을 받아 마땅합니다!"
"너무 실없는 말은 말게."요제프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버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진의를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경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네." 요제프가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그게 자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폴만 선생님을 경멸한단 말인가? 매일밤 목숨을 걸고 나를 숨겨주는 사람을 내가 경멸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자네는 정말 순진해!"
소시민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독일사회, 그래버는 그런 소시민들중 한명이었을 뿐이다. 레마르크는 그래버를 통해서 당시 일반적인 독일인들의 가슴아픈 현실을 이렇게 그려냈다. '내가 말하는게 말이 안되는 줄 알지만 나는 현재 이렇다고!'라면서 말이다. 그래버는 휴가를 마치고 전선에 복귀하자마자 전선이 매우 후퇴했다는걸 깨달으며,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걸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그래버가 인간적이었던건, 슈타인브레너의 말을 듣지 않고 '러시아 포로'를 살려줬다는 것이다. 레마르크는 그래버가 생포한 러시아 포로를 살려줌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대신 실현하고 있었다.
전쟁소설을 읽은건 카탈로니아 찬가 이후에 처음이었다. 물론 카탈로니아 찬가가 순수하게 '소설'이라고 말하긴 어려웟지만 말이다. 그때는 내가 잘 모르는 '스페인 내전'이었고 이번에는 그나마 어떤식으로 전쟁이 전개된건지 읽었던 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대 러시아였다는것이지만. '하일 히틀러'라고 외치며 돌아다녔떤 그 당시를 다시 떠올리라는건 어떠한 작가에게도 고통이 따르는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다른 가족이 죽는건 방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레마르크는 '인간적임'에 대해 고민을 했고 이 작품을 내놓은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