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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 리본'(Das weiße Band, the white ribbon) 리뷰
    영화 2014. 5. 13. 13:16

     


    하얀 리본 (2010)

    The White Ribbon 
    7.2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크리스티안 프리델, 레오니 베네스치, 에른스트 야코비, 울리히 터커, 우르시나 라르디
    정보
    스릴러 |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 144 분 | 2010-07-01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하네케 감독의 작품은 이전에 '아무르'를 통해서 접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원작으로 한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 하네케는 칸 영화제에서 찾는 몇 안되는 '예술 감독'으로서 자신의 작품세계와 연출방식 등을 공고히 해 나가고 있으며 이제까지 그렇게 해온 감독이다. 하네케는 기존의 할리우드 상업영화와는 다른 연출방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이 아닌 '소통'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 그런 감독의 칸 영화제 200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하얀 리본'(Das weiße Band)에 대해서 오늘은 이야기해볼까 한다.

     

    원래 이 영화를 딱 보려고 생각하던 건 아니고,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다보니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었고, 마침 '전체주의' 이전에 관한 이야기라서 골랐던 것이다. 내용은 어렵고 영화는 재미없었고, 정말 어렵고 어려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한다. 이 감독이 이렇게 '서술'하는 장치를 영화에 넣은 건 '거리 두기 기법'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거리두기 기법은 청중들이 이 영화에 완전한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객관화'하여 작품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미하일 하네케 감독은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를 수용하는 단순한 청중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적극적인 관객' 즉, 제작자와 소통하는 관객을 원한다. 하지만 이 기법은 관객에게 보통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영화를 같이 보았던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가 '내레이션'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내레이션 때문에 영화가 안그래도 어려웠는데 '해설'아닌 '해설'로 더 어려워졌다고 한탄했다...(영화를 잘못 고른 탓이다..)

     

    그럼, 먼저 제목부터 이야기해보자. '하얀 리본'은 '상징'을 지닌 아이템이다. 물건이다. 자꾸 패션 때문에 아이템 아이템 그러던게 습관이 되어서 이렇게 나타나니까 끔찍하다. 하하하.....한글을 사용하자. 하여튼, 이 하얀 리본이 상징하는 건 좋게 말하면 '순수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규율에 대한 복종 강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하얀 리본'이 보여주는 건, 이 하얀 리본을 묶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재된 무언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음에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식들'을 포커스로 둔다. 문제의 결과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해당되고 있다.

     

    양배추 밭을 갈아 엎어버리는 장면

     

     

    의사인 아버지가 딸을 성추행 하던 장면

     

    마틴이 하얀리본을 묶고 혼나고 있는 장면

     

    양배추 밭을 갈아 엎어버린다거나, 아버지에게 맞는다거나, 눈을 뽑히고 실명당하거나, 심한 폭행을 당해서 휴양을 가야 했다거나,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일련의 일들은 '암묵적인' 부도덕함이 이 마을 전체에 퍼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든다.

     

    영화 도입부, 의사가 탄 말이 줄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

     

    영화의 시작은 이렇게 의사가 탄 말이 우연히 줄에 걸려 넘어지면서 전개된다. 이 사건으로 의사는 쇄골에 큰 부상을 입게 되며, 아이들은 무리지어 이 의사가 사는 집에 '안부 인사'를 하기위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인사도 창문에 돌을 던져서 시작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의사집 딸은 그 아이들을 그다지 반겨하지 않는다. 무리지어 온 아이들을 향해서 네레이터는 '평소에는 흩어지던 아이들이 모여다녔다'고 말한다. 네레이터는 바로 선생님이다. 학교 선생님.

     

    왼쪽이 선생님, 오른쪽이 에바

     

    학교 선생님이 나이를 먹고 나서 당시 그 지역에 있을 때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다. 왼쪽에 보이는 이 학교 선생님이 나이를 먹고서 당시 이 마을에 대한 '이상한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이 영화를 '거리두기'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 가서 결국은 '아이들'이 그 주범이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바로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인, '목사'에게 간다.

     

    목사 아버지

     

    이 영화에서 '목사'인 아버지는 권위자이자 규율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이 아버지가 행동하는 게 무너지면 모든 집안의 윤리와 심지어는 마을까지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복종'을 강요한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생각할 때 가능하다. 목사인 아버지는 마틴이 '자위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자위행위를 하면 죽어버릴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아들이 말을 듣게 한다. 딸인 클라라에게는 늦게 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철저히 '아빠'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이게 아주 어린아이에게는 이렇게 나타난다.

     

    픽시는 클라라가 죽여버렸고, 새가 없던 차에 막내가 예전에 치료하기 위해 잡았던 참새를 새장에 넣어서 가져온다. 그것도 '아버지'를 위해서로 말이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내내 '아버지'위주의 가부장제 자체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에바의 집은 결혼문제를, 안나 집안은 '성추행 문제'를, 클라라와 마틴에게는 '복종'과 '순결'의 문제를, 남작의 집에서는 '무관심'과 남편 권력의 우위를, 게오르그 집안 역시 '피리'를 통해서 문제를 보여준다.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지 않고 무언의 폭력만 있는, '하얀 리본'이 강요된 빌헬름 시대 사회, 미하일 하네케는 이 영화를 통해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 '나치즘'에 대한 뿌리 깊은 통찰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치즘은 동의하게 생긴 사상이다. 이런 전체주의는 특히 부르주아보다 프롤레타리아가 더 지지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이미 현실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그 상황 아래에서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나치즘은 매우 매력적인 안이었으며, 그 복종은 '시대적 배경'인 '프로테스탄트'에서 찾을 수가 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거리두기'와 소리를 절제함으로서 얻는 미학을 구현해냈다. 최근작인 '아무르'에서도 영화 도입부와 종결부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좀 당황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중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 '스파이더맨'은 항상 도입부에 특유의 오프닝 곡을 넣었었다.(물론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다.) 엔딩 역시 outro를 넣어서 마무리 했었는데, 미하일 하네케는 애초에 '소리'를 절제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한때 음악관련 직종의 직업을 생각했었던 것으로 보아, 소리를 어떻게 넣으면 괜찮은지 수많은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맞는 소리', '음악 소리', '대사', '미사 소리'가 주로 나오는데, 맞는 소리는 절대 화면에 보여주지 않으면서 '측면'을 통한 소리로 넣었고, 음악 소리는 뭔가 음산한 배경 아래에서, '대사'는 기본적이면서도 이 영화의 서사를 잘 이끌고 있고, '미사'는 조금이나마 흐르는 '공포감'과 대비되는 소리로 구현되어 있다.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한 것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절제되어 필요할 때만 나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에 배경음악과 '대사'는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매우 다급한 분위기의 장면에 다급한 분위기의 음악을 넣는 것과 유쾌한 분위기의 음악을 넣는 건 하늘과 땅 차이 아니겠는가.

     

     

    이해하기는 분명 어려웠지만,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나니 한결 낫다. 미하일 하네케의 작품들은 추후에도 볼 필요가 있다. 작년에 '아무르'를 본 이후로 이 감독의 작품을 보는건 역시 좋지만은 않은 기분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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