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The Fault in Our Stars (번역명, '안녕 헤이즐') 리뷰
    영화 2014. 8. 16. 12:40

     


    안녕, 헤이즐 (2014)

    The Fault in Our Stars 
    9.3
    감독
    조쉬 분
    출연
    쉐일린 우들리, 앤설 에거트, 냇 울프, 윌렘 데포, 로라 던
    정보
    드라마 | 미국 | 125 분 | 2014-08-13
    글쓴이 평점  

     

     

    -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글을 쓰려고 보니까 평점이 생각한 것 보다 높다. 하지만 9점 10점은 너무 과하다 싶고, 이건 그냥 보통 보다 조금 나은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3개 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소재는 '불치병', '멜로', '하이틴 로맨스', '지니'(지니가 빠질 수 없다.) 정도면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중에 한명인 스파이더맨의 노만 오스본 역을 했던 '윌렘 데포'도 여기에 아주 중요한 '작가'로 줄연한다. 피터 반 하우튼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같이 읽고 그 공감대를 통해서 둘의 사이가 발전한다는 점에서 이 작가는 중요한 통로이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대화 통로.

     

     

     

    1. 불치병

     

       영화의 큰 맥락은 불치병이다. 헤이즐은 갑상선암에 걸렸다가 폐암으로 번져서 거의 죽을뻔한 고비를 맞았다가 신약을 시험해보자는 의료진의 의견으로 신약 투여후 기이하게도 암세포가 줄어들고 있는 환자이다. 폐로 암세포가 전이된 환자 하지만 우연히 회복하고 있는 환자. 다만, 숨을 자체적으로 쉬기 힘들기 때문에 산소통을 들고다니며 항상 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산소통은 아주 작은 캐리어에 담아서 끌고 다닌다.

       헤이즐은 비관적인 학생으로 등장한다. 영화 도입부에는 그 누구보다도 비관적일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솔직함이고 당연한 그 나이대 '죽음'을 앞둔 소녀의 자세일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걸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지니'에게 부탁한 소원은 죽기 직전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으로 써버렸고, 주변에 또래 친구들도 마땅히 없는 외로운 사람이다. 주위에는 오직 부모님과 주치의 뿐이다.

       어거스터스는 포스터에서 보이는 남자이다. 그러니까 후일 헤이즐과 '연인'사이가 된다. 어거스터스가 집요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쉬하지도 않지만, 둘은 둘 나름대로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번씩 죽을만한 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공통점이다. 대개 사람들간에 쉽게 가질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면 이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끌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쓰는 나 역시도 '미술관에 가는 취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많이 끌렸으니 오죽하면 이 두사람은 그랬을까. 둘다 겉으로는 강해보이고 싶지만 강해보일 수 없으며 자신의 고통이나 아픔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조금은 체념까지 한 그런 사람들이니 말이다. 물론,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을 빤히 쳐다보는것도 한몫 했다고 본다. 마치 헤이즐은 자신을 누군가가 그렇게 오랫동안 본적이 없었다는걸 티내듯이 상대방을 똑같이 응시했으니 말이다.

     

     

    2. 멜로,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전개상 큰 문제가 없다면 이런 식의 커플진행은 대개 한두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발전해나간다. 한번은 헤이즐의 페에 물이 차는 바람에 중환자실에 실려갔던 것이고, 이로 인해서 헤이즐은 자신을 granade(수류탄)이라고 비유하고 언젠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고 말하는 장면, 이때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헤이즐을 좋아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렇지만 연애 초반에는 뭐든지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강철멘탈 강철가슴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한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고, 한가지의 두려움(다리를 잘라내고도 15%확률로 암세포가 전신에 번져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을 지닌채 둘의 관계는 일시적인 '친구'사이가 된다.

       두번째 위기는 피터 반 하우튼이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작가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것, 아픈 사람들에 대한 모욕을 들으면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회의'에 빠진다. 여기에서 이 작가는 세상의 냉혹함을 알려주는 통로이고, 동시에 리더바이(비서)는 둘의 관계를 발전시켜주는 연결고리 역할이 된다. 별거 없지만, 리더바이가 안네 프랑크의 집에 한번 가보겠냐고 한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해보려는 헤이즐의 의지가 빛날 수 있었다. 안네 프랑크가 숨어서 살던 공간을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오로지 '걸어서'올라가야 했는데 수많은 계단과 사다리를 직접 오르는 과정을 통해서 헤이즐은 부분적으로나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며 더이상 10대 소녀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 올라와서 어거스터스와 키스를 열정적으로 하고 호텔에 가서 같이 잠을 자는 장면까지 더 이상 헤이즐이 '소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픈 사람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성장 영화로서의 면모를 나타낸다.

       다만 이 영화의 차이점이라면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서술하듯이 진행된다는 점이 특이할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일을 '현재'로 보여주면서 진행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있어서 더 몰입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자신의 느낌을 말하지만 보여주는 영화는 '현재'인 모습은 이전에 하얀 리본을 봤었던 때랑 비슷한 식의 개입이다. 다만, 그때와 다르게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헤이즐의 나레이션은 거의 없다시피 들어가고, 결말에 가서는 이러한 내레이션 조차 다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하얀 리본은 영화의 결말까지 내레이션으로 채우지 않았던가,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좀더 가볍다.

       전형적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주인공이 아팠다가 나아가고 있는 와중에 상대역이 병이 재발하는 이 래퍼토리는 많이 봐왔다. 흔하다고 할 만큼 한쪽이 '죽어야 결말'이 나는 전개는 익숙했다. 그 부분에는 그래서 어거스터스가 PET촬영 후 병이 재발했다는걸 알았을때도 막 슬프지 않았던것 같다. 그냥 한 명은 죽어야 끝나니까 하면서 무덤덤했나보다.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미리 만들어 놓은 수의를 입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 깊다. 헤이즐은 A라인 블루 드레스, 어거스터스는 정장, 결국 남자든 여자든 옷발이 중요하다는 걸 인상깊게 남긴채, 삼폐인을 마시는 장면은 다른이들에겐 파티복이 자신에게는 '죽음'을 위해 앞둔 옷이 되는 건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이기 떄문이다. 그런점에서 이 영화는 신선하기도 했다.

     

     

    3. 지니, 윌렘 데포(피터 반 하우튼)

     

       난 '지니'라는 이 총체적인 서비스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자신이 원하는 소원 하나를 이뤄주는 대행사라니, 그것도 그 어떤 비용 없이 말이다.(맥락상 비용이 없는 것 같다. 있더라도 크게 부담할만한 비용이 아니니까 어거스터스든, 헤이즐이든 신청했나보지..) 폐암으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르기 전에 헤이즐은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어했던 소원을 써버렸지만, 어거스터스는 아직까지 쓰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 소원을 '피터 반 하우튼'이라는 헤이즐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그 작가를 만나는데 사용하게 되는게 영화의 주소재로 자리하게 된다.

       피터 반 하우튼 역을 한게 바로 윌렘 데포이다. 영화에서는 알코올 중독자의 작가 -> 수트 입은 멋진 편지 배달부로 나온다. 이런 '피터'가 쓴 소설의 뒷 이야기에 대해서 궁금했던 헤이즐과 헤이즐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며 피터의 비서 리더바이를 찾아 메일을 보낸 어거스터스는 운이 좋게도 기회를 잡는다. 물론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이러한 전개는 다분히 신파극에 가깝고, 현실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전개에는 이게 필요했겠지 싶다. 안그러면 이렇게까지 소설 초반부부터 '죽음'과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이야기 했으면 작가가 궁금하기도 했을테니 말이다.

       피터 반 하우튼은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냉담하고 반쯤 미친것처럼 해석될 수 있을만큼 악담을 한다. 스웨덴어로 된 노래를 틀어주기도 한다. 하나같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의 결말 이후가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주인공과 어거스터스에게도 아직 미래에 불투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겠지만 소설의 주인공과 헤이즐은 닮아있다. 헤이즐은 닮아있으려고 아예 티셔츠까지 찾아 입고 간다. 이건 '살아보려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믿고 싶은 헤이즐의 행동이다. 그러나 이 몸부림은 소용 없다고 피터는 말하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절망속에서 '어른'이 되었으니 가장 힘든때에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지는 '보편성'을 보여주는 건 감독의 배려이자 소설 원작 작가의 배려이지 싶다.

       피터가 장례식에 와서 헤이즐에게 편지를 건내는 부분에서 느낀바는 딱히 없다. 다만, 어거스터스가 참 헤이즐을 좋아했구나 하는 점 정도 외에는 없던것 같다. 그리고 피터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괜찮았다. 어쨋거나 그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알껍질을 깨버린 장본인이니까 말이다.

     

     

    4. 눈물을 유도하는 영화,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전에 군대에서 휴가나와서 피를 뽑아내고 봤던 영화 '소원'은 내가 생각하는 영화에서 '초점을 두어야 할 부분'에 대해 잘 표현해냈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 그래, 이게 중요하지, 피해자의 마음을 감싸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게 필요한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하나 괜찮았던건 있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것이다'라는 점에서 말이다. 헤이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죽으면 가슴이 찢어지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저 살아간다'는 말도 다 같은 맥락이다. 헤이즐이 자신이 준비한 추도사 종이를 접고 어거스터스의 부모님을 위해서, 좀 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자신이 이 사람에 대해서 간직했던 이야기를 해도 좋지만 좀 더 좋은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말을 하는 것, 이렇게 어거스터스가 죽어도 결국 우리는 살아간다. 힘들고 가슴이 찢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5. 그외..

     

       영화의 제목인 'the fault in our stars'에서 fault는 불치병이고 our stars는 바로 주인공들을 뜻한다. 10대를 '별'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결점(불치병)으로 인해서 겪게되는 삶의 변화를 나름대로는 잘 보여준것 같다. 그렇게 '결점'만 보여주지도 않았고, 결점을 지닌 그들조차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걸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불치병이나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의 영화와 맥락을 같이했다.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기에 앞서 자리에 앉아 내가 했던 말은 '난 정말 영화만 봐요.'였고, 여자친구는 그 말을 여실히 실감했다고 한다. 정말 무슨 비평가가 보듯이 영화만 보니까 신기하다고 말하며 말이다. 난 정말 영화만 보는 편인데 중간에 소리가 잘 안나와서 직원에게 말하러 갔던건 매우 귀찮았다..

     

       그리고, 다음주에 나갈 여행을 대비해서 유서라도 써야하나 싶지만, 여행은 그저 잘 다녀올 생각이다. 아무 걱정 탈 없이 다녀와야지. 그리고, 나는 과연 이 주인공들보다 어른인지 생각해야겠다. 이 생각은 이번에 여행가서 고이 접을 생각중 하나가 될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