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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상섭 단편선, ‘두 파산’외 10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책/한국문학 2016. 7. 10. 10:50


    1. 염상섭의 소설은 1920년대 문학의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동인은 일찍이 염상섭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두고서 자신이 이루어내지 못한 고백체 소설을 보았음을 인정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김동인과 염상섭은 서로가 든든한 경쟁자이자 동료 작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김동인이 당시 동인지 발행인이면서 동시에 예술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인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았음을 고려해볼 때, 그러한 드센 김동인이 염상섭을 인정했다는 점은 염상섭의 위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염상섭의 소설 중에서 고역스럽게 읽었던 작품인 '삼대'나, '만세전'은 내가 그의 소설 문체에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데, 그나마 삼대는 괜찮았지만 만세전은 상당히 힘들었으며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그러한 어려움이 더했다. 내 개인적인 느낌에 삼대는 길이와 반복되는 갈등으로 인해서 긴장감이 떨어졌던 것이 없지 않아 있었고, 상대적으로 이광수의 '무정'처럼 갈등이 심화되었다가 다시 가라앉는 구조가 아니고 갈등이 계속 내재된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어서 힘들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만세전'이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그 작품이 주는 분위기의 암울함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고백체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중요하기에, 이번에는 이 염상섭의 단편들을 가지고 간단하게 정리를 할 까 한다. 참고로 '만세전'은 중편소설로 분류되는 편인데, 실제로도 단편집인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고 따로 다른 중편이랑 묶어서 염상섭 소설집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걸 보게 될 떄 즈음에나 만세전에 관한 이야기는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2. 작품이 생각보다 읽기 어려웠다. 특히 초기작으로 갈 수록 그 경향이 심했다.

    1) 표본실의 청개구리 : 소설의 해부 도구로 푹푹 찌르던 청개구리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최초의 자연주의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여기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어떤 '서사'를 보여주기 위한 주인공이 아닌, '파탄'나버린 한 지식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서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서사의 흡입력은 다소 떨어질 수는 있으나, 이 영향력이 적은 서사를 통해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현실은 잘 나타나게 되었다

    2) 암야闇夜 : 물질 생활의 노예..라는 표현이 인상깊다.

    3) 제야除夜 : 한 '신여성'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자유 연애 사상도 담겨있고, 한 편 여성에 대한 교육의 중요함도 담겨 있다. 서술자의 고뇌가 이 서사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드러난다. P, K, E등과의 관계, 그리고 유학, 연애에 대한 서술자의 관점 등 '개성'이 드러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E에게 관심이 가서 혼담도 서로 오갔지만 결국에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대구에 살고 있는 어떤 남성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로 인해서 결국 그 집에서 나오게 된다. '연애'와 근대성을 연결시키려 한 염상섭의 특징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적인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린다면 사실 '연애'만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없음에도 사회는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을 소설에서 내재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연애'문제는 '삼대'까지 연결시켰을 때 좀 더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4) E선생 : 'E선생'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 학교의 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E선생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얻고 학생들에게 신임을 얻지만, 체육 선생인 A선생과의 갈등이 빌미가 되어 A선생은 학교에서 사임하게 된다. 이후 E선생은 학생들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보려고 하지만 '시험'이라는 작문 주제로 인해서 학생들과의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사실은 A선생이 이를 계획한것으로 나타나며 교장이 돌아오고 나서 소설은 결말이 난다. 올바른 것을 실천하려는 지식인의 고뇌가 나타나있지만 여기에는 '결혼'의 문제가 여전히 나타나 있다. 앞의 소설 '제야'에서도 결혼문제는 참으로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이 역시 같다. 왠지 작가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소재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면 이 정도로 자주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자꾸 나타나는 점이 신경쓰인다. 주체적인 결혼이 아닌 부모님에 의한 결혼을 싫어하는 서술자가 나타나는 점은 1920년대 소설의 전반적인 특징 중에 하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보편성'이 결혼을 거부했던 사실 자체를 희석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5) 윤전기輪轉機 : 돈이 없어서 '신문회사'를 운영함에도 윤전기를 돌리지 못하는 회사의 모습을 그렸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노동'이기 떄문에 당장 돈 벌기에 급급한 일반 사람들과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자 하는 주인공과의 갈등이 나타난다.

    6) 숙박기宿泊記 : 돈이 없는 주인공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상황에서 적는 '숙박기'가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한 사람의 유랑을 그려내고 있다. '조선인'도 받아 주는지 마는지의 문제를 그려내면서 정체성의 문제를 형상화한다.

    7) 해방邂放의 아들 : '태극기'가 주는 상징성이 강하게 나타난 작품, 일본인으로 행세했던 한 남자가 해방 이후 조선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당시의 갈등 상황을 압축적으로 그려냈다.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는 문제는 해방 전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게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과 같이 살아가려고 했던 '준식'과 같은 인물들이 나타난 것이다.

    8) 양과자갑 : 처음에 제목을 읽을 때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양과자갑'은 과자갑인데 '양'것, 그러니까 서양에서 온 과자갑을 말한다. 여기에서 '양과자갑'은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보배가 영어 번역을 해준 일로 '미스 리'에게 받은 선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과자갑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여기에는 '영문학 학사'이지만 돈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하는 '아버지'와, 해방 후의 모습이 그려졌다. 염상섭의 문학 경향 초반에 있었던 '연애'의 문제는 이 시기에 와서는 이미 '경제적인 문제'로 초점이 바뀌었음을 인지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9) 두 파산破産 : 보통 '두 파산'의 파산을 정신적 파산과 물질적 파산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문방구를 잃어버린 '파산'과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린 파산 이렇게 말이다. 과거 친구였던 두 사람이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는 이 소설에서는 무능한 남자로 나오는 '남편'이 있고, 과거 교육을 했으나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살아가는 '교장'이 있다. 해방 이후 사회상을 그려낸 대표적인 염상섭의 소설 중 하나이다.

    10) 절곡絶穀 : 이 역시 해방 후 소설, '절곡'은 곡을 끊는다는 말이다. 즉 '단식'인데 여기에서의 단식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발적인 단식이고 하나는 타의에 의한 단식이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식'은 할아버지의 자발적 단식과 대조되며 소설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단식하는 중에 나타나는 '혜숙'의 폐병으로 인한 죽음과 그 이후 올라오는 '고기 반찬'이 참으로 상징적이다. 전에 채만식에 말대로 해방은 되었어도 일반 민중들의 삶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11) 얼룩진 시대 풍경 : 이놈의 '섰다'…..갑자기 영화 '타짜'가 생각난다. 경제적인 문제(생활고), 혼혈 사람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가족 갈등이 그려져 있다. 비교적 따뜻하게 마무리 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얼룩진 시대 풍경'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룩이 지지 않은 시대 풍경이란 어떤 것인지 되물어보았지만 좀처럼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과연 해방 이후에 민중들이 삶 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하기는 했던 것인지 염세주의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나 스스로도 그러고만 있다. 읽다보면 이 시기에 작품들이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해서 회의감이 들어서 그렇다.

     

    3. 염상섭의 초기 경향을 '개성과 예술'로 압축한다면 그의 개성은 첫 번째, 연애 문제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나타난다. 삼대의 조상훈과 조덕기, 여기 써놓은 제야, 그리고 암야, E선생까지 다 '연애문제'가 개입한다. 주체적인 연애를 하려고 하지만 할 수 없는 인물일 수도 있고, 아예 타락한 연애를 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또는 연애 자체를 할 마음이 없는 인물들도 있었던 것 같다. 후기에는 역시 '연애'보다는 그 외의 갈등으로 초점이 돌아가는 것 같다.' 두 파산'과 같은 작품은 '경제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이광수, 김동인, 최남선과 함께 '민족주의 문학'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개성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프로문학 또한 예술의 하나로 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나치게 '도구화'된 프로문학은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비판했다고 해야 그가 추구한 '개성과 예술'이라는 논리가 잘 맞는 게 아닐까 싶다. '삼대'는 그의 대표작이면서 당시 사회 상황을 매우 상징적으로 날카롭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인데 그러한 이유는 바로 인물들의 '대표성'과 '상징성'에 있다. 삼대에 대해서는 내가 글을 안쓰고 그 글을 버려버리긴 했지만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삼대 안에는 다양한 시대의 인물 군상이 담겨져 있다. 타락한 교육자, 유복자 집안의 장손, 집안을 일으킨 조부, 사회주의 운동가, 신여성이 될 뻔하였지만 실패한 여성, 가난하지만 별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 사회적인 가치에서 멀어져 타락해버린 사람 등 그 시대에서 나올법한 인물들은 다 나왔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또한 매우 '현실적'이었기에 고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울말'을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작가로서 염상섭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으며 그가 만주에 있던 시절 안수길과 연결되는 점도 내게는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구한말~일제시대, 광복 이후 초기까지는 기자와 작가를 겸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염상섭 또한 그랬으며 특히 염상섭은 '기자'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생활로서 보낸 듯한 흔적들이 많다.
     초기에는 음, E, K, S, P 등 이름을 쓰거나 만들기가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식인'을 일반화 시키기 위해서 그런것인지 영어로 된 이니셜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친구는 귀찮았나보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게 음 염상섭이 자신 만의 문학을 구축해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오히려 해방 이후 소설에서는 저런 영어 이니셜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일본 유학의 영향이 매우 크던 초기 작품을 벗어나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런 특징은 염상섭 문학의 시대를 구분하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4. 사실은 이 글에 중편 '만세전'과 장편 '취우'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세전은 전에 읽은 적이 있고 취우 역시 전에 읽은 적이 있으며 두 작품 모두 염상섭을 논할 때 꼭 등장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글을 쓸 목적이라면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는데 문제는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만세전까지는 읽을 생각이 있으니 나중에 추가할 수 있을 것 같고....취우는 장편이니만큼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읽던지 말던지 결정해야겠다. 여담으로 염상섭의 호 '횡보'가 술을 엄청나게 마셔서 나온 호라는 점이 내게는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짐작케 한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여자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술은 좋아했다는 것이 다행인건지 다행이지 않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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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염상섭문학연구(1987), 권영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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