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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원 중단편선, '유예'외 9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책/한국문학 2016. 8. 29. 09:57
1. 오상원의 작품들 중에서는 역시 '유예'가 단연 으뜸입니다. 서술자의 서술 기법 중 하나인 '의식의 흐름 기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소설을 고를 때 우리는 보통 이상의 '날개'와 오상원의 '유예'를 고르는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예를 읽고는 하지만, 사실 '유예'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 기법에 주목하기도 하면서 많은 이들은 '유예'라는 소설 자체가 멋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합니다. 단편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제대로 잘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막 이유 없이 또는 맥락 없이 써내려가기만 한다면 그건 아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같은 소설이 될 것입니다. 박태원의 '구보씨'는 주변(경성)에 보이는 것들을 바탕으로 의식을 써내려가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살펴 볼 작품은 '황선지대', '유예', '균열', '죽어살이', '모반', '부동기', '보수', '현실', '훈장', '실기'입니다.
2.
1) 황선지대 : 중편입니다. 책의 분량으로는 약 150페이지 가량의 길이입니다. '황선'은 노란 선이죠, 머리가 정말 좋다면 이 '황선'만 보고도 어떤 걸 떠올릴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황선 지대'는 미군 기지를 가리킵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군'의 군 시설은 한국의 군 기지 색과 약간 다르죠. 여전히 'yellow area'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황선 기지'내의 창고에 있는 물품들을 몰래 꺼내와서 그걸 밑천으로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매춘'을 바탕으로 동생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남매도 있고, 이러한 '매춘'을 하는 여자들을 자신의 직원으로 둔 남자도 있습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도 있고요. 이 시기에 얼마만큼이나 미군기지의 물건을 훔치는 지에 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게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인지는 알길이 없지만, 당시 많은 소설들이 미군 물자를 가지고 생활하던 생활상은 모두가 그려냈기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물자'를 빼내와서 그걸 가지고 한바탕 하겠다는 생각은 허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애석하게도, 굴을 거의 다 파가는 시점에서 미군들이 물자를 창고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바람에, 뚫고 올라간 그 창고는 텅 빈 공간으로 마주하게 되며 웃음을 허망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여기에는 인물들의 심리가 매우 다층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곰아저씨의 심리, 어린 소년의 심리, 정윤의 심리, 어린 소년의 누나의 심리 등 다양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데, '아이'의 시선은 이 사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과연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2) 유예 : 군인이었지만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한 작품입니다. 오상원은 이 '유예'로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이 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정말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의식'은 날개의 '의식'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히 '개연성'있는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란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한편 삶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흰 눈'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상당히 머릿속에 선명할 만큼, '의식의 흐름 기법'임에도 그림을 그리듯이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합니다.
3) 균열 : 오상원이 쓴 단편들의 특성 중 하나는 '우익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점을 고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대개 우익단체들은 어떤 사람들을 '암살'하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인공은 그 단체의 일원에 해당하고요. 이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작품에서 오상원이 그린 '주인공'들은 '살인'을 고민하는 주인공입니다. 하나를 위해서 인간을 버리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4) 죽어살이 : 개인의 심리가 매우 진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며 '유예'와 비슷한 의식의 흐름 기법 구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 신기한 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오상원의 '단편'들 중 많은 작품들이 '죽음'처럼 보이는 장면을 그리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 유예처럼 비슷한 결말 구조를 띄고 있었구요.
5) 모반 : 제가 '오상원'하면 떠오르는 두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유예', 다른 하나는 '모반'인데, 이 '모반'이라는 작품에서는 우익단체에 들어갔다가 이를 저버리는 주인공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모반'에 해당하죠. '어머니'의 죽음이 소녀와 무고한 청년의 '어머니'의 병환과 겹치면서 반성하는 주인공을 그립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하나의 인간을 죽임으로써 다른 하나를 얻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간을 위한 삶'을 찾아나섭니다. '세모진 얼굴'이라는 묘사는 참으로 기가 막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정확한 느낌의 '인물 묘사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복잡한 서술이 아님에도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였다고 생각합니다.
6) 부동기 : 형과 나, 그리고 누나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여기에서 '누나'는 다른 사람과의 매춘을 통해서 생활을 하고, 형은 아버지의 행동들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도 '영식'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어린 아이의 시선'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영식'은 서술자가 아닌 초점 화자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을 그리는 그 순간순간에는 영식이 빠지지 않습니다.
7) 보수 : 이 역시 미군의 물자를 빼먹어서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 정도라면 이 당시 미군 물품들을 뺴오는 것은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자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묘한 소설입니다. 이 역시 단편.
8) 현실 : 전쟁 속에서의 참혹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은 전쟁의 군인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촛불 끄듯이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선임하사와 신 이등병의 관계 변화와, 민간인들을 죽이는 것에 대한 갈등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냅니다. 제목이 주는 느낌 그대로 '현실'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9) 훈장 : '훈장'은 사실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것인데, 소설속에서 볼 수 있는 '훈장'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군인도 결국 전쟁의 피해자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훈장을 받았지만 실 생활은 전혀 '훈장'을 받고도 나아지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훈장이 모든 것을 담보할 수 없음을,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훈장'받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말입니다.
10) 실기失記 :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한자를 일부러 더해놓은 이유는, '실기', 다시 말해서 '잃어버림'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인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하고, 시위대, 혁명하는 놀이를 합니다. 이를 두고서 어른들은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한탄하죠. 그러다가 아이들은 시내로 나오는 데 다양한 군상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실제 시위를 보고, 군인들을 봅니다. 그 상황에서 '길을 잃은'아이들이 되는 것이죠. 사실 '아이들'로 우화를 해놓았는데, 여기에서의 아이들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어른들은 길을 잃었다'고 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만큼 가치관의 혼란이 난무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3. 오상원의 소설에서는 '사회상'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전쟁문학으로서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이죠. 여기에는 '소시민'의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역사속의 개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그리는 방법으로 작가는 '의식의 흐름'을 강자주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고, 이는 당 시대의 소설들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은 정말 일관적입니다. 전쟁의 폭력과 참혹함, 무자비함과 비 인간성들은 드러나지만, 사실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상원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들과 그 '가치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분명 배울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