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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을 읽고, 무라타 사야카 지음책/외국소설 2017. 1. 1. 22:25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 하지만 나를 쫓아내면 더욱더 사람들은 당신을 재판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계속 먹일 수밖에 없어요."
- 시라하씨가 게이코(후루쿠라)에게 보통 인간들의 보통 인간이 아닌 인간에 대한 재판에 대해 말하며, p.146
0. 서론
아주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을 산 건 12월 초였지만 어쩌다보니 책 읽기를 미루고 미루고 있었다가 집에 가는 김에 몇 권 가져갔었고, 그 덕에 책을 좀 읽었다. 책이 두껍지 않고 크지 않은 데다가 소설이 어렵게 읽히는 소설도 아니었어서 2시간이 조금 덜 걸려서 다 읽었다. 광주에서 고흥 녹동에 가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이어 읽어왔던 소설 작품들과 다르게 이 소설은 나름대로 '중편'에 해당한다는 점, 최근에 읽었던 대부분의 한국문학작품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거시적인 사회의 영향이 드러나는 듯 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읽었다.
1. 플롯
이 이야기는 굳이 따지자면 '갈등구조'가 내면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로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의 내면적 갈등은 다른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문학의 작품들 중 가장 비슷한 것과 비교하라고 누가 묻는다면, 당장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이상의 '날개'를 언급할 수 있다. 잠시 이상의 '날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인 '나'는 사회에 편입되어 살아가지 못하고 매춘을 업으로 삼는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처지에 속한다. 그런대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며 기생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 아내가 자신에게 먹이던 약이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달린'이라는 걸 알게 되고, 정오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어깨 죽지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으며 소설은 끝이 난다. 정리해보면 '나'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편의점 인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았던 '나'는 편의점의 직원이 되고 나서 '보통의 인간'들 처럼 삶을 살아가는 척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자신은 보통 인간이 아닌 '편의점'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에 가까운 삶을 보낸다. 그러던 중 '혼활'을 위해 편의점에 일시적으로 취직한 시라하 씨를 만나며 진정한 '편의점 점원'으로 거듭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날개'는 1인칭 시점이며 주인공인 '나'가 모든 것을 서술해서 '나'의 시각에서 드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독자가 파악할 수 있는 한 편, '편의점 인간'에서는 3인칭이지만 '게이코'의 시각으로 소설을 전개함으로서 사실상 '게이코 = 서술자'인 상황에서 이야기를 이해하게 된다. 한 편, 이상의 '날개'에서는 돈을 모아둔 단지를 버려버리는 행위를 통해 당시 물질 문명 사회 및 자본주의 가치관 등을 비판했다면, '편의점 인간'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 편의점을 잘 운영하기 위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보통 사람을 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발언들로 규격화 되어버린 삶, 표준화 되어버린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이상, '날개' - 돈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 평범함(보통) / 표준화
주인공인 '나'는 아내가 준 약이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달린'인 것을 우연히 알게 되고, 이후 아내의 행동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며 이미 어긋나 있는 결혼 생활에 완벽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게이코(후쿠루라)의 삶이 '시라하'씨를 만나며 '보통 인간'이 되어보려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에 변화가 올 뻔 했지만,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며 규격화 해놓은 자신의 삶을 그리워 한다.
집안의 경제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나'는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돌아와 아내에게 혼이 나지만, 이 후 다시 나가며,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다른 아이'는 커서도 보통 사람이 되지 못했으며, 이런 '보통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다양한 이유를 마련하며 산다.
2. 주인공의 특이성
소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인 '게이코'는 어린 시절에 아래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1) 어떤 남자아이가 여자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두고서 친구들이 그만하라고 자꾸 말하자 게이코는 '삽'을 들어서 남자아이의 머리를 가격한다.
2) 어린 시절 공원에 죽어있던 '새'를 발견하고 나서, 이 '새'를 가지고 '꼬치 구이'를 먹고 싶어하는 아빠와 같이 꼬치 구이를 해먹자고 한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은 '게이코'가 지닌 특수성을 의미하는 데, 이러한 생각을 가진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내가 추론할 수도 없고 그냥 작가의 '역량'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으니 넘어가더라도, 위와 같은 상황처럼 '주인공'의 특이성은 주인공의 말대로 이후 '말을 최소한으로 하는 생활'을 통해서 점차 가려지게 된다. 그러다가 시작한 '편의점 일'을 통해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보통 사람과 비슷한 행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고, 불가능한 결말이 난다. 본인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애초에 그랬었다면, 타인과의 교감이 가능했었다면 이런식의 설정이 불가능하며 '변화하는 입체적 주인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타인과의 교감이 불가능하고, 먹는 것 또한 단순히 재료들을 '삶아서'먹는 특이함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편의점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톱니바퀴적 삶'에 대해서 의미를 느낀다는 것, 편의점이 잘 돌아가기 위한 대화가 아닌 다른 대화에 대해서는 '이상함'을 느낀다는 것에서 이 주인공은 특이함을 보이고 있다. 내가 기억나는 소설 속 주인공을 몇 명 예로 들어보면 이러한 '차이'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레빈'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 살아갔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과, 농부들과의 대화에서 보람을 느꼈었다. 롤리타의 주인공 중 하나인 험버트는 '딸'과의 관계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은 약간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 인간'에서의 주인공은 개인의 목표와 자신이 느끼는 행복함이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냐고 하기에는 '편의점'에서 얻는 행복이 '게이코'다운 행복이기에 어느 정도는 개인적이다.
3. 이 소설에서 생각해 볼 점
1) 보통 사람
사실 지금은 '졸업'한 신분이긴 하지만, 유독 한국교원대학교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에 대한 재판이 심하다고 느꼈었다. 그러한 예로는 1학년 때 머리가 아주 길던 시절 사람들의 부담스러울 정도의 '머리 언제 자르냐'는 등의 질문이나, 나의 패션에 대한 질문들, 예를 들면 나는 그냥 입고 싶어서 입은 옷조차도 그들에게는 어떠한 '의도'가 생각나게 만들어서 '오늘 어디가?' 등의 질문을 받았던 일들, '이 학교는 교사 될 사람만 와야 하는 곳이다.' 등의 발언 등 너무 다양한 일들을 들 수 있다. 처음에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분노를 느꼈으나 차츰 분노는 사라지고, 그들을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보통 사람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 학교의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는 보수적인 사람'의 유형에 속하는 보통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게이코'의 생각에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현대 사회를, 오늘날의 사회를 '포스트 모더니즘'이 사회라고 보통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성의 시대라는 점인데, 이 다양성의 시대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그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같이 유독 단체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혼자 튀는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점차 발전해 나가야 할 부분 중에 하나이다.
2) 자본주의의 부속품
이상의 '날개'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형태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다면, '편의점 인간'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실현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비판하는 형태로 소설이 전개된다. '게이코'가 가장 기쁨을 느끼는 것은 '편의점 소리'를 집안에서 들을 때, 또는 편의점에서 '프로'다운 모습을 보일 때, 편의점의 점장이 오늘 세일 메뉴 목표 개수를 언급하며 이를 꼭 달성해야한다고 강조할 때 등이다. 즉 '게이코'에게는 편의점을 잘 운영하는 것이 '자아 실현'의 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자아 실현은 '내가 하고 싶어서'이라기 보다는 19년 동안 해왔던 일이기에, 그리고 유일하게 '보통 사람'처럼 일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사실 '게이코'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특별한 고민을 하지 않은 주인공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꿈을 갖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리고 그게 일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어진 역할에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렇기에 이 주인공이 소설의 결말에서 우연히 편의점에 들어가 '나는 반드시 편의점 일을 해야만 한다'라고 느끼는 부분은 게이코에게 있어 '자아 실현'임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완벽할 정도로 '자본주의'의 한 일부분이 되어가는 과정에 속한다.
3) 시라하
혼인 활동을 위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시라하씨는 게이코와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바로 그 공통점이다. 동시에 이 사람은 '게이코'를 이용해보려고 한다. 또한 '게이코'를 통해서 보통 사람 행세를 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의 재판'이 짜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라하의 선택은 실패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을 바탕으로 '보통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정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라하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분명 그는 '게이코'에게서 '재판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코'를 두고서 희망이라고 생각했을 지 모르지만, 게이코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보통 사람'이 될 수도 없었다.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일 뿐, 그러니 시라하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혼 계획'을 포함한 다양한 계획들은 실패했다. 단적으로 게이코는 '자본주의의 부속품'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생기를 잃어가다가, 우연히 들어간 편의점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아버리기 때문이다. 즉 '보통 사람'처럼 취직하는 건 실패하는 것을 통해 '시라하'의 시도는 실패했음을 알려준다.
4) 편의점과 친구 모임
편의점을 이용하던 '할머니 손님'의 말처럼, 소설 속 편의점은 19년 전이랑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 곳이다. 이 말은 즉,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계속 달라져 왔음에도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느낌'을 제공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즉 '편의점'은 이 소설에서 단순히 '편의점'으로 있는 것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나타난다고 해석해야 한다. 게이코의 '친구 모임' 역시 결국에는 '보통 사람들이 재판'을 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리며, 이 역시 '나와 같아 져라'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되는 모임으로 바뀌어 버린다.
4. 정리하며.
'주인공'인 게이코는 자신과는 다른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게이코의 여동생은 '게이코'가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에 공감하지 못한다. 이러한 관계는 현대인들의 '단절'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 속에는 현대 사회의 구조가 매우 깊숙히 침투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연 보통 사람이 아닌,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사실 '보통 사람'이 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보통 사람과는 거리도 멀고, 나와 비슷한 사람 찾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될 생각은 전혀 없다. '보통 사람 행세'를 해볼 생각이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건 시도해보고는 싶으나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채로 살아가는 게 맞다. 나는 '나' 자체로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의미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며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나는 '나' 다울 때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간만에 포스트 모더니즘 적인 소설을 읽었더니 머리속이 웅 하는 것 같다. 이런 소설은 참 좋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 다음에는 소설 책이 아닌 다른 책으로 글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