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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고
    영화 2017. 4. 9. 00:30

    -1. 문제작

    이 영화는 문제작이다. 영화 배우 김민희와 영화 감독 홍상수 간의 불륜(사랑)이 터지면서 나온 영화이며, 자전적인 내용으로 해석할 여지가 매우 많기 때문에 문제작이다. 홍상수는 아직 이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희와의 사랑은 공표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실제의 불륜 이야기를 보게 된다. 또한, 도대체 홍상수의 부인은 무슨 죄냐는 이야기를 한다. 즉 '처자식'에 대해 미안하지도 않느냐는 말이다. 이는 사회 윤리와 결부되고, 우리 사회의 정서상 잘 납득하기 힘든 일에 속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사회 정서와는 별개로 영화가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이런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모든 '예술 작품'이 결국 자기 표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술 작품이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자신의 삶이 일정부분 담겨 있다고 본다. 나의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 영화 역시 자기 표현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보았다.


    0. 그래서,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영화를 봤다. 일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생각했던 건 크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자기 합리화/연민이다. 내 생각보다는 '자기 연민' 또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모습이 적었다. 사실 그런 부분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 보고 좀 불편한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의외로 그러지가 않아서 그냥 쭉 볼 수 있었다. 두번째는, 김민희가 연기를 할 것인가 자신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의문은 반 정도만 해답을 얻었다.

    영화를 보면서 메모한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을 좀 정리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글에 담겨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그런게 아니더라도 읽을 수는 있을텐데, 이번 영화만큼은 좀 그게 걱정된다. 워낙 내용이 민감해서.


    1. '혼자'

    제목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인데, 정작 해변가의 밤을 거니는 모습은 함부르크에서 한 번만 나타난다. 나머지 해변은 다 '낮'에만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영희(김민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혼자'있는 느낌을 뿜어낸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혼자'는 시공간적으로 혼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혼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영화 내내 영희는 '혼자'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함부르크에서는 언니 그녀가 혼자 있는 시간은 카페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때, 화장실에서 씻을 때, 그리고 강릉에서 영화를 보던 때 뿐이다. 사실 '김민희'가 실제로 불륜에 빠져 있지 않은 주인공이라고 가정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지닌 '개별적인 배우'로 인식할 수 있는 눈이 주어진다면, 누구나도 주인공 '영희'의 '외로움'에 빠져들만큼, 그녀의 '혼자'라는 느낌은 시선과 내 감정들을 압도했다. 정말 근원적인 문제, 누군가랑 같이 있더라도 우리는 자주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을 받는데, 영희는 그걸 영화 내내 뿜어낸다. 술을 마실 때에도, 누군가랑 이야기를 할 때에도, 해변에 있을 때는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번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인 장면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영희가 항상 혼자라고 느꼈다. 그것도 해변에 가까운 어딘가에서 혼자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혼자'라는 느낌을 '겨울바다'라는 시공간적 배경도 한 몫 거든다. 1부(함부르크)에서는 그 사람이 온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한 기다림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도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할 지 잘 모르겠다는 불확실함 때문이고, 2부에서는 시간이 흘러 그게 '과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남자는 다 그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술자리에서,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바닷가에 누워서 드러낸다.


    2. 몸부림

    영희의 모습들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몸부림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녀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친다. 1부인 함부르크에서의 '영희'는 남편이랑 10년 동안 각방 생활을 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역시 욕망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2부에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감정들을 불안하게 털어놓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안하게'라는 말은 영희의 상태가 불안하다기 보다는, 방황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 마땅한 정처가 없는 영희에게 있어서, 서울은 더 이상 있을만한 공간은 아니고, 바닷가가 보이는 '강릉'이 배경으로 드러난다는 점은 바로 이 '몸부림'을 치기에 가장 적당한,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들과 만날 일이 적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강릉은 도피의 공간이면서 그녀가 '혼자' 몸부림 치기에 가장 적당한 공간이다.
    함부르크에서 만난 서점의 주인은 이 부분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다. '암에 걸렸지만 의연하게 살고 있다'는 지영 언니의 설명은, 사실은 '영희'에게 해주는 일종의 응원이다. 불륜을 하고 있어서 함부르크로 와버린 영희에게 해주는 응원 말이다. 2부인 강릉에서는, 천우 선배나 준희 언니, 명수 선배와의 이야기들 속에서 영희에 대한 응원이 드러난다. '여자 다워졌다', '더 예뻐졌다', '성숙해졌다', '이대로 일을 그만두기에는 재능이 너무 아깝다'등 말이다. 그러한 모든 말들을 듣고도 영희는 처절하게 '혼자'임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다에 누워있는 것이다.


    3. 불륜,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불륜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홍상수와 김민희 사이의 불륜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영화니까, 나는 영화 자체에 초점을 두려고 했다. 영화에서 '불륜'은 '실제'로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이 없다. 하물며 영희가 자신이 사랑했던 감독과 다시 만나는 장면마저도, 영희가 바닷가에 누워서 꾼 '꿈'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불륜으로 인해서 겪어야하는, 짊어져야하는 많은 감정들을 영희는 아주 단순하게, 동시에 깊이 있게 드러낸다. 김민희가 나왔던 본 영화중에 내가 본 건 '연애의 온도'뿐이었으니, 이 배우의 연기력이 매우 뛰어나다, 대단하다와 같은 평가를 하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실체가 구체적이지 않은 그 '불륜'에 대한 감정을 매우 깊이 있게 드러낸다.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희의 감정에서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그게 다른이들에게는 '불륜'이라고 불려질 지라도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4. 사랑할 자격

    영희는 준희 언니와 명수 선배를 포함한 술자리에서, '사랑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희망을 붙잡고 살아간다'고 하며, 이런 삶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이에 명수의 여자친구는 사랑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고 반론한다. 사랑은 애초에 그렇게 부족한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론하는 것이다. 영희는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지만, '잘 모르는 것 같으면 조용히 있으라'고만 답한다. 영희도 한 때는 부족한 사람으로서 한 영화감독과 사랑이라는 가면의 불륜을 저질렀지만, 그게 지금은 상처가 되었고 과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말하는, '사랑할 자격도 없는 놈들이 사랑을 하려고 한다'는 자신에 대한 조소이기도 하며, 타인에 대한 자신의 절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제일 생각이 많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사랑할 자격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그런 것에 대해서 고민해본적이 없다. 사랑할 자격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보니까, '사랑할 자격'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누구에게 사랑을 하기 이전에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가 되묻게 된다.


    5. 영화라는 이름의 자기 표현

    이 영화를 영화로 봐야하나,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논픽션으로 봐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나는 이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기로 했다. 비슷한 경우로는 신경숙의 '외딴방'과 같은 소설이 있다. 이 영화를 '영화'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방어'의 논리가 주로 드러나기 보다는, 영희가 느끼는 '혼자라는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있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그녀의 '혼자인 모습'들은 이 영화를 '자기 표현'이라는 예술 방법으로 보면서 동시에, 예술로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전작보다 더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혼자 걸어가며 슬픔을 이겨내는 장면',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감독의 표현 등이 바로 그 예이다. 나는 그중 '욕망과 사랑'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했다. 영화 속 영희의 꿈에서 나타난 감독은 후회를 한다. 영희의 바람이었다고 보지만, 감독은 어쨌든 후회하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영희' 또한 '기다리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후회하지만 받아들일려고 절규한다. 그러나 현실 사회의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김민희가 함부르크에서 정말 기다렸을까? 소식 없는 홍상수를 기다렸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들은 지금 둘의 사랑을 공표하였으니까 말이다.


    6. 마치며

    원래 맥주를 안마셨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맥주가 좀 맛있어졌다는 영희의 이야기는 방황을 보여주며 불확실한 전망으로 끝낸다는 점에서 관조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는 이 사랑을 '긍정적'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뭔가 사랑과 욕망에 대한 홍상수의 '자기 이야기'랄까.

    나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행위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사회 윤리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사랑 자체가 저주받아야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 둘에게도 가혹한 일이다. 그 둘은 자신들의 사랑이 '가혹할 것이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시작했을 것 같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했어'라고 내 가치관으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 제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큰 실수에 해당한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불륜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륜 행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 또한 아닐 뿐이다.

    내일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홍상수의 다른, 최근 영화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려고 한다. 그의 영화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이번 불륜 사건이 그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게 만들어준 것 같다. 기대반 걱정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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