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고.영화 2017. 5. 31. 00:11
짦은 리뷰를 써야겠다. 내게는 홍상수 감독의 3번째 작품이지만, 내가 본 3작품('밤의 해변에서 혼자',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중에서는 시기적으로 가장 예전 작품에 해당한다. 그래봐야 2015년이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감독 '함춘수'를 '홍상수'로 보고, '희정'을 김민희로 본다면 이건 실제 불륜이야기의 '극영화화'이겠지만, 난 이번에도 그렇게 보지 않기로 했다.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느껴서이다. 매편 홍상수 감독은 즉흥적인 영화를 만든다. 시나리오 정해진 것 없이, 제목 정해진 것 없이 영화를 찍는다. 그러니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연속에서 나온 필연적인 서사와 구성'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삶에서의 만약을 전제로 하는 영화다. 여기에서 '만약'이라는 건,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를 가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내가 영화를 보고난 뒤에 든 생각이고, 이 영화를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감독의 작품 구상에 감탄을 느꼈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두 개의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느낌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독특한 실험 형식이다. 비슷한 장소(수원화성, 찻집, 횟집, 친구네 찻집, 희정의 집까지 가는 길)를 두고서 다른 서사 전개가 일어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서사 전개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큰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은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식으로든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여럿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나도 그랬었고. 감독은 이러한 욕망을 매우 잘 녹여냈다고 본다. 게다가, 홍상수 영화를 보다보면, 이렇게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상당히 일상적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만약'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은, 홍상수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늘 찻집과 술자리, 그리고 '대화'를 바탕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 많은 대화 속에서의 갈등과 화합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고 본다.
두 편의 이야기에서 앵글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그 점에서 약간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첫 편에서는 분명 함춘수의 생각이 독백으로 중간중간에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 편에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필요가 없는 것인지, 필요가 있는데도 그냥 들려주지 않는 것인지 도통 잘 판단이 안선다. 다만 생각해보면 1편에서도 뒤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특히 '술마시는 장면'부터는 독백이 안나왔다. 게다가 첫 편에서는 희정의 친구 술자리에서 생긴 갈등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시사회의 사회자와도 사이가 좋지 않으나, 두 번째 편에서는 밤거리에서 희정과 같이 걷고 이야기를 하고 괜찮았는지, 시사회 사회자와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희정은 시사회가 끝난 후 함춘수를 찾아와 영화까지 보고 간다. 그렇게 둘은 2번째 이야기에서는 '화합'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지금도 맞고 그때 역시 맞은 게 아닐까 싶다. 어느때나 사람은 자기 마음에 조금만 안들어도 그게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별히 그때라고해서, 그리고 지금이라고 해서 어느 것이 더 맞고 틀린 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나는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럴 예정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꼭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정재영과 김민희의 횟집 안 술자리 연기는 이제것 내가 본 술자리 연기 중에 단연 으뜸인 것 같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의 술자리 연기보다 더 뛰어나다고 느꼈다. 다만 영화속에서 드러난 '솔직한 난도질과 나타난 기혼자'와 '듣기 좋은 말 뒤에 밝혀진 기혼자'중 그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선뜻 정하지 못하겠다. 둘 다 나는 적당히 괜찮았다고 본다. 다만 그 둘을 잘 조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겠다.
P.S.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이 떠오른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고 매 순간순간이 '한 번 뿐인 선택'이라고 하던데, 영화의 내용과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