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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rida Project'(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영화 2018. 3. 18. 13:39
포스터 자체는 매우 화사하고 밝게 나와있지만, 영화의 내용은 실상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 웃었던 적은 여러번 있긴 한데, 그 웃음들은 사실상 순간순간의 웃음들에 불과할 뿐, 영화의 내용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Florida Project'는 디즈니 랜드의 예전 이름이기도 하면서, 거주지원사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고 일전에 영화 제작사의 한 일원이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플로리다'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작품이라는 걸 인지하고 볼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미처 알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스키마가 전혀 없이 영화를 보다 보니 생기는 일. 슬프다는 평들이 조금 있었어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슬픈 장면인지 고민하면서 보았는데, 대부분의 장면이 다 슬펐다고 봐야할 것 같다.
영화의 내용은 디즈니랜드가 있는 '플로리다'에서 모텔에 거주하는 빈곤층의 일상이다. 그 빈곤층의 일상을 '어린이'인 '무니'의 눈으로 그려낸다는 게 이 영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모텔에서 거주하는 비용은 '집'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지만 당장 '묵돈'이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주거지를 얻을 수 없는 주거 빈곤층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이런 주거 빈곤층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영화이다.
영화의 상호텍스트성 측면에서, 나는 채만식의 치숙이 떠오르는 부분이 좀 많았다. 채만식의 '치숙'에서 서술자인 '나'는 어린이의 눈으로 본 일제 시대의 비극적인 현실들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서의 '나'는 타락했다는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는데, 그 '타락'의 지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단순하게 현실을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맥락을 같이한다. '무니'는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순전히 어린이일 뿐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고, 아이패드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친구들과 다른 장소들을 같이 놀러가는 것에 기뻐하는 어린이이다. 게다가 자신이 '퓨처랜드'라는 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주거 생활을 하는 지 이유를 알지 못하며, 빵을 나눠주러 오는 구호단체의 빵들을 받는 것에 있어서도 별 느낌을 받지 못한다. 즉, 총체적으로 '아이'의 시선에서 처리된 영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치숙'의 '나'가 도대체 왜 삼촌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돈도 못벌고 병만 얻어가지고 오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다만 '치숙의 나'는 의문을 가지지만, '무니'와 '스쿠티'는 그다지 의문을 갖지 않는 다는 것 정도.
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도대체 '이런 소재'가 영화화 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었는데, 그 부분은 나도 타당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식의 극영화를 나도 본 적이 없다보니까, 보는 내내 웃긴 장면에서도 웃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웃으면 안되는 부분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단어나 문장 표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히 웃긴 장면인데, 그 이면에 담겨져 있는 부분에는 웃음을 취할 수 없는, 문학적 표현 기법을 예로 들자면 '해학'같은 웃음이 너무 많았다. 동정적인 웃음을 자꾸 나도 모르게 짓고 있는 영화의 내용은 21세기 디즈니랜드 앞 빈곤층 버전의 '산골 나그네'(김유정)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디즈니랜드가 매우 가깝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디즈니 랜드는 단 한 번만 나타나고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디즈니랜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파리'같은 표현이 나타난다는 것에서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보고 마냥 웃기만은 힘든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