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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리나 part.2책/외국소설 2013. 2. 2. 12:33
2권(3,4,5부)의 주된 내용은 크게 '니콜라이와 레빈', '레빈과 키티', '안나와 브론스키, 그리고 알렉산드로비치'라고 할 수 있겠다.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돌리는 사이가 굉장히 좋아지면서 이 책의 '비극성'에서 좀 멀어지고 '행복해졌다'고 하고 싶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는 시골의 생활이 있었으며(레빈과 돌리) 종교적 힘에 대한 귀의가 있었고(키티와 알렉산드로비치), 죽음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레빈과 키티, 그리고 니콜라이) 불륜에 대한 깊은 상처의 나눔(돌리와 알렉산드로비치)가 존재했다. 수많은 주제들을 심도있게 다루며 톨스토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그려왔던 당시 '러시아 사회'를 집약적으로 이 소설속에서 재현하려 했던게 아니었을까, 하며 part.2를 시작한다.
콘스탄틴 레빈의 형은 두명이 있는데 한명은 니콜라이 레빈이고 다른한명은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이다. 니콜라이 레빈의 모습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인데 니콜라이가 3,4,5부에서 등장할때 그는 어느정도 죽음을 예감에 둔듯한 모습을 하면서 코스챠(콘스탄틴)에게 나타나지만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여전히 팔팔하고 건강하고 똑똑한 남자로 나타난다. 결국 니콜라이는 '죽음'을 맞이하며 키티와 레빈에게 더 완벽히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떠나는것과 다르게(죽음으로서 이를 가능케 했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레빈 자신에게 '자유'에 대한 바람과 자신의 삶과 일(농부들과 같이 하루종일 풀만베거나, 지역 농축업 조합들을 통한 집단영농등 그가 생각해왔던 '새로운 농업'에 관한 행동을 말한다.)을 결혼한 후에는 관심을 쏟기가 힘들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총각파티와 비슷한걸 하고 레빈의 결혼식에서 그를 지켜본다.
레빈의 '농업'에 대한 열정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꿋꿋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기만 하면 돼. 그러면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될거야.'레빈은 생각했다. '일하고 노력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이 일은 나의 개인적 일이 아니라 공익에 관한 문제야. 농업전체, 무엇보다 민중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어야만 해. 빈곤대신 만인의 부와 만족이, 적의 대신 화합과 이해의 일치가 필요해. 한마디로 이것은 무혈의 혁명이야. 처음에는 우리 군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현과 러시아, 나아가 전세계로 확산될 대 혁명이 될거야. 왜냐하면 올바른 사상은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래, 이것이야 말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이지.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코스챠 레빈이라는것, 검은 넥타이를 매고 무도회에 갔다가 쉐르바츠카야에게 거절을 당한 후 자신을 가엾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던 바로 그 사내라는것, 이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프랭클린도 나처럼 온전히 믿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해.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 하지만 그에게도 분명 그만의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가 있었을 거야. 그가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그가 이렇듯, 자신의 견해를 내보이면서 생각을 말하는 부분이 난 매우 인상적이며 감동적이었다. 동시에 그가 '농업'이라는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과 농업에 두는 가치의 크기가 얼마나 큰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개 내가 알고있는 농업이라면 그냥 모내기를 하고 쌀이 나오면 그걸 사회에 되파는 순전히 '물질주의'개념에서만 접근하던것이었다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당시 러시아 사회의 '농업'에 대한 시작을 어느정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다른나라보다 산업화가 늦었던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 톨스토이의 전집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가 어떤 사상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서 레빈이 '톨스토이'의 생각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모르겠지만 읽었던 여러개의 논문에 따르면 레빈은 톨스토이의 분신이라고 봐도 무방할것 같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불쌍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불쌍한 남자다. 사실 그가 '일'에 몰두한건 맞지만 '아내'에게 소흘한건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는 행위도 절대 하지 않았고 가족과 결혼에 대한 성실한 의무를 이행했다. 그런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아내인 '안나'가 의무를 거부하고 깨뜨리며 위선적인 행동으로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져버리는건 이 소설의 '비극성'을 한층 강화시킨다. 주인공이, 책의 제목에 걸려있는 인물이 불륜에 빠진다......그건 즉 그녀의 남편이 매우 고통받을 것임을 알려준다. 경마장에서 마차를 타고오며 처음 안나의 고백을 들었을때부터 알렉세이는 자신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고 그로인해 자신이 매우 고통받고 싶지 않아도 고통받음을 그에 대해 매우 상처받고 힘들어했음을 난 알 수 있었다. 그랬던 그가 '종교적 승화'로 평온한 자신의 마음을 되찾은건 나로서는 기쁘면서 안도감이 들게 되는 사건이었다. 안나가 해산하고나서 병이 걸려 아픈와중에 브론스키도 찾아오게 되는데 브론스키가 떠나기 직전에 알렉산드로비치가 그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용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당신이 꼭 들어야 합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난 나 자신을 이끌었고 앞으로도 이끌 감정에 관해 당신에게 설명해야만 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혼을 결심했고 이미 그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숨기없이 말하겠습니다. 소송 절차를 밟기 시작했을 때, 난 주저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당신에게 고백하지요. 난 당신과 아내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전보를 받은 후, 난 여전히 똑같은 감정을 품고서 이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할까요. 난 그녀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까 말까 망설이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난 아내를 본 후 그녀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행복이 내게 나의 임무를 보여주었습니다. 난 완전히 용서했습니다. 나는 다른 뺨까지 내밀고 싶습니다. 내게서 카프탄을 앗아 가는 사람에게 루바슈카까지 건네주고 싶습니다. 난 하느님에게 그저 그분이 내게서 용서의 행복을 빼앗지 않기만 기도할 뿐입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맑고 평온한 시선이 브론스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당신은 나를 진흙탕 속에 짓밟을 수 있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난 아내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당신에게도 결코 비난의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내 의무는 내 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습니다. 난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면, 당신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떠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어섰다. 그러자 흐느낌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브론스키는 일어나 구부정한 자세로 흘깃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압도되었다. 그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자신의 세계관으로는 아예 도달할 수도 없는 지고한 무언가라고 느꼈다.
종교적 승화가 얼마나 대단한것임을, 알렉세이가 고통을 일순간이나마 극복하면서 안나와 브론스키를 용서할때의 그 대단함과 경이로움은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내가 마치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중 대부분이 바로 이 '종교'를 통해서 승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가능성을 주었고, 나중에 결혼을 했을때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데 있어 '종교'가 상당히 영향력있는 '무엇'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불쌍했던 두번째 이유는 책의 2권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의 과거이야기가 짤막하게나마 나오는 부분때문이다. 그가 어렸을때 고아로 자랐으며(아버지는 안보이고 어머니는 일찍돌아가시고, 형은 자신이 결혼한 직후 죽고) 카레닌의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 양육했다는것,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고 안나의 명예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의무를 지키기위해 청혼을 해야한다는것 그리고 안나에게 느낀 애착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진심어린 관계'를 바라는 마지막욕구가 사라졌다는것을 보고나니 그의 배경과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알렉세이의 관대함으로 인해서 안나와 브론스키는 더욱더 죄책감을 가지고 행동하게 될 수 밖에 없고 브론스키는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행동도 잠시 결국은 5부 후반으로 치닫으면서 알렉세이와 안나는 서로가 마주쳤을때 다시금 괴로움과 분노의 감정이 들끓음을 느끼게 되고 만나서는 안된다는걸 확인하게 된다. 안나는 그로인해 '브론스키'에게 더욱더 큰 갈망을 느끼고 불안해 하며 알렉세이는 일시적인 혼란속에서 다시 평화를 되찾고 자신의 일에서 더욱더 열정을 느끼고 일을 한다.
3,4,5부에서 레빈형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코스챠가 시골에서 한참 농업에 대한 열정을 쏟고있던 때 니콜라이가 한번 찾아왔던 부분에서 코스챠는 자신의 형이 얼마못가서 '죽음'을 맞이할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형의 모습과 목소리, 행동에서 그의 형이 '난 죽어가고 있어'라고 말하는걸 마음속에서 듣게 된다. 그러다가 형이 떠나자 레빈은 '죽음'이 자신에게도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것이다. 그가 당장 죽을나이는 아니지만 '모든것이 결국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것을 깨닫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부 20장에서 다른장에는 없던 '죽음'이라는 제목을 건것은 톨스토이 자신을 반영한 레빈에게 '형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지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키티와 레빈이 같이 니콜라이에게 감으로서 둘은 더욱더 '하나'가 되었고 동시에 둘은 '죽음'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는것을 말이다.
이제 마지막 3권(7,8부)만이 나를 기다린다. 안나의 죽음과 레빈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바보 이반'을 읽고난 뒤 처음 접하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덕에 이번주내내 즐겁다. 아마 빠르게 다음 소설인 '소피의 선택'을 접할 수 있을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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