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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선택 part.2책/외국소설 2013. 2. 4. 22:47
소설 중반을 넘어서 스팅고가 주인공 '소피'와 비슷한 인물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속에서 그 여주인공은 '자살'을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고 나와있었을때, 이건 뭔가 복선일거다라는 느낌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번 소설역시 '자살'로 끝맺음을 하는 비극적인 소설에 불과했다.읽는내내 결코 '편하고 즐겁다'라는 감정을 얻지 못했었는데 끝까지 이렇게 나를 약간 우울함에 빠지게 하는데에는 작가의 의도가 굉장히 잘 먹혀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아우슈비츠'에 대한 끔찍함은 끝까지도 나를 억눌렀고 소피의 스트레스와 비참함과 우울함은 책을 읽는내내 온곳에 퍼져있었다. 게다가 이 책의 서술자인 '스팅고'역시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단 한번도 제대로 섹스를 해보지 못한 남자였던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1947년 전후였으니, 아직은 미국의 '노예전쟁'의 잔제가 남아있을시기였으며, 전쟁 이후 가져다준 '미국'의 부흥이 막 물이오르던 시기였고, 곳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점차 '돈'을 장악했던 때였다. 동시에 남부에서는 흑인을 대놓고 노예로 썼다면 북부에서는 흑인들만 모여서 형성되는 '슬럼'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이는 스팅고가 살던 '뉴욕'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얀과 에바에 대한 소피의 기억은 끝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는데 소피가 얀과 에바를 태우고 기차에 같이타서 '남쪽'으로 향하면서 그녀는 남쪽에 있는 도시가 '아우슈비츠'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득 기억하게 되고 들리던 소문처럼 화물차량에 태운게 아니라 약간 고급용 기차에 탔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그 기분을 다 잃어버리고 두려움속에 떨기 시작한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 딸을 두고서 아우슈비츠의 군의관은 한명만 살리고 한명은 죽어야 한다는 냉혹한 말을 던지면서 그녀가 결국 에바를 버리고 얀을 살리게 만들고서는, '가톨릭'신자로서 저질러선 안되는 비참한 죄악을 저지르게 만들고 개인의 정신적, 심리적 고통에 불을 붙인다.
루돌프 헤스에 관한 기억도 그녀에게는 매순간 고통이었다. 그녀는 루돌프 헤스를 통해서 자신의 아들을 꼭 구하고 싶었다. 헤스가 자신을 끌어안아 섹스를 하게 만들어서라도 얀을 살리고 싶었다. 그녀가 주위에서 보고 기쁨을 얻으며 힘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얀을 위해서 그녀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능성 있는'도박을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희망을 가지고 있던 한명의 '여인'이 직접 희망이 무참하게 부서지는걸 경험하면서 겪는 고통은 어떠할까. 그녀가 레벤스보른 1을 통해서 라도 아이를 살리고 싶었지만, 얀을 결국 구하지 못하면서 그녀가 겪는 좌절감은 이루어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나는 분명 2차세계대전의 나치에 의한 '피해자'들의 심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난 단 한번도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고통을 겪지 않았고(순리에 따른 '죽음'은 다른 문제라고 하고싶다.) 귀너머로 듣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전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적으로 알 수는 있는것이다. 그들이 분명 자행하면 안될짓을 저질렀으며,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죽어나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중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때 생긴 상처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얻었음을 말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는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며 위스키병을 찾는듯 주위를 더듬었다. 내가 말했다. "소피, 소피, 위스키는 다 마시고 없어요."
과거의 기억에 빠져 멍해진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는것 같지 않았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슬라브인의 우울증'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눈 덮힌 하얀 들판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슬픔이 그녀의 얼굴을 삽시간에 뒤덮었다. "반다, 나쁜년! 반다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어요. 모든일이요! 요제프가 죽은것, 그리고 내가 아우슈비츠로 간것, 그 밖의 모든 일이 다 반다 때문이에요!"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볼썽사납게 흘러내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러웠다. 비록 에로스는 떠나가고 없었지만,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아 제기랄, 스팅고, 나는 너무 불행해요!" 그녀가 울부짖었다. "네이선은 어디있죠? 요제프는요? 모두들 어디있어요? 아, 스팅고, 죽고 싶어요!"
"쉿, 소피." 내가 맨살이 드러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다 잘될거에요."(그럴 가능성 거의 없다!)
"날 붙잡아줘요, 스팅고." 그녀가 절망적인 어조로 속삭였다. "날 붙잡아줘요.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오, 세상에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에요! 이제 어쩌죠? 이제 어쩌면 좋죠? 너무 외로워요!"
소피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이 글에 담기는 힘들다. 그래도 한가지 말할 수 있는건 그녀가 굉장히 눈물이 많고, 그 이유에는 그녀가 죄책감과 비참함, 고통과 괴로움 등, 여러가지의 복합적으로 얽히고 섥힌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어한다는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은 행복'으로 기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소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까, 이 책의 서술자인 '스팅고'의 이야기도 하지 않을뻔 했는데, 꼭 해야한다. 스팅고도 만만치 않게 불쌍하고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다만, 책 제목이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이다 보니까, 다소 소피에 주목해서 읽게 된건 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스팅고도 만만치 않게 불쌍하다.) 스팅고는 작가의 자전적인 인물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전에 발표했던 '냇터너'에 관한 이야기도 결국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이었고, 윌리엄이 마지막으로 발표하는 타이드워터 이야기도 스팅고가 구상한 제목과 비슷하고 이야기도 비슷하다. 그에게 숨겨져 있는 '인종차별'문제는 나치가 자행했던 인종차별의 '구시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강도가 '학살'까지는 아니었다는것, 그리고 역사가 오래됬다는것만 차이점이지, 백인들이 흑인에게 가했던 고통을 정신적고통으로 바꾸면 그건 아마 나치가 했던 학살의 고통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섹스'에 대한 열망과, 진심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다는 열망은 결국 소설에 끝에서 이루어질듯 하다가 깨져버린다. 소피와 열정적인 관계를 맺고 나서, 소피가 브루클린으로 돌아가 네이선과 함께 동반자살하기 때문에, 정신의 틀이 무너지면서 스스로를 잃게 되버린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건 제대로 얻지도 못한채,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바람들은 모두다 무참히 깨져버린채 그렇게 그도 다음날 '햇빛'을 맏이하게 된다. 아이러니하면서 비참한 결말이다.
그가 쓴 소설중에는 '소피'를 모티브로한것도 있었다. 그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이 결말에 가서 자살한다고 쓰여있었는데, 왠지 그걸 보고서 이게 복선이지 않나 했다. 실제로도 소피는 시안화나트륨을 복용해서 단 몇초만에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네이선과 자살을 했으니 작가(스팅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표현해주는게 아닌가 한다. 소설 전반적으로 스팅고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이건 마치 내가 전에 읽은 '페르디두르케'를 떠올릴만큼 많았다. 차이점이라면 페르디두르케는 아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나서 그걸 끝마치면 소설속 이야기로 돌아간다는것이고, 소피의 선택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회상을 하듯이.) 그로인해 그가 겪었떤 메리와 레슬리에 대한 나쁜 기억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네이선이 허풍쟁이이며 편집적 정신분열증이라는 이야기를 그의 형인 '래리'에게 들었을때 어느정도 예상을 했지만 실제로 다가왔을때의 그 충격을 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네이선이 보이는 행동에서(동공이 커지거나, 목에 핏대가 오르거나, 침착함을 잃고 미친듯이 날뛰거나 그러다가 갑자기 잠이드는, 미친사람의 행동) 느낌이 이상했던걸 그의 형에게서 들었을때, 네이선이 그 어떤 요양원에서도 회복되지 못하고 미쳐버리는걸 보면서 마음아팟을 형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를 향해 걱정밖에 할 수 없다는걸 아쉬워한 스팅고는 분명 착한사람이 틀림없다. 상처가 있지만 남에게 잘하려고 해주는 그런 착한 사람 말이다. 다른사람이 선하게 다가왔을때 내쫒지 않을것 같았다.
미쳤다고 4일안에 2권의 책과 2권의 글을 통해서 나는 안나 카레리나를 읽지 못한것에 대한 최대한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 중인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 하루 빨리 안나카레리나를 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내 마음이 자꾸 좌우극을 달리는것 같아 진정시키려 한다. 진정해야만 한다. 군생활중에서 지금은 어쨋든 전성기인건 분명하니까. 불행의 요소중에 여자친구의 비중이 크다는것만 제외한다면, 내가 나름대로 내 창작욕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고 이를통해 상당한 행복감을 느낀다는게 바로 그 증거이다. 이성과 감성을 두고 오늘은 이만 잠에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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