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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聽說)(hear me)' 리뷰영화 2013. 8. 3. 20:25
보통 '수화'라는걸 처음 인지할만한 나이가 언제쯤이 되려나, 난 초등학생때 수화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걸 공연하는걸 보고 알게됬다. 말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손'으로 하는 대화는 하기 힘들텐데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너무나도 '능숙하게'(엄청난 연습을 뒤로한채)하는걸 보다보니까, 나도 '수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들게 만드는 영화 '청설'의 백미는 바로 이 '수화'가 아닐까 싶다. 오죽했으면 이 영화를 처음본 그 당시(2~3년 전이었다.) 수화를 배우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도 할 수 있는건가 생각했을까.
영화는 티앤쿼(남자애)와 양양(여자 동생)의 첫만남은 티앤쿼가 도시락배달을 하러 수영장에 가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이 청년은 대학교 교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었으면 그분의 수화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그리도 잘 따른건지, 수영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하고 있는걸 보고 자신도 도시락을 배달하러 온 사람을 찾아 '수화'로 대화를 연다. 그걸 양양이 대답하며 도시락 값을 지불하기 위해 뛰어가는걸 티앤쿼가 보고서 '물새'같다고 이야기하며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양양이 돈을 벌기위해 먼저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는데 주위의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넘어져 손과 팔을 다치고, 이를 티앤쿼가 보고서 병원에 데려가 주면서 티앤쿼는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한다. 둘이 메신저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는건 좀 지나고 나서야 시작되지만,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티앤쿼와 양양은 '수화'로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둘이 '소리'가 있는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대화로 관계를 시작한다는것이다.
'청설'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소리'가 필요한데, 여기에서는 '소리'가 아닌 '손'으로 하는 대화가 바탕이라면, '보고 하는 대화'가 될것이다. 그렇다면 소리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수화를 할때 영화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모든 소리를 없애고 일부러 수화만 놔둔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이게 정말 영화인건지, 소리가 없는건지 답답해서 음량을 높여봤는데 아예 소리가 안나게 되어있었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독의 배려심이 참 깊다고 생각했다. 다른 주변의 소리가 들리는데 '수화'하고 있는 모습만 나온다면 그냥 보통 사람입장에서야 자연스럽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만큼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없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기만 하는데 '소리'가 있는 장면은 잘못된게 아닐까.
기환형도 그렇고 박상현이라는 후임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 '언니'가 더 예쁘다고들 했지만 난 분명 '매력'있는 쪽은 동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동생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언니를 아끼고 사랑하며, '희생'이라는 가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양양의 생활적인 측면이나, 생각하는 부분에서 거의 모든것들이 자신의 언니를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룸'식의 방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면 맞지 않는 구조이지만, 자신의 언니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모든것을 한번에 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고, 초인종을 눌렀을때 소리를 대신 표현할 수 있는 '빨간불'을 통해서 볼 수 있게 한거나, 양양이 집에 늦게 들어와서 언니가 다쳤다고 이야기를 하며 사과를 하는 장면이나, 하나같이 언니를 생각한다. 세상에 이렇게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이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내 주변사람들중에서 동생이 누나, 언니, 오빠, 형을 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던것 같은데, 내심참 둘의 사이가 부러울정도였고, 그 중심에는 '양양'이 있었다는게 아름다웠다.
영화의 백미로 꼽으라면 고를 수 있는게 티앤쿼의 사랑표현 방식이다. 좋게 말하면 정말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살짝 타이밍도 어긋나고 여자의 마음과도 좀 아쉬울만한 일들이 많다는 점인데, 당장 '나무'를 심어서 물새를 구해야 한다고 문자를 보냈던 부분, 즉 양양에게 '자신'의 삶도 챙기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부분에서 사실 그 어떤 남자가 이렇게 '순수한'이벤트를 할 수 있나 하고 생각했다. 감독의 생각이든, 작가의 생각이든, 티앤쿼가 나무로 분장해서 양양의 집앞에서 꼬박 기다리는 이 장면은 아마 티앤쿼가 참 불쌍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티앤쿼가 양양에게 준 '물새'모양 저금통은 정말 도움이 많이된것 같다. 양양이 나중에 티앤쿼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동전이 담긴 유리병을 보여주면서 '네가 생각날때마다 동전을 넣다보니까 이렇게 많이 사게 됬다.'고 하는 말에서 양양이 얼마나 자주 그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부분이 아직도 생각난다.
세상에, 마침 열려있던 수영장에 양양이 있던걸 티앤쿼가 가서 만나게 되는 이 '우연'은 아름답다. 티앤쿼는 양양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했었고, 양양은 티앤쿼가 말을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둘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기 까지 서로가 알지 못한다. 티앤쿼가 양양에게 말을 하면서, 티앤쿼는 양양이 못들을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지만, 양양은 자신을 생각해준 티앤쿼에게 매우 고마워했지 않을까. 항상 언니만 챙기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은 아버지 외에 처음이었던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둘의 마음은 아마도 수영장에서 확실해진것 같다. 처음만났던 공간도 수영장이고, 마지막에 서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곳도 수영장이니까.
내게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였다. '마음'도 아름답고 '장면'도 아름다웠다. 특별히 엄청난 음향효과 없이도 영화가 전개되는 것도 신기했다. 블록버스터에게 지친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