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part.2책/한국문학 2013. 8. 18. 16:00
나는 이 소설이 '디스토피아'가 되어 끝나길 얼핏 바란것인가, 소설의 결말에 약간 내 예상과 달랐다고 느끼면서 책을 덮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눈길'과 같은 작품에서 소설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미래상을 그리면서 결말을 맺었던 기억이 나서, 이 책 역시 어느정도 납득하면서 마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걸린것도 아닌것같고, 짧게 걸린것도 아닌것같다. 한 일주일가량을 이 책을 잡아서(실제로는 3~4일밖에 읽지 않았지만) '동상'이란 단어를 애용할 수 있게 된 점도 좋고, 그간 한국문학에 대해서 너무 소흘했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것도 좋았다. 책을 덮고 나니까, 책 표지 마지막페이지에 이청준 전집이라고 해서 나와있던 책이 30권이 넘는걸 보고서 다음에는 무슨책을 사야하나 고민하는 그 '느낌'도 정말 좋았다. 간만에 내게 에너지를 불러일으켜주는 소설이었음을 깨달았다. 책 외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글을 올려야겠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조백헌'이라는 육군 대령이 군부기간에 소록도의 병원장으로 취임하고 난 이후의 사건들을 그렸는데, 이 소설은 현실을 소설화한 소설이다. 책 말미에 당신들의 천국 관련 논문에서 이 책은 17대 원장 조원창을 모델로 조백헌을 그렸다는 말이 나와있고, 당시 소록도의 이야기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다양한 소재들을 미리 준비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그 논문에서 지적하듯이, 사실을 바탕으로 인물을 구성하게 되면 한가지 문제점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인물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현실에 얽메이게 되면 소설의 인물이 살아나질 않지만, 이청준은 현실에 얽메이지 않으면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던것 같다. 바로 이 현실은 근대성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두가지 인물로 나타난다. 이상욱과 조백헌으로 말이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를 '이상욱'으로 점치고 있었다. 한 200쪽이 넘을 무렵까지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 다 끝나갈때즈음에, 어느 순간 '이상욱'의 존재감은 '조백헌'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화자'또한 이상욱이 아니었고, 어느새 이상욱이 사라지고 3인칭의 누군가가 서술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조백헌의 이야기와 내면심리묘사, 그리고 병원생들의 군중심리를 그리는데 집중되고 있었다. 결국은 '조백헌'이 주인공이었던것이다. 조백헌의 이야기가 바로 이 '당신들의 천국'이 된것이다. 생각보다는 조백헌 대령의 행동 하나하나가 남달랐다. 다른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난 회의주의적 성향이 강한편인데, 바로 이 '이상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회의주의적 성향이 좀 불붙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백헌 역시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지배당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소설의 이해'에서 나오는 말처럼, 근대이후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환경의 모순(기존의 잘못된 패러다임)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인물들인데, 조백헌 역시 그랬던 것이다. 물론 완벽한 환경의 극복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상황에 대한 투쟁이 되었다. 상황에 대한 투쟁은 바로 조백헌의 '근대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백헌은 근대적 인물이고, 이상욱은 자유주의적 예술가형인데, 여기에서 이 '근대성'이란 바로 서양의 근대주의를 일컫는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이 스스로 '근대'를 이뤄내기보단, 열강을 제외한 국가들은 다 타의에 의해서 근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 조백헌은 바로 그런점에서 다른사람들을 근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타인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다분히 의사적인 마인드로 '고쳐야 한다'는 생각아래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백헌은 소록도를 문둥이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부진 노력을 했다. 탈출을 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탈출을 못하게 막고 이 안에서 잘 살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게 바로 조백헌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욱은 달랐다. 그들에게 어떠한 짐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상욱은 섬 내의 환자들이 자신의 병때문에 섬에 갇혀버리는걸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그들의 자유를 이용해서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게 하려고 했었다.
이상욱이 말하는 자유는 조백헌이 바라는 '낙도'에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이상욱은 '자유'가 가득한 세상에서 문둥이들의 천국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상욱이 과거에 죽어버린 순사 '이순구'의 아들인줄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게된거지만, 어린시절 힘겹게 태어나서 섬밖으로 나간 이후 이상욱은 소록도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자기가 태어날때 폭군이 되어버렸던 주정수 원장과 비슷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조백헌을 만났으니 그 두려움도 배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주정수의 동상하나 때문에 힘겹게 고통받은 그 순간들을 말이다. 자신만의 낙도, 문둥이들의 낙도는 결국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만들어버리게 된다는것이 이상욱의 말이었다. 책을 읽으면 좀더 자세히 이해가 갈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것 같다.
예를 들어서, 매우 심각한 전염병이 있어서 그 전염병을 일반인들 속에 풀어놓으면 모두가 그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 수 있을때, 다수를 안전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전염병을 걸린 사람들을 추방해서 한곳으로 모아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용소는 천국이 될 수 있을까. 결국 그 천국또한 외부에서 온 일반인이 만들어내는 천국일 뿐인것이다. 치료할 수 없지만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았던 영화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보듯이 매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다. 결코 그들끼리는 낙원을 만들기 어려운것이다. 하지만 이상욱은 원했었다. 마음속에 철조망을 세우고, 소록도가 '낙도'라고 믿으며 살아가는걸 원치 않아했었다. 그저 '자유'를 통해서 살아가는걸 바란게 이상욱이다.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조백헌의 마인드로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게 힘들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와 이상욱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진정 자신의 동상을 바라지 않았다는게 끝내 보여졌다. 하지만 책의 결말에서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식의 축사를 미리 연습하는 그 장면을 통해서 아직은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이상욱은 조백헌의 축사 연습을 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고서 소설이 끝이 난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왠지 좀 회의주의적이지 않았나 싶다. 최근 성향이 그렇게 굳어져버린듯 싶다. 자꾸 위에사람들은 아래사람들의 자유를 통해서 해결되는걸 원치 않아하고 당장 하고 싶은대로 못을 박아버리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은 청첩장 보내는게 잘못됬다며 이걸 법으로 금지시켜버렸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정말 다분히 '군인'마인드로 시행한듯하다. '잘못된'것으로 보이는 현상을 즉시 뿌리뽑아 버리는 방법으로 말이다. 여기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말 실제 관련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결정을 위에서 한마디 한것이라고 바로 시행하는 이 조직구조를 난 끝내 마음에 들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현실에 대한 기대까지 회의적은 상태로 두는건 잘못된것 같다. 좀 다시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접근할 때가 필요한것 같다. 이상욱이 바란것도 조백헌이 바란것도 결국 사람들의 '행복'이니까 말이다. 방법이 다른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