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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데로 임하소서 - 이청준책/한국문학 2014. 1. 3. 23:57
낮은데로 임하소서 라는 제목을 통해서 나는 느낀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이건 이청준문학전집의 한 권일뿐이라는 매우 '포스트모더니즘적'생각을 지닌채 책을 뽑아들었을 뿐이었다. 이 제목이 내게 어떤의미를 주는지 생각하고 느끼기도 전에 이미 책을 펼쳤었고, 어느샌가 반을 넘어서 하루가 약간 넘어서 다 읽게 되었다. 결국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책이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쉽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청준 특유의 소설세계를 이해해서 그런지 간만에 한국문학에 맛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이청준이 쓴 '종교'색채가 강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요한'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벌어나는 일들을 그리면서 요한의 아버지가 처음부터 생각해왔던 '하느님의 부름'을 실행해가는 과정을 개인의 심리묘사위주로 잘 그려냈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크게 주목했던건 역시 개인의 변화였다. 바로 '종교'를 통한 개인의 변화 말이다. 전에 읽은 '당신들의 천국'에서도 그랬고 '눈길'에서도 그랬지만 이청준은 늘 특정 주인공의 '변화'를 서술하는 작가였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조백헌대령이 그랫었고, 눈길에서는 주인공 '나'가 그 대상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역시 안요한(나)이 그 중심이었다. 이청준은 늘 이런방법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해내는 작가였기 때문에 읽으면서 오히려 몰입하기에는 쉬웠다.
아버지가 유독 '요한'에게만 돌림자를 주지 않고 세례명을 주었다는 사실에서 요한이라는 인물자체가 남들과는 다른 주인공이 될것임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보통 두부류로 나뉜다고 가정했을때 요한은 어린시절에 말을 잘 안듣다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잘 듣게되는 케이스였던 것이다. 소설 초반부에는 요한이 집안에서는 말썽덩어리이지만(교회를 통해서) 학교에서는 우등생으로 손꼽히는 상황을 대비하면서 보여준다. 사회에서의 출세나 성장이 종교적인 성찰, 내면에 대한 반성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걸 작가는 우회적으로 보여주고는, 안요한의 눈이 아픈것을 시작으로 '종교에의 귀의'를, 베풀줄 아는 안요한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포도막염이라는 원인모를 질병으로 인해서 주인공은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데, 그렇게 잃어가는 와중에도 최대한 눈을 낫게 하고 싶었으며 눈이 안아픈척 하면서 불어선생님으로 출근도 해보지만 이윽고 두눈의 시력이 다하게 되면서 그는 눈을 낫게할 방도를 찾기위해 침술가를 찾아간다. 그 침술가가 요한을 보고서는 이곳저곳의 피를 빼보지만 요한은 시력에 이어 한쪽귀의 청력까지 들리지 않게 되며 세상과의 단절을 겪고 그 순간 '여호수와'의 부르심을 받으며 하느님은 자신을 아직 버리지 않으심을 깨닫는다.
서울역에서는 진용이를 만나고, 노량진에서는 방울이를 만나면서 요한은 생활에서 소소한 깨달음을 얻기 시작한다. 특히 진용의 집에 갔을때 요한이 느낀건 다음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그런 간단한 사람살이의 이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었다. 나의 짐을 짊어져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짐을 제대로 짊어져보지 못한 사람이 남의 짐을 생각하기는 어려웠을게 당연했다. 나는 부모님이나 아내나 아이들에 대해서마저 진실로 그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한 것 역시 나 또한 주위의 누구를 대신하여 그의 짐을 나눠 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 한사람의 짐만을 생각하며 인색하게 마음을 닫고 살아온 꼴이었다. 그 가난하고 불운한 진용이가 그것을 무겁다 탓하지 않고 자신의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그러고도 오히려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과 인정을 베풀어올 때, 그 사랑과 인정에 대해 그의 짐이 되는 것만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옹졸스런 이기심을 볼 때, 나는 진실로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한이 진용이네 집에 가서 느낀 감정은 나같은 보통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만한 감정이었다. 나조차도 여전히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살아간다. 사실 그 말은 나도 남에게서 피해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과연 이 법칙을 내 가족들에게도 적용해야 하느냐, 이건 매우 색다른 시사점이다. 분명 가족에게만큼은 적용하면 안된다고 느껴진다. 어찌하여 나는 그토록 인색하게 '나만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왔는가. 다른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에 놓이는 시간이 하루 종일이어도 그걸 같이 이겨내지 않으려 하고 혼자만의 삶으로 두려고 했는가.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내용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묘하게도 당신들의 천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신들의 천국은 조백헌의 깨달음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책은 안요한의 깨달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는 거의 마지막에 깨달았다는것과, 다른 하나의 경우 '깨달음'이 곧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이청준 소설을 5권이나 사놓고서 이제서야 겨우 3권읽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비화밀교나 소문의 벽은 읽다가 포기한채로 남아있다는게 아쉽다.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을때 처럼 처음에 잘 집중해서 읽으면 속도가 올라가는건 당연지사인데 이상하게 요즘 그런걸 하기가 힘들다. 집중력이 떨어진 기분이라고 할까. 아니지, 기분이 아니라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교수님의 말대로 나는 좀 더 다양하게 책을 읽어놔야겠다. 덧붙여 영어공부와 제 2외국어도 하나 정해서 빨리 시작해보자. 아직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