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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리, ‘등신불’을 읽고
    책/한국문학 2014. 12. 27. 22:39

    0. 들어가기에 앞서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동리와 김동인이 자주 헷갈린다. 이름이 한 글자만 다른 덕에 자꾸자꾸 헷갈리고 있다. 그래도 김동리는 좀 더 한국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써냈으며 남한의 문단 권력의 핵심으로 발돋움 했다면 김동인은 1950년대에 일찍 죽었다는 점과, 김동인의 대표작인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등의 작품들이 대체로 순수 문학, 유미주의 문학이라고 불린다는 특징을 말할 수 있다. 어쨌든 김동인과 김동리는 다르다. 이번에 볼 작품은 김동리의 '등신불'이다.


    등신불

    저자
    김동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5-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무녀도」의 작가 김동리가 1950년대 이후에 내놓은 9편의 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김동리에 대한 비판점

      김동리는 논란이 매우 많다. 그가 처음 세대 논쟁에 참여했을 때는 스스로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문학'을 주장했던 캐릭터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광복 이후 해방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그러다가 정치색도 진해지는 캐릭터가 되었다. 과연 그가 말한 '순수'한 문학을 지향한 사람으로서 김동리를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적인 삶의 행보를 걸어온 점도 있기 때문에 순수문학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는 없다. 둘 다 김동리에게 적합한 설명이기에 절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김동리를 두고서 순수하지 못한 작가로 변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싶다.

    김동리, '작가와 현실 참여 - R군의 현실 참여에 대한 대화를 중심으로', <나를 찾아서>, 민음사, 1997, 379쪽

    자네는 시나 소설은 모름지기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기계같이 알지만, 나의 의견은 다르다네. 부정부패는 수사 기관과 또는 정치 활동을 통하는 것이 훨씬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보네. 소설이나 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직접 법과 행동으로 하는 데 비하면 약하고 비능률적일세. 더구나 문학은 작가의 개성과 문학관이 다르므로 모든 문학이 다 그런 정치적인 보조 기관 노릇이나 해서는 안 되네.

    …… 해방 직후의 공산주의 문인들도 꼭 자네와 같이 말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라네. 그들도 겉으로는 공산당을 표방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속셈은 공산당에 플러스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네.

      위에서도 보여지듯이 김동리는 '현실 참여'의 경향이 짙게 나타나는 문인들에 대해서 비판의 공세를 취한다. 이런 비판이 주도적으로 나타난 시기가 1970년대인데, 이 때는 그야말로 반공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던 박정희 정권의 말기이다. 김동리의 위와 같은 주장을 두고서 현실의 문제를 넘어선 '제 3휴머니즘'의 추구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당시 김동리의 비판은 작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작품이 경향을 띄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한 유진오와 세대 논쟁을 하던 시기와 다르게 이 때의 발언과 기고문들은 논리적이지 못하며 타당성을 잃기 시작한다.

      처음 유진오와 세대논증을 할 당시에만 해도 김동리의 비판이 무논리성을 띄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세대 논쟁을 할 시기에만 해도 김동리는 초기부터 배제의 논리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간 인물로 연구되어 왔다. 내가 아직 김동리에 관한 많은 기록을 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지만, 김동리가 말하는 '구경적 삶'이라는 것이 매우 모호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김동리가 말하는 구경적 삶이라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라고 받아들여지는데, 이로 인해 비평가들은 김동리의 문학적 경향에 대해서는 비판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1970년대는 친북으로 낙인 찍히거나, 자유주의에 대한 반론을 펼치기만 해도 정말 목숨이 위험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남한의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하는 행위 자체가 '이적 행위'로 몰리는 시점에서 김동리는 우리의 체제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김동리의 태도는 결국은 문학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자신의 사상이 확고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비판한 일들은 그의 입지가 확고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예이다. 자신의 문학적 특질을 스스로 드러낼 수 없기에 다른 이들의 문학적인 약점을 비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더 견고하게 한 것이다. 연구자들도 이 부분에 주목한 것 같다. 대부분의 연구자들 또한 김동리가 스스로 입지를 견고화 할 수 없었음을 이야기 한다.

    2. 그렇다면 '등신불'은?

      등신불은 김동리가 쓴 수많은 단편 소설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김동리가 이와 같은 소설을 썼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등신불을 가지고 불교적, 샤머니즘적 사상과 연결시켜 연구한 논문이 있긴 하지만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관계로 개인적인 감상을 쓰도록 해야겠다. '등신불'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모호했던 소설이다. 하지만 동시에 김동리의 문학적 경향은 강하게 나타난다. 김동리는 자신의 소설에 서구 소설의 플롯과 비슷한 구성을 쓰지 않는다. 정말 특이하다. 이런 특이한 부분이 김동리로 하여금 자신의 문학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까 싶다. 김동리 스스로 제 3 휴머니즘을 외치면서 새로운 보편성에 대한 고찰 끝에 무녀도의 '모화'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분명 '모화'와 같은 캐릭터는 프랑스나 영국, 독일, 미국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른 종교에 대한 갈등을 드러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동양권은 다르다. 동양권으로 들어온 가톨릭는 매우 이질적일 수 있는 종교였다. 물론 평등 사상으로 인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이도 많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김동리는 이러한 갈등을 '무녀도'와 같은 작품에 그려냈다.

      등신불은 그렇게 보면 종교간의 가치 대립은 나타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제 3 휴머니즘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등신불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범부와 주지스님의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것이다.

    김동리, '나를 찾아서', '김동리 전집 8', 민음사, 1997, p.181~182

    "범부, 중국 고승전에서는 소신공양이니 분신공양이니 하는 기록이 가끔 나오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아"했다. 내 백씨는 천천히 입을 열며, "글쌔요, 형님이 못 보셨다면야……"하고 자기도 기억이 없노 라는 것이다. 내가 참견을 했다.

    "소신공양이 뭡니까?"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주지스님이 그 대답을 맡았다.

    "옛날 수좌수들이 참선을 해도 뜻대로 도통(道通)이 안 되고 하니까 자기 몸을 스스로 불태워서 부처님께 제물로 받치는 거라. 성불할라고 말이다"

    "불 속에 뛰어듭니까?"

    "그렇게 하믄 공양이 되나?"

    "그럼 어떻게?"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앉아야지, 머리 위에 불덩어리 든 향로나 그런 걸 갖다 씌워야지"

      이 안에 나타난 이야기는 주인공과 등신불이 된 만적의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도 더 중요한 것은 '등신불'의 사연이다. 사실 '인신 공양'이라는 것은 서구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인데, 유독 동양에는 등신불이 많다. 자료를 찾다가 보니 중국에는 등신불이 다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조를 해 내서 깎아 만든 불상이 아닌, 사람 그 자체가 불상이 되는 '등신불'은 김동리의 '인신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아주 좋은 그릇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점은 김동리가 독보적이었던 것은 맞다. 김동리가 말한 초현실적인 문학이란 것은 어떤 사회의 정치 현상과 엮기 힘든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었던 것 같다.(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흥남철수'와 같은 작품은 조금은 예외로 두자)

      무엇보다도 나는 김동리가 글을 써내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다는데 주목을 하고 싶다. 특정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에 맞춰 글을 써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대단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난 보통 글을 쓴다고 한다면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동리는 그런 것들을 떠난 초현실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점, 보편적인 서사에 주목을 했다는 점이 바로 '등신불'과 같은 작품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마'도 '서구적'인 것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등신불'이야 말로 동양적인 소재를 극대화 시킨 작품이 아닐까 싶다.

    3. 내화/외화

      이 소설에서 '내화'와 '외화'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내화와 외화의 대조관계 때문이다. '내화'인 만적의 이야기는 제대로된 스님, 다시 말해서 자기 희생과 타인의 고통과 연민을 이해한 등신불로서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드러낸다면, 서술자인 '나'의 이야기는 단지 나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조금의 희생인 '혈서'를 감수한 이야기인 '외화'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액자식 구성에서 이런 구성은 흔치 않은 게 보통은 액자를 이루는 액자 바깥의 내용은 소설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액자를 만들게 되는 액자 바깥의 이야기는 그저 '서술자'가 무슨 사람인지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동리의 '등신불'은 액자 바깥의 이야기'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절의 사람들로부터 '만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만적의 이야기와 서술자의 이야기를 비교하게 만드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외화 

     내화

     서술자인 '나'의 이야기 ;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왔지만 진기수씨의 도움으로 '혈서'를 통해서 스님이 되어 생명을 부지함. 이후 '등신불'을 보고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고통이 느껴지며 등신불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함.

     어린 시절 '신'과의 인연 이후 스님이 되어 살아가며 '만적'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보내던 중 문둥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신'을 다시 만나고 이후 소신공양을 통해서 자신을 희생함. 비가와도 만적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광명이 가득했음.  


    4. 마치며

      김동리는 정말 연구가 필요한 작가일 것이다. 작품수가 너무너무 많고, 그의 행적은 매우 아이러니 하다. 순수하지만 순수하지 못한 작가라고도 이야기하고, 김동리 만큼 동양적인 것을 잘 표현해낸 작가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 맞는 말들이다. 문협정통파로서 우익 문단권력의 최고에 위치해 있었던 김동리는 참여 문학을 잘못되었다고 하며 순수문학을 이야기했다. 김동리에 대한 연구글은 시간을 내서 더 많이 읽고 나서, 김동리에 대한 작가론을 짧게 나마 쓰는 것을 기약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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