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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Café society'를 보고
    영화 2016. 9. 21. 19:46


    Dreams are dreams

    0.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늘은 영화를 봤습니다. 도대체 '관대해지기'와 '영화'가 무슨 관계인지 의문을 가지실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최근 몇 달 동안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이유로 영화관에 가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나름 시험 준비하는 사람인데 영화관에 가서 막 영화를 보고 와야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마음이 아주 따뜻하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져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화장품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남들과 다른 '독특함'을 추구하는 편이라서, 평범해지고 싶지 않은 게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데 이번에는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어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왜 그렇잖아요. 부X행이나 터X 같이 사람들이 다 보는 영화를 보면 남들과 달라지는 거랑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안봤었어요. 뭐 이번 영화가 여전히 잘 안보는 영화에 속하다 보니 다름을 계속 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는 있겠군요.

    오늘 본 영화 'Café society'의 감독은 '우디 앨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에는 바로 그의 '성실함'에 있을 겁니다. 본인이 어쨌든 각본과 연출을 도맡아 1년에 한 편 정도는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가 찍었던 영화 중에서 기억나는 영화를 몇 개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는 이 감독에게 '경이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나, '로마 위드 러브'(Rome with love)와 같은 작품들이 바로 우디 앨런의 작품이죠. 그는 대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에 언급한 두 작품도 로맨틱 코미디에 해당합니다. 이번 영화인 'Café society'도 로맨틱 코미디라고는 말할 수 있는데, 멜로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두 주인공 간의 사랑을 다루는 내용에서 '강력한 플롯'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그랬던 느낌이 나서 이게 그냥 감독의 특색이려니 합니다.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에 대해서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소재와 플롯, 그리고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만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 할 까 합니다. 감독이 도대체 이 영화를 통해서 의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지도 제 생각을 덧붙일 예정이고, 주인공들이 이 배역에 어떤 느낌을 줄 수 있었는지도 같이 쓰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서 필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로 쓰여질 글이라 걱정이 많지만, 영화를 보고 읽든 보지 않고 읽든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1. 영화의 플롯

    처음에는 '소재'와 '플롯'을 각각 분리해서 한 부분씩 써내려갈까 했는데 이 두 단어를 분리해서 써내려가자니 약간 이야기가 붕 뜨겠다 싶어서 하나로 합쳤습니다. 영화의 플롯은 '뉴욕 남자가 할리우드에 갔다가 어떤 여인을 사귀었지만 그 여인에게 차이고 뉴욕에 돌아와 성공하였고, 이 후 만난 여인과 가정을 차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한편 할리우드의 그녀 역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걸 조금 풀어내면 이렇습니다. 뉴욕 남자인 '바비'는 할리우드에서의 삶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할리우드를 갔지만 그곳에서 환멸을 느끼고 뉴욕으로 돌아와 형의 나이트 클럽을 부흥시키며 정착했고, 희곡과 문학을 전공했던 보니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으로 할리우드에 왔지만 그 목적에는 실패하고 두 남자(필과 바비)를 만나서 모든 걸 갖춘 '필'(바비의 삼촌)과 결혼했죠. 이 두 주인공과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주인공은 바비의 부모님과, 바비의 형제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아주 평범한 유대교 신자입니다. 이들에게서는 과거 바비가 지루했다고 느낀 '일상'을 발견할 수 있죠. 한 편 바비의 형인 '벤'은 갱스터였습니다.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택하지 않고 거리의 삶을 택한 벤은 사람들을 죽이는 방식으로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기까지 이르죠. 결국에는 전기 의자에 앉는 사형선고를 받고 세상을 일찍 떠납니다. 바비의 누나인 '에블린'은 대학 교수와 결혼하여 자신의 어머니가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를 옆에 두고 살아갑니다. 에블린의 삶에는 이성과 합리, 그리고 철학자들의 명언이 함께하죠.

    한편 공간적으로는 뉴욕과 할리우드를 오갑니다. '뉴욕'은 결국 바비의 공간이 되었고, 할리우드는 보니의 공간이 되었죠. 바비는 뉴욕에서의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고 할리우드에서 활기찬 삶을 기대했지만, 뒷담화가 난무하고 허위, 허세, 허영이 가득한 할리우드에서의 삶은 그에게 맞지 않아서 뉴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편 보니는 그러한 할리우드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꼈음에도 모든 것을 다 갖춘 중후함을 내뿜는 '필'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는 자신이 생각했던 삶에서 성공하며 마약하지 않음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두 번째 '베로니카'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되죠. 뉴욕에서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할리우드에서 만났던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분과 가까워지면서 였습니다. 그렇게 시와 소설이 있다고 생각한 뉴욕에서 바비는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신의 나이트 클럽인 'Le titre'에는 'Café society'라는 사교모임이 생기게 됩니다.

    단순히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뉴욕은 시와 소설의 공간인 것 같고, 할리우드는 허영의 공간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상당히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이죠.


    2. 인물

    하나하나씩 살펴봅시다. 처음에 추구했던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1) 필

    필은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어요. 어떤 부분에서 성공했냐면, 할리우드의 허위와 가식으로 둘러쌓인 삶에서의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았다는 데에서 성공했습니다. 바로 '보니'죠. 전 부인과의 관계가 나빴던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도 본인 입으로 25년동안 자신만 바라봐주었고 잠자리도 좋은 데다가 뭐 하나 안좋은 게 없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 마디로 이혼할 이유가 없던 것이죠. 그런데 왠걸, '보니'가 나타나서는 그의 삶을 흔들어버립니다. 필이 바비에게 말한 것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할리우드의 허영과 가식'이 싫다는 발언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걸 고려한다면 희곡과 연극을 전공했던 보니의 다른 매력이 인상깊게 다가올 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이혼까지 하고 새로 결혼을 했으니 나름대로 추구한 것을 찾은 셈입니다.


    2) 바비

    바비는 지루한 뉴욕에서의 삶을 버리고 흥미진진한 할리우드에서의 삶을 기대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거대하고 수영장이 있는 저택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할리우드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뉴욕으로 돌아가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합니다. 과연 바비는 어떤 삶을 원했던 것일까요,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는 데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건 할리우드에서의 인맥이었습니다. 모델 에이전시를 하는 분을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나이트 클럽을 발전시키면서 얻은 것은 또 다른 이름의 '화려함'이죠. 'Café society'는 바로 그 화려함에서 생기는 사교 모임이었으니 바비는 자신이 생각했던 흥미로운 삶을 정말 뉴욕에서 이루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화 내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게 바뀌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보니'에게는 '환멸'이 싫고 '가십'이 싫다고 했는데 가십하는 할리우드 사모님 다되었다고 비판을 하긴 해도, 본인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할 뿐. 즉, 바비가 정말 추구한 것을 이룬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 입으로야 좋은 아빠도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걸 추구했냐와는 다른 문제이니까요.


    3) 보니

    보니는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편하게 살기로 했다고. 더 이상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그 편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필'과의 삶을 선택하는 삶이 었던 것이죠. 할리우드의 유명한 남편의 여자로 살아가면서 사교계에서 '가십'을 하는 여자로 살기로 한 게 바로 보니가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그런 보니를 보고 바비가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울만 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까움과 별개로, 보니는 필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할 필요가 있죠. 그렇지만 '여전히 바비 꿈을 꾼다'는 이야기는 아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 지 묘한 감정이 드는 대사더군요. 분명 영화상으로는 최소 1년, 아니 몇 년도 더 지난 듯한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바비에게 '여전히 당신 꿈을 꾸곤 한다'이러면 바비 입장에서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꿈은 꾸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그러니 두 분이서 새벽의 뉴욕 공원 한가운데에서 동이 트는 걸 배경으로 키스까지 했겠죠. 필과의 결혼 후에 바비를 다시 만나며 겪는 혼란스러움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던 보니는, 바비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는데 이걸 토대로 추론을 한다면, 보니는 자신이 바비를 만나며 생각했던 감정과 필을 만나면서 들었던 안정감 중에서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나타난 선택은 '필'이고, '꿈'으로서 남아있는 선택은 바비였던 것이죠.


    4) 벤

    갱스터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가볍게' 그려지는 인물입니다. 사실 청부 살인, 시체 매장, 금품 횡령, 도박, 나이트 클럽 인수, 자금 세탁 등이 나타나는 부분들에서 벤의 모습은 너무도 짧게 나타내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하는 감독의 생각이 엿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들이 중요한 사건들이 아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갱스터의 살인들이 일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만큼 여러차례 무심한 듯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미국은 갱스터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해결을 못한 상태이고, 총기로 인한 살인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것을 경찰들 조차 막을 수 없으니까요. 평생 죄를 짓고 살면서 끊임없이 '거리의 사람'으로 돈을 벌어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고 마지막에 전기의자 사형 선고를 받는 장면 이후에 나타나는 '가톨릭으로의 개종'장면은 벤이 나름대로는 변화를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대교에는 내세가 없기 때문에, 그가 이야기한 가톨릭의 내세에 관한 복음 구절은 결국 죽기전에 회개하는 하나의 인간형을 보여준 느낌이었습니다. '벤'은 공부를 잘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유대인이 아니라 '거리의 사람'이 되었기로 했던 유대인이기 떄문에 다른 유대인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벤의 캐릭터를 알 수 있죠. 자신이 생각했던 '거리의 유대인'으로도 성공했고, 사형 선고 이후에는 또 다른 삶을 찾아나선 인물입니다.    


    5) 에블린, 바비의 부모님

    에블린이 왜 이 글에 나왔는지 잘 이해가 안되실 수도 있는데, 에블린의 남편은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가장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넣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든 대화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라디오 소리에 짜증이 나서 미치겠다는 에블린의 의견에 따라서 몇 번 항의도 했었지만 변화하지 않는 것을 보고도 그는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에블린은 교수의 발언들이 좋기는 하지만 정작 몇 가지 문제에서는 힘을 통한 해결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차이점이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어쨌거나 끊임없이 가지고 싶어하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와 결혼한 것 까지는 저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의미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이미 음미해버린 인생 역시 의미가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도대체 누가 할 지, 에블린의 남편이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런 에블린이 자신의 오빠인 '벤'에게 부탁하여 옆집 남자가 살해되는 사건은 에블린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부탁을 했지만 그 부탁이 정말 '부탁'이어야지 말이죠. 뭐,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에블린이 생각한 삶은 에블린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기억나는 교수님의 다른 대사가 있다면 '사랑은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있겠군요.

    바비의 부모님을 처음에 넣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좀 했는데 이 분들 역시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바비의 부모님은 '이성적' 가치도 아닌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바비의 아버지가 유대교에는 '내세'에 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신이 찾아오면 싸울 것이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응답하지 않는 것이 응답하는 것이다'라고 답해주는 어머니의 대사는 좀 더 전통적인 가치라고 볼 수 있는 '가족'을 중시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벤을 사형 선고로 잃은 후에 망연자실한 나타나는 망연자실한 모습에서 부모님이 추구하던 '가족의 안정'이 무너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해'를 축하하는 부분에서는 바비의 부모님들이 나타나지 않아요. 거기에는 바비의 아내인 베로니카와 에블린, 에블린의 남편만이 있습니다. 바비의 부모님은 평생을 뉴욕에서만 사셨죠. 뉴욕은 초반에 '시와 소설'의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허영과 가식도 있고 무법 천지의 갱스터 지대라고 생각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리해놓고 보면 '가톨릭교'의 입장에서는 벤이 가장 성공했고 - 회개한 존재이기 때문에 - 부모님은 안타깝게도 자식을 한 명 잃었으며(다 모인 식사자리에서 다 모여서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약간은 폐쇄적이지만, 유대인들의 가족애를 느낄 수 있죠.) 나머지는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의 인물들도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만 대개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캐릭터는 정말 강한 캐릭터성을 보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가 대체로 영화에서 '주로 그려내려고 하는 것'들은 인물이 아닌 분위기에 있는 것 같거든요.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바로 할리우드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보이는 것 같습니다.


    3. 영화의 분위기, 공간의 이미지

    할리우드와 뉴욕은 물리적으로는 다른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정서적으로도 다른 공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치니 빌리지에 모여있는 시인들, 소설가들의 마을과 영화배우들의 대저택은 거리가 상당히 멀죠. 하지만, 뭔가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엄청나게 다른 공간이라고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돌아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지만 그 나이트클럽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은 할리우드에서의 인맥이었던 '모델 에이전시 사장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르 티에트레'라는 나이트클럽은 점점 바비가 과거에 할리우드에서 다녔던 '파티'와 같은 곳으로 바뀌게 됩니다. 할리우드에서도 다양한 인사가 모였듯이, 나이트 클럽에서도 다양한 인사가 모인 것이죠. 사실 할리우드에서의 유명인사들은 '필'이 '바비'에게 소개해주면서 나타나지만, 뉴욕에서의 사람들은 나레이션이 알려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과, 그 나리에션이 알려주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더 다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인사는 어쨌든 영화계의 인사들이 대부분이죠. 오스카 각본상을 두 번 받은 분이나, 어디 영화계 에이전시이거나, 대개는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인 이들입니다. '필'도 에이전시였으니까요. 그러나 뉴욕은 판이합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났었던 작가이자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를 만나기도 하고,

    나이트 클럽에 오는 이 중에는 '아내'와 완벽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른편의 여자, 그러니까 아내의 자매인 처제와 섹스를 비밀리에 하고 있는 사람들도 옵니다.

    그냥 일반적인 부자들도 이렇게 등장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고, 사진으로 구할 수는 없었지만, 10대의 소녀와 사귀는 사람도 있으며, 주식투자를 한 거물들도 나타납니다. 어느 한 쪽에는 '벤'을 중심으로한 검은 세력들도 있고, 정치계의 인사들도 모이죠. 소위 '빈민가의 삶'과는 거리가 먼 'High society'가 나타나는데 이걸 두고 영화에서 일컫기로 'Café society'라고 하는 겁니다.

    백만장자인 저 남자는 도대체 돈으로 살 수 없던 게 무엇인지 하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한 스타일의 여성이 6명이나 옆에 앉아있기도 하고요. 이것만 봐도 영, 뉴욕이 정말 '시와 소설'의 공간인지 의문이 넘쳐 흘러서 결론을 내렸어야 합니다. '뉴욕'은 시와 소설이 있던 공간도 있지만, 할리우드 보다 더한 사치와 허영의 공간이기도 한다는 결론을 말입니다.

    베로니카, 그러니까 '바비'와 결혼하게 되는 저 여자 역시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였던 사람의 말대로 싱글이죠. 할리우드에서 에이전시 대표인 라디와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라디의 말은 옳았어요. 엄청나게 아름다운 싱글들이 뉴욕에도 넘친다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는 겁니다. 즉 뉴욕도 할리우드도 그렇게 다른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뉴욕이 더하면 더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우디 앨런이 목표로 했던건 바로 이 뉴욕과 할리우드를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있던것 같습니다. 자신이 영화계에 몸담은지도 상당히 오래되었기도 했고, 당시 이 영화계를 비롯한 일명 'High society'를 그린다면 어떻게 그려내볼까에 대한 생각이 담긴 영화인 것이죠. 사치도 있고, 허영도 있고, 부패와 살인, 그것들에 대한 환멸도 있음에도 거기에서 그냥 잘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일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High society'의 일상 말입니다.


    4. 영화의 배역

    감독의 의도는 1930년대 뉴욕과 할리우드 'high society'의 분위기를 그려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나 꿈 같은 요소는 사실 부수적인 문제이죠. 사랑이나 꿈 조차 영화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영화를 이끌어 나갈 이야기 자체가 부족해져버리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를 다녀오는 바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니까요. 물론 그 만큼이나 그 주위사람들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필'을 연기한 배우인 스티브 캐럴(Steve carell)은 중후함을 갖춘 최고의 배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배우가 없었다면 서사가 몰입되지 않았을텐데,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타나는 거물의 분위기가 영화 초반 할리우드의 분위기 형성에서 매우 중요했던 것 같아요.

    보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으로서의 초점이 바비에게 더 가있어서 그런지 보니의 갈등 장면이 조금 적었다고 할까요, 특히 '결혼을 결정하는 장면'에서는 갈등하는 부분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으니 더 아쉬웠습니다. 바비가 필이 받은 편지를 보고서 보니에게 가서 묻었을 때 볼 수 있는 '갈등 과정의 생략'은 영화의 전개를 위한 것이었는지, 음 2시간까지 채웠어도 괜찮았을 법 한 데 아쉬워요.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보니가 필과 결혼을 한 후에 뉴욕에 들렸을 때는 그러한 갈등이 막 엄청나게 풀리지는 않지만, 이전과 똑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그들의 연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저의 감정 때문이었는지 알 길이 없어서 아쉽군요.

    '벤' 역할을 맡은 코리 스톨은 정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무겁지는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갱스터의 연기를 매우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시종 일관되어있는 표정과 몸짓, 행위들은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비' 역할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는 음....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갈 수록 아쉬웠습니다. 처음에 뉴욕에서 처음 온 유대인으로서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보니를 만나고 보니에게 빠져드는 장면도 저는 정말 좋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의 모습은 뭔가 안어울리더라고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특유의 외모가 잘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베로니카를 맡은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이상하게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 물론 그 특유의 '엉뚱한 매력'을 뿜어내는 얼굴로는 맞는데, 뉴욕의 또 다른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의 내면적인 모습이 잘 담기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5. 감독의 의도, 글을 마치며.

    생각해보면 우디 앨런이 찍었던 'Midnight in Paris'도 'High society'를 그리긴 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 하려는 건 어떤 인물에 대한 삶 보다는 삶 자체의 무상함과 일상성, 그리고 그러한 일상성을 이루고 있던 그 시대의 공간을 그려내려고 했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에는, 인물이나 사건 위주로 영화를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바비와 보니의 사랑이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그리는 듯 하면서도 사랑을 그리는 느낌을 준단 말이죠, 그의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식의 구성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삶의 무상함, 인생의 아이러니, 사랑의 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도 하고, 누구는 갱스터마저 미화되는 사회를 그려냈다고도 하는 데 아마 그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생각들은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늘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꼭 하나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다만, 넣은 것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이야기가 완벽하게 짜여져있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것도 우디 앨런의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이번을 기점으로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자꾸 '다양성 영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요. 정말 이게 '다양성'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아니 그냥 배급사가 이걸 틀어도 돈이 안되겠다 싶어서 안트는 경제 논리만 있는건데, 여기에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것인지, 저는 이런 것들이 답답할 뿐입니다. 너무 대기업 박스오피스만 남아있는 영화관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고 말이죠.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그냥 '일상'이 되어버려서 의미있는 영화든 아니든 상관 없는 관객들이 늘어난 상황도 이유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영화 자체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데, 뭔가 영화 시장의 흐름을 보면 수요자의 힘이 너무 없고 공급자 위주로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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