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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리뷰영화 2014. 2. 22. 15:31
이 영화를 몇번을 본건지 모르겠다. 길지도 않은 러닝타임에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전개, 하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와 장면은 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메릴 스트립이 눈화장을 아주 짙게 하고 나와서 내가 좋아한 영화인 '줄리 앤 줄리아'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메릴 스트립인줄도 모르고 봤던 영화인데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것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고 영화가 주는 메세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과연 영화는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식의 연출과 이미지들을 보여준 것일까.
주인공인 앤디는 언론사 기사직원 지망생이지만, 경력하나 없는 지망생을 무턱대고 뽑을리는 없고, 단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것은 '학벌'과 '좋은 성적'뿐이었다. 그러던중 다 넣어보자는 마인드로 넣었던 패션지 런웨이에 넣은 지원서가 합격하게 되어 런웨이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슬리'의 비서로 채용된다. 영화는 두 주인공을 축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먼저 미란다는 세계에서 앞서가는 굴지의 패션지 '런웨이'의 편집장으로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아가고 자신이 하는 일에 매우 열심인 인생을 살아가는 타입이고, 앤디는 처음으로 자기가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열정을 보이며 살아가던 중, 내가 예전에 해보고싶었던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다시 언론사기자로서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앤디는 세룰리안 블루가 어떤 색인지도 모르는 패션에는 전혀 문외한인 20대 여자사람이다. 그런데 그녀가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로 앉게 된다는 설정은 곧, 그녀에게 내외적인 변화가 일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미란다는 정말 앤디가 겪는 가장 최악의 편집장일 것 같다. 미란다는 앤디에게 한꺼번에 수십가지 일을 시킨다. 커피사오고, 샵을 4~5개 들려가면서 말해두었던 옷을 찾아와야 하며 동시에 늦지도 않아야 한다. 과연 앤디는 비서를 한다고 했을때 이런종류의 일을 할거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이름도 아닌 '에밀리'라고 불리면서 하루종일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미란다의 비서자리인 것이다. 당장 위의 사진에 보이듯이 에밀리의 코디에 대한 감각은 제로지만, 나이젤이 데려간 저 공간속에서 앤디는 다시태어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변신후의 앤디가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름답다고 한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건 그녀가 미란다의 직업을 이해하기 위한 변신을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건 내외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외적으로는 '패션'의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인데, 이건 아마도 나이젤의 도움이 가장 큰 것 같다. 나이젤이 데려간 그 샵은 무지막지하게 부러울정도로 옷가지와 소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란 어떤것이냐 하면,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앤디가 '세룰리안 블루'라는 색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미란다에게 설명받고 난 뒤, 앤디는 진정 이 패션세계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성을 느낀다. 난 그런 마인드의 결과로 위와같은 변화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어떤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일에 기본적인 철학을 이해하는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패션'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직접 입어보는것 말고는 답이 없다. 물론 옷을 보는것으로도 어느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앤디는 패션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뉴욕의 한 여자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빠른해답은 패션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위 샷에서도 나왔지만 4계절의 옷을 다 입는것으로 나온다. 실제 영화에서도 앤디가 옷을 바꿔 입는 모습을 몇십초의 샷으로 이어 보여주는 장면은 그녀가 완벽하게 '패션지'에 적응했다는 반증이 된다.
또다른 인물인 미란다의 삶은 어떨까. 앤디가 완벽하게 적응하는 동안 미란다의 삶은 변한게 있을까. 그녀의 삶은 전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한다면 충분히 그랬을 미란다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가지 약점이 있었다. 바로 '가족'문제이다. 앤디가 미란다집에 가서 가제본을 두고 오던 그날, 미란다가 남편에게 와장창 깨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다음날, 업무에서는 완벽하지만 자신의 사생활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미란다는 앤디에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미 출간본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가져오지 못하면 이 회사에서 짤릴것이라고 선언을 한다.(물론 앤디는 크리스찬을 통해서 가제본을 구하고 이를 통해서 미란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파리출장 때 역시, 미란다가 혼자 남아있는 시간동안 남편과의 일로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이혼을 하게 생겨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게 걱정이라고 하면서 약해지는 '아이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앤디로서는 미란다의 모습이 안타까웠을것이다. 자신의 일에서만큼은 그렇게까지 완벽할 수 없는 이가 가족문제에 있어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앤디에게는 아이러니 하면서도 동정이 된다고 할까. 이 영화의 설정이 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조금씩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데, 미란다에게는 바로 이 부분이 '가족'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빈틈을 미란다에게는 '가족'이라는 측면을 준건 각본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미란다가 만약 '가족'과 '일'을 빼면 뭐가 남겠는가? 취미생활? 취미생활로 그녀가 무슨 피규어모집을 한다거나 음악생활을 하는데 부족한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그게 인간적으로 되는것인가? 아니다. 그녀에게 부족한건 가족이어야만 완벽한 그녀도 빈틈이 생기는 것이다. 애인문제가 있었던 앤디에게 공감대가 형성되는건 당연지사고 말이다.
이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인것 같다. 전에는 그냥 내가 원래 하려던것으로 돌아가라 정도 였는데 여러번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네이트가 앤디와 대립되는 생각을 가지면서 잠깐이지만 헤어지는 장면은 앤디로 하여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미란다와 앤디가 차속에서 대화하는 장면인게 맞다. 차속에서 하는 대화를 통해서 남을 밟고 일어서서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것에 대해 만족하는 '미란다'와 그렇지 않은 앤디가 헤어지는건 앤디가 자기가 생각하던 원칙을 다시 세우기로 마음먹었다는걸 의미하며, 동시에 더이상 패션계의 비서로 일하지 않는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앤디가 변하더라도 계속 마음을 지켜온 네이트를 통해서, 앤디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 하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연애나 학업, 인생 전반에 있어서 요즘들어 하고 싶은것들을 조금조금씩 찾아놓거나, 정해놓은 건 조금 되지만 그런걸 떠나서 이걸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할만한 것인지 자꾸 따져보게 된다. 일을 하다보면 재미있고 열심히 할 수 있는일이 있고, 재미있지는 않지만 열심히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재미있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재미도 없고 열심히 하기도 어려운 일이 있다. 내가 직업으로 가질만한 최상의 조건은 재미도 있으면서 열심히도 할 수 있는 일들일 것이다. 나는 당장 하고 싶은것보다, 오래 할 수 있는걸 찾아야 할 것 같다.
조만간 이 영화를 다시금 보고 싶다.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도 내게 의미가 있지만 앤디의 패션만큼 또 의미있는게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