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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유령(Goya's Ghosts) 리뷰영화 2014. 5. 31. 20:46
영화가 정말 굵고 강렬했다. 짧은시간이긴 했다. 2시간이 화가를 표현하기에 충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정도면 고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정말 간만에, 120분 동안 쉴새없이 지나가는 서사의 전개에 몸과 마음을 내던지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림을 알고 배우에 관한 기억들이 있으니 왠지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쉽게 다가가는 것 같고, 이해도 빠른 것 같다. 어떤 영화든 그 '배경'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영화 자체의 이해도와 직결되는 것이리라.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4명으로 구성된다.
고야
로렌조
고야는 이 영화의 서사를 책임지는 '화자'이고, '서술자'이며, '관찰자'이다. 관객의 눈이 되어준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야의 시선을 통해서 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의 제목부터가 '고야의 유령'이다 보니까, 이 고야를 빼놓고서는 서사 전개가 불가능하다. 시대는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이후까지가 배경이다. 프랑스 혁명이 178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고, 그로부터 9년뒤, 스페인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father', 즉 신부였던 로렌조가 혁명군 간부로 스페인에 오게 되면서, 영화의 서사 전개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62세게 그린 '1808년 5월 3일'의 그림은, 당시의 매우 복잡한 스페인 상황을 아주 날카롭게 묘사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1808년 5월 3일, 프랑스 혁명 당시의 스페인을 묘사,
위와 같이, 스페인에게 있어서 프랑스혁명의 전파는 단순히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해서 '자유, 평등, 박애' 즉, 인권선언의 세 가지 가치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이상 '왕'이 중심이 아니라 '백성', '시민'이 중심이라는 매우 중요하고도 큰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에게 혼란이 아닐 수는 없었다. 결코 평화적이지 않고 살인이 일어나면서 다가왔던 프랑스 혁명, 청력을 잃은 고야에게 보이는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은 위와같이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종교 재판소'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그 안에 갇혀있던 '이네즈'를 풀어준다는 점에서 반 정도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볼 수 있지만, 그것 마저도 이네즈가 찾아간 집을 통해서, 그녀의 가족이 다 죽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던 상황을 '이네즈'라는 캐릭터로 표현한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카를로스 6세의 부인을 그리고, 자신의 '뮤즈'인 '이네즈'를, 그리고 '로렌조'신부를 그려낸다. 하지만 '로렌조'의 말처럼, 자신이 보는것과 타인이 나를 보는 것은 다르다고, 그가 그린 왕비 그림을 왕비가 보고서는 표정이 굳어지며 고야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하지만 혁명으로 인해 왕정이 무너지고 혁명군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왕족'과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지만, 청력을 잃고 바라보는 '프랑스 혁명'은 그에게 있어서 더 내면적인 부분의 어떤곳을, 마음 깊은 심연의 무엇을 그림으로서 표현하게 만들며, 그의 연작인 '전쟁의 참화'가 나타나는 데 밑거름을 준다.
그는 특유의 기법으로 그리는 인물의 내면을 포착했다. 인물이 지니고 있는 성격적인 부분, 개인적 특질들을 잘 포착해낸 고야로서는 그의 기법들이 그림에 나타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로인해서 영화에서처럼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과 다른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을 잘 묘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나온 '난감한 상황'(왕비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화가 나서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카를로스 6세와 그의 가족
로렌조라는 인물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한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그 자신에 의해, 이교도들을 색출하여 종교재판소 감옥에 쳐 넣기 시작하는 상황속에서, 그는 그가 주장하는 '신앙'이 '고통'을 앞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면으로 굴복하며 프랑스로 도주한다. 이후, 혁명군의 간부로 다시 스페인에 찾아오게 되고, 과거 자신이 '이네즈'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었던 '주교'를 만나면서 우연적이면서 필연적인 그의 운명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father, '신부'였던 로렌조는 자신이 주장한 사실에 대해 '토마스'라는 상인을 통해 도피했던 그 날을 여전히 기억하는 '간부'이다. 과거 '종교', '신'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사람을 원자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는 자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종교재판소에 넣자고 하고, '볼테르'의 사상을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이면에는, 이네즈와 함께 기도해주겠다고 하면서 본능을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이네즈의 아버지에 의해서 자신이 고통받음으로서 스스로의 말을 깨뜨리고 종교는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종이에 자신의 서명을 새긴다.
이 얼마나 양면적인 인물인가. 하지만 이건 당시의 '신부'들을 제대로 파헤쳤다고 생각한다. 16~17세기를 통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긴 했지만, 스페인은 거의 예외였다.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 빠진건,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지, 프랑스와 스페인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이는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는 19세기 말, 프랑스 인구의 1/10을 제외한 인구가 '카톨릭'이라는 점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때도 그렇고 당시는 '카톨릭'의 우세였던 것이다. 다만 이 '카톨릭'이 고이고 고이다보니 썩어버렸고, 이는, '로렌조'라는 썩은 신부에 의해 파괴된다. 마치,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처럼, 로렌조는 자신의 과거 가치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 즉 '자유, 평등, 박애'를 스페인의 땅에 피와 함께 새긴다.
'볼테르'와 ,'루소'를 통해서 이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로렌조, 그 역시 결국 웰링턴에 의한 '왕정복고'와 함께, 회개하면 다시 받아주겠다는 스페인 주교의 말에도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다. 타락한 종교 앞에서 로렌조 그 자신도 '변해버린' 종교인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이성'에 의한 사회가 도래했음을 스스로 보여준다.
이네즈
엘리시아
이네즈와 엘리시아는 엄마와 딸의 관계이지만, 영화속에서는 나탈리 포트만 혼자서 두 역할을 소화해냈다.(정말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한 작품은 볼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며, 그녀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심히 의심스럽게 만든다. 나는 이제 그녀가 키이라 나이틀리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옹'에서부터, 'V for vendetta', 'Black Swan'까지, 물론 이 작품은 그 사이에 있는 작품이지만, 어쨋거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하다. 어머니와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네즈'가 나탈리 포트만'같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저 배우 나탈리 포트만 아니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지만, 그녀는 맞았다. 나탈리 포트만이 맞다.
'마녀'를 지금 그리고 있다고 하면서 이네즈를 바라보는 고야, 이네즈는 고야에게 '뮤즈'이지만, 유대교를 믿었다고 '고문'에 의한 자백을 하면서 종교재판소에 갇히게 된다. 그런 그녀를 빼내기 위해서 토마스 가족은 다양한 경로로 시도를 해보지만 번번히 실패하고만 만다. 끝내 이네즈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서 감옥에서 나오게 되며, 남은 것은 자신의 딸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야에게 털어놓는다.
혁명과 함께 찾아온 로렌조를 만나게 된 고야는 '이네즈'를 기억하는지 물으며 이네즈의 딸이자 로렌조의 딸인 '엘리시아'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로렌조는 자신의 경력에 '엘리시아'가 해를 입힐걸 두려워 하며 둘을 떨어뜨려놓고, 만나지 못하게 하며, 엘리시아는 영국 장교를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고 떠나게 된다.
간만에 이 영화는 얼마나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 수록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최근 들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요즘 머릿속에 있었던 '인상주의' 작품들과 별개로, 벨라스케즈나 고야와 같은 17,18세기 화가들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도 좋았다. '시대극'을 보는 게 아예 모르는 '판타지'를 보는 것 보다는 좀 더 유익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내면을 날카롭게 묘사한 영화감독의 화면구성도 좋았다.